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전쟁터와 고요한 지옥 사이에서
구성원이었다가, 이직을 하면서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팀장 2개월 만에 나를 뽑아주신 본부장님이 급작스레 사직을 하셨고,나는 그 자리를 이어 본부장이 되었다.
졸지에 본부장이 된 부족한 나를 산하의 5개 팀장님들은 잘 서포트해주셨고 실은 나는 내가 그 팀장님들의 보스라는 생각보다는 우리는 나름 one team으로 "동지"로 함께 일궈간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 회사는 갑자기 글로벌 회사로 인수가 되면서 모든 시스템을 글로벌에 맞게 다시 셋팅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글로벌 HQ의 미국인은 우리에 참 많은 일과 코멘트를 주었다.
공공의 적이 있어서일까?
우리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같이 저녁에 마라탕도 시켜먹고 스쿨푸드도 시켜먹으며 동지애로 똘똘 뭉쳐 버텨 나갔다.
업계 특성상 그리고 업무 특성상 우리의 구성원들은 여성, 그리고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이 많았다.
나름 나는 그 워킹맘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했는데 절대적인 업무강도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시즌에 우리는 화상으로 회의를 많이했는데, 늘 등뒤에서는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고 간혹 미국과의 콜 중에는 미국에 있는 워킹맘의 아이가 기저귀를 찬 채로 엄마의 팔에 매달렸고, 한국에 있는 우리들의 아이도 등에 매달려서 화면에 나타나곤 했다. 가끔 그 아이들은 "HI" "HELLO" 인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너무 일이 빡셌다.
하나둘씩 그만두기 시작했다.
워킹맘들이 일하기에 갑자기 글로벌 회사가 된 우리 회사는 낮에는 한국일은 밤에는 글로벌 일로 화상회의에 바쁜 이 일상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의 전우애, 그리고 끈끈한 회사생활은 결국 누군가의 눈물로, 서로간의 위로로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나도...
실은 그 화상회의와 화상회의 사이 비는 시간을 틈타 이직을 위한 면접을 잡았다. 코로나 시즌이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재미있었고, 한판한판 게임을 깨 나가는 성취감은 있었지만, 그 업무강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가 아직도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엄마 그 회사 다녔을 때, 나 하루 종일 밥 안줬잖아"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도, 저녁도 거르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거실로 나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 아이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엄마... 배고파..." 울먹이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사장님(President)과의 원오원 미팅에 아이가 들어올까 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철저히 단속하는 사이, 나는 엄마이기를 잊었던 것이다. 아이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었던 그 날이, 내가 ‘안정’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지금의 ‘안정적이고 바쁘지 않은 B2B 제조 기반 대기업’이었다.
본부장에서 팀장으로 직책이 낮아지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한국 대기업이니까, 팀장으로 가서 다시 승진하면 된다고, 그렇게 ‘야심 차게’ 그리고 ‘안도하며’ 이직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이곳은, 다른 의미의 전쟁터였다.
과거의 회사가 시끄러운 토론의 장이었다면, 이곳은 거대한 침묵의 바다였다.
팀원들은 대부분 남자였고, 소위 말하는 ‘고스펙’의 엘리트들이었다.
하지만 회의 시간만 되면 모두가 입을 닫았다.
전 직장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그것을 빌드업(Build-up)해서 하나의 결론을 만드는 게 상식이었다.
나는 의견을 모아 위를 설득하고 이슈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역할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 대기업의 똑똑한 분들은... “시켜주기를 바랐다.”
스스로 발의한 아젠다가 업무가 되어야 신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회의 때마다 던지는 질문들은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내 이야기가 올라왔다.
“새로 온 팀장이 뭘 몰라서 지시를 안 해준다. 다른 업계에서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충격이었다.
나는 자율성을 주려 했던 건데, 그들은 그것을 ‘무능’이나 ‘방관’으로 받아들였다.
새로운 구상을 제안하면 “머릿속에 결과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과가 안 그려지니까 같이 그려보자고 이야기하는 건데, 그들은 정해진 답을 원했다.
예전 회사에서는 ‘영어’가 힘들었다.
정확히는 영어 속에 담겨있는 그들의 문화와 맥락을 이해하기가 버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한글’을 쓰는데도 훨씬 더 힘들다.
산업이 다르고 기업 문화가 다르니, 이 문화적 차이가 언어의 장벽보다 더 높게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원들보다 나를 채용해 준 상무님과의 대화가 훨씬 편하다.
상무님은 내가 맞춰드리면 되는데, 팀원들과는 어디까지 맞춰주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매일이 난제다.
가끔은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작은 회사였지만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쳤던 그곳.
본인 의견을 현명하게 말하고, 책임감 있게 일처리를 해주던 그 ‘팀장님’들이. 물론 구성원들도 모두 주도적이었다!
5명의 팀장을 이끌던 본부장은 이제, 침묵하는 10명의 팀원을 업고 뛰어야 하는 고독한 팀장이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 내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의 커리어포르폴리오를 위해,
내가 선택한 ‘안정’의 대가인 것을.
그리워요 그때 함께 했던 스쿨푸드와 마라탕
내가 스트레스 받는 날이면 늘 스쿨푸드를 시켜줬어요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던 팀장님이 스트레스 받는 날이면 우리는 마라탕을 시켰었어요
우리 함께 그때를 추억하며 마라탕을 다시 먹을 수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