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김 부장 옆, 분당 자가 대기업 K리더맘

평범하게, 그리고 비범하게 살고 싶은 나에게..

by Sunshine

어렸을 적, 나는 내 인생에 적어도 세 개의 직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길고, 그 긴 시간을 단 하나의 명함으로만 살아가기엔 너무 지루할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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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던 그즈음, 나는 결심했다. 회사라는 간판 뒤에 숨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회사원'이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 증명되는 '주도적인 직업인'이 되겠노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유니크함(Uniqueness)'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15년 가까이 몸 담았던,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감성적인 글로벌 소비재 산업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투박하고 보수적인 한국 제조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나의 이러한 도전에 대해 누군가는 물었다. "왜 너의 전문 영역을 놔두고?" "거기 가서 뭐 하게? 그 보수적인 문화를 견딜 수 있겠어?"

어쩌면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내 삶을 유예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다시 오롯이 '나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에 이런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는지도 모른다.

(연구원 출신 마케터인 나는 기술ㅡ소재ㅡ완제품 ㅡ브랜드ㅡ더 나아가 문화까지 End to End 를 연결하는 co creator가 되고 싶었다)


몇몇 사람들은 40대 초반에 "대기업 팀장"이 된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내가 다녔던 4개의 회사 중 가장 크고 안정적인 곳이니까. 하지만 화려한 명함 뒤에서, 막상 나는 엄청난 고군분투 중이다. 텃세와 관습 사이에서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홀로 길을 만들고 있다.

이 외로운 싸움의 한복판에서, 지금 넷***를 강타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고, 그 이야기에 우리는 함께 웃고, 또 울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가 끝나고 나는 문득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김 부장에게는 그래도 그의 투정을 받아주고 집안을 건사해 주는 든든한 아내가 있었고, 번듯하게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서울 자가'라는 든든한 성벽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김 부장의 옆 파티션에 앉아 있는 그녀들은 어떨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저녁 반찬을 고민하고, 회의 도중 걸려온 아이 담임선생님의 전화에 가슴 철렁 내려앉으며, 남편과 가사 분담을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이는... 가정과 회사,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발 뻗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여성 팀장, 'K-리더맘'들 말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거나 편을 가르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치열한 전장에서 김 부장이 고군분투했듯, 그 옆에서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고 또 다른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 'K 여성 팀장'들의 이야기도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김 부장이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라면, 이 글은 가장 화려한 명함 뒤에서 가장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우리 시대 엄마들의 생존 기록이다.

이곳에 온 지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나의 이 도전적인 행보는 철없는 '객기'였을까?

아니면 정말 독보적인 나만의 영역을 쌓기 위한 '진취적인 승부수'였을까?

그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답 또한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치열한 과정의 기록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잠 못 드는 누군가에게 "괜찮아", "우리 모두 같은 상황이야"라는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내가 온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이 경험들이*작은 팁(Tip)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여정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결말'이 되기를.

부디 이 이야기가 나만의 상상으로 끝나는 '픽션(Fiction)'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남은 자의 생생한 '논픽션(Non-fiction)'으로 완성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오늘도, 고군분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