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인도네시아로 갔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7살 겨울, 허울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 시절.
그해 다녀온 뉴욕 공연이 결정타였다.
외국병이 생겨버린 거다.
화려한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계단에 앉아서 멍 때리며 화려한 불빛에 계속 취하고 싶었다. 센트럴 파크 넓은 잔디밭에서 책을 읽다 얼굴에 대충 덮어놓고 누워있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여기라면 내 인생 모두를 걸고 예술의 꿈을 마음껏 펼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용이 하고 싶었다. 그냥 춤이 추고 싶었고, 춤만 출 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다.
택시기사 아빠와 미용사 엄마는 처음에 무용을 하겠다고 조르던 딸의 등쌀에 못 이기는 척 학원을 보내주셨겠지. 그런데 철없는 딸은 무용을 전공까지 한단다. 천지 분간 못하던 중학생은 그저 춤이 추고 싶어 단식 투쟁도 불사했고, 부모님은 뻔한 집안 사정에도 무용과를 보내주셨다.
딸이 그토록 원하는 무용을 시켜주길 잘했다며 좋아하셨고, 지지해주셨지만, 학교를 다닐수록 집안 사정은 안 좋아졌다.
아니, 결국 겨우겨우 버티는 부모님의 삶은 무너졌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엄마는 이젠 집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너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겨우겨우 힘겹게 꺼내셨다.
당연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도 했는데 집에 언제까지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둥뿌리를 뽑아놓은 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오지만, 이제라도 내 밥벌이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대학원 졸업만 하면 학생들도 가르치고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사로잡혔다. 마음먹으면 원하는 데로 춤도 추고 돈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쩌다 잘 될 거라는 착각은 운을 끌어당겼는지, 대학원 졸업을 하자마자 예술고등학교에 수업을 나갔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와 착각 속에서 항상 살아왔기에 고작 1시간 수업에 왕복 4시간을 지하철로 오가며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웬만한 시련은 행운과 함께 찾아오는 옵션 같은 걸로 생각하며 버텼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는 외국 앓이가 이제껏 춤만 추면 다 좋을 거라는 중학생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버티던 삶에 뼈 때리는 고통을 느끼게 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무덤덤하고 마냥 웃으면서 네네 하던 삶은 버티는 삶이었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채찍질해가면서 내가 정한 고정관념 속에 스스로 파고들어 깊은 동굴을 만들고 있었다.
가끔 듣던 ‘그럭저럭 잘 사니깐 무용했겠지.’라는 말이 언제 자리 잡았는지조차도 모르게 자격지심이란 씨앗을 심어놓았다. 그 씨앗은 내 삶을 자각하는 그 순간,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제껏 괜찮았던 나의 가정형편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아무도 알지 못하기를 바랐다.
딱히 그렇게 나에게 관심도 없을 텐데, 나는 그렇게 나만의 잘못된 프레임에 사로잡혀 나를 가둬두고 버티고 있었다. 버티는 그 삶이 외롭고 힘들고 지쳤지만 내 삶을 구제해줄 이는 없다고 불평만 하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철벽을 쌓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이 부모님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혼자만의 구덩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버티기의 삶을 알아챈 후 내 삶이 구질구질해 보였다. 뉴욕, 그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살고 싶었다. 사람 많은 곳에 섞여서 이방인이 아닌 척하고 싶었다.
아, 맞다. 근데 난 영어를 못한다. 돈도 쥐뿔도 없다. 한국무용이 무슨 영어냐며 수능 이후에 영어 책 한번 제대로 보지 않았다. 영어 공부부터 해야 하는 건가. 에라이, 망했다. 어학연수 갈 비행기 값은커녕 당장 내일 내야 할 학자금 이자도 없는 판에 영어 공부가 또 웬 말인가.
현실과 이상에 방황하며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었다. 나의 뜬구름은 생뚱맞은 나라로 나를 데려갔다.
학교 선배가 인도네시아에서 한식당 매니저를 구하는데 가보겠냐고 물었다. 외국의 한인 식당, 영어가 필요 없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어는 가서 배우면 금방 배운다 한다.
기가 막히는 타이밍에 그냥 냅다 간다고 했다.
아주 잠시 망설이기는 했다. 조금만 버티면 입시생도 가르칠 수 있으니깐 수입이 조금은 괜찮아질 텐데, 좀 더 버틸까?
그것도 잠시, 다시 현실적 긍정 회로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돈도 주고 잠도 재워주는데 안 갈 이유가 없다. 이미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데 괜히 뜬구름 그만 잡고 이 나라를 떠나라.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매니저라면 관리직 아닌가.
아메리카 드림까지는 아니지만 먹고사는 게 문제니 열심히 돈 벌어 금의환향해 다시 춤추자는 흔해 빠진 자기 암시를 하며 어린 시절의 꿈은 잠시 넣어두었다.
그저 춤추고 싶었다.
그러나 춤이라는 떨어져 나간 꿈 귀퉁이는 어느새 낯선 나라로 나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렇게 꿈으로부터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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