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더맘 No.12]세상에 절대적인 "일잘러"는 없다

나의 "직장생활 노하우"가 그 곳에서는 "오답" 이었던 이유

by Sunshine


1. "속도 위반입니다"라는 말을 듣기 전까진,

나는 내 방식이 그 환경에서는 답처럼 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몸으로 익힌 '일하는 방식'이 어디서든 통할 거라 믿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치열한 현장에서 선배들의 등을 보며 배우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다져온 나만의 확실한 '직장생활에서의 나만의 성공 방정식(노하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확신이 정점에 달했던 건, 자유롭고 혁신적인 문화를 가진 '트렌드 리딩 기업'이 글로벌 공룡 기업에 인수되던 그 도약의 시기였다.

당시 그곳의 일하는 방식은 마치 '펌웨어 업데이트'와 같았다.

그 산업군에서의 1등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트렌디한 인디브랜드로 이동을 하는 나는 그 혁신적이고 ,트랜디한, 그 참신함의 비결이 궁금했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이직을 했다.

첫날 출근하고 깨달은 점은 바로 그 빠름과 트렌디함은 바로 모든 것이 "리스크"였다. (대기업의 큰 브랜드BM을 했던 나의 관점에서는)

요즘 잘나가는 인디 브랜드들이 그렇듯, 그 곳의 우리에게 '완벽'이란 없었다.

"일단 출시해. 소비자 반응보고 그때 그때 업데이트하거나 고치면 돼!"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장에 던지고, 고객의 피드백을 보며 버전 1.0을 1.1로, 다시 2.0으로 빠르게 '피벗(Pivot)'해 나가는 것.

유행이 식기 전에 계속 고쳐 쓰는 것.

그것이 그곳의 생존 방식이었다.

난 그러한 업무 방식과 일하는 문화가 나의 성향과 너무 잘 맞았고, 물론 처음에 그 Risk taking을 하는 부분이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느 새 익숙해졌고 나의 대응력과 해결력에 대해 리더쉽 또한 인정해주시고 그것은 빠른 승진으로 이어졌다. 회사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부사장님께서는 나를 찾았다. 나는 나름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그 추진력으로 생각보다 일을 잘 해결해 냈다.

리더가 되었을 때 내가 가진 이러한 빠른 속도와 대응력, 문제 해결능력이 곧 실력이구나 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무대가 바뀌자, 나의 방식은 순식간에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되었다.


2. "K팀장, 우리에겐 '속도'보다 '검증'이 중요해."

커리어를 확장하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옮긴 곳은 전통적인 제조 기반의 B2B 대기업.

분명 JD에도 다양한 소비재 산업에 대한 이해와 빠른 트랜드를 캐치하여 본인 제품들의 상품기획에 반영하는 역할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지난 15년간 갈고닦은 나의 '속도전'(나의 빠름과 다양한 시도, 그리고 추진력들이.....)을 발휘하면 환영받을 줄 알았다.


입사하자마자 나는 기획안 초안을 내놓고, 실행 계획 그리고 단계별 성과 측정까지 단숨에 작성하여 보고했다. 그리고 유관부서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 의견을 받아 최대한 빠르게 실행 가능하도록 하도록 업데이트에 업데이트를 했다. 마치 펌웨어를 업데이트하듯이.


그런데 생각보다 다들 미팅 자리에서는 동의한다. 필요하다. 좋은 의견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도 움직이지를 않는거다. 같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해놓고서는....

나는 산업군도 이동을 해서 더 빨리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계속 이 회사에 맞는 방식을 제안하기 위해 업데이트에 또 업데이트 그리고 보고에 보고를 계속 했다.


그 때 나의 상사였던 (글로벌 회사 출신이셨던) 전무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K팀장, 잠깐 들어오지."

전무님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말투는 건조하고 단호했다.

*"기획안 잘 봤는데, 너무 빨라. 유관 부서들과 "사전 조율과 동의"은 된 건가?"

"네 사전 조율 했는데, 동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진행이 잘 안되네요. 실은 이게 실행을 해봐야 수정할 것들이 생기고 점점 더 구체화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전무님께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하셨다.

"K 팀장은 너무 빨라. 자네의 그 속도를 조직이 못 따라가. 조금더 신중해야하고, 조금더 리스크에 대해 다 고민하고 전혀 이슈가 없다고 판단될 때 이 회사에 그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확실이 들 때 실행을 시작해야해 K팀장의 기획,제안은 어쩌면 그냥 아이디어 처럼 보일 수도 있어. 실행가능하지 않은 "깊이가 없는" 그냥 아이디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혁신의 상징이었던 내 민첩함이 여기선 '깊이가 없는 것'이라니.


전무님의 피드백은 뼈아프지만 현실적이었다.

"우리 같은 회사는 한 번 스펙이 정해지면 되돌릴 수 없어. 수천억 설비 투자가 들어가는데 '아님 말고'는 안 통한다고. 우린 '검증'에 검증을 또 하고 그 투자한거 만큼의 고객의 수요가 있는 것을 검증하고 그게 모두 동의가 되어야만, 그 단계에 많은 공과 시간을 쏟아야만 하는 조직이야"


실제로 그곳의 회의 공기는 달랐다.

전 직장에서는 아이디어를 막 던지고 수시로 바꾸는 게 미덕이었지만, 여기서는 침묵이 흘렀다.

다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었다. 설익은 의견을 냈다가 책잡히느니, 완벽하게 검증해서 다음 회의 때 말하겠다는 '신중함의 무게'였다.

나는 그 정적 속에서 '나 혼자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3. '펌웨어'의 방식 vs '하드웨어'의 방식

처절하게 깨지고 나서야 알았다. 대기업이 일부러 굼벵이처럼 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두 조직은 태생적인 '업의 본질'과 '일하는 문법'이 달랐던 것이다.


1) 펌웨어의 문법 (인디 브랜드 / 트렌드 / 소비재)

특징: '먼저 시장에 내놓고 계속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혁신이다.'

요즘 시장은 너무 빨리 변한다.

완벽하게 준비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면 망한다. 그

래서 소프트웨어 패치하듯, 제품도 전략도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핵심 가치: 민첩성(Agility)과 대응력


B) 하드웨어의 문법 (기반 산업 / 소재 / 인프라)

특징: '검증에 검증을 하여, 안 고치는 것(리스크가 없는 것이) 전체되어야 도입이 가능한 혁신이다.'

기반 제조업은 먼저 생산을 하려면 대규모의 설비투자가 이루어 진다. . 여기서 "일단 해보죠"라고 했다가 불량이 나거나 사용할 고객이 없으면?? 그 소재를 쓴 수백만 개의 완제품이 전량 리콜거나 그 많은 생산된 제품은 판매할 곳이 없다. 기업의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이 클 수 있다.

핵심 가치: 신뢰(Trust)와 검증, 리스크 제로


나는 한 번 만들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단 펌웨어 업데이트부터 하시죠!"라고 외치고 다녔으니, 전무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사람'으로 보였을까.


세상에는 이 두 가지 일하는 방식이 모두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4. '안정'이 주는 지루함 vs '기여'가 주는 효능감

이 차이를 인정하자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기반 산업의 신중한 문화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질문을 '나의 행복'으로 돌려보니 답이 달랐다.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건, 역설적으로 '나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뜻이다.

"한 번 정하면 못 고친다"는 압박감 속에 몇 달씩 검토만 하다 보니, 나는 일하는 재미가 없었다.

내 심장은 펌웨어 업데이트처럼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고, 내 손으로 결과를 바꾸는 곳에서 뛰는 엔진이었으니까.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단순히 월급의 안정을 원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하루 8시간,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쏟아부으며 "내가 변화를 만들고 있다", "내 손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그 짜릿한 '효능감(Self-Efficacy)'을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5. 사회 초년생에게: '업종'만 보지 말고 'OS(운영체제)'를 봐라

**OS(운영체제): 일하는 방식과 문화


이쯤에서 내가 주니어 시절 놓쳤던, 그리고 지금의 후배들도 자주 범하는 실수 하나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직업을 선택할 때 습관적으로 '업종(산업군)'의 겉모습을 먼저 본다.

"나는 화장품이 트랜디 해보여." "요즘 반도체가 대세야" "돈을 많이 벌려면 돈이 흐르는 금융권에서 일해야지"

하지만 20년을 일해보고 뼈저리게 깨달은 건, 산업군이 내가 얼마나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있느냐(전문성이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회사의 일하는 문화와 작동 방식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실은 그것은 나의 "가치관"과 "행동"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나의 하루 중 2/3를 차지하는 회사생활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인 것이다.

당신이 '시도'와 '추진' 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연봉을 많이 줘도 '돌다리도 두드리는' 하드웨어형 조직은 답답한 감옥이 될 것이다.

당신이 '안정'과 '깊이'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매일매일 전략을 업데이트하는 '펌웨어형' 조직은 혼란스러운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니 회사를 고를 때, 그 회사, 산업의 특성에 기인한 일하는 방식과 그 조직 문화를 꼭 따져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가치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6. 나는 지금, 나를 위한 '최적의 무대'를 두드리고 있다.


나 또한 나의 이러한 커리어 포트폴리오에 기반하여 내가 쌓아온 나의 강점

'야생의 돌파력(펌웨어)'을 필요로 하면서도, 내가 배운 '시스템의 시야(하드웨어)'를 접목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느 곳에서 나의 역량과 자산이 큰 힘을 발휘하고 기여할 수 있을지.

내가 부품이 아니라 '핵심 엔진'으로 뛸 수 있는 곳.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낼 '한 방'을 필요로 하는 조직.

시스템의 언어로 소통하되, 그 본질은 끊임없는 혁신을 향해 있는 곳.

나의 최적에 무대가 어디인지 끊임없이, 그러나 신중하게, 깊이있게 고민하고 있다.

실은 이것은 "직업인"이라면 그리고 15년 이상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깊이있게 고민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나의 최적의 최고의 무대는 어디인지


나의 이러한 좌충우돌은 틀린게 아니였다. 나와 조직의 FIT을 맞춰가는 과정이고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나는 어떠한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나는 어떠한 문화가 잘맞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업인데 왜 이렇게 답답하지?" 혹은 "작은 회사라 왜 이렇게 체계가 없지?"라며 고민하는 리더가 있다면 기억했으면 한다.

둘 다 틀린 게 아니다. 단지 '지향점'이 다를 뿐이다.

한쪽은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토대'를 쌓는 것이 최우선이고,

다른 한쪽은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을 타는 것이 최우선일 뿐이다.

중요한 건, 당신의 심장은 무엇을 위해 뛸 때 가장 행복한가이다.


결국 우리가 일을 하는 가장 큰 행복은

얼마나 내가 존중받고, 얼마나 내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지)가 아닐까


모두가 첫 마음은 똑같았을 거다.

"진심을 담아 일을 시작" 했을 거다. 그리고 이러한 진심을 담아 일했던 사람일수록 나과 맞지 않는 문화과 구조로 인해 빨리 소진된다.


당신의 심장은
깊은 뿌리를 내릴 때 뛰는가,
아니면 거친 파도를 탈 때 가장 크게 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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