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써야 하는데 안경이 실종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내 물건들의 실종사건을 겪어야 할까

by sunshine

안경이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내 안경이 없다. 동글동글 섬세하게 가공된 가볍고 탄력 있는 티타늄 테와 빛의 굴절이 예술적인(모르긴 해도 아마도 예술적일) 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내 안경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당연히 집안 어딘가에, 아마도 화장대 맨 위칸 오른쪽 서랍 어디쯤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찾으니 그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안경을 찾은 지 한 달 째다. 문득 생각날 때면 옷방 서랍을 뒤집고, 베란다 창고를 뒤집고, 자주 안 드는 가방을 헤집어 안경을 찾고 있지만 없다. 그 어디에도.



사실 안경을 써야 앞이 훤히 보이는 정도의 시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원래는 안경을 안 쓰는 사람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다. 다만 모니터를 오래 쳐다보며 작업을 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해가 갈수록 눈의 피로가 심해지고 건조증이 생겨서 시력 보호 차원으로 몇 해 전 안경을 하나 장만했다. 안경을 안 쓰는 사람들은 공감할 거라 여겨지는데, 안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안경은 때로 로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하나로 지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불혹이 되니 모니터를 한 시간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의 피로가 심해졌다. 시력보호안경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경을 찾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내 눈은 계속해서 혹사당하고 있다. 도대체 몇 번 써 본 적도 없는 내 안경은 어디에 가버린 걸까. 분명 집안 어딘가에 있는데 새로 안경을 맞춰야 하는, 주부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다.



꼭 이럴 때가 있다. 찾을 땐 없다가 어느 날 짠 하고 나타나, 나 원래 여기 있었어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번은 깨소금 병을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주방 어디에서도 찾질 못하다가 싱크대 상부장 제일 앞줄에서 별안간 '발견'한 적도 있다. 깨소금을 애타게 찾는 내가 안쓰러운 나머지 웬 마법사가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살포시 두고 간 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중 제일 많이 열어대는 문 바로 앞줄에 깨소금이 떡하니 있었던 그 일은 우리 부부 사이에 잊을만하면 떠올리는 에피소드인데, 왜냐면 남편 역시 그 짓(?)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야, 깨소금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데 좀 봐봐"

뒤적뒤적 쾅쾅, 남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없어, 안 보여, 여기 있을 것 같은데 없네?"

"그렇지? 휴, 그 커다란 병이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자기가 어디 다른 데 치운 거 아냐? 잘 좀 생각해봐"



두 사람이 깨소금 병 찾는다고 싱크대 상부장을 열어젖힌 횟수가 족히 15번은 될 거다. 나중에 '발견'된 깨소금 병 앞에서 둘 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건 신의 농간이고 누군가 우리 몰래 집에 다녀간 거라고, 차라리 그게 더 말이 되는 상황이었달까.



깨소금 사건 이후 나는 '눈 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해대곤 한다. 그러니 안경 역시 분명 어딘가에 옥체 보존하고 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선뜻 새 안경 맞출 결심을 못하고 있다.



이 일이 글로 남길 정도가 되나 싶지만 요즘 가장 공 들여 고민하는 이슈가 안경 실종사건이기에 이렇게라도 답답한 심정을 토해내야 할 것 같다. 내가 성심성의껏 안경을 찾았다는 걸 증거로 남겨놔야 새 안경을 맞출 명분이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 주말 마지막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집어 보려 한다.

그래도 안 나타나면, 그래도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내 눈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새 안경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결심을 했지만 마음이 좀처럼 편안해지질 않는다. 이젠 돈이 아까운 문제가 아니라 뭐랄까,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됐다.



불혹에 벌써부터 이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물건들의 실종사건을 경험해야 한단 걸까.



분명히 내가 어딘가에 고이 잘 뒀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내 안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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