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9월이 질문이었다면, 10월은 합의였다.
문제는 아무도 합의한 기억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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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채널에 긴 글이 올라왔다.
조직개편 이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고 시작했다. 비전을 말했다. 그 비전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송금과 샵, 두 개의 작은 회사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각 BU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객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업의 심장부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꾸 나오는 단어가 있었다.
속도. 슬랙과 노션에서 결정이 끝나야 한다는 말.
나는 그 글을 두 번 읽었다. 처음엔 내용을 읽었고, 두 번째엔 그 뒤를 읽었다.
그전까지 이 회사는 이렇게 돌아갔다.
불이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뛰었다. 내 담당이냐 네 담당이냐를 따지기 전에, 연기가 보이면 소리를 질렀다. "이거 문제 있어요, 같이 봐줄 수 있어요?" 그러면 관련된 사람들이 모였다.
개발이 CX 옆에 앉고, 운영이 마케팅 스레드에 끼어들고, 누가 뭘 봐야 한다는 경계 없이 문제 단위로 움직였다. 비효율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이 11개 나라에서 통했다.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그게 이 회사의 조직도였고, 동시에 문화였다. 관련된 모두가 문제 해결자였다.
그게 이제 나뉜다고 했다.
송금은 송금팀, 샵은 샵팀. 각자가 자기 사업을 책임진다. 글에는 좋은 단어들이 가득했다. 전문화, 책임, 주인의식.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난 건 이거였다.
팀이 나뉘면서 사람들이 나뉘었다. HR이 재배치됐고, 역할이 쪼개졌고, 경계가 생겼다. 원래는 불이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뛰었다. 이제는 그 불이 내 구역 안에 있는지 먼저 확인하게 됐다. 연관된 일인 건 알겠는데 굳이 끼어야 하나. 끼었다가 내 책임이 되는 건 아닌가. 그 계산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제 단위로 움직이던 조직이, 담당 단위로 움직이는 조직이 됐다.
소통이 줄었다. 스레드가 짧아졌다. 예전엔 다 같이 불을 껐는데, 이제는 각자 자기 불만 보게 됐다. 이게 의도된 결과였는지는 모르겠다. 전문화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고, 필요한 리소스만 투입하겠다는 효율의 논리였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이 회사 안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객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충분히 알았다면, 이 구조를 이렇게 빠르게 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날 채널 설명이 바뀌었다.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채널, 건강한 피드백을 나누는 채널.
원래 자유로운 것에는 자유롭다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나는 그 설명을 읽으면서 왠지 숨을 한 번 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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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보는 건 좋은 거다. 퍼널을 확인하는 것도 맞는 거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데이터를 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하는 게 있다.
이 고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 나라에서 돈을 보내는 게 어떤 의미인지. 타이 유저가 왜 이 서비스를 쓰는지, 베트남 유저가 처음 앱을 열었을 때 어떤 화면에서 멈추는지. 그걸 모르면 퍼널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어디서 이탈이 일어나는지 알아도, 왜 거기서 이탈하는지는 고객 이해도와 회사 내부 프로세스 이해가 필요하다.
COO는 당연히 무수히 많은 데이터와 지표들을 봤다. 그리고 분석했다.
고객을 이해하는 시간, 서비스의 역사를 아는 시간, 각 나라마다 다른 맥락을 흡수하는 시간 없이.
그래도 꽤 그럴듯 했다. 목표 숫자와 원인파악에 필요한 것들을 나름대로 척척 가지고 왔다.
어느 국가에서 이탈이 높다, 특정 단계에서 전환이 낮다, 비용 대비 효율이 나쁘다.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이 나왔다. 책임소재가 뭐냐고.
처음엔 그게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인 줄 알았다. 어디서 막혔는지 알아야 고칠 수 있으니까. 합리적인 말이었다.
근데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느낌이 달라졌다. 숫자가 나쁘면 그 숫자를 만든 사람이 있어야 했다. 맥락은 잘려나갔다. 그 나라의 사정, 그 팀이 버텨온 역사, 인력의 한계. 그런 건 변명이 됐다.
그리고 집요했다.
한 번 책임소재를 물으면 끝까지 팠다. 누가 이걸 봤어야 했는지, 왜 이게 지금 나오는 건지. 채널 안에서 그 흐름이 시작되면 주변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다음은 내 차례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더니 숫자들이 무기가 됐다.
지금까지 이 회사가 해온 정책들, 그 정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과 이유와 시행착오들이 하나씩 도마 위에 올라왔다. COO가 가져온 숫자들이 근거였다. 이 방식은 효율이 낮다, 이 비용은 불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더 싸게 된다. 그리고 그 말 앞에 자주 붙는 문장이 있었다.
"왜 이렇게 바보같이 이렇게 한 거예요?"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는 전 직장 이름이 나왔다. 거기서는 이렇게 했다, 그 방식이 맞다, 여기는 왜 이게 안 됐냐고. 그게 반복됐다.
나는 그때 느꼈다. 이 사람은 이 회사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 회사를 자기가 알던 방식으로 바꾸려는 거였다.
정책들이 뒤집혔다. 하나씩, 차례차례. 비용이 절감됐다. 구조가 바뀌었다. 숫자만 보면 나아 보였다. 데이터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데이터가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왜 그 정책이 그렇게 설계됐는지, 그 구조 뒤에 어떤 고객 경험이 붙어있었는지, 비용으로 잡히지 않는 것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게 뒤집힌 자리에서.
아무도 그때는 몰랐다. 그것들이 2026년 2월부터 역성장하게 되는 엄청난 발판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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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KPI가 확정됐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국가별 목표 숫자, 달성 기간, 추진 계획을 수립해달라는 말이 붙었다. 목표는 높지만 할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두 번째 장면에서 시작된 것들이 여기서 완성됐다. 데이터로 문제를 찾고, 책임소재를 묻고, 정책을 뒤집은 다음 단계는 목표를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아래에서 올라온 게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왔다.
팀이 만든 목표가 아니었다. 우리가 현실을 보면서 가늠한 숫자가 아니었다. COO가 설정하고 내려보낸 것이었다. 그 숫자에 도달하려면 지금 뒤집힌 정책들이 맞아야 했다. 전 직장에서 통했다는 방식이 여기서도 통해야 했다. 그게 틀렸다는 걸 드러내는 건, 아직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1대1 미팅이 일찍 마무리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KPI 집중 시기라서. 대신 설문은 계속 열어두겠다고 했다.
짧은 공지였다. 읽고 지나칠 수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미팅을 못 해도 설문은 작성해도 되냐고. COO는 설문은 계속 열어둘 거라고 답했다.
나는 그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이 뭘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미팅이 없어도 되냐고 물은 게 아니었다. 나 보이냐고 물은 거였다.
두 번째 장면에서 정책이 뒤집히는 걸 가장 가까이서 본 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오래 이 서비스를 운영해온 사람들, 그 나라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몸으로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바보같이 한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향한 건 방식이었지만, 맞은 건 사람이었다.
1대1 미팅이 KPI에 밀렸다는 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이었다. 숫자로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COO의 답은 틀리지 않았다. 설문은 열려 있고, 이야기는 닿는다고 했다. 근데 사람이 진짜 확인받고 싶은 건 채널이 열려있냐가 아니다. 내 말이 닿고 있냐는 거다. 그 둘은 다르다.
조직이 빨라지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다. 빠르게 재편되는 구조 안에서 개인이 점점 흐릿해지는 걸, 몸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10월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비전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숫자가 되고, 숫자가 책임이 되고, 책임이 한 사람에게 모인 달.
팀이 나뉘고, 정책이 뒤집히고, 목표가 내려왔다. 그 모든 것이 데이터 위에서 이뤄졌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근데 데이터를 읽는 사람이 이 회사를 모르면, 데이터는 맞는 말을 틀린 방향으로 이끈다.
COO가 나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모른다. 그 사람이 원한 방향이 완전히 틀렸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이고, 숫자로 보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 그게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 사람은 이 회사를 몰랐다.
고객을 몰랐고, 이 서비스가 어떤 이유로 지금 이 모양이 됐는지 몰랐고, 11개 나라에서 조용히 쌓아온 것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모르는 채로 빠르게 움직이면, 잘 돌아가고 있던 것도 멈춰버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막지 못했다.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를 막지 못한 게 아니었다. 선한 의도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운 속도를 따라가다가, 멈춰서 물어봐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였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참 착했다. 그게 강점이었고, 동시에 그달의 약점이기도 했다.
10월에는 모두가 웃으면서 따라갔다. 방향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가끔 생각했다.
맞아 보이는 것과 실제 맞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항상 나중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