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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Oct 23. 2023

고독을 치웁니다

제1화 트라우마 클리너 (trauma  cleaner)

 



   골목들의 모습은 닮아있다. 새 건물이건 낡은 건물이건 간에 들쑥날쑥하면서도 촘촘하게 줄지어있다. 그리고 전봇대가 있는 모퉁이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기 마련인데,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훅 끼쳐온다. 종량제봉투들엔 나름, 버린 사람들의 성향이 깃들어있어, 너무 채워서 터질 것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한참은 더 채워도 될 것처럼 헐렁한 것들이 뒤섞여있다.

  간혹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에 들어서면  맨드라미 같은 소박한 식물들을 심어 놓은 작고 큰 화분들이 집의 울타리처럼 나와 있다. 그 뒤로 가끔씩, 낮은 부엌을 통해 집안이 훤히 보이게 새시 문이 열려있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사뭇 정겨워 보이는 것이라서, 이 골목 안에선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골목들도 역시 예외는 없었다. 혼자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 곳에도 있었다. 살고 있는 사람들만큼, 수많은 벽이 얼마나 철저히 서로를 외면하게 하는지를, 그곳에서 고독한 자만이 알고 있었다.


  현기는 다섯 번째 작업을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눈썹을 가린 숱 많은 앞머리는 일자로 컷트해서 덥수룩하게 쌓여있는 모양이었다. 쌍꺼풀 없는 큰 눈에 콧대는 높고 끝이 약간 둥근 코, 두툼하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은 어떤 방향으로도 힘을 주지 않은 릴랙스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완벽한 무언의 표정은 아니고,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정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손 사장은 현기와 작업도구들을 내려놓고 공영 주차장으로 트럭을 세워두러 갔다. 현기는 그동안, 도구들을 들고 작업현장으로 가고 있었다. 걷어 올린 소매 밖으로 앙상한 손목이 드러났다. 밥 한공기도 들지 못할 것 같은 현기는 힘이 아주 셌다. 도구함을 번쩍 들고 골목 안으로 향하는 걸음은 조금의 요동도 없이 민첩하기만 했다.




  현기는 주로 고독사한 사람들의 집을 치우는 특수 청소전문 클리너다. 이제 스물 하나인 현기가 이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열 번 정도만 일을 해도 편의점에서 한 달 내내 일을 하고 받는 급여보다도 훨씬 많다. 단, 이일을 오래하기 위해선 남다른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시신이 오래도록 방치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된 시신을 치우고 나면 망자의 그림자가 그대로 박혀버린 것 같은 시커먼 자국이 남는다. 그 자국은 시신에서 나온 피와 체액이 시트나 바닥에 스며든 후에 굳어진 것으로 콘크리트 바닥 속에 깊숙이 침투해버리면 방법이 없다. 체액 속에는 기름기가 많아서 닦아 내는 것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유의 시취는 절대로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은 바닥자체를 걷어내야 할 때가 많다. 현기는 그 얼룩들이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고인들의 바람 같다고 생각했다.


 " 에구, 구더기가  여기까지 기어 나왔네. 이미 빌라 안에 퍼졌나본데? 아무튼 지독한 놈들이야." 손 사장이 어느새 트럭을 주차하고 나타났다.


 " 이제는 좀 냄새가 적응되나?"


현기는 말하는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 기대하지 마. 시취는 아무리 오래 일해도 적응되지 않을 거야. 몸에 배는 것 같은 느낌은 좀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고......"


  손 사장은 숱이 사라져 버린 머리 꼭대기의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알고 보면 사람 좋은 손 사장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냄새를 참느라 찡그렸던 미간에 주름이 박혀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웃지 않으면, 말을 붙이기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희망의 싹을 꺾어버리는, 지나치게 솔직한 말버릇까지 생겨버렸다.


  청소를 하고나면 피부모공 속까지 시취가 배어버린다. 아무리 비누칠을 여러 번 하고 헹궈낸다고 해도 냄새는 남아있었다. 막상 살갗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 비누 향만 나기에,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기는 언젠가부터 콧구멍 속까지 비누칠해서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냄새는 뇌 속에 박혀버린 것인지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견디면서 어서 적응되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 젠장, 절대 적응되지 않을 거라니!'


  망자의 집은 다행히 2층이었다. 무거운 장비들을 엘리베이터없는 빌라 계단으로 가지고 올라가는 것도 꽤 힘이 드는 일이다.

  사십 대 남자, 가족 없이 혼자서 암 투병을 하다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만에 발견되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고인은 보일러를 켜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한참 후에야 냄새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망자의 집 앞에 다다르자, 앞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분홍색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게 보였다. 여자는 우리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 냄새가 빠지려면 얼마나 걸려요?“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글쎄요, 저희도 아직 들어가기 전이라 상태를 봐야 정확히 말씀을 드릴 수가 있는데, 보통은 청소 마치고 한 사흘이면 괜찮아지기도 하고 심한 건 한 달 내내 안 빠지기도 하고."

"하필 내 집 앞에서! 미쳐!"

여자는 캐리어가 바닥에 닿을세라 가슴에 껴안고 계단을 내려가며 짜증을 냈다. 그저 자기 집 앞까지 기어 다니는 구더기와 참을 수 없는 냄새만을 걱정하는 말투였다. 망자를 향한 애도의 마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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