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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Oct 23. 2023

고독을 치웁니다

제3화  부치지 못한 편지

손사장은 어제 저녁 임시방편으로 냄새와 구더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여 놓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다음 길게 심호흡을 했다. 벌써 이십 년 이상 이 일을 해왔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은 꼭 긴장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 것인지, 혹시 장판아래로 시신의 체액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인지, 혹은 사진 속에서 웃는 고인의 미소가 너무 해맑은 것은 아닌지. 그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 두려움은 세월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묵직하게 마음을 붙잡는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자신과 같은 직업을 하는 사람들을 트라우마- 클리너라고 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익숙한 냄새가 달려들었다. 방독면을 뚫고 들어오는 냄새는 한결같다. 돈이 많았던 사람이든, 노숙자였던 사람이든 사람은 다 똑같은 형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시신의 시취가 말해주고 있다. 고인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셨다.  주무시다 가신 것인지는 모르지만 얇은 홑이불 위로 돌아가셨을 때의 형체가 그대로 박혀있었다. 현기는 그 자국을 돌아가신 분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곤 했다. 눈 코, 입 같은 형체 없이 그저 검게 침착된 흔적은 고인이 살아있었을 때처럼 외로운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손사장은 벽지가 들떠있어서 간당하게 걸려있던 도인의 사진액자를 걷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고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품에 안은 채, 묵념을 하자고 했다.  고인은 중동에 나간 적이 있는 건설노동자 같았다.

30 후반이나 40 초반 정도로 보이는 고인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커다란 파이프가 지나는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덕에 더 하얗게 빛나보이는 치아는 왠지 희망을 품고 있는 듯 생기 있어 보였다. 현기는 이렇게 고인의 사진을 대할 때가 첫 번째로 마음이 무겁다.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던 고인은 어쩌다가 이렇게 후미진 동네 골목 안, 8평 원룸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기화되고 있었는지. 그래서 현기는 묵념을 할 때마다 진심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비록 철저히 돈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현기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쓸쓸하고 헛헛한 죽음 앞에선 마음이 동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기, 현관문 앞에서부터 봉투에 담으면서 들어와. 늘 하는 얘기지만 귀중품이나 유품 같은 건 따로 잘 보관해놔야 하는 거 알지. 일 년 지나고 나서도 찾으러 오는 유족들이 있다고 했지.  이상자 속에 넣어. 시작하자."

현기는 현관으로 가서 신발장 문을 열었다. 신발장 안에는 고작 세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장화처럼 목이 킨 워커엔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던 것 같다. 그 옆으론 뽀얗게 먼지 쌓인,  가족이나 지인들의 행사에 참여하기위해 마련했을 법한 정장 구두는 신은 적이 없는 지 새것이었다.나머지 한 켤레는 홈쇼핑에서 삼만 원에 파는 아웃도어용 운동화였다. 아마 주말이면 등산을 다니곤 했던 모양이다.  현기는 그저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신발을 종량제 봉투 안에 넣고, 현관 앞에 놓인 김치통을 흔들어 봤다. 찰랑거리는 게  내용물이 있는 게 확실했다.

 뚜껑을 열었다.  매실 장아찌였다. 알이 작고 고르지 못한 걸 보니 직접 따서 담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집 안은 깨끗하고 잘 정돈 었다. 고인은 깔끔한 성격에 이것저것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다용도실 선반에도 여러 가지 열매들로 만든  병이 즐비하게 놓여있었다. 병들은 날짜와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나란히 놓여 있었다.


 현기보다 삼 년 먼저 일을 시작한  영목이 형이 시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치우면 현기는 주로 가구 안 쪽에 있는 집기들을 빼내서 분류하고 버리는 작업을 한다. 현기는 영목이 형 마주 편에서 고인의 좌식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컴퓨터는 보이지 않았다. 김훈의 산 같은 소설들과 두께나 사이즈가 제 각기인 노트 몇 권이 껐려 있었다.

현기는 박스를 가져가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던져놓고,  고인이 쓰던 일기장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혹시 유족들이 묻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트들을 빠르게 넘기며 점검하기 시작했다.

몇 권의 노트를 넘겨봐도 글씨 하나 없는 빈 노트였다. 모두 쓰레기봉투 속으로 넣어버렸다.

그다음으로, 테이블 위에 유리를 걷어내고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들어냈다. 그러자 누렇게 빛이 바랜 편지지가 4절로 접혀 있었다.




사랑하는 딸, 해주에게.

오랜만이지? 내 딸 해주,

고모한테서 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축하한다. 어느새 자라서 이렇게 결혼까지 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구나. 신랑은 좋은 사람일 거다. 우리 해주는 현명하니가 책임감 없고 얼굴만 잘난 그런 남자를 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아빠는 믿고 있다. 해주야 결혼이라는 건 서로에게 자신을 맞춰나가는 과정이더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과정을 고통스럽고 손해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티지만, 현명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단다. 그러니 그 시간들이 때론 즐거울 수 있고.

 안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혼자 지내면서 늘 반복하 후회가 있어서  감히 너한테 조언을 하는구나.

해주야. 후회하는 삶처럼 비참한 것이 없더구나. 부디 너는 나처럼,  사는 동안 어느 지점에서든 후회를 남기 말. 너는 엄마를 닮아서 영리하고 얼굴도 예뻐서 아빠는 아주 행복했다. 아빠 결혼식에 참석할 자격도 없고 참석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너의 행복과 안녕을 빌고 있다는  알아주길 바란다.

결코 네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마라.

그리고 아빠가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마지막으로 쓴다.

미안하다. 내가 아빠여서 정말 미안하다.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남들처럼 해 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 네 말을 무시해서 미안하다. 네가 말한 대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네가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다 망쳐버렸다. 자꾸 미안하다는 말만 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못난 아빠가.




고인은 결국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는 게 맞을 거다. 변색한 정도로 봐서 고인은 오래 전에 편지를 쓴 것으로 보였다.  군데군데 눈물자국도 있었다. 현기는 그 편지에 자신의 눈물까지  떨구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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