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산책을 가고 싶어졌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산책을 가자고 내가 먼저 졸랐다. 첫째는 킥보드를 타러 성북천으로 가자고 했고, 둘째와 셋째는 덩달아 킥보드를 챙기겠다고 한다. 산책은 여유롭게 걷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함께 갈 수 없는데, 혼자서 킥보드 타는 아이 셋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킥보드는 놔두고 가자고 아이들을 말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괜찮다는 아이, 안된다는 아이, 안 가겠다는 아이. 각자 자기 할 만만 하는 아이들에게 결국 그냥 가지 말자는 말을 던져버렸다.
아이들은 그제야 눈치를 챙겼는지 그럼 그냥 옥상에서 킥보드를 타자고 한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깐이라도 걸으려던 건 나의 욕심이었나 보다. 더는 실랑이를 하기 싫어서 결국 옥상으로 산책을 갔다. 아이들은 운동장 트랙을 돌듯 제자리를 빙글빙글 쉴 새 없이 돌았고, 나는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었다. 생각보다 바람이 싸늘했다.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왜 이리 바람이 차가운 걸까. 새삼스럽게 꽃샘추위를 느끼며 차가운 볼을 어루만졌다. 괜히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리 집 화단이 보인다.
겨울 내내 수북이 쌓여있던 갈색 솔잎을 비집고 연둣빛 새싹이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 모습이 보인다. 봄이 맞긴 맞는구나. 그때 새싹들 옆으로 성큼 솟아난 커다란 녹색 잎이 눈에 띈다. 저건 뭐지? 한참을 생각하다 겨울에 지인이 건네준 튤립 구근이 생각났다. 겨울에 땅을 파서 묻어두기만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꽃을 볼 수 있을 거라 했었다. 처음 심어 보는 튤립 구근이라 꽃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대충 흙을 파내 양파 같은 구근을 땅에 심고, 흙을 덮어놨다. 그게 전부였다. 겨우내 물을 챙겨주지도 않았고, 아예 내가 그것들을 심어놨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진걸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자연은 푸른 봄을 데리고 왔다. 조금 더 지나면 튤립 꽃을 볼 수 있겠지. 벌써부터 어떤 색깔 꽃일지 궁금해 마음이 여러 가지 봉긋한 튤립 꽃 봉오리처럼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