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을 자신도 없으면서 몸을 보살피지 않은, 나에 대한 무례
마흔 살. 연말이면 숙제처럼 건강검진을 받는다. 직장인의 의무와 권리 사이 어디쯤에 건강검진이 있는 걸까.
재작년 모른척하고 이 숙제를 건너뛰었는데, 회사 관리부서 직원에게 콜을 받은 적이 있다. 왜 안 하셨냐, 내년엔 꼭 해야 한다, 그런 지적을 받았다. 불혹인 올해도 미루고 미루다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날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닌데 왜 이다지 내키지 않는 걸까.
아주 심플한 표면상의 이유와 좀 복잡한 내면상의 이유가 있다.
먼저는, 남 앞에서 체중을 재고 그걸 기록한 종이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부끄러워서다. 170cm에서 몇 밀리미터 모자란, 키가 큰 편이라, 어느 정도 체중이 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내가 정한 한계선이란 게 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그 선을 넘어버린 탓이다. 웃긴 게, 어쩌다 보니 그 선을 넘은 것도 아니고 기억하는 한 최근 10년은 선 훌쩍 너머에 있었는데도 그렇다. 이 수치를 타인과 함께 확인하는 그 순간이 멋쩍기도 하고 여전히 관리가 안 된 몸뚱이로 산다는 자괴감에 부끄럽다.
두 번째는, 혹시나 무언가 발견돼 내 인생이 유턴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건강검진을 받는 이유가, 몸상태가 어떻든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 것은 빨리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 부분은 이제부터라도 관리하라는 취지일 터인데 그걸 알게 되는 게 두렵다. 꼭 나쁜 덩어리 같은 게 발견될 것만 같고 인생이 망가져버릴 것만 같다.
쓰고 보니 참 어리석구나 싶다. 모른 척하다가 일을 더 키우기 딱 좋은 타입이다. 손바닥으로 막을 걸 호미로도 못 막고 아예 둑이 터져버릴 때가 돼서야 철퍼덕 주저앉아 엉엉 울, 아주 답답한 타입이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병 트라우마인가.
결혼 후 2년쯤 됐을 때, 남편의 친형이 뇌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39살이었고, 유능한 대기업 과장님이었다. 나랑 나이가 같은 와이프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째 아들, 세 살 된 꼬물이 둘째 아들이 그의 가족이다. 이 네 사람은 평범하고 일반적이었고 예뻤다.
그는 투병 2년 만에 세상을 등지고 가족을 떠났다. 나와는 가족이라기엔 심리적 거리감이 존재했던 사람이었지만, 남편의 형이라는 관계만으로는 꽤나 가까운 사람이었으므로 병이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생명을 어떤 식으로 앗아가는지를 가까이서 봤다.
큰일을 겪고 처음엔 건강검진을 더 악착같이 받았었다.
뇌 MRI와 MRA를 해마다 찍었고 조금만 두통이 와도 죽음을 생각했다. 유전에 대한 공포도 있어 아이를 갖기가 무서웠다.
뇌는 이상이 없었고 두통은 늘 사라졌다. 아플까 봐 내 몸에 무서운 놈이 생겼을까 봐, 남편이 아플까 봐 남편이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3~4년이 지나고 나니 실체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습관처럼 나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나도 아플 수 있고, 내 인생도 곧 끝날 수 있다는 공포.
문제는 공포만 있고 대비는 없다는 데 있다. 더 건강해지려는 노력도 않는 주재에 아프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자란 인간이 되고 말았다.
마흔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한 해였지만, 모자란 인간은 올해도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서야 막차를 탈 예정이다.
엉망으로 한 숙제를 선생님 앞에 내놓은 아이의 부끄러움이 지금 감정과 비슷할까.
아프지 않을 자신도 없으면서 건강관리를 등한시 한 불혹의 몸뚱이가 너무나 위축되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