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거울을 볼 때, 소서노는 지도를 보았다
지난 편에서 우리는 신라의 뷰티를 이야기했다.
화려한 금관, 잡티를 완벽히 가리는 하얀 피부, 그리고 신비로운 미소. 그것은 (미실이) 상대를 매혹하기 위한 ‘정(靜)의 미학’이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북쪽으로 돌려보자.
그곳에는 전혀 다른 바이브(Vibe)를 내뿜는 여자들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주름을 감추려 애쓰는 대신, 말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호령했던 여자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1,500년 전 대륙을 누볐던 고구려의 뷰티 아이콘(Icon)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여인으로부터 해야 한다. 그녀의 이름은 소서노(召西奴).
우리는 흔히 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고 배운다. 하지만 마케터의 눈으로 냉정하게 ‘지분 구조’를 따져보자.
주몽은 부여에서 도망쳐 나올 때 가진 것이라곤 뛰어난 활 솜씨 뿐인 ‘빈털터리 창업가’였다.
그런 그에게 막대한 자금과 세력을 대주며 기틀을 마련해 준 건, 당시 졸본의 유력한 재력가였던 소서노였다. 즉, 고구려는 완벽한 ‘공동 창업(Co-founding)’의 결과물이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주몽의 전 아들(유리)이 찾아와 후계 구도가 복잡해지자, 그녀는 권력 투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쿨하게 짐을 쌌다.
그리고 두 아들(비류, 온조)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 또 하나의 나라, ‘백제’를 세웠다.
역사서는 미실의 고운 얼굴은 기록했으나, 소서노의 외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1]
왜일까?
어쩌면 그녀에게 ‘예쁘다’는 찬사는 무의미했을지 모른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치장하는 꽃이 아니라, 스스로 왕을 선택하고 나라를 설계하는 ‘오너(Owner)’였으니까.
"소서노는 지도를 펼쳐 놓고 새로운 제국을 꿈꿨다."
이런 ‘소서노의 DNA’를 물려받은 고구려 여성들의 화장은 어땠을까?
수산리 고분 벽화를 보면 현대인의 눈을 의심케 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하얀 얼굴 양 볼과 이마에 아주 선명하고 붉은 점을 찍은 모습. 바로 ‘연지’다.
‘연지’라는 이름 자체가 흉노족의 땅인 ‘연지산(燕支山)’에서 나는 붉은 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2] 이는 고구려가 좁은 한반도에 갇히지 않고, 저 멀리 대륙의 유목 민족들과 뷰티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공유했던 ‘글로벌 트렌드 세터(Global Trend Setter)’였음을 증명한다.
신라 귀족들이 잡티를 가리는 ‘커버’에 목숨을 걸 때, 고구려의 아이콘들은 과감한 ‘포인트(컬러) 메이크업’을 택했다.
이 붉은 뺨은 “나 부끄러워요”라는 수줍음의 표현이 아니다.
찬바람 부는 만주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나는 이렇게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생명력의 과시’이다.
흐릿하고 병약해 보이는 건 고구려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뜨겁다.”
그녀들의 붉은 연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화장이 아니라,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강렬한 ‘자신감의 인장’이었다.
고구려 아이콘들의 파격은 화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삼국사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숨어 있다. 바로 고구려 여인 ‘관나부인’의 이야기다.
기록은 그녀의 머리카락 길이가 무려 "9척(약 2미터)"에 달했다고 전한다.[3]
단 한 줄의 기록이지만 마케터는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디깅(Digging)해낸다.
고구려 여성들에게 ‘풍성한 볼륨(Volume)’은 곧 권력이었다는 것.
벽화 속 여인들이 목이 아플 정도로 거대한 머리 장식을 얹고(환계), 2미터가 넘는 머릿결을 관리했던 건 그들의 미적 욕망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보여준다.
(출처:https://blog.naver.com/cocinam3509/222524340358)
(출처:https://blog.naver.com/cocinam3509/222524340358)
패션 센스 또한 시대를 앞서갔다.
무용총 벽화 속 무용수들의 옷은 온통 ‘물방울무늬(Polka Dots)’다.
서역의 트렌드를 흡수해 옷감에 박아 넣은 과감함, 그리고 활동성을 위해 치마 속에 반드시 바지를 챙겨 입은 실용성.[4]
기능성을 챙기면서도 물방울무늬와 색동 주름치마(플리츠 스커트)로 스타일을 놓치지 않는 감각.
이것은 21세기 패션계가 열광하는 ‘애슬레저(Athleisure) 룩’의 원형이다.
도대체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답은 그녀들의 ‘위상’에 있다.
고구려에는 남자가 결혼하면 처가 뒤에 작은 집(서옥)을 짓고 살다가, 자식이 다 큰 뒤에야 본가로 돌아가는 ‘서옥제(婿屋制)’가 있었다.[5]
결혼 생활의 베이스캠프가 ‘여자의 집’이었기에, 여성은 시집살이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당당하게 주도권을 쥐었다.
어디 그뿐인가.
바보 온달을 찾아가 대장군으로 키워낸 평강공주를 보라.
그녀들은 아버지(왕)가 정해준 결혼을 거부하고,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해 운명을 개척했다.
“내 남자는 내가 고르고, 내 인생은 내가 산다.”
누군가의 아내나 며느리가 아닌, 독립적인 주체로 살았던 그녀들에게 흐릿한 화장과 거추장스러운 옷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았다.
마케터의 TMI: K-POP 한복에 숨겨진 비밀
우리는 블랙핑크나 BTS의 무대 의상을 보며 흔히 '개량 한복'이라 부른다.
복식사적으로 보면 그 의상들의 패턴은 조선 시대의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마케터의 눈에는 그 '스타일링'에서 묘하게 고구려의 향기가 난다.
조선의 여인들은 다리를 드러내거나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K-POP 아티스트들은 치마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덧입고, 군화(워커)를 신은 채 무대를 뛰어다닌다.
겉모습은 조선의 비단일지 몰라도, 그 역동적인 실루엣과 '움직임을 위한 파격'은 1,500년 전 만주 벌판을 누비던 고구려의 '애슬레저 정신'과 맞닿아 있다.
얌전한 조선의 옷을 입고, 고구려의 춤을 추는 것. 그것이 지금 전 세계를 홀린 K-Vibe의 정체가 아닐까?
마케팅에서 브랜드의 로고(Logo)보다 더 상위 개념은, 그 브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고구려의 뷰티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세련되어 보이는 이유는, 그 안에 ‘광활한 대륙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개척의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말달리던 만주 벌판은 지금 국경 너머(중국, 북한)에 있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땅이 끊어지니 역사적 상상력도 반도 안에 갇혀버린 것일까.
우리가 이 개척적인 문화를 잊고 사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영토는 잃었어도 그 ‘기개'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
좁은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 갇히지 않고, 저 넓은 지평선 너머의 세상을 꿈꾸던 그 거대한 세계관.
그것이야말로 국경 없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DNA’가 아닐까.
소서노가 펼친 지도와 고구려 여인들의 붉은 연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려워말고 나아가라.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진정한 아이콘(Icon)은 유행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개척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자다.
[1]: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3,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 (소서노의 역할과 건국 과정이 서술되어 있으나 외모 묘사는 부재함)
[2]: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 최표(崔豹) 저. (연지의 기원을 흉노의 연지산으로 기록)
[3]: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7, 고구려본기 중천왕 4년 조.
[4]: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무용도 및 수산리 고분 벽화. (물방울무늬 의상과 주름치마 착용 모습)
[5]: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고구려 조. (서옥제 풍습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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