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한국

방황했던 시간들

by 빛토리

대학교 생활동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며 장학금도 받고 졸업했던 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취업이라는 벽에서 더 많은 방황을 했다.

처음 써보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그리고 토익과 토익 스피킹과 같은 많은 과제들은

한국에서의 삶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조금은 늦은 시작이었고,

항상 든든하게 내 등을 지켜주었던 아빠가 나의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보다도 더 힘들 엄마 앞에서는 나는 마음 놓고 울지도, 아파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웃었다.


그렇게 나의 방황은 23살,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맞이하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은 했다.

늦은 시간까지 이력서를 쓰고, 토익 학원도 다니면서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은 항상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이 순간이 꿈이기만을 바랬던 듯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주말이 되면 항상 친구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언제나 10시면 집에 들어왔던 내가,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첫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힘드니까 스트레스 풀러 가는 거 잘하고 있다며 다독였다.

큰 오빠는 그런 태도로는 취업을 할 수 없다며, 나를 한 번씩 정신 차리게 했다.

그때의 엄마의 마음도, 큰 오빠의 마음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걱정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내가 잘 살아가길 바랐다.


그렇게 지난 1년, 더는 지체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 이게 현실 같지는 않지만 꿈속 같은 현실이라도 나는 그 현실을 살아야 했다.

외출을 줄이고, 더 몰두했다.

취업생이라면 누구나 했을 일이지만 100 통이고 이력서를 써내려 갔고, 이력서에서 떨어지지 않을 스펙이 되었을 때, 나는 기회를 잡았고, 채용기반 인턴 생활까지 2달에 걸쳐 입사 시험을 마친 나는 소위 대기업이라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첫 회사, 약 9년간 내가 있었던 그 첫 회사는 나에게 참 많은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첫 제품 개발, 그리고 내가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 나온 것,

조용히 묵묵하게만 일했던 내가,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의 회사 생활의 기반이 된 것,

코로나 시절의 중국 해외 파견 주재원, 다시 돌아간 중국,

끝끝내 긴 시간 중, 퇴사를 결심하게 한 이유, 이직의 시작,

나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이 회사에 입사한 그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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