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녀의 리츄얼9]고려의 홀리데이 에디션,모자합

'예쁜 쓰레기'를 사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오브제'를 사는 것이다.

by Sunshine

12월이 되면 백화점 1층은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한다.

디올, 입생로랑, 겔랑... 내로라하는 뷰티 브랜드들이 작심한 듯 쏟아내는 '홀리데이 컬렉션' 때문이다.


평소 쓰던 립스틱과 쿠션이지만, 번쩍이는 금장 케이스와 한정판 로고가 박히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 된다.

나는 홀린 듯 카드를 꺼낸다.

누군가는 묻는다.

"다 쓰면 버릴 케이스에 왜 돈을 써? 그거 '예쁜 쓰레기' 아니야?"
세간에서는 자조 섞인 농담으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19년 차 마케터이자, 아름다움을 탐닉하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건 쓰레기가 아니다.

화장대라는 나만의 작은 공간을 완성해 주는 '오브제(Objet)'다.

화장품은 피부에 닿기 전, 눈에 닿는 순간 이미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묵직한 그립감과 영롱한 패키지를 보며 느끼는 '내가 귀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

심리적 충만함이야말로 홀리스틱 뷰티(Holistic Beauty)의 시작이다.


놀랍게도, 이 욕망의 역사는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의 언박싱: 엄마가 품은 아들, 모자합(母子盒)

고려시대, 12세기의 어느 귀족 여인의 화장대로 가보자.

그녀의 화장대 정중앙에도 지금의 홀리데이 에디션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고고하고 사치스러운 물건이 놓여 있다.
바로 고려청자 '모자합(母子盒)'이다.
이름부터 흥미롭다.

어미 모(母), 아들 자(子). 큰 합 안에 작은 합들이 안겨 있는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름 20cm 남짓한 커다란 원형의 '엄마 합'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달그락.

맑고 청아한 도자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 안에는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4~5개의 '아기 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완벽한 '메이크업 팔레트'이자 'VVIP 리미티드 기프트 세트'다.
가운데 둥근 합에는 뽀얀 분(파우더)이, 주변을 감싼 부채꼴 모양의 합에는 붉은 연지(립&치크)와 머릿기름(헤어 오일)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뚜껑을 열 때마다 펼쳐지는 이 정갈한 질서와 화려함.

고려 여인들이 느꼈을 '언박싱(Unboxing)'의 설렘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황금과 청자, 변하지 않는 부(Wealth)의 코드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에도 '화장품 용기의 계급'이 철저하게 나뉘어 있었다는 점이다.
현대의 우리가 로드샵 제품과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분하듯, 고려의 여인들은 재질로 자신의 위치를 증명했다.

서민들은 투박한 나무나 흙으로 빚은 도기에 분을 담아 썼다.

하지만 왕실과 최상류층 귀족 여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던 '청자 상감'을 선택했다.
흙을 파내고 그 자리에 다른 색 흙을 채워 넣어 무늬를 만드는 상감 기법.

이것은 지금으로 치면 장인이 한 땀 한 땀 보석을 박아 넣은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케이스와 같다.


이 '계급의 미학'은 2026년 백화점 1층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수십만 원, 아니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라인의 크림들을 보라. 하나같이 번쩍이는 **골드(Gold)**나 차가운 플래티넘(Platinum) 컬러를 입고 있다.
누군가는 "요즘 시대에 금색은 좀 촌스럽지 않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케터로서 단언컨대, '부(Wealth)'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코드는 여전히 금색이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이 유행해도, 결국 최상위 포식자의 화장대는 가장 원초적인 부의 상징으로 귀결된다.


고려의 여인이 청자 상감을 통해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선을 그었듯, 현대의 여인은 묵직한 황금빛 뚜껑을 열며 자신의 성취와 안목을 확인하는 것이다.


욕망을 담는 그릇, 그리고 진정한 지속가능성


다시 내 화장대로 시선을 돌린다.

비록 청자만큼의 깊이는 아닐지라도, 내 화장대 위에는 나를 설레게 하는 반짝이는 패키지들이 놓여 있다.
문득, 앞서 누군가 했던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려의 모자합과 나의 쿠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현대의 화려한 패키지는 내용물을 다 쓰는 순간 폐기물이 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12세기의 모자합은 달랐다.

분을 다 쓰면 다시 채워 넣고, 연지가 떨어지면 다시 채워 넣었다.

깨지지 않는 한, 그것은 평생 여인의 곁을 지키며 대를 이어 물려주기도 하는 영구적인 그릇이었다.


우리는 요즘 플라스틱을 줄이자며 '리필 스테이션'을 찾고 '제로 웨이스트'를 외친다.

그런데 1000년 전 고려 여인들은 이미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욕망은 일회용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려의 모자합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럭셔리(Sustainable Luxury)'가 아니었을까.


다음에 누군가 당신의 화려한 화장품을 보고 "예쁜 쓰레기"라 놀리거든, 고려의 모자합을 떠올리며 이렇게 대답해 주자.
"지금 나는 지금 일상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오브제를 감상하는 중이거든."


화장품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지만, 패키지는 여인의 욕망과 시대를 관통하는 미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12세기의 도공들도, 21세기의 마케터들도 그 사실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청자 상감 국화 모란 무늬 모자합(靑磁 象嵌 菊花 牡丹 文 母子盒)>. 12세기 고려.
이은주. (2010). <고려시대 화장 문화 연구>. 한국복식학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선 발굴 청자 유물 분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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