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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해랑 Nov 21. 2023

전지적 수능시점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루

수능 치는 달이 되니 그 시절 내가 치렀던 수능이 생각이 난다. 나는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으나 오만이었을까 고등학교 1,2년은 거의 날려먹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해서 뭘 하는지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다. 그냥 태어났으니 학교 다니고 다니다 보니 대학도 가나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성적은 곤두박질. 집에서 매일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면서도 교과시간은 또 다른 숙면시간이었다. 가족들도 어느 순간부터 나의 성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 했고 나 역시 그런 일상들이 자연스러워졌다. 성적 맞춰서 적당한 곳에 가서 얼른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지만 성적에 있어서는 철저한 결과주의셨다. 과정이 있었으니 결과가 보여준다는 식이여서 늘 성적표 검사를 확인받아야 했고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혼도 내셨다. 언니에 대한 기대가 크셨고 나는 차녀라서 자연히 조금은 그 기대에 멀어지긴 했지만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눈치를 잘 채는 둘째는 알아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동기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공부에 대한 결심이 불현듯 생겼다.

고3 초입인데 같이 어울려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랑 늘 놀고 공부 손 놓은 아이인데 왜 갑자기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나는 결심했다. ’ 내가 쟤보다는 잘해야겠다. 나 버리고 공부를 택했다이거지“ 별 시답지도 않은 분노를 혼자 했더랬다. 자 책을 펴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이미 2년을 손 놓은 공부는 진도를 따라가기도 이해해 내기도 어려웠다.

출처:픽사베이

‘뭐 뉴스 보니 만점자들 교과서 보고 했다는데 나도 교과서부터 보면 되지’ 호기롭게 교과서를 폈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2학년 교과서로 넘어갔다. 역시 모른다. 1학년 아주 첫 페이지부터 그저 그냥 정독했다. 그렇다고 밤새고 쉬는 시간 공부하고 그건 아니었다 의지가 약한 나는 자습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리고 드디어 수업시간 졸지 않고 선생님 눈을 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일단 눈만 봤다. 수업태도 좋다고 칭찬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제대로 된 첫 공부는 꽤 나름 계획적이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하자’

컨디션 많이 안 좋은 날은 수학 문제 5개, 독해 한지문, 이런 식으로 조절해 가며 그냥 그저 매일 했다. 주어진 시간은 7개월 남짓. 중간, 기말고사 성적이 조금씩 오른다. ‘오 교과서 봐도 되는구나’ 성취감을 한번 느끼고 나니 속도가 나고 욕심이 난다. 그렇게 나는 수능전날까지 늘 하던 대로 영어지문 2개 풀이, 수학풀이 2장, 국어지문 2개 풀이, 과탐사탐 1장씩 암기를 유지하며 수능장으로 갔다.

결과는 ‘대박’ 직전 모의고사에서도 못 보던 대박 점수가 나왔다.

수능으로 대박 친 사람 나야 나.

물론 내 기준 대박이지만 말이다. 어려워서 손대지 못하고 풀지 못했던 수학문제지 대신 교과서 문제를 꼼꼼히 풀고 했더니 수능시험지 수학문제가 풀리는 신기한 경험도 하고 그야말로 인생 대박 점수를 받은 것이다.

주변 시선 많이 의식하던 아버지가 원하던 나름 지역의 명문대도 내볼 정도였다. 그 때즈음이였을까 초대박 운으로 좋은 인생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방대지만 이름 대면 아는 대학교를 나와 시중은행 취업까지 감히 운이 컸다고 말해본다.


그렇게 겪으면서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난 대박의 운이 도와주긴 했지만 작지만 나의 꾸준한 노력이 한 번에 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건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에 간 것. 마흔이 넘은 지금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꿈이란 걸 꿔보지 않았다. 현실에 맞게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대부분이 ‘그 길은 안정적이야’ 하는 길로 쭉 따라갔을 뿐. 모험이 두렵긴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금 수능을 치르고 치를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향한 한걸음이었으면 좋겠다. 그 하루가 아이들의 인생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집 중학생 아들도 지금 하루하루 가는 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길이기를 간절해 바라본다. 등 떠밀려 ‘이게 맞는 길이야’라고 하는 것에 맞춰서만 살지 않기를. 편하고 안정적인 삶도 좋지만 한 번은 내 열정을 불지를 만한 나만의 길에 도전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다. 나도 빠르진 않지만 늦지도 않은 지금 치고 나가보리다.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에게
완벽한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게라도 일단
치고 나가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고
그것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완벽하게 다듬어지는 것이다. -독설, 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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