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백만 원 도둑맞은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by 늘해랑

유독 오픈셔터가 올라가고 조용하고 한가롭던 날이었다.

제법 일한 지 5년 차도 넘어가고 여유를 부리며 직원들과 담소도 나누고 있었다.

조용한 객실에 손님이 한분 들어오신다. 조금은 급한 듯한 발걸음과 단정한 정장 슈트 차림의 중년분이셨다. 센터에 앉아있는 내가 정중히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외치며 고객응대를 유도했다.

품에서 1만 원권 여섯 다발(6백만 원)을 꺼내어 놓는다. 아주 점잖고 인자한 표정으로 말이다. 기분 좋은 손님의 표정에 나도 웃음을 한껏 장착하고 말한다.

“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

“ 1만 원권 신권으로 좀 바꿨으면 하는데 될까요?”

“ 전액 다 교환하기에는 지점에 신권 보유량이 많지 않습니다. 가능한 만큼만 드려도 될까요?”

육백만 원을 다 교환할 만큼의 신권이 충분치 않았다. 신권은 주로 명절 전에 한국은행에서 받아오기에 거의 없거나 소량 보유되어 있기에 안내를 했다.

“ 가능한 만큼 해주시고 나머지도 가급적 깨끗한 다발로 주심 감사하겠어요.”

손님은 앉지 않으시고 일어서신 채로 뭔가 급한 듯 가능 수량만 바꿔 달라고 했다. 금고 가서 재고를 가지고 와서 다발을 확인했다. 만 원권 3 다발 정도를 준비하고 받은 돈을 확인했다. 신권은 한국은행 발행 시에 일련번호가 맞춰서 100장이 묶여서 나오기에 굳이 뜯어서 확인을 하진 않는다. 한다면 첫 번호 마지막번호 정도이다. 확인시켜드리고 3백만 원 받고 신권 3백만 원을 드렸다.

그러고는 현금을 큰 종이봉투에 넣더니 다시 거기에서 백만원다발을 2개 꺼내서 요것도 뒤에 가서 보시고 가장 깨끗한 다발로 달라고 하셨다.

한가한 객장이고 젊잖게 부탁하셔서 나도 최선을 다해 확인하고 교환을 해드리려 했다.

그때부터 계속 봉투 안의 다발과 깨끗한 다발을 바꿔 달라고 넣고 빼고 넣고 빼고를 반복하신다. 이쯤 되니 속으로 조금 짜증이 밀려왔다.

‘ 구권은 다 비슷한데 뭘 이래까지 자꾸 교환을 하는 거지?’ 그렇지만 난 서비스직이니까 최대한 친절히 다 맞춰서 해드렸다. 그러고는 다 되었다 싶었을 때

“ 백만 원 더 주셔야지. 아까 확인한다고 뒤에 가져가서 놓고는 안 주셨어요”

뒤라는 말은 직원들 의자 뒤쪽에 필요한 만큼 현금을 가져갈 수 있게 일부 권종별로 내어놓는 통이 있었다. 거기에서 좀 더 새것 같은 다발을 계속 교환을 해드린 것이었다.

“ 아니요. 다 확인하고 드렸어요.”

“ 정신없으신가 본데 여기 봐봐라 봉투 안에 한 다발이 부족하지 않냐. 아까 확인한다고 두 다발 가져가시곤 하나 줬잖아요”

여전히 젊잖게 이야기하신다. 그런 손님이 화라도 내실까 싶어 후딱 봉투 안을 눈으로 슬쩍 확인하고는

“ 아 죄송해요 드릴게요.” 하고는 90%의 찝찝함을 안고 뒤에서 한 다발을 더 드렸다. 뒤에 다발들을 확인해보려는 찰나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가봐야겠어요. 아무튼 고마워요” 하고는 후다닥 봉투를 챙겨 가셨다.

한 3초 멍하니 있다가 뒤에 다발들을 확인하니

없다!!


“주임님, 방금 나가신 손님 좀 잡아줘요~!!” 다급히 청원경찰 주임님께 샤우팅을 날렸다. 고작 1분남짓의 찰나였다.

“ 대리님 바로 나갔는데 길가에 세워둔 택시 타고 갔어요.”


‘이런.. 당했다’ 은행 5년 차에 눈앞에서 백만 원을 날렸다.

울음도 나지 않고 멍한 채로 털썩 앉았다.

“ 차장님 저 방금 백만 원 날렸어요. ”

상황을 들은 차장님의 말씀이 전문 꾼이라고 하셨다. 일부러 택시만 타고 와서 세워두고 직원을 계속 정신없이 한 다음 이런 식으로 사기 치고는 바로 택시 타고 가버린다고. 현금거래라 찾을 수도 없다. 그리고 난 당장 오늘 날짜의 마감을 해야 되고 이건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끝까지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 은행에서 마감할 때 부족한 자금은 찾다가 없으면 사비로 메꿔야 하고 남으면 은행계정으로 들어간다. 사회생활 5년 차 백만 원이란 큰돈을 사기꾼한테 줘야 한다니 속이 너무 쓰리고 나 자신이 한심해서 화도 나지 않고 그저 쪽팔리다. 후배들도 있는데 어휴.

출처: 픽사베이

마감 때 차장님이 70만 원을 주신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았다고 30만 원 보태서 마감을 하라고 하신다. 절대 못 받는다고 내가 실수한 거라고 그러지 말라고 한사코 말렸다.

“ 누구라도 걸렸으면 당했을 일이야. 그게 오늘 하필 재수 없게 박대리였던 것이고, 만약 옆직원이 당했음 박대리도 그냥 있었겠어? 도왔을 거잖아. 작정하고 덤빈 사기꾼이었어. 나라도 당했을 거야. 그러니 그냥 얼른 받아서 마감하고 퇴근하자” 그제야 꾹꾹 내 탓이야만 외치던 내 속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감사했고 너무 속상했고 너무 한심스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 나쁜 놈. 나이 먹고 어린 사회초년생들 돈 뺏어서 어디 잘 사나 보자’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

그렇게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부끄러움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제목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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