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번 목욕하던 민족, 1000년을 앞서간 살냄새의 미학
프랑스 향수는 '가리고', 고려의 향은 '스며든다'
"향수의 본고장이 어디인가?"라고 묻다면, 열에 아홉은 프랑스를 떠올린다.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과 샤넬 넘버 파이브의 명성을 동경한다.
하지만 뷰티 마케터로서 향수의 기원을 파고들다 보면, 묘한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된다.
유럽의 향수 문화는 풍요가 아닌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17~18세기 유럽, 씻지 않는 귀족들의 체취와 화장실 없는 궁전의 악취를 가리기 위해 그들은 독하고 진한 향을 개발해야만 했다.
즉, 그들의 향수는 오물을 덮기 위한 '갑옷'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
시선을 1000년 전, 코리아(Korea)의 어원이 된 나라 '고려(Goryeo)'로 돌려보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지금의 '클린 뷰티'를 능가하는, 차원 높은 향의 문화가 흐르고 있었다.
1123년, 당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고려를 방문했다.
송나라 지식인의 눈에 비친 고려인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의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이렇게 기록했다.1)
"고려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潔淨), 중국 사람들의 더러움을 비웃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선다. 여름에는 날마다 시내에서 목욕을 하는데, 남녀가 옷을 시내 언덕에 놓고 물 굽이에 섞여서 목욕을 하되 이를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서긍, <고려도경> 제23권 잡속(雜俗) 편 -
믿기지 않는가?
하루에 한 번도 모자라 3~4번씩 씻고, 남녀가 내천에서 어우러져 목욕을 즐기는 나라. 위생 관념이 희박했던 당시 세계 기준에서 고려는 '위생의 유토피아'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씻었을까?
단순히 깔끔 떨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고려의 국교(國教), '불교'가 있었다.
불교 경전 <온실경(溫室經)>에는 "목욕을 통해 일곱 가지 병을 없애고 일곱 가지 복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있다. 2)
고려인들에게 씻는 행위는 단순히 몸의 때를 미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번뇌를 씻어내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몸을 정결히 하는, 일종의 '종교적 리츄얼(Ritual)'이었다.
절마다 큰 욕실(목욕탕)이 갖춰져 있었고, 향기로운 약초를 넣고 끓인 물에 몸을 담그는 '향탕(香湯)' 문화가 발달했다. 3)
프랑스인들이 냄새를 덮기 위해 향을 뿌릴 때, 고려인들은 향기로운 물에 몸을 푹 담가 살결 깊숙이 향이 배어들게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미학적 차이가 발생한다. 뷰티 마케터의 관점에서 볼 때, 유럽의 향수가 악취를 차단하는 '마스킹(Masking)'이라면, 고려의 향은 깨끗한 본연의 살 냄새 위에 은은함을 더하는 '레이어링(Layering)'이다.
이 차이를 패브릭에 비유하자면 명확하다.
서양의 향수가 두터운 '담요'라면, 고려의 향은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오간자'다.
마스킹은 담요처럼 덮어버리는 것이다.
내 본연의 냄새를 지우고 강력한 인공의 향으로 두껍게 가린다.
겉보기엔 화려할지 몰라도, 그 안에 숨겨진 '나'라는 고유한 존재는 질식해 버린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냄새가 나는 이유다.
반면, 고려의 방식은 오간자 한 겹을 살포시 얹는 것과 같다.
투명한 천 사이로 내 살결이 비치듯, 고려의 향은 내 본연의 체취를 가리지 않고 공존한다.
겹겹이 쌓인 향의 층(Layer) 사이로 나의 고유한 특성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이 '오간자 효과'를 내기 위해 고려인들이 선택한 방식은 '훈증(Fumigation)', 즉 연기를 쐬는 것이었다.
현대의 향수가 화학적으로 추출된 액체를 뿌리는 '즉각적이고 인위적인 행위'라면, 고려의 '훈의(薰衣)'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향로에 자연의 재료인 침향, 백단향을 태우고, 그 위에 옷을 얹어 연기가 섬유 사이사이에 스며들게 했다.
인위적인 알코올 냄새가 아니다.
나무와 풀, 자연이 타오르며 내뿜는 그윽한 입자가 옷감에 배어들고, 그것이 다시 내 살 냄새(Body Chemistry)와 섞여 비로소 완성된다.
요즘 뷰티 트렌드인 '스킨 센트(Skin Scent)'의 가장 완벽한 원형이 아닐까?
마케터로서 K-뷰티의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
샤넬과 디올이 화려한 '귀족의 사교 문화'를 팔 때, 우리는 무엇으로 소통해야 할까?
나는 그 답이 1000년 전 고려의 향로 속에 담긴 '음양(Yin & Yang)의 조화*에 있다고 믿는다.
깨끗이 비워낸 맑은 몸이 '음(陰)'이라면, 그 위로 피어오르는 그윽한 향기는 '양(陽)'이다.
차가운 살결과 따뜻한 훈증이 만나 이루는 밸런스.
고려인들에게 향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수행'이자 '치유'였다.
진정한 웰니스(Wellness)란 무엇인가.
좋은 것을 바르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가 정갈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강렬한 향으로 당신을 돋보이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제안해야 한다.
"당신의 살(Flesh)과 자연의 향(Scent)이 가장 조화로운 밸런스를 찾으세요."
가성비 좋은 화장품을 넘어, K-뷰티가 진정한 럭셔리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는 길.
그것은 1000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홀리스틱 뷰티(Holistic Beauty)' 철학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
1) 서긍(徐兢). (1123).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제23권, 잡속(雜俗).
2)불교 경전. <불설온실세욕중승경(佛說溫室洗浴衆僧經)>, 약칭 <온실경>.
3)김화경. (2006). <한국의 목욕 문화>.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