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제

풍속생활연구 - 전원생활정경 제3권

by 글섬

작품 배경


〈마을 사제(Le Curé de village)〉는 1839년에 처음 구상되어 《라 프레스(La Presse)》 지에 그 일부가 연재되었다. 이때만 해도 리모주(Limoges) 지방의 살인범 타슈롱(Tascheron)의 처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틀간의 진중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드라마를 이야기하며 이야기의 중심은 몽테냑(Montégnac)이라는 ‘마을의 사제’ 보네(Bonnet)가 살인범 교화라는 소명을 실천하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바로 발자크가 “〈시골 의사〉의 종교적인 한 쌍”으로서의 〈마을 사제〉로, 보네 신부가 소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1941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는 베로니크(Véronique)의 사생활과 살인사건에 모종의 연관이 있음이 암시되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소설의 중심축이 보네 신부에서 베로니크에게로 전환되었다. 이후 1845년에 『인간희극』의 「시골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최종판이 출간되었다.


발자크는 작품의 서문에서, 보네 신부를 중심인물로 하여 종교의 사회적 실천을 설파하는 교훈적 작품을 쓰고자 했으나, 외적 요인 때문에 결과적으로 베로니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상황을 밝히며, 그 때문에 실패작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시골 의사〉가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고 소설적 구조와 소설 속 이념이 서로 융합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세간의 비평이 쏟아졌기 때문인데, 이러한 세간의 비평을 염두에 둔 발자크가 〈마을 사제〉에서는 극적 긴장감을 고려해 소설적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발자크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사회, 정치적 이념의 훼손을 초래했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마을 사제〉는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성공을 거둔다.


소설의 여주인공 베로니크 그라슬랭(Véronique Graslin)은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한 젊은이를 사랑했다. 그녀의 애인 타슈롱은 유대인 노파를 죽이고 황금을 탈취한다.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아메리카로 도망칠 계획이지만, 결국 타슈롱만 체포된다. 추리소설처럼 엮어지는 이 작품 말미에서, 베로니크는 처형당한 애인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산촌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을 현대화시키는 개간 사업을 하면서 속죄한다.


〈마을 사제〉는 가장 치밀한 소설적 구성을 요구하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독자로 하여금 유감없이 만끽하게 해주는가 하면, 종교적인 구도소설로서의 장중한 감흥을 독자의 가슴에 안겨주기도 하며, 불모의 땅이 생명수가 흐르는 땅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주인공의 외적 존재가 순결함을 얻고 내적 존재가 정신적 완성의 영역으로 비상하게 만드는 과정과 긴밀하게 맺어지도록 만듦으로써 독자의 정신 속에 소설을 시적으로 승화시켜 주기도 한다.




베로니크의 부모 소비아(Sauviat) 부부가 리모주(Limoges)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실증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특히 그 집안의 내력을 통해 대혁명 직후 프랑스에 뿌리를 내리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역사가 설명된다. 베로니크는 전형적인 신흥 부르주아이자 수전노인 아버지의 생활철학에 따라 극심한 절약을 실천하며 수녀로부터 종교적 교육을 받는다. 이로 인해 베로니크는 사실상 사회로부터 차단된다. 지나칠 정도의 검소함과 신앙심으로 살아가는 소비아 부부는 딸의 교육을 신부와 수녀에게 일임하는데, 그들은 읽기와 쓰기, 약간의 셈법 이외에 성서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또는 이미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닫힌 교육이 여성들을 불행한 결혼생활로 이끌게 된다고 말한다.


베로니크는 18세가 되던 해에 우연한 계기로 〈폴과 비르지니(Paul et Virginie)〉라는 소설을 읽게 된다. 이는 그녀의 미래에 “가공할 만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된다. 요컨대, 어떤 신 혹은 악마의 손이 그때까지 가려져 있던 그녀의 본능의 베일을 벗겨 육체적 사랑에 눈뜨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베로니크의 결혼은 철저히 부모의 뜻에 의해 결정되고 성사된다. 행복은 돈만 있으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재산상속의 수단으로 보는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처럼 자수성가해 알부자가 된 부르주아를 사윗감으로 지목하고, 거의 전 재산인 75만 프랑을 지참금으로 주겠다는 밀약을 체결함으로써 그의 허락을 받아낸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딸의 의사는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로니크는 그라슬랭(Graslin)을 처음 만나는 순간 그의 외모에 실망하여 눈앞이 캄캄해지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지만 끝내 침묵하고 만다. 그 이유는 너무 행복해하는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발자크는 “교회, 가족, 세상, 이 모두가 이 결혼의 공모자였다.”고 천명함으로써 탁월한 사회학적 식견을 드러낸다. 발자크는, “그 누구에게도 비밀에 부쳐졌던 지참금의 엄청난 액수를 미리 알았더라면 베로니크는 남편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이 결혼의 가장 큰 문제점이 지참금에 있음을 시사한다.


베로니크의 부부생활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속물적인 남편의 금전적 집착과 그에 따른 아내에 대한 무관심에 직접적인 요인이 있다. 그러나 발자크는 이 또한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결혼이 내포하고 있는 불행의 씨앗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아내에게서 75만 프랑이라는 돈의 액수만을 보는 그라슬랭은 자신의 일인 고리대금업에 파묻혀 사느라 아내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 사무실이 있는 아래층에 기거하면서 기껏해야 한 달에 열 번쯤 아내와 식사를 같이 할 정도이다. 이로 인해 베로니크는 무력증에 빠져 점점 여위어간다. 베로니크는 교회와 민법과 부모가 체념과 복종을 강요하는 불행한 결혼을 “지긋지긋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인내할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1828년, 신임 검찰차장이 리모주에 도착하면서 베로니크에게도 출구가 생긴다. 그랑빌(Granville) 자작이 리모주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지성을 갖춘 여인은 베로니크뿐이라는 걸 알아채고 저녁마다 베로니크의 살롱에서 휘스트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이로 인해 베로니크의 살롱이 번창하면서 무기력에 빠져 있던 베로니크가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베로니크의 살롱은 리모주 여인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베로니크가 그랑빌 자작을 사랑한다는 소문이 퍼진다.


베로니크의 어머니는 사위의 수전노 기질을 간파하고 딸에게 사위가 딸의 재산을 탕진하지 못하게 하라고 충고하지만, 베로니크는 남편의 재산관리에 간섭하지 않는 대가로 남편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낸다. 그 자유란 남편과의 암묵적이자 비공식적인 별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타슈롱과의 만남을 암시한다. 당시 프랑스는 이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따라서 사랑 없는 부부가 서로의 불륜을 묵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었다. 여기서 발자크는 당대 부르주아지의 결혼제도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당시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의 불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적인 관점으로 규명한다. 결혼 당시 20세였던 베로니크에 비해 그라슬랭은 47세로, 베로니크로서는 노인과 결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어떻게 보면 베로니크의 불륜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발자크는 이 필연적인 사건을 소설 속에 삽입함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을 취한다. 베로니크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끊임없는 암시만을 보여줄 뿐, 베로니크와 그라슬랭의 형상화에 전혀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추리소설 속의 범죄 행위처럼 수수께끼가 되어 맨 마지막에서야 그 전모를 드러낸다.


사업이 침체되면서 건강이 나빠진 그라슬랭이 사무실이 있는 아래층에서 베로니크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후, 베로니크가 임신을 한다.


어느 날, 리모주 마을에 벌어진 참혹한 범죄로 마을 전체가 술렁인다. 수전노 팽그레(Pingret) 영감의 집이 털리고 영감은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임신으로 인해 방에서 칩거 중인 베로니크를 찾아온 그랑빌 자작은 타슈롱이라는 자기 제조 직공이 팽그레 영감의 살인범으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 순간, 베로니크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진다.


이웃 마을인 몽테냑 출신의 타슈롱은 정직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타슈롱 가족은 리모주로 이주해 열심히 일하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타슈롱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 말에 따르면, 성실했던 타슈롱이 1년여 전부터는 밤마다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등, 뭔가 달라졌다. 타슈롱은 미국으로 도주하려다 체포되었는데, 처음에는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몽테냑의 신부인 보네의 끈질긴 설교와 교화로 결국엔 살인을 시인하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베로니크는 타슈롱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끝내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타슈롱은 보네 신부에게 고해를 통해 종교적 속죄를 받은 뒤 처형된다. 타슈롱의 가족들은 불명예를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얼마 후, 베로니크는 아들을 출산한다.


1831년 4월, 베로니크의 남편이 파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마침내 베로니크는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랑빌 자작이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베로니크는 교회를 핑계로 청혼을 거절하고는 어머니와 함께 몽테냑으로 이주한다. 베로니크는 한동안 심각한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다가, “나는 민중의 딸이며, 그렇기 때문에 민중에게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고 몽테냑 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녀는 몽테냑의 관개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쾌척하여 몽테냑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다. 그녀는 뛰어난 기술자 제라르(Gérard)와 훌륭한 노동자 파라베슈(Farrabesche) 덕분에 몽테냑에 댐을 건설한다.


청년 엔지니어 제라르는 노동자의 아들로, 리모주의 선한 은행가의 후견으로 파리의 이공과 대학과 토목 관료 양성학교를 거쳐 지방에 파견된 기술 관료이다. 그러나 그는 삶의 현장에서 그가 청춘을 다 바쳐 배운 것,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요컨대 그의 야심과, 그에게 맡겨진 일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체험한다. 그가 지방에서 맡은 일은 그의 능력과 지식을 요구하는 토목사업이 아니라 도로에 깔 포석의 치수나 재는 일이다. 제라르는 “우리는 일거리 없는 노동자, 창고 안에 처박혀 있는 공구들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우리는 마치 지구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감퇴하고 소멸되는 것을 느낍니다.”라고 개탄한다. 이는 당시에 이미 특권계급으로 자리 잡은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무언가를 창조할 힘도 의사도 갖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따라서 제라르가 참여하는 몽테냑의 관개사업은 가로막힌 한 젊음의 가능성에 물꼬를 터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840년, 베로니크는 이제 11살인 아들과 함께, 농도들의 신망을 받으며 마을의 후원자이자 성자로 간주되어 살아간다. 또한, 살롱을 구축해 사회 속에 편입되어 원활한 대인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베로니크의 살롱에 모인 사람들이 1830년 7월 혁명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피력되는 보네 신부의 의견을 통해 발자크 자신의 소설적 의도를 뒷받침하는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신부는 대중의 국가에 대한 복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카톨릭교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으며, 뛰어난 개인들의 힘으로 프랑스에 기적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테스탄트이자 한때 생시몽주의에 매력을 느꼈었던 제라르가 신앙이라는 것은 자신을 향한 거짓말이며, 희망 역시 미래를 두고 하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보네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 거짓말 뒤에 진리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개종시킬 의무를 확인한다. 그는 “인도주의는 하나의 숭고한 오류이지요. 그것은 아무 쓸모없이 육체를 고문할 뿐 영혼을 치유해주는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종교를 그러한 불완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인도주의를 가톨릭적 뉘우침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사회적, 실천적으로 진보적인 종교관을 갖고 있는 보네 신부도 육체와 정신이라는 종교적 물음에 있어서는 그다지 진보적이지 못하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육체보다는 영혼을, 물질보다는 정신을 우위에 두는 기독교는 사랑에 대해서도 정신적인 것을 더 중시한다. 보네 신부는 인간사는 신만이 심판할 수 있으며 지상에서의 죄는 신 앞에서 모두 속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844년에 베로니크는 병으로 건강이 약화된다. 제라르는 몽테냑의 모든 숲을 개간하는 사업에 착수하고, 베로니크의 생일 선물로 호수 한가운데 대규모 여름 별장을 짓는다. 그렇게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베로니크는 타슈롱의 무덤 앞에서 상복을 입은 여인을 발견한다. 그녀는 타슈롱의 누이동생 드니즈(Denise)였다. 베로니크는 큰 충격으로 몸져눕고야 만다.


며칠 후, 베로니크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드니즈를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베로니크는 드니즈가 보네 신부에게, 미국으로 이주한 타슈롱 가족이 오하이오(Ohio) 주의 한 마을에 잘 정착했다고, 그러나 어머니는 슬픔으로 돌아가셨다고 전하는 말을 듣는다. 드니즈는 베로니크가 충격을 받아 병석에 누운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저 오라비의 묘에 기도만 하고 곧장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베로니크는 드니즈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청한다.


베로니크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된다. 어느 날, 베로니크는 제라르를 만나 여름 별장으로 함께 가자고 청한다. 별장을 향해 가는 길에 베로니크는 제라르에게 그와 잘 어울리는 신붓감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그동안 베로니크의 여름 별장에 드니즈가 남몰래 기거하고 있었다. 베로니크는 제라르에게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 달라며,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드니즈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달라고 청한다.


제라르가 드니즈와의 결혼을 결심했을 때 베로니크는 드니스가 그 옛날 팽그레 영감의 살인범이었던 타슈롱의 여동생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제라르는 괘념치 않는다며, 드니즈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베로니크는 아들에게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하던 마을 사업들을 이어서 해달라고 말한다.


임종이 임박한 어느 날 밤, 베로니크는 뒤테이(Dutheil) 주교와 보네 신부에게 찾아와주시기를 청한다. 보네 신부는 베로니크에게 회개를 통해 용서받도록 공개고해를 권유한다. 하지만 뒤테이 주교는 “지금까지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며 공개고해를 반대한다. 베로니크는 결국 공개고해를 결심한다.


다음 날 아침,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베로니크는 타슈롱은 죄가 없다는 말로 공개고해를 시작한다. 타슈롱은 기만적인 결혼생활에 지친 베로니크를 위해 함께 달아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팽그레 영감의 돈을 훔치기로 했다. 그러나 베로니크의 명예를 위해 팽그레 영감의 집에는 타슈롱 혼자 들어갔고, 집안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를 듣고 베로니크가 들어갔을 때 타슈롱은 광분한 상태였다. 베로니크는 타슈롱이 절도에 실패하고 도주하려던 찰나에 그녀가 들어서자 그녀의 신분이 노출되는 걸 우려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거라며, 따라서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고 울부짖는다.


어머니를 비롯한 이웃들은 베로니크의 불륜을 비난하기보다는 동정하며 모두가 입을 모아 “그녀는 성녀입니다!”라고 외친다. 이틀 후 베로니크는 숨을 거둔다. 마을 사람들은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도록 기원하며 그녀의 시신을 타슈롱 옆에 묻어준다. 베로니크는 유언을 통해 그녀의 재산을 여러 자선 단체를 설립하는 데 기부했다.




분석


〈시골 의사〉에서 브나시가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대단히 통찰력 있지만, 그러나 대단히 예외적이고 대단히 직관적인 정신의 소산으로 비춰진다. 발자크는 1820년대에 체계적인 정치, 사회 이론을 갖추고 한 마을의 개혁 작업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로 장년의 인물이 필요했다. 동시에 그는 그 인물의 이론과 실천이 삶과 세계의 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기에 그 인물의 젊음에 세계와 자아의 분열에 대한 의식을 심어놓아야 했다. 즉, 브나시의 젊음은 1830년대의 세대가 앓고 있는 그 의식의 분열을 대변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 사회적 사상에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그의 젊음에는 구체성이라는 시대의 옷이 입혀지지 않는다. 브나시의 고백에서 그의 젊음을 통해 제기되는 문제가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브나시가 말하는 그 개념적이고 관념적이었던 문제의식은 〈마을 사제〉에 이르러서는 소설의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베로니크와 제라르의 삶을 통해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현실로 제기된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시골 의사〉에 비해 〈마을 사제〉가 훨씬 더 극적 구성이 치밀하고 더 상징적이며, 그렇기에 훨씬 더 소설적 미덕에 가깝다는 데 이견이 없다. 〈시골 의사〉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역진시켜 브나시의 고백을 마을의 개혁 뒤에 놓음으로써 상반된 두 이미지를 단순히 병렬시킨 데 비해, 〈마을 사제〉는 하나의 유일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그것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변모하게 함으로써 〈시골 의사〉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징적 깊이와 구체성을 얻는다. 발자크는 〈마을 사제〉를 통해 〈시골 의사〉에서 이미 개진된 종교관을 재확인시키는데, 〈시골 의사〉에서는 정치적 지배 수단으로서의 종교를 강조했던 데 비해, 〈마을 사제〉에서는 절망을 모면케 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종교를 강조하고 있다.


〈시골 의사〉와 〈마을 사제〉 사이에 벌어진 시간, 그 시간의 흐름에 따른 프랑스 사회의 모습은 발자크로 하여금 브나시라는 한 특수한 개인의 삶을 통해 〈시골 의사〉에서 설파했던 정치, 사회 이론에 사실성, 일상성 또는 구체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을 사제〉에 묘사된 베로니크의 삶과 제라르의 삶은 그에 대한 증언이 된다.



▶ 참고 논문 :

1. 〈발자크의 〈마을 신부〉에 나타난 페미니즘〉, 조명원(전북대)

2. 〈마을의 사제에 나타난 발자크의 현실인식〉, 이철의(서울대)

▶ 참고 사이트 : 영어판 야후 〈인간희극 개요〉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이거나 영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골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