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그것은 독이었다.

by 늘해랑

“대리님, 제가 이상해 보이나요?”

질문을 한 고객은 입김이 뽀얗게 뿜어지는 어느 날 흰색반팔남방과 흰색반바지 차림의 30대 초반정도의 남자분이었다. 객장 한가운데로 걸어가서는 두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돌아 보이곤 저런 질문을 했다.

“아뇨! 멋지세요. 근데.. 춥진 않으세요?”

나의 대답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이 해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혹독한 신입 3년의 시절을 보낸 지점에서 발령이 나서 이웃 점포로 첫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제법 은행원으로서의 목소리톤도 익숙해졌고 서비스 미소까지 장착이 되어있었다. 아직 고객파악이 되지 않아서 오는 손님들께 제일 먼저 일어나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친절을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던 나날들이다. 그러던 중 마주한 이 손님. 나의 서비스적 멘트와 미소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멋있다고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아님 춥지 않냐고 걱정해 준 과한 친절이 잘못이었을까. 그때부터 그 손님은 한겨울 내내 반팔반바지로 내점을 했다. 그리곤 꼭 번호표를 뽑아도 나한테만 와서 거래를 했다. 천 원을 십 원짜리로 바꿔달라는 업무를 매일 빠지지 않고 했다. 이상했다. 선입견을 가지기 싫어서 그럼에도 웃으며 십 원짜리로 바꿔주고 질문에 웃으며 대답도 했다. 난 은행원이니까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주변직원들이 좀 이상한 사람 같다고 했을 때도 “마음이 좀 아프신 것 같긴 한데 특별히 피해 주는 것도 없고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친절이 독이 되고 커다란 날갯짓이 되어 나비효과로 돌아온 건 ‘스토킹’이었다.

어느 날은 와서 본인은 어디에 살고 있으니 나만 들어와서 살면 된다, 혼인신고는 언제 할 거냐, 이런 소리들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이런 손님 대응은 배운 적이 없는데 무서웠다. 그때부터 입구에 그 손님이 보이면 재빠르게 들어가서 숨었고 피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전화로 나를 찾고 받으면 혼인신고 타령에 꿈을 꿨다는 둥 성희롱뿐 아니라 협박도 하기 시작했다. 심각해지는 사태에 지점에서도 책임자들이 따로 불러 이야기도 해보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도 오히려 손님을 거부한다며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길 여러 번이었다. 그랬다. 이손님은 머리와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다. 약물도 복용 중이었고 경찰에 의하면 최근 약을 덜 먹어서 증세가 심해진 거 같은데 집에서 단속을 안 하고 돌아다녀서 자꾸 일을 만든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출처:픽사베이

그렇게 시작된 스토킹은 내가 다른 지점 가면 끝이 날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아서는 그 먼 거리를 와서 또 괴롭힌다. 매일 숨고 가면 다시 나가고 단호하게 거래 거부를 하는 청원경찰의 멱살도 잡아서 경찰도 여러 번 다녀갔다. 해줄 수 있는 게 타이르는 거밖에 없다 하였다. 퇴근길에 몰래 보고 있진 않을까, 개방적인 환경이다 보니 와서 염산을 뿌리진 않을까 별별 생각으로 내 정신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년 한동안 안 보여서 이제는 안심을 좀 해볼까 하는 찰나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청송 교도소 ㅇㅇㅇ고객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호흡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와서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내내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편지는 빡빡하게 5장 분량. 요지는 다른 은행 가서 똑같은 짓을 하다 폭행까지 겹쳐 수감하게 되었고 곧 나가는데 나가면 나랑 결혼을 할 것이라는 거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경찰. 편지라도 못 오게 교도소에 전화하니 수감자 인권이라 검열을 하지 않는 단다. ‘나의 인권은? 난 불안해서 생활이 안되는데’

결국 출소를 못한 건지 안온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내 불안해하며 일을 했고 퇴사를 하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퇴사 이유 중 감히 얼마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였고 선의로 한 행동이 불러온 결과라 무섭고 힘들었다.


그 후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맘껏 마음을 다 못 내보이고 견제를 하다 풀어지는 이상하고도 불편한 감정이 생겨버렸다. 나의 과한 친절이 정말 문제였을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당시의 나는 최선의 업무를 한 것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오작동이 일어난 해프닝이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의 그 친절이 당시 그 사람에게는 유일하게 따뜻한 게 대답해 줬던 사람이 나뿐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이해해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한껏 마음으로 웃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긴 시간 나를 괴롭혔던 이름이라 쉽게 지워지진 않겠지만 아픈 기억들은 조금씩 옅여지리라 믿으며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 지어본다.


의도라는 건
행동하는 나의 몫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mulbiltcalli(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단 한 명이 간절했던 퇴사결심(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