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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May 13. 2024

핫한 연하남을 거절했었던 진짜 이유

교류분석으로 본 자기 고집 강한데 다 퍼주는 유형

연애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심리검사지를 한 개 풀고 가라고 해서 휘리릭 풀고 갔다. 다음에 가니, 어떤 검사인지와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해 주셨다.


내가 받았던 심리 검사는 에릭 번이 계발한 교류분석(TA) 테스트였다. 교류분석에서는 개인의 자아를 부모 자아-어른-아이 자아(P-A-C)로 설명하는 모델을 사용한다. 테스트를 통해서 부모 자아의 두 가지 유형(통제적 부모, 양육적 부모), 어른, 아이 자아의 두 가지 유형(자유로운 아이, 순응적인 아이)의 다섯 가지 분류에서 내가 각각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지(어떤 성향이 높고 낮은 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알 수 있었다.


PAC 모델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모(Parent) 자아는 부모로부터 경험한 것들로 만들어져 있다. 주 양육자로부터 영향받은 행동, 말투, 생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른 자아에는 통제적 부모 자아와 양육적 부모 자아가 있는데, 단어 그대로 통제적 부모 자아는 지적하고 비판적이고, 엄격하고 깐깐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자아이고, 양육적 부모 자아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보호하려고 하는 자아이다.


아이(Child) 자아는 어린 시절에 느끼고 생각했던 반응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 자아가 ’모방하는 나‘라고 한다면 아이 자아는 ’느끼는 나‘이다.


아이 자아에는 자유로운 아이 자아와 순응하는 아이 자아가 있다. 자유로운 아이 자아는 밝고 천진난만하고 즉흥적이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거침없는 아이 같은 자아이다. 반면 순응하는 아이 자아는 눈치 보는 아이처럼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려고 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을 지녔다.


어른(Adult) 자아는 ’사고하는 나‘로 부모 자아와 아이 자아 상태로부터 오는 정보를 근거로 해서 자신의 자아 상태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역할을 한다. 어른 자아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사실에 근거에 상황을 판단하는데, 과도할 경우에는 로봇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타인에게 차가워 보이기도 한다.


교류 분석 이론에 따르면, 외부 자극이 올 때 어떤 사람은 부모 자아를 많이 활용하고, 어떤 사람은 아이 자아를 많이 활용하는데, 그것이 그 사람의 성격적 특징이 된다.


최근에 인간관계와 일에서 극도로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시간을 펼쳐서 생각하면 회사에서는 처음 일했을 때부터, 아니 대학생 때 처음 파트타임으로 일했을 때부터, 인간관계에서는 어렸을 때 사귀었던 친구들이나 내게 먼저 다가와서 친해졌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그랬다.


나는 그런 관계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거나, 그래서 결국 손절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켰다. 교류 분석 검사 결과를 받고 나니, 왜 내가 그런 패턴의 인간관계를 맺었었나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부모자아를 많이 끌어다 쓰는 사람인데 그중에서도 양육적 자아가 특히나 높았다. 이런 사람들이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은 ‘나는 호구인가?’라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친구를 만나면, 거의 무조건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친구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다가, 집에 갈 때 하는 생각은 ‘혼자 뭐 먹어야겠다, 아.. 영화관에서 한 번 봤던 영화 또 보느라 너무 지루했네, 좁은 데서 다리도 못 움직이고 다닥다닥 앉아서 뮤지컬 보기 너무 힘들었다, 책 읽거나 관심분야 공부하고 싶은데 공기 안 좋은 쇼핑몰 가서 옷구경하느라 너무 시간 아깝네, 이제 한동안 친구를 안 만나고 혼자 하고 싶은 것 해야겠다’였다.


친구는 재밌고 즐거웠다고 자주 보자고 하는데, 친구의 취향에 맞춰 평소에 별로 안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고, 평소에 하기 피곤해하는 일을 같이 했던 나의 마음은 완전히 동상이몽이었다.


친구 부탁이면, 내가 불편해도 무조건 들어주려고 했고, 심지어는 부탁도 하기 전에 언제든 도와줄 것 같은 포지션을 먼저 취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사교적인 성향도 아니고 시간의 효율성을 엄청나게 추구하는 성향인데, 몇 개의 모임에서 운영진을 하고, 도와달라는 일을 묵묵히 처리했다.


나는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배려하고,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고, 친구에게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 막상 누가 내게 똑같이 해줄까 생각을 해보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나는 의리가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고 넘겼다.


요즘에는 ‘이렇게까지 베풀었는데 나한테 이렇게 한다고? ’라는 생각을 하며 실망해 지인을 손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칠 때면 그냥 조금 덜 잘해주자며 스스로를 다잡는데, 역시 나는 계속 친절하고 다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더 아낌없이 퍼줬다. 통제적 자아 성향도 높은 편이라서, 내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자로 잰듯한 선으로 평가, 판단하는데 연인에겐 세상 관대하려고 했다.


연하남을 만나면 그런 성향은 더 극대화되었다. 동생이면 물론 남자로도 느끼지만 평소에 기본적으로 아기처럼 느껴졌다. 아기니까 당연히 잘 보살펴줘야지 싶었다. 아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같이 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웬만하면 맞춰주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것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의식적으로 지치고 싫었다. 교류 분석의 아이 자아 측면으로 가면 나는 자유로운 아이 성향이 유난히 높았고, 순응하는 아이 성향이 유난히 낮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데, 양육적 부모 자아가 툭 튀어나와 타인에게 맞춰줄 때면 내면적으로는 마냥 행복하지가 않았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나 가족에게는 최대한 배려하고 맞춰줄 수 있는데, 자주 보는 연인에게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행복지수가 떨어질 것 같았다. 꼭 연하라고 내가 무조건 맞춰주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먼저 뚜렷이 말하는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을 만나면 더 그렇게 되었다.


오래 만났던 연인은 음식에 호불호가 별로 없고 경험에 열려 있고 배려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야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들도 할 수 있겠구나, 더 행복지수가 높아지겠구나, 내가 원래 가지고 태어난 성향대로 자유로운 아이 같은 모습이 나타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훈훈했던 연하남은 두 번째 만남에 어떤 특정 장소에 가서 뭘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자고 말하는 사람보다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거나 옵션을 주는 사람과 함께 할 때 훨씬 편안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주도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무슬림이라서 돼지고기를 안 먹었는데, 내게 만약에 같이 살면 장볼 때 돼지고기를 안 사거나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너한테 권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가 원래 어렸을 때부터 먹던 음식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며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자기중심성을 느꼈다.


그래서 만나보기도 전에 지칠 것 같다고 느꼈다. 감정적으로 다시 연락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역시나 처음 결정이 맞았다.


* 참고 문헌 : 김정현, 에릭 번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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