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이 간절했던 퇴사결심(3)

잘했어 그동안 고생했어.

by 늘해랑

남편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안다. 한계에 다다른 내 모습을 보면서 그냥 관두라고 하기에는 내가 어떤 고민으로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미 내 몸과 마음은 버티지를 못할 지경이었지만 12년간 쌓아온 나의 경력들, 나의 직업, 코앞에 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도망가는 것만 같았고 내가 나약해서 버티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도 여러 번 했다. 그런 내 속이 훤히 보이기에 남편입장에서 퇴사하라는 말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심 끝에 한 말이 본인이 일에 집중하고 싶다인 듯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복직하면서 모든 육아는 남편 혼자의 몫이 되면서 회사에서 하는 회식, 야근, 출장 모두를 포기하였고 일을 하다가도 유치원의 급한 전화는 다 남편에게 전달되었다. 수시로 튀어 나가야 했고 회사에서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인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 내가 도망가는 게 아니고 남편이 이제 일을 좀 하고 싶다니 내가 도와주느라 관두는 거야’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나니 좀 더 가볍게 퇴사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담당팀장님께 퇴사 결정을 보고 하니 면담이 이어졌다. 나의 퇴사사유는 육아였다. 사실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일이 버겁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엔 거기 있는 모두가 그러한 상황이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요. 유치원에 오래 있기 힘들어해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고 난 가정이 더 중요하니 관두겠노라 선언했다. 팀장님, 지점장님 릴레이 면담도 또 하나의 일거리처럼 지치기만 했다. 어떤 말도 회유되지 않고 더더 간절히 그만하고 싶었다. 남은 육아휴직을 몇 달 써보라는 제안에 인사부에 요청하니 ‘이렇게 중간에 남은 거 쓴 사례가 없어요. 대리님이 하시면 그게 선례가 되어 저희가 곤란합니다’ 제도적으로 되지만 선례가 되니 하지 마란다. 있는 정도 떨어지게 한다.


정식 승인절차가 진행되었고 그 지점에서 나의 퇴사를 아쉬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내가 하던 업무가 자신들에게 넘어올까 눈치보기 바빴다. 잠시 떨어져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니 난 단 한 명이 절실했던 것이다. 업무량으로 따지면 그전 점포들이 훨씬 더 많았고 근무시간도 지금보다 더 길었다. 근데도 관둬야 될 만큼의 지침이 없었다. 그때는 나와 함께 이런 고충을 이야기 나눌 동료들이 있었다.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10시 퇴근하고 야식 먹으며 날리 버리고 집에 새벽에 가도 힘들지가 않았다.

출처:Unsplash

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내가 점심도 못 먹고 일할 때 “ 밥은 먹고 해야지 얼른 먹고 와”, “아들 기다릴 텐데 늦어서 어떡하니”, “오늘은 손님 좀 적으면 정말 좋겠다” 이 정도의 관심과 대화가 나를 버티게 했는데 여기서는 9시 퇴근에도 “ 9시면 조퇴 아닌가” 점심 겨우 입에 한입 넣으면 “손님 기다리니 그만 먹고 나와요”차가운 대화들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해는 한다. 워낙에 다들 뼈를 갈아 일하면서 지쳤고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단지 내가 근무하는 그 시점이 유독 그랬다는 것을.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내가 버티기엔 버거웠던 것 같다.


내가 은행 다니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셨던 엄마가 생각났다.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전화를 했다.

“ 엄마, 나 은행 관둘까 해”

“ 잘했어.”

“ 엄마 왜 안 물어봐? 나 은행 다니는 거 제일 좋아했잖아. 난 엄마가 좀만 참아봐라 할 줄 알았는데”

“ 네가 오죽하면 그랬겠어. 잘 관뒀어. 사는 거 별거 없어. 그렇게 힘들면서까지 할 일 아니야. 잘했어. 고생 많았어”

남편의 결정적인 그 말에도 팀장님과 지점장님과의 면담에서도 담담하기만 했었는데 엄마의 ‘잘했어’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났다. 마음 한구석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미련인지 후회인지 자책인지 모를 감정이 따뜻한 물에 담긴 얼음처럼 녹아버렸다.


은행을 벗어나면 새로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와도 많은 시간 보내고 아플 때 제때 병원 데려가서 덜 고생시키고 유치원 문 닫을 때까지 두지 않아도 되고, 남편의 퇴근을 맞이할 수도 있게 되었다.

퇴사 전날 담당팀장님이 작은 선물과 함께 편지를 주셨다.

사실 내가 너의 퇴사를 말렸지만 난 네가 참 부러워. 난 아이가 둘인데 내 품에 안고 재워본 적이 없어. 늘 어머님이 키워주시고 난 바쁘고 욕심이 나서 아이들 크는 걸 보지 못했어. 지금은 커버려서 어색해. 아이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너의 말이 나는 눈물날만큼 부럽더라. 여기 힘든 거 금방 잊어버리고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 주면서 옆에 있어줘. 더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언제든 놀러 와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너의 용기를 응원할게.

같은 날 같이 발령받아서 한 팀으로 근무하면서 나 못지않게 힘드셨을 텐데 감사했다. 바쁜 업무에 무섭고 일 욕심 많은 분으로만 생각했는데 마음에 자녀에 대한 아픔을 가진 엄마였다. 조금은 뒤늦게 알아버린 단 한 명의 진심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따뜻함을 받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다.

처음 가져본 나의 직업 은행원. 12년간 나를 많이도 성장시켜 준 직업에 후회는 없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전히 그분들이 남아있다.


퇴사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일 안 해서 이제 장난감 많이 못 사줘. 은행 다시 다닐까? ”

장난감 없어도 돼. 내가 잘 때랑 자고 일어났을 때 엄마가 있는 게 더 좋아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