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는 엄마랑 제주를 갔다. 가장 좋아하는 동쪽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고르고 골라 다녔다.엄마는 집으로 먼저 돌아가고, 나는 제주에서 혼자 며칠을 더 머물렀다. 적당히 쓸쓸하고 지루했던 그간의 홀로 제주도 참 좋았지만, 엄마랑 함께인 여차저차 알찬 제주도 참 좋았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 다 큰 딸을 새삼스러워했다. 내일이면 서른인 딸이 운전을 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엄마를 챙기는 모습이 참 희한하다고 했다. 엄마는 운전하는 내 모습을 한참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더니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다 키웠다, 내년에는 니 애인이랑 셋이 오자! 하면서. 둘이 오면 둘이 왔지 셋이 올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여행의 시작에 엄마가 있어서 괜히 든든했다. 타지에서 처음 운전을 하는 나에게 좌회전은 우회전으로, 우회전은 좌회전으로 말해주는 조수석의 엄마였음에도.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돌아도 괜찮았다. 빙빙 돌아서 찾아간 맛집이 하필 휴일이어도 괜찮았다. 짜증 없는 순탄한, 게다가 퍽 행복한 시간이었다. 엄마와 나의 여행인데도.
내 가방에는 책이 네 권, 엄마의 가방에는 두 권 들어있었다. 여행 동안 그 책들을 펼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어딜 가든 꼭 챙겨 나서긴 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음악을 틀지 않았다. 둘 다 말없이 조용히 가다가 예쁜 길이 나오면 오- 길 좋다-! 하고는 각자 이름 모를 노래를 잠시 흥얼거릴 뿐이었다. 바다 앞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각자 서로의 바다를 충분히 찍은 다음에는 바다 앞에 선 서로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찍어줬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사진을 이상하게 찍는다며 핀잔을 듣는 쪽은 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핀잔을 주는 쪽이었다. 엄마는 나보다 더 사진을 이상하게 찍는 사람이었다. 계획했던 우도도 못 갔고, 함덕의 해바라기 밭도 못 갔고, 월정 해변도 못 갔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에 가보지 뭐, 하면 그만이었다. 대신 마음에 쏙 들어버린 동네 앞바다에서 점심도 굶어가며 반나절 내내 스노클링을 했다. 계획했던 바쁜 일정보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잔잔한 여유를 누리는 것이 더 행복한 우리였다.
바다에 드러누운 귀여운 엄마
찾아뒀던 맛집에 손님이 너무 많을 때는 그 옆에 있는 조용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1등 맛집 옆집은 2등 맛집 일 것이라고 우리는 믿었고,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식사는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갈 때는 편의점에 꼭 들렀다. 맥주 없는 여행지의 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맥주만큼은 항상 넉넉하게 샀다. 우리에게 맥주가 아쉬운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씻고, 맥주를 먹고, 조금 누워 있다가는 꼭 밤 산책을 했다. 구름이 많은 탓에 별을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첫 번째 숙소에 나는 칫솔을 놔두고 왔고, 엄마는 카디건을 놔두고 왔다. 떠나기 아쉬웠던 동네였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들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행 내내 내가 이렇게 할래? 하면 엄마는 그래!라고 했고, 엄마가 저렇게 할래?라고 하면 나는 그래!라고 했다. 집에서는 안 맞다, 안 맞아- 하면서 살았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엄마는 참 나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참 엄마를 닮은 딸이었다. 하다못해 오른쪽 발 네 번째 발가락의 티눈마저 닮았다. 멋진 일이다. 나보다 앞서 삶을 시작한 나 같은 사람이 나를 낳고 길러서 내 옆에서 살고 있다. 내일은 꼭 엄마에게 제주의 잠잠히 뜨거운 일몰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엄마도 분명 좋아할 테니까. 이번 여름, 엄마와 함께인 제주에서 나는 참 멋진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참, 나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