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이 간절했던 퇴사결심(2)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by 늘해랑

“ 퇴근하겠습니다.”

“해랑 씨. 오늘 조퇴하네”

자동으로 시계로 눈이 향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쎄--한 느낌으로 시작된 지점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일단 지점자체가 손님도 너무 많고 바빴다. 거기다 내가 맡은 업무는 VIP실 담당. 오픈시간이고 마감시간이고 할 것 없이 그저 손님이 요청하거나 방문하면 일이 시작이다. 그 시간이 오전 8 시건 밤 9시 건간에 말이다. 은행은 다들 9시에 시작해서 4시에 마치니 참 좋겠다고 한다. 진짜 일은 그전과 후에 다 몰아서 해야 하는데 종사자가 아님 모를 수밖에 없다.

셔터가 올라가기 전부터 밖에 대기하는 손님이 어마하고 항상 대기번호는 20번이 넘게 뽑혀있다. 모든 직원들이 서로 안부인사 나눌 새 없이 업무를 해야 겨우겨우 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 지경이다. 회의 시간에 짧은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다 보니 점심도 못 먹을 때가 다수였고 퇴근은 늘 밤이었다. 그래도 못다 한 일이 있어 아침 7시에 출근하고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우리 아들의 나이는 6살. 눈도 못 뜬 아이를 겨우 겉옷 입혀 근처 사는 언니집에 데려다 놓고 언니가 출근길에 유치원에 보낸다. 남편은 단축근무를 요청하여 평소의 퇴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빨리 퇴근해서 6살 아이의 하원과 저녁을 챙긴다.

춸처:언스플래쉬

돌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녔고 아이는 늘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퇴근하려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아빠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어떻게 보냈는지 아이의 모습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게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허덕허덕이며 돌아가는 일상에도 직원들과의 작은 수다가 해소하는 시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제대로 말해볼 시간조차 없다. 점심도 못 먹거나 10분 남짓한 시간에 겨우 삼각김밥 쑤셔 넣고 나가거나 그마저도 입에 넣을라치면 전화가 와서 손님이 대기한다고 한다. ‘하.. 먹고살자고 일하는 거 아냐 점심 먹을 시간도 없네’ 탄식이 절로 나온다. 간간히 대화하는 직원들과는 근무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여즉 내 이름도 모르는 직원도 있고 심지어는

“대리님 결혼 안 하셨죠?” 이런 어이없고 황당한 질문까지 듣는다.

“ 저 늘해랑이고요. 아이는 6살 유치원 다녀요” 이 말을 한 서른 번째 했던가. 다들 바쁘고 정신없다 보니 이해는 되지만 난 점점 흔들리다 곧 사라져버리는 촛불마냥 자꾸 꺼져가는 기분이다. 나의 하루의 절반이상 아니 잠자는 시간 빼는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인데 말을 나눌 사람도 시간도 없다. 온 몸과 정신이 지쳐 집에 가면 자는 아이 한번 보고는 나도 쓰러져 자기 바쁘다. 남편과는 장거리 연애마냥 메시지로 대화를 간간히 하고 집에서는 입을 열 기력조차 없어서 대화도 사라졌다.


나 왜 사냐

태어나서부터 사춘기를 보내면서 아이 낳고 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궁금증을 가져본 적 없던 질문이 계속 떠 다녔다. ‘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여지없이 한숨 쉬고 들어가는 출근길은 불구덩이 지옥문을 여는 것 마냥 표정도 무채색이 되었고 출근도 전부터 나를 기다리는 손님., 오늘 무조건 끝내야 하는 업무, 그럼에도 해야 될게 많은 회의시간, 밀려드는 전화 ‘ 다 놓아버리고 싶다. 마감 못 지킴 나 잘리려나’ 은행업무는 돈이 연관된 특성상 기일이나 해당 날짜를 지키지 못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진다. 급여가 안 들어갔다거나 이자율이 달라지고 연체가 되어버리는 일이 많기에 매일 놓치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내가 소화할 수 없을 만큼의 일들이 밀려오다 보니 잠을 들 수 조차 없다. ‘내일 ㅇㅇ회사 급여해야 되고 ㅇㅇ손님 만기일 맞춰 해지하고 신규 해야 되고 ㅇㅇ손님은 대출연장해야 되고 ㅇㅇ업무는 본사에 꼭 승인 올려야 되고..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잊지 않기 위해 되뇌고 눈이 가는 곳마다 붙여놓고 알림 해놓고 순서대로 진행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일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야 하는 와중에 손님은 계속 방문을 하고 또 다른 업무를 주고 간다.

‘ 숨 막혀. 차라리 어디 아파서 못 나왔으면 좋겠어.’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점점 지쳐간다. 아니 정확히는 죽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어렵게 내뱉는다.

이제 제대로 일을 해보고 싶어. 혹시 해랑이가 일을 좀 쉬어줄 수 있을까?
출장도 많이 가야 하고 늦게도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