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전원생활정경 제4권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ée)〉은 1835년에 《르뷔 드 파리(Revue de Paris)》에 연재되다가 1836년에 《베르데(Werdet)》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844년 《퓌른》 판에서 『인간희극』의 「전원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출간되었다.
〈골짜기의 백합〉은 화자인 펠릭스가 나탈리라는 여성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로, 발자크의 전기적인 사실과 감정들이 많이 녹아 있다. 작가 자신은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일종의 수치심을 느껴 초판의 서문에서 “어디에도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단언하지만, 같은 글에서 소설의 줄거리가 “부분적으로 사실”이며, 자기가 보고 겪은 일들을 상당 부분 소재로 삼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발자크처럼 펠릭스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가슴속에는 부모를 향하는 사랑이 가득하나 이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펠릭스가 어린 나이에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발자크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다. 발자크는 훗날 어머니를 몹시 원망하며 ‘괴물’이라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모르소프 부인 역시 발자크가 사회에 첫발을 딛던 20대 초에 만나 반했던 베르니(Berny) 부인과 많이 닮았다. 〈골짜기의 백합〉을 집필할 당시 베르니 부인은 모르소프 부인처럼 이미 화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고, 책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던 날에 숨을 거두었다.
한편, 인물들만큼이나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투렌(Touraine) 지방 역시 작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상상력이 가미되기는 했지만, 발자크가 사랑하는 고향 투렌과 앵드르(Indre) 강 유역의 풍경은 클로슈구르드(Clochegourde) 주변의 묘사를 통해 서정적으로 재현된다. 이 작품에서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하며, 나아가 그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감미로운 저녁 풍경은 펠릭스(Félix)와 백작부인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후에 메마른 들판은 시들어버린 이들의 마음과 죽어가는 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백작 부부에게 앵드르 골짜기는 치유의 기능도 있지만 벗어날 수 없는 외로운 감옥이기도 하다. 모르소프(Mortsauf) 부인은 투렌의 산물이며, 투렌 풍경의 일부이다.
이 소설에서는 사회 묘사보다 심리 묘사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왕정복고와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등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모르소프 백작은 프랑스의 18세기 말 19세기 초 정치적인 격변기의 산증인이다. 그는 대혁명 이후 왕정이 폐지되었을 때 망명 가서 온갖 고생을 겪은 후 나폴레옹의 집권 하에 귀국하여 유서 깊은 가문의 딸인 부인과 결혼한다. 그는 극진한 왕정주의자이지만 망명 생활 중에 나빠진 건강과 경험 부족 때문에 루이 18세가 다시 왕위에 올랐을 때 그에게 내려진 관직을 마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백작부인의 아버지는 다시 요직에 오르고 어머니는 파리 사교계의 중심에 복귀한다. 이에 펠릭스는 부인의 소개에 힘입어 파리 상류계에 진출하게 되는데, 나폴레옹이 잠깐 돌아왔을 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여 왕의 신임을 얻고, 그 후로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한다. 루이 18세의 등장은 작품에 역사적인 사실성을 부인한다. 발자크는 궁정과 귀족 계급의 인물들을 항상 긍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지만 이들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을 통해 자시의 왕정주의적인 성향을 내비친다. 이렇게 당대 프랑스사는 이 작품의 줄거리와 맞물려 있으며 인물들의 운과 비운을 결정한다.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펠릭스 드 방드네스(Félix de Vandenesse)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로 시작된다. 펠릭스의 아버지는 프랑스 귀족 중에서도 굴지의 명문인 방드네스 후작 가의 현재 주인으로, 대혁명 후 나폴레옹이 제일통령으로서 위세를 떨치던 무렵 부르봉 왕가를 위해 여러모로 암약하였으나 나폴레옹이 제정을 확립하기에 이르러 중앙정계와 인연을 끊고 투르에 숨어 살게 되었다. 펠릭스는 이 방드네스 후작의 2남 2녀 중 차남인데, 어째서인지 아버지 후작으로부터는 소홀히 대접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으며, 형이나 누이들한테서는 구박을 받아 어둡고 불행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파리에서 학교생활을 할 때도 집에서 제대로 용돈이 오지 않아 언제나 생활고에 시달렸다. 학생다운 오락도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억압된 욕망 때문에 노상 상상력만 활발해지는 괴로움, 언제 보아도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 우는 쓸쓸함을 잊기 위해 그는 무작정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다. 그렇게 자라난 펠릭스는 “불행에 짓눌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작고, 마르고, 창백했다. 의욕적인 정신은 허약한 육체 안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투렌 주는 약간 북쪽으로 치우치긴 했지만 거의 프랑스의 한가운데로서, “프랑스의 정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다. 프랑스에서 제일 큰 강인 르와르(Loire) 강이 주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강을 따라 주도(州都)인 투르가 주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투르의 아래쪽 약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셰르(Cher) 강과 앵드르 강이 남쪽으로부터 르와르 강과 합류한다. 기후가 온화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왕후 귀족들이 별장을 짓던 장소였다. 앵드르 강과 르와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에메랄드 빛 골짜기가 펼쳐져 있고, 그 강 건너 언덕 중턱에 위치한 클로슈구르드라는 성관에는 모르소프 백작 부부가 살고 있다.
투렌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모르소프 백작은 대혁명이 발발하자 국외로 달아나서 콩데군에 들어가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왕당파인 콩데군이 붕괴해버리자, 헝가리 등지를 유랑하며 온갖 고초를 겪은 뒤 1803년경에 귀국해 르농쿠르(Lenoncourt) 공작 가에 패잔의 몸을 의탁했다. 르농쿠르 공작의 19살 난 딸 블랑시 앙리에트(Blanche Henriette)는 지나칠 만큼 엄하게 길러져 소녀 시절의 즐거운 추억이라곤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자란 그녀는 귀족의 규율이 명하는 대로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백작과 결혼했다.
신혼의 두 사람은 클로슈구르드의 성관에 살게 되었다. 이 성은 블랑시 앙리에트가 이모인 베르누이유(Verneuil) 공작부인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이었다. 모르소프 백작은 천성적으로 유약한 성품인데다 오랜 세월에 걸친 망명생활의 불규칙한 생활과 마음고생 등이 원인이 되어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 아들 자크(Jacques)와 딸 마들렌(Madeleine)도 유약한 아버지의 체질이 그대로 유전되어 번갈아가며 심한 병을 앓았기에 앙리에트에게는 걱정거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백작의 느닷없이 변하는 기분도 골칫거리였다. 이유도 없이 기뻐서 떠드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어 고함을 질러대곤 했다. 자신의 성마른 성품 때문에 아내가 얼마나 고통 받는가 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백작 일가는 농장 경영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는데, 백작이 이렇게 변덕이 심한 사람이다 보니, 농부들과의 응대와 경영상의 자질구레한 계산을 그에게 맡겨 놓을 수가 없었다. 농장 관리는 자연히 앙리에트의 몫이 되었고, 이래저래 그 심로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 저택을 물려준 앙리에트의 이모 베르누이유 공작 부인은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앙리에트는 어린 시절 양녀로서 매우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기에, 돌아가신 이모를 친어머니보다도 더욱 그리워했다. 이모의 독실한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은 그녀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체념하고 남편의 횡포와 변덕을 묵묵히 인내했다.
세상은 나폴레옹 제정 말기로, 뜻밖의 대사건이 잇달아 일어나서 그때까지 상승의 꿈에 취해 있던 프랑스 국민을 동요시켰다. 러시아 원정은 동장군을 업신여긴 탓에 대실패로 끝났다. 나폴레옹은 아직 자신만만했지만, 국민의 가슴에는 어느새 어두운 패배의 징조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국의 동맹군이 별 고생도 없이 국경을 넘어 마침내 파리를 포위하게 되자, 역사에 그 유례를 볼 수 없었던 나폴레옹의 패업도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수도를 외국군에게 점령당하고 국내의 지배층에서 버림받은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사라졌고, 이와 동시에 국왕 루이 18세가 망명지인 영국에서 돌아왔다. 국왕의 조카인 앙굴렘공도 국왕과 파리에서 합세하기 위해 보르도를 출발했다. 투렌 주는 그 북상의 통로에 위치했기에, 주도인 투르에서는 성대한 무도회가 열리게 되었다.
1814년 5월 25일, 투르는 나들이옷으로 차려입은 사람들로 들끓었고, 집집의 창문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뭔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분위기가 공중에 감돌고 있었다. 무도회장에는 축연의 등불이 밝게 빛났고 빨간 장막이 둘러쳐진 가운데 화려한 의상을 입은 남녀노소가 유쾌하게 춤을 추며 돌아가고 있었다.
모르소프 백작 부인은 그 사이를 빠져 나와 한쪽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무도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무도회장의 웅성거리는 인파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장밋빛을 띤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 후작과 형 백작의 대리로서 환영 무도회에 출석해 있던 펠릭스였다. 처음 보는 새하얗고 토실토실한 여자의 싱싱한 어깨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나머지, 그만 앞뒤 분별을 잃었던 것이다. 백작 부인은 여왕 같은 태도로 청년을 꾸짖고 그대로 무도회장을 빠져 나갔다. 펠릭스는 금단의 사과를 맛본 기분으로 입술에 남은 따뜻함을 느끼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과도한 공부 때문에 오래토록 지속된 사춘기와 느즈막히 시작되려는 성년기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키스는 몹시 당돌한 것이었으나, 이성에 대한 사랑에 굶주려 있던 그로서는 극히 순수한 충동이었다.
백작 부인과 만난 뒤부터 펠릭스는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독서에만 열중했는데, 이후에는 독서에도 그다지 열을 내지 않았고, 어머니의 고압적인 엄한 눈길에도 무관심해졌다. 아직 백작 부인의 이름도, 주소도 몰랐지만, 그녀가 같은 투렌의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이 향기롭고 기쁨으로 넘쳐났다.
펠릭스의 심적 변화를 알아챈 어머니는 그의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심해진 것으로 판단해,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시골에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가까운 친지 중에 시골에 별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를 보냈다. 펠릭스는 마음대로 들판을 쏘다닐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그리하여 무도회가 있은 지 두어 달 지난 8월의 어느 날, 펠릭스는 투렌을 샅샅이 뒤져서 그녀의 성관을 찾아냈다. 펠릭스는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 채 그 일대를 헤매다가 그녀의 거처를 멀리서 직감적으로 알아보았다. 펠릭스에게 “그녀는 이 골짜기에 피어난 한 떨기 백합이었다.”
펠릭스는 친지를 대동하고 정식으로 성관을 방문했다. 펠릭스를 맞이한 백작 부인은 곧 그를 알아보고 몹시 당황했다. 펠릭스의 친지가 펠릭스를 소개했고, 백작 부인은 이내 냉정을 되찾고는 땅 얘기며 수확과 포도 얘기 등의 화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백작 부인은 두 아이의 어머니였지만, 펠릭스는 “그녀만큼 처녀다운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교태는 신비로운 것이어서, 여성들이 바라듯이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보다 상상력을 자극했다.” 펠릭스의 시선은 이리저리 방황했다. 백작 부인의 허리를 껴안고 발에 키스하는 상상에 취한 그의 영혼은 “초인적인 쾌락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렸다.”
이때, 모르소프 백작이 들어왔다. 백작은 55세였지만, 60세를 넘은 것처럼 몹시 쇠약하고 늙어 보였다. 백작은 스무 살이 지났는데도 가냘프고 허약한 체격이지만 건강해 보이는 펠릭스를 보고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펠릭스를 유례없이 환대했다.
그때부터 펠릭스는 백작과 친분을 다지며 백작 부부의 성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펠릭스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파리에 나가 법률 공부를 계속해야 했지만, 소르본의 강의가 시작되는 11월 초순까지는 이곳에 계속 머물기로 결심했다. 아직 두 달 반이나 여유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군부나 정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변혁이 현재 진행 중인데도 펠릭스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그 격렬한 변혁이 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백작 가를 자주 방문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백작 부인은 펠릭스가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것을 그다지 괘념치 않았다. 펠릭스가 백작의 권태로움을 위로해주기에 적당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펠릭스는 장기를 둘 줄 몰랐는데, 백작이 그에게 장기를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고, 백작으로서는 그와 장기를 두는 것을 무엇보다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펠릭스는 장기 입문서를 숙독해 며칠 지나지 않아 백작을 이길 정도가 되었지만, 펠릭스가 장기에서 이기면 백작이 주사위를 내던지거나 발을 구르거나, 심지어는 펠릭스에게 욕을 퍼붓는 등 말할 수 없이 불쾌해 했기에 펠릭스는 승부를 조절하게 되었다.
백작은 장기 이외에도 펠릭스에게 차츰 무례하게 굴기 시작했다. 그를 대면하고도 갑자기 기분이 변하거나 까닭도 없이 깊은 우수에 잠기기도 했고, 갑자기 흥분했다가 일순 냉정해지는 등, 마치 미치광이 같아 보였다. 펠릭스는 그럴 때마다 모르소프 부인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백작 부인과 펠릭스는 어느새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눈길을 주고받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슬픔으로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뒤, 다 같이 언덕 쪽으로 산보를 나갔는데 황폐한 들판을 마주한 백작이 자신의 처지 같다며 갑자기 음울해졌다. 펠릭스는 일부러 그에게 장기를 두자고 제안해 그를 이기게 했다. 그러자 백작은 갑자기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좋아했는데, 그러다 우연히 펠릭스가 이기게 되자 느닷없이 일어나 펠릭스에게 장기판을 내던지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백작 부인은 재빨리 펠릭스를 정원 쪽으로 내보냈다. 백작의 방에서는 소리치고 신음하는 소리와 함께 백작 부인의 천사 같은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백작 부인이 정원으로 나왔다. 백작이 겨우 진정되어 잠이 들었다며, 펠릭스처럼 마음이 넓고 친절한 분을 보내어 강한 우정으로 지탱하게 해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펠릭스는 용기를 내어 일전에 무도회에서 그녀에게 범했던 무례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는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태어나자마자 어느 시골집의 수양아들로 보내져서 3년 동안 부모형제에게 잊혀져 있다가 도로 데려온 아이였다. 가정에서도 외톨이였다. 5살 위의 형 샤를(Charles)은 부모의 총애를 받았다. 샤를은 미남이고 체격도 좋고 튼튼한 데 비해 펠릭스는 허약하고 몹시 궁상맞은 아이였다. 읽고 쓰기를 할 수 있게 되자 즉시 중학교의 기숙사에 넣어져서 거리서 8년을 지냈는데, 부모로부터는 빠듯한 용돈밖에 오지 않았기에 친구들한테도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언제나 나무 그늘에서 슬픈 몽상에 잠겨 있거나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다. 파리에서는 하숙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늘 용돈이 부족해서 다른 하숙생처럼 우유가 든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의 패색이 짙어지자, 눈치가 빠른 후작은 파리에 유학 중인 펠릭스를 투르로 불렀다. 어머니와 함께 돌아오는 도중, 그는 몇 번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모친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다정한 말을 걸려고 하면 어머니 후작 부인의 차가운 눈과 부딪치는 것이었다. 펠릭스가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슬픔을 호소했더니 어머니는 성격이 비뚤어진 아이라고 내뱉듯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렇게 펠릭스의 어머니를 향한 애정은 번번이 매정하게 억눌려졌다. 그런 여행 끝에 그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그만 르와르 강에 뛰어들려고 했다. 그 후에도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펠릭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난 백작 부인은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녀 역시 남자 형제가 다 죽어버린 집에서 자신이 마침 딸이었기 때문에 고통 받고 자랐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펠릭스의 어머니처럼 격식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귀부인이었다. 그녀는 딸을 매우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게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따끔한 빈정댐이 섞여 있었다. 그 고문과 같은 나날은, 오히려 친어머니 같았던 친절한 이모 베르누이유 공작 부인의 양녀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혼생활도 슬픔의 연속이었다. 모르소프 백작에게는 아내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라는 것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마저 연약하기 짝이 없었기에, 백작 부인은 자크의 가정교사 역할도 하고, 마들렌의 시녀 역할도 했으며, 백작 가의 집사 노릇과 마름 노릇을 하기도 했다. 백작이 도무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펠릭스는 백작 부인과 서로의 슬픔과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그녀의 영혼과 굳게 맺어진 것 같았다. 펠릭스가 조심스럽게 부인에 대한 사랑을 얘기했지만, 부인은 엄숙한 목소리로 그런 말씀을 하려거든 다시는 오지 마시라고 짐짓 엄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펠릭스를 바라보는 눈길만은 다정했다. 펠릭스는 그녀의 뜻대로 행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그에 따른 고통은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그녀를 위해 주저 없이 몸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펠릭스는 몇 번이나 그녀의 손에 키스했고, 부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가족에 대한 의리와 종교적인 신념에 충실하기 위해 내심 치열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백작 부인은 펠릭스에게 오로지 정신적인 사랑을 원했지만, 무도회의 그 밤, 향기로운 꽃을 연상케 하는 부인의 살결에 입술을 댄 후부터 펠릭스의 마음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환락에 대한 집착과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 차츰 대담하게 그런 뜻을 백작 부인에게 내비쳤다. 백작 부인은 때로는 당혹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웃으며 받아넘겼다. 어느 날 저녁, 앙리에트는 사랑이라는 말을 대신해,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었을 거예요.”라고 조용히 고백했다.
시간이 흐르고, 석 달이 꿈같이 지나 펠릭스가 파리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모르소프 부인은 파리로 떠나는 펠릭스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그녀의 편지에는, 명문의 자제가 사교계에서 취해야 할 처세에 대해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르치듯 자상한 가르침이 적혀 있었다. ‘위에 서는 자일수록 책임이 무겁다’는 격언에서부터, ‘모든 여성을 섬기되 단 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기사도 정신에 이르기까지 모성애 어린 따뜻하고 훌륭한 가르침이었다.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은 1천 명 가량의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의 동남단인 쥐앙만에 입항하여 파리를 향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가 경악했다. 그리하여 3월 20일, 나폴레옹은 튈리 궁전에 입궁했고, 그 전날에 루이 18세는 벨기에로 망명했다. 나폴레옹의 백일천하의 시작이었다. 그는 워털루의 일전에 마지막 운명을 걸었다.
펠릭스는 백작 부인의 권유에 따라 국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역경에 처한 국왕 주변에 모인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백작 부인의 친정아버지 르농쿠르 공작의 추천이 주효하여 펠릭스는 궁내관으로 등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의 열렬한 천거로 프랑스 국내의 왕당파와 연락하기 위한 밀사로 발탁되어 21세의 펠릭스는 용감하게 프랑스 영내로 잠입해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5월 말경에는 나폴레옹 정부 당국의 감시를 받아, 그의 인상착의가 적힌 벽보가 방방곡곡에 나붙었다. 펠릭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에서 숲으로 이어진 잠행 끝에 모르소프 백작의 영지에 도달했다. 백작은 기꺼이 그를 맞이했다.
앙리에트와는 무려 8개월 만의 재회였다. 펠릭스가 문간에 나타나자 앙리에트는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끝없이 응시했다.
워털루의 패전, 나폴레옹의 도망, 연합군의 파리 진격, 부르봉 왕가 귀환의 날이 가까웠다는 소식 등, 최근의 분주한 사건을 펠릭스는 백작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동안 펠릭스는 늘 어둠을 틈타서 나다녔다. 이윽고 국왕 귀환의 소식이 들어오자 펠릭스는 백작 부인의 재촉을 받아 파리로 돌아갔다. 파리에서는 참사원 청원서 심리관의 자리가 펠릭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왕의 측근으로서 비밀 직무에 종사하며 때로는 정부의 중대사에도 참여했다. 청년 펠릭스에게서 그 유능한 재능을 꿰뚫어본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직감은 적중한 셈이었다. 펠릭스로서는 권세도 부도 행복도 지식도 모두 그녀의 덕택이었다. 그녀는 펠릭스를 인도하고 격려하여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해주고, 또한 그의 산만한 의욕에 한 가닥 신념을 불어넣었다. 펠릭스는 이미 이전의 연약한 청년이 아니었다. 국왕의 신임이 두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간에서도 유능한 젊은 관리로서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백작 부인의 소개로 사교계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 펠릭스는 왕성한 성숙과 2년간의 파리 생활로 자신감 넘치는 멋있는 관리가 되었다. 그 사이에 펠릭스와 백작 부인은 서신을 왕래하며 깊은 사랑과 우정을 지켜갔다.
얼마 후 휴가를 얻게 되자 펠릭스는 곧장 투렌의 골짜기로 날아갔다. 훌륭한 젊은 사내가 되어 돌아온 펠릭스를 보고 앙리에트는 말없이 그에게 손을 내주고 그 손에 키스를 받았다. 펠릭스는 백작 부인의 바람대로 그녀를 “성모 마리아처럼,” “남매처럼,” “어머니처럼,” “순결한 마음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했다.
얼마 후, 펠릭스는 칙명으로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백작 부인은 펠릭스에게 자신의 머리칼 한 묶음을 건넸다. 그녀는 펠릭스에게 그걸 받아달라며 언젠가는 그 까닭을 알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펠릭스에게 끝까지 가정의 의무를 지킨 자신을 원망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펠릭스는 이 아름다운 골짜기의 백합 같은 부인을 가슴에 품고 파리로 향했다.
파리로 돌아간 펠릭스는 공무에 쫓겨 분주한 일상을 보내며 백작 부인에게 매주 일기를 보냈고, 부인도 한 달에 두 번씩 답장을 보내왔다. 세간에는 어느새 펠릭스의 은밀한 사랑이 전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펠릭스는 어느 왕족의 살롱에서 명문의 한 영국 부인을 만났다. 더들리 후작 부인(Lady Dudley)은 펠릭스의 순결한 사랑에 대한 소문에 흥미를 느꼈고, 여자에 대한 그의 무관심과 저항에 부딪치자, 이 청년을 반드시 정복해보기로 결심했다. 더들리의 본심은 스캔들로 세상을 놀라게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펠릭스가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더 그에게 열중했다.
펠릭스가 직책상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연회에는 반드시 더들리 부인이 참석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특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회에 나타났다. 연회가 끝나고 펠릭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보니, 더들리 부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펠릭스의 하인을 매수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스캔들은 온 나라 안에 퍼졌다. 더들리 부인의 정열과 욕정은 마치 사막의 선풍과도 같았다. 그녀가 쳐놓은 함정에 맥없이 걸려서 쉽사리 정복당하고 만 펠릭스는 몸도 마음도 마비되는 듯한 환락에 모든 것을 잊고 빠져들었다. 그러다 이윽고 반 년쯤 지났을 때 문득 투렌 골짜기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졌다. 그리고 더들리 부인의 오만방자함과 잔인한 사랑의 권모술수에 지쳐 진지하게 반성하게 되었다. 결국 펠릭스는, 더들리 부인은 그저 육체의 애인이며 앙리에트야말로 영혼의 반려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무렵, 모르소프 백작 부인으로부터의 회신이 끊겼다. 불안해진 펠릭스는 투렌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더들리 부인도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참에 모르소프 부인으로부터 그를 완전히 떼어놓으려는 심산이었다. 결국, 더들리 부인은 투르 근교 별장에 머물며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밤에만 만난다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마침내 펠릭스는 클로슈구르드 성관으로 향했다. 처음 그곳에 걸어서 갔던 여름날 이후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앙리에트는 그를 보자 반색하더니 이내 남편에게 알리겠다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녀는 파리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통해 이미 펠릭스의 스캔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펠릭스는 앙리에트에게 관능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걸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러나 더들리 부인은 단지 덧없는 환락의 상대에 불과할 뿐, 자신의 청춘도 노후도 모두 앙리에트의 것이라고 호소했다. 앙리에트는 지금껏 유혹에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모른다며, 펠릭스라면 신부님들처럼 훌륭하게 유혹을 이겨내리라고 믿었다고 질책했다. 그리고는,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육체의 불길을 꺼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일축했다.
앙리에트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있었다. 얼굴빛도 누렇고 윤기가 없는데다가 눈 주변에 검은 그늘이 지고 심하게 수척했다. 그녀는 위장상태가 심하게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체념한 듯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고만 말했다. 며칠 후 그녀는 심한 구토에 발작을 일으켰다.
어느 날,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백작 부인이 근방으로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마부에게 더들리 부인이 머물고 있는 별장에 연한 길로 가자고 지시했다. 당황한 펠릭스가 다른 길로 가자고 하자, 백작 부인은 더들리 부인이 와 있다는 걸 안다며 만나보겠다고 고집했다. 그녀는 펠릭스의 누이로서 더들리 부인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가운데 두 사람은 더들리 부인이 머무는 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더들리 부인은 한 눈에 백작 부인을 알아보고, 눈 깜짝할 새에 덤불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백작 부인은 가서 달래주고 오라고 펠릭스를 보냈는데, 그렇게 떠난 펠릭스는 그날 밤 끝내 성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클로슈구르드 성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덮여 있었다. 성관 주변도 나무들도 둔덕도 모든 것이 비탄과 포기를 여실히 나타내며 눈물에 젖어 있었다. 백작 부인의 병이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전혀 음식을 먹지 못했고, 잠도 이루지 못했다. 의사의 말로는 백작 부인의 마음속에 남모를 고민이 있어 그로 인해 위장의 활동이 정지되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 백작 부인은 의연한 태도로 죽음을 각오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간절히 살고 싶어 했다. 아이들을 위해 지나치게 희생했던 걸 후회했다.
더들리 부인에 이끌려 파리에서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펠릭스는 궁중에서 백작 부인이 위독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곧장 휴가를 내어 골짜기로 떠났다. 1820년 10월의 어느 날 아침,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 길을 지나 클로슈구르드 성관에 도착했다. 앙리에트는 그를 맞아 단정하게 몸차림을 했다. 그녀의 방을 향해 가던 펠릭스를 그녀의 고해신부인 프랑수아 비로토(François Birotteau)가 불러 세웠다. 이 늙은 고해신부는 이미 백작 부인으로부터 뭔가 중대한 마음의 비밀을 고백 받은 터였다. 신부는 부인이 지금 펠릭스를 만나는 건 몹시 치명적이니 부디 부인이 마음 편히 숨을 거둘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백작 부인은 이미 펠릭스가 알고 있던 더없이 아름다운 앙리에트도 아니고, 청순하고 고귀한 모르소프 백작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의 여윈 얼굴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갈망에 의해 허무와 싸우며 생사의 싸움에 쫓기는, 뭐라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펠릭스는 놀라움을 감추고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그녀의 손마저 까슬까슬하게 메말라 있었다.
앙리에트는 펠릭스의 추억 속에 언제까지나 백합꽃처럼 살아 있고 싶었다며 이렇게 추한 꼴을 보이게 된 것을 속상해 했다. 그러나 펠릭스를 보고 나면 그 행복으로 도로 젊어질 테니, 그러면 단 둘이서 이탈리아로 떠나자고 말했다. 그러더니, 펠릭스를 보지 못하고 사는 삶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자기도 파리로 가서 온갖 연회와 쾌락을 누리고 싶었다고 토로하다가 느닷없이 펠릭스의 목을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하며 자신도 더들리 부인처럼 사랑 받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러다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녀는 임종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사가 처방한 아편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펠릭스는 정신없이 성관을 나와 앵드르 강가에 매인 작은 배에 올랐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백작 부인의 하녀가 달려 나와 어서 들어가 보시라고 그를 재촉했다. 방으로 돌아가 보니, 앙리에트는 매우 온화하고 아름다운 상태로 돌아와 있었고, 가족들 모두가 모여 있었다. 부인은 창백한 얼굴로 선반 위에 놓인 편지를 가리키며 펠릭스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러더니, 헛된 희망만 안겨주고 몇 번이나 뒷걸음질 쳐서 고통을 주었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녀는 남편을 비롯해 하인들에게도 일일이 화해와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는 펠릭스에게 마지막 시선을 던지더니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그녀의 시신은 앵드르 강을 건너 야트막한 언덕 위의 마을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아무 장식도 없는 검은 나무 십자가가 무덤 위에 세워졌다. 마음을 추스르느라 며칠이 지난 뒤에야 펠릭스는 앙리에트의 편지를 읽었다. 그가 파리로 돌아가기 전에 건넸던 그녀의 머리칼은 그를 상대로 불타오른 욕정과 열망을 이겨내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정절을 지키기 위해 며칠 밤을 울며 고통으로 지새울 때마다 빠졌던 머리칼이었으며, 더들리 부인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질투로 마음이 찢겨져 그 갈라진 틈으로 죽음이 비집고 들어왔는데, 자신을 배신한 건 그의 본능일 뿐 마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살고 싶어졌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적혀 있었다. 자기를 쏙 빼닮은 마들렌과 펠릭스가 맺어진다면 마들렌은 자기보다는 행복해질 거라고도 적혀 있었다. 편지 말미에 그녀는 펠릭스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도 유혹에 진 것과 다름없었다고 고백했다.
펠릭스는 앙리에트의 유서에 가득한 슬픔과 회한을 가슴에 새겨 그녀와의 추억을 기리며 살아가기 위해 마들렌과 함께 클로슈구르드 성관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마들렌에게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며 에둘러 청혼했다. 그러나 마들렌은 그와 맺어질 바엔 앵드르 강에 몸을 던지는 편이 낫다며 부디 다시는 클로슈구르드에 오지 마시라고 일갈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관으로 돌아갔다.
펠릭스는 골짜기에 작별을 고하고 파리로 돌아갔다. 파리로 돌아가자마자 더들리 부인의 저택을 방문했지만 그녀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더들리 부인으로서는 연적이 죽고 나니 펠릭스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던 것이다. 펠릭스는 샤를 10세가 즉위한 뒤부터는 외교계에 전념했다. 그 어떤 여인에게도 일체 눈도 돌리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 일에만 전념한 덕분에 눈부신 성공을 이루었다.
다시 세월이 흘렀고, 펠릭스는 백작 부인 나탈리 드 마네르빌(Natalie de Manerville)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는 나탈리에게 모르소프 백작 부인과의 정신적인 사랑과, 더들리 부인과의 육체적인 사랑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펠릭스의 고백을 모두 듣고 난 나탈리는 펠릭스에게 편지를 통해 그가 “가장 아름답고 덕성스런 여인을 죽였다”며, 그는 “사랑에 대해, 열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건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우리 여자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지 않으며” 여자가 사랑할 때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그 무엇보다 최상위에 올려놓는 법”이기에 자신들의 사랑을 병든 마음을 위로하는 데 낭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성실한 친구로 지내자며 이별을 고했다.
〈골짜기의 백합〉은 주제 면에서 연애 소설, 심리 소설, 성장 소설로서의 성격을 두루 갖추었다. 사회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연애 소설이다. 유부녀와 미혼남의 사랑을 다룬 소설의 계보를 이어 가면서 그 나름대로 새로운 유형을 창조한다. 앞선 작품으로는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 그리고 스탕달의 〈적과 흑〉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클레브 공작부인과 모르소프 부인은 둘 다 남편에 대한 절개를 지킨다. 그러나 클레브 공작부인이 사회적인 명예를 우위에 두고 결국 도피를 택했다면 모르소프 부인은 그리스도교적인 희생정신으로 자기 자리를 지킨다. 오히려 〈적과 흑〉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 같은 시대적 배경, 시골 귀족 집안과 인연을 맺는 젊은이, 아이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인, 출세하는 주인공 등. 그러나 인물들의 상세한 면면과 전반적인 주제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적과 흑〉의 쥘리앵 소렐은 나폴레옹을 동경하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고, 레날 부인은 불륜에 빠진 뒤 끊임없이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쥘리앵 소렐이 자신의 열정대로 끝까지 행동하는 진정한 낭만주의적인 주인공인 반면 펠릭스는 그럭저럭 사회 규범에 순응하며 성공하는 인물이다. 그 이후에 플로베르는 〈감정 교육〉을 집필할 때 〈골짜기의 백합〉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골짜기의 백합〉이 사랑을 이상화했다면, 〈감정 교육〉에서는 그 속되고 현실적인 측면이 폭로된다. 〈골짜기의 백합〉에서는 육체와 사회라는 사슬에 묶인 이승의 사랑과 겨루는 정신적인 사랑의 위대함에 초점이 맞춰졌다.
형식면에서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일종의 ‘서간체’ 소설이며 1인칭 소설이라는 점이다. 펠릭스가 나탈리에게 보내는 긴 고백의 편지와 나탈리의 답장, 단 두 통의 편지만이 오고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서간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액자 소설에 가깝다. 서간체 소설로 보기는 어렵지만, ‘편지’라는 모티프가 전개에 큰 역할을 수행한다. 부인은 긴 편지로서 펠릭스를 사회에 입문시키고, 편지로서 그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 중의 하나는 마지막에 밝혀지는 부인의 마음이다. 펠릭스에 대한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암시는 이미 있었지만, 그런 식의 적나라한 고백은 소설 전체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줄 정도로 충격적이다. 말하자면, 같은 이야기를 모르소프 부인의 시점에서 다시 읽게 해준다. 맨 마지막에 나탈리의 답변도 적잖은 분위기의 반전을 가져온다. 어떤 의미에서 현실적인 독자를 대변하는 나탈리는 펠릭스의 이야기에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던지며 슬프지만 감미로웠던 꿈에서 우리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 참고 논문 : 〈19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처세술 -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중심으로〉,
최호열(청주대)
▶ 참고 문헌 :
1. 〈골짜기의 백합〉, 발자크 저, 정예영 역, 을유문화사
2. 〈골짜기의 백합〉, 발자크 저, 김남제 역, 홍신문화사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논문 및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 혹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