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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Sep 05. 2023

취리히행 티켓은 환불하지 못했다.

어떤 아르바이트

-옆편 소설-


“제가 올린 파일을 자세히 보신 게 맞는 거죠?”

“네에. 처음에는 많이 고민 됐었는데 어르신의 뜻을 이해할 것 같아서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선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고 책임 도지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책임 질 일은 없게 조처를 취해 놓았습니다.”

"아, 네."

“보수는 취리히 공항에 도착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스위스여행에 동참해 주시면 백만 원을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어떤가요?”

“제가 낯을 가려서요. 말을 안 해도 좋으시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좋습니다. 젊은 친구.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가 된 겁니다. 비록 돈으로 얽힌 사이지만. 허허. 오늘은 이만 하고 만나는 날까지 문자로 연락하기로 합시다.”


 노인과의 대화는 싱거우리만치 짧게 끝나버렸다. 노인에게서는 어떤 죽음의 그림자도 그에 대한 낙담도 볼 수 없었다. 잘 정돈된 외양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상상을 하게 할 뿐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는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닮아있어서 낯가림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을 뿐이다.


일주일에 오백만 원이라는 보수는 지훈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우물에서 건져주는 동아줄이었다. 단기에 고액이라는 검색어를 치자 수많은 사기알바가 눈이 시리게 판을 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외로운 노인과 해외여행 동반 하실 분을 찾습니다.’라는 한 줄이 눈에 띄었다. 급하게 클릭을 하자 이미 수백 명이 문의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밀 설정이 되어있어서 상태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꿀 알바는 벌써 마감이 되고도 남을 터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마감됐나요?-

-아닙니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가 보낸 파일을 꼼꼼히 읽어보시고 연락을 주십시오. 반드시 자세히     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파일이 도착했다. 클릭을 하니 화려하고 세련된 홈페이지가 펼쳐졌다.  페가**라는 단체의 이름이 보였고 온통 영어로 된 사이트였다.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지훈은 파일을 제대로 보낸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페가**는 안락사를 조력하는 단체였다. 도대체 어이가 없어서 읽지도 않고 페이지만 넘기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자 노인이 쓴 것으로 보이는 한 페이지의 글이 있었다.


저는 췌장암말기 환자입니다. 췌장암은 많이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저는 겁쟁이라서 그런지 아픈 게 제일 무섭습니다. 그전부터 이런 일이 생기면 안락사를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비용도 따로 모아놓기도 했고요.


저는 이 모든 일을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할 것입니다. 삼 년 전에 아내를 난소암으로 먼저 떠나보냈는데 날을 받아놓고서 아내를 대하는 감정이 너무 이상했어요. 허구 헌 날을 죽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밥을 먹는구나! 죽는 사람을 앞에 뉴스를 보는구나! 또 하루가 저무는구나! 하면서 아무리 잘해주려 해도 부족한 것 같고 뭐라도 거창 한 걸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잘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내에게는 소용이 없었답니다. 그냥저냥 아파하는 아내 곁에서 어떻게 하냐는 넋두리만 하던 차에 그렇게 싱겁게 보내 버렸어요.


 우리 애들도 마찬 가지였답니다. 울다가 웃다가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일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피폐해져 버리는 걸 지켜봤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안락사하는 걸 찬성할 리가 없습니다. 제가 좀 옛날식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아비가 안락사한다는데 찬성할 성정이 못되지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파일에서 보셨듯이 가족이나 친구가 반드시 동반을 해야지만 받아준다는군요. 제발   마지막 길에 제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이건 저를 죽이는데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지해 주시는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제 의사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제가 여태 욕심을 부리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여정만은 제 마음껏 욕심을 부려볼 작정입니다.    ***


“젠장, 이래서 마감되지 않은 거였어? 노망이네 노인네가!”

지훈은 노트북을 닫아버리고는 얼음물을 들이켰다. 이 황당한 접선은 찝찝한 감정만 남기고 말았었다.


 지훈이 노인의 거래를 수락한 건  된 건 며칠 후에 날아든 카드대금 연체문자 때문이었다. 졸업여행비 용하고 여자 친구와 백일이벤트를 하느라 무리를 했었기 때문이다. 이미 카드대출로 대납을 한 상태라서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다. 지훈은 페가수스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마음속에서 자꾸만 긍정적인 사고가 생성되고 있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서구사람들의 장점인 것 같았다.


-젊은 친구, 스위스 여행 코스가 여러 가지더군요. 어쩐 게 좋을지 보고 골라보시오.-

- 어르신이 좋은 곳으로 가셔야죠. 저야 따라만 가는 사람인 걸요.-

-사실 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라서 봐도 잘 몰라요. 어디를 가던 지 스위스면 좋아요. 이런 것도 젊은 사람들이 빠삭하게 잘 알지, 노인네가 뭘 아나요. 그러니 골라  봐요.-


일주일 전부터는 이런 대화가 하루에 한 번씩은 계속됐다. 노인은 내내 들떠있었다. 스위스를 여행한다는 것에. 졸음 같은 마지막순간에 대해서 정말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에는 추울지도 모르니 패딩을 꼭 챙겨 오라고 하셨다. 지훈은 이렇게 매일같이 여행얘기를 하다 보니까 정말 휴가라도 떠나는 것 같아서 헛헛하게 웃는 중이다.

 여행 가방을 다시 열고선 여자 친구가 선물한 초콜릿을 넣었다. 벨기에산 초콜릿은 아까워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이 초콜릿은 할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어졌다. 마터호른 위에서 컵라면을 먹고 나서 드리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잠을 청하려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노인의 마지막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우니 감사하다고 할 것이다. 가끔씩 지훈을 바라보는 눈은 한없이 깊고 따스할 것이다. 노인의 마지막 유언은 잘 살다 간다며 자신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다.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노인의 깊은 뜻 너무도 이해가 되니 어찌 되든 감수하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러려면 잠을 자야만 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고전적인 방법으로 수면을 불러들이는데 알림 소리가 들렸다. 노인에게서 오백만 원이 입금됐다. 지훈은 그동안 자신에게 신뢰감이 생겨서 선입금을 해준 걸로 생각했다.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돈은 그런 존재였다. 순간 “띠링”하며 다시 문자가 왔다.


“젊은 친구 내일 공항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네.”

“어르신, 마음이 바뀌신 거예요?”

그건 아닐세, 사실 우리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크게 내서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하네. 내가 가진 돈이 얼추 그 정도는 되니 보태줘야 하지 않겠나!”

“어르신 그럼 어르신 소망은 요? 너무 아프게 되면요?”

노인은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사시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어르신, 그럼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

노인은  답을 하지 않은 채  지훈의 번호를 차단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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