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의사

풍속생활연구 - 전원생활정경 제2권

by 글섬

작품 배경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는 1833년 9월에 『인간희극』의 「풍속 연구」 중 「전원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de campagne)」으로 분류되어 출판되었다.


1832년,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품 속에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인 사상들을 동시에 펼쳐 보이기를 원했다. 실제로 이 소설은 발자크의 작품 세계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선인(善人)과 그의 활동을 핵심적인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배금주의가 지배해가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발자크의 다른 풍속소설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작가의 사회정치 사상이 대량으로 개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인 묘사와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발자크의 다른 작품들과 대비된다.


왕정복고 말기인 1829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한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무료로 의료사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브나시(Benassis)라는 의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그 구석진 마을의 주민들을 개화시켜 마을의 발전과 부흥을 주도한 모범적인 지도자이기도 하다. 소설 전체는 그르노블(Grenoble)의 기병대에서 근무하는 즈네스타(Genestas)라는 장교가 인근의 오지마을에 브나시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브나시의 업적과 사상, 인생이 점차 드러나는 과정을 거쳐, 8개월 후 브나시의 부음을 전해 듣고 즈네스타가 다시 마을로 방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단조로운 구성의 이야기 속에서 발자크는 브나시를 통해 가톨릭교, 나아가 정통 보수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역설한다. 『인간희극』 서문에서 명쾌하게 제시하는 왕정과 종교에 대한 애착은 서정적인 동시에 이념적인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면서 표현된다. 더불어 브나시의 국가에 대한 불신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국가라는 제도보다는, 그 자신이 증명해 보이듯이 창조적인 개인의 능력과 영향력을 더 믿는다. 그리고 군인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당시 민간에 퍼져 있던 나폴레옹의 전설적인 운명이 놀랍도록 생생하게 메아리친다. 의료 시술을 위해 민가를 순회하던 브나시와 즈네스타는 제국 군대의 근위병이었던 고글라라는 인물이 이야기하는 나폴레옹 전설을 밤을 지새며 듣는데, 그 장면은 오늘날의 문학 선집에 빠짐없이 선택되고 있다. 발자크는 그 장면을 《유럽 문학》 지에 분리해서 발표했으며, 이어 따로 소책자로 출판하기도 했다.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자크는 〈시골 의사〉가 〈마을 사제(Le Curé de village)〉와 “종교적인 한 쌍”이라고 밝히고 있다. 발자크는 〈마을 사제〉의 초판 서문에서 “〈시골의사〉가 현대적 인도주의의 문명에의 적용이라면, 〈마을 사제〉는 가톨릭적인 뉘우침의 적용이어야 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Ⅰ. 지역과 주민들


1829년 어느 봄날, 쉰 살가량의 한 남자가 그랑드-샤르트뢰즈(Grande-Chartreuse) 근처의 한 마을로 이어진 산길을 말을 타고 가고 있다. 그는 나폴레옹의 모든 전투에 참전한 기병대 소령 즈네스타이다. 청렴결백한 즈네스타는 부하들은 물론, 상급자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용맹하고 충실한 군인이다. 그는 휴가를 얻어 이 구석지고 가난한 시골 마을에 용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이윽고 즈네스타는 브나시를 대면한다. 때마침 브나시가 왕진 치료하던 크레틴병 환자가 숨을 거두자 브나시는 돌아가는 길에 즈네스타에게 자신이 십 년 전에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크레틴병 환자를 치료하려다 죽을 뻔했노라고 회고한다. 전염병인 크레틴병은 급류에 인접한데다가 통풍도 잘 되지 않고 햇빛이 들지 않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 마을의 환경 때문에 성행했기 때문에 브나시는 환자들을 보다 쾌적한 환경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데, 당시 미신을 맹신하던 마을 사람들로서는 브나시가 사악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그에게 총질까지 하며 강렬하게 저항했다. 브나시는 무려 여섯 달 동안이나 마을 주민들의 저항에 맞서 도청과 참사원까지 찾아다니며 기어이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주변 환경을 개선시켰다. 2년의 시간에 걸친 브나시의 열정과 헌신에 마을 주민들은 마침내 브나시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즈네스타는 지난 날 전장에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 10프랑의 하숙비를 내고 브나시의 집에서 기거하기로 합의한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면서 점차 친구가 되었고, 브나시는 즈네스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나시는 문명으로부터 고립되고 정체되어 있던 오지 마을에 새로운 농경기술을 소개하고 상업과 공업을 도입함으로써 놀라운 경제적 번영을 이끌어, 그가 이 계곡에 처음 왔을 때 70명가량이었던 인구가 지금은 200명에 달할 만큼 크나큰 발전을 이룩했다. 이 가난하고 외진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브나시는 마을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어 잘 살게 해주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브나시는 바구니 생산 공장을 짓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소량의 치즈를 갖다 파는 데 필요한 치즈용 채반과 광주리들을 모두 그르노블(Grenoble)에서 사왔는데, 이를 직접 제조해 보다 품질 좋고 저렴한 광주리를 판매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는 한 젊은이에게 광주리 제조업에 착수하도록 조언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 광주리 공장은 가난한 마을 주민들에게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마을의 번영에 가장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브나시는 면장이 되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새 집을 짓고, 생필품들을 생산하고, 다양한 상업을 육성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인과 공무원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해 마을에 농장을 만들고, 땅을 개간하고, 농기구를 새로 들여 농가 소득을 증대시켰다. 4년 후, 온 마을은 활기에 넘쳤고, 브나시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Ⅱ. 전원을 따라


즈네스타는 브나시와 함께 그가 무료 의술을 베푸는 산골 마을들을 순회하면서 그 의사의 수도승 같은 삶을 이해하며, 위생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신적 측면에서도 개혁을 실천하는 그의 작업에 감탄한다. 브나시는 단지 그가 마을에서 거둔 경제적인 성공 덕분에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값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는 밀가루를 무료로 나눠 주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 중에서 아침저녁 기도에 브나시의 이름을 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절대적 신망을 받고 있다.


즈네스타와 함께 마을 곳곳을 순회하던 브나시는 문득,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군대를 떠난 두 병사 중 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공드랭(Gondrin)이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간다. 공드랭은 마을에서 도랑을 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퇴역군인이다. 그는 1792년에 열여덟 살의 나이로 징집되어 포병대에 입대했다. 공드랭은 유명한 베레지나 철수 작전에서 얼음물 속에 들어가 부교를 설치함으로써 프랑스 군대를 죽음으로부터 구한 40명의 공병대원들 중에 유일하게 생존한 인물이다. 그는 나폴레옹이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이유로 살아남았을 정도로, 황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리하여 그는 황제의 복귀에 대한 희망만으로 살고 있으며, 당연히 황제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두 병사 중 또 다른 한 병사는 고글라(Goguelat)라는 인물로, 공드랭의 가정부 역할을 자처하며 공드랭과 함께 산다. 1812년에 나폴레옹 친위대에서 보병으로 근무했었던 고글라 역시 자신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한 나폴레옹을 맹신적으로 신봉한다. 이들은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아버지’라는 비유를 통해 표현한다. 공드랭의 딱한 처지를 보고 즈네스타는 “우리에겐 더 이상 아버지가 없다.”며 한탄한다. 즈네스타는 공드랭이 그의 혁혁한 무훈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시골에 처박혀 어렵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공드랭이 연금을 탈 수 있도록 국왕과 여러 관공서에 끝까지 청원하겠다고 약속한다.


공드랭과 헤어져 다른 집을 향해 가면서 브나시는 즈네스타에게 공드랭이 처한 행정상의 문제에 대해, 저렇듯 한 민중에게 가해진 “부정들은 민중의 마음속에 사회적으로 우월할 사람들에 대한 무언의 증오를 깃들게 합니다. 부르주아는 가난한 사람들의 적이 됩니다. 그들은 부르주아에게서 법의 보호를 박탈하고, 속이고, 도둑질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는 도둑질은 이제 범죄도 죄악도 아닙니다. 그것은 복수입니다.”라고 지적하며 행정가들과 공무원들이 간과하는 민중의 고통과 불행은 정부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브나시와 즈네스타가 온 마을을 순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때마침 하루 일을 끝낸 마을 주민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브나시에게 호의 가득한 인사를 건넸다. 의사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 어린 환대를 보면서 즈네스타는 “이것이 바로 가장 온화한 왕권, 그 지위가 백성들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 왕권, 이를테면 진정한 왕권”이라고 생각한다. 왕들과는 달리, 백성들과 같은 생활권 안에서 살며 그들과 생로병사를 함께 하는 브나시는 어디를 가든 그들의 존경과 우정의 대상이었다.



Ⅲ. 민중의 나폴레옹


집으로 돌아오자 브나시가 초대한 치안판사와 신부 등 마을 유지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유지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벌어진 사회정치적 논쟁에서 브나시의 현실주의적인 정치관이 드러난다. 그는 보통선거에 반대하고 의회 대신에 강한 행정 권력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중에게는 ‘완전한 행복’을 제공하는 대신에 그들을 정치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그는 “단호함이 없었다면 모든 이들이 저를 비웃었을 겁니다. 농민들은 사교계의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속여 먹은 사람에 대해서는 결국 멸시합니다.”라며, 민중들로부터 존경심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 그들의 정서에 영합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그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과 그들의 약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오직 힘만이 통치할 수 있습니다”고 역설한다. 일견 순수하게 박애주의적인 감정의 소산으로 보일 수 있는 브나시의 행동에는 이처럼 매우 현실주의적인 정치관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브나시의 이러한 내밀한 생각이 주민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바와 전혀 어긋난다는 점은 이 모임의 시중을 들던 가정부와 하인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 주인이 지금 뭐라는 거야? 저 불쌍하고 착한 분이 저 사람들에게 민중을 짓밟으라고 조언하고 있잖아?”라는 가정부의 말에 “저게 브나시 씨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네요.”라고 하인이 대꾸한다.


요컨대 브나시는 주민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나폴레옹을 자신의 모범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폴레옹은 민중의 아버지가 되도록 신에 의해 점지된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브나시에게 나폴레옹은 현실주의적인 통치술을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나폴레옹에게서 자신들의 보호자를 발견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시각과 달리 브나시는 나폴레옹에게서 대중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배운다. 브나시의 반-민주주의적인 생각을 요약하자면, 민중들을 위하여 민중들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을 유지들과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브나시는 즈네스타에게 농민들의 야회에 몰래 참석하자고 권유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을의 헛간으로 가서 건초 더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야회를 여는 농민들의 대화를 숨어서 엿듣는다. 입담꾼인 고글라는 신화적인 색채로 가득한 나폴레옹의 전기를 들려준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해산 날 온 세상이 불길에 휩싸이는 꿈을 꾼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이 땅에 떨어진 종교의 위신을 되돌려주는 조건으로 신에게 그를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한다. 은밀한 계약이 성립하여 나폴레옹은 그를 지켜주는 별을 가지게 되고 ‘붉은 인간’이 등장하여 그의 운명을 예고하게 된다. 신의 도움으로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리 인들의 음모 때문에 멀리 원정을 나간 이탈리아와 이집트 등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둔다. 게다가 이집트에서 많은 병사들이 페스트에 걸려 쓰러졌지만 그만은 건재했다. 교황은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고 마호멧의 사촌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돌아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프랑스를 쟁취했고, 황제가 되었으며 약속대로 종교를 복원한다. 또한 계속해서 빛나는 승리들을 거두고 백성들의 세금을 거두지 않은 채로 위대한 건축물들을 세운다. 그러나 모스크바 원정 이후에 ‘붉은 인간’은 불길한 예언을 하고 나폴레옹을 지켜주던 별은 사라진다. 군주들과 파리인들의 배신으로 그는 퐁텐블로에서 퇴위하지만, 엘바 섬에서 정세를 연구한 끝에 기적적인 탈출을 감행하고 다시 왕이 된다. 그러나 워털루에서 패배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귀향 간다. 부르봉 왕가에서는 그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은 섭리의 실현을 위해 사막의 사자처럼 은둔해 있을 뿐이다.


고글라의 이야기는 신화적인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신과의 은밀한 계약이나 ‘붉은 인간’의 등장처럼 초자연적인 상황이 설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자 스스로 개입하여 “과연 인간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아니지. 하느님이 도와주신 거야. 그건 확실해.”라는 식으로 나폴레옹의 초인적인 속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적으로 고양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통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위대한 정복자의 모습이다. 고글라는 나폴레옹의 전설을 들려준 뒤에 “병사와 민중의 아버지인 나폴레옹 만세!”를 외친다.


고글라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즈네스타는 저도 모르게 좌중에 뛰어든다. 그가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였음을 소개받은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나폴레옹이 과연 살아있는지 궁금해 한다. 즈네스타는 할 수 없이 나폴레옹이 죽었다고 전하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신의 섭리를 실현하기 위해 사막에 은둔하고 있다는 고글라 이야기의 결론 부분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글라는 즈네스타의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옆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 분은 지금 현역이에요. 그러니 황제가 죽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서일 거요.”


즈네스타는 나폴레옹에 대한 고글라의 신화적인 해석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퍼진다면 프랑스는 강한 군대를 가질 수 있고, 유럽과 겨룰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평가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귀환을 기대하는 민중적인 시각을 넘어설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프랑스이다. 즈네스타는 브나시에게 나폴레옹을 추모하면서도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부르봉가를 섬겨야 하지요. 그것도 충심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어제 당신이 말했듯이 프랑스는 프랑스이니까요.”


브나시의 집으로 돌아온 즈네스타는 브나시에게 이렇게 시골에 헌신하며 사시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브나시의 개인사를 묻는다. 망설이던 브나시는 지난 12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즈네스타에게 처음으로 들려준다.



Ⅳ. 시골 의사의 고백


브나시는 남프랑스에서 태어나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에 상경하지만, 파리의 생활에서 심한 문화충격을 경험하고 방황을 한다. 사랑의 갈증에 시달리던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이 갈증을 해소하지만, 단조로운 행복에 지친 나머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자 첫사랑을 저버린 채 파리의 환락에 빠져든다. 그는 사교계에서 제법 재치 있는 인물로 인정을 받지만 파리의 경박한 풍조에 항상 공허감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재정적인 곤란이 다가올 무렵, 그는 옛 애인이 죽어간다는 편지를 받는다. 크게 회개한 그는 여자에게 달려가고, 그녀에게서 그의 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여자가 죽은 후 브나시는 아들을 키우며 건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유서 깊은 장세니스트(Janséniste) 집안의 딸인 에블리나(Evelina)를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첫 여자를 저버렸다는 과거가 밝혀지면서 그는 여자 집안 쪽으로부터 출입을 거절당한다. 에블리나에게 작별을 통보받은 그는 사회를 등지고 오직 아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마저 병으로 잃게 되면서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절망의 밑바닥에서 신과 대면한 브나시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깨닫고 죽음을 포기하는 대신 은둔과 체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수도원에 찾아간 그는 수도원의 삶이 또 하나의 “숭고한 이기주의”일 수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다 잘 펼칠 수 있도록 마을을 구제하면서 체념의 길을 걷기로 한다.



Ⅴ. 비가


브나시의 고백에 즈네스타도 비로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는 사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브나시를 찾아온 게 아니라, 원정 당시 전사한 동료의 아들 아드리엥(Adrien)을 헌신적으로 치료해줄 의사를 찾아왔던 터였다. 아드리엥의 병은 지속적이고 세심한 보살핌을 요구하는 병이었기에, 먼저 브나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왔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당시에 즈네스타는 르나르(Renard)라는 기마대 중사의 도움으로 여러 번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은 형제처럼 지냈다. 그들은 폴란드의 한 작은 도시에 주둔하며 나폴레옹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그들이 주둔해 있던 유태인 집의 지하실에서 17살의 아름다운 처녀를 만났다. 즈네스타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렸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르나르를 사랑했다. 르나르와 처녀는 결혼을 했고, 어느 날 러시아군이 도시를 포위했다. 전투가 벌어졌고, 전투 중에 르나르는 즈네스타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숨을 거두기 전에 르나르는 즈네스타에게 아내와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부탁하며 아내와 결혼해달라고 청했다. 즈네스타는 르나르 부인을 찾아내 그녀와 함께 퇴각했다. 아들이 태어났다. 즈네스타는 르나르 부인을 데리고 르나르의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르나르 영감은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사생아로 호적을 가질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해 슬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즈네스타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결혼식을 마치고 즈네스타가 서류에 서명을 함으로써 아들에게 성과 아버지가 생기자 그녀는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즈네스타는 그녀의 아들인 아드리엥을 친자식처럼 돌보았다. 이제 곧 16세가 되는 아드리엥은 선천적으로 폐가 약해서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파리에는 그런 선의와 미덕을 갖춘 의사를 찾을 수 없었다. 즈네스타의 긴한 사연을 듣고 난 브나시는 기꺼이 아드리엥의 치료를 약속한다. 즈네스타는 내일 당장 돌아가 아드리엥을 데리고 다시 오겠다며 기뻐한다.


다음 날, 즈네스타는 해가 뜨기도 전에 도시로 출발해, 정오 무렵에 아드리엥과 함께 브나시의 집으로 돌아온다. 즈네스타는 브나시와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드리엥이 머지않아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브나시의 확약에 행복해 하며 아드리엥을 브나시에게 맡기고 다시 그르노블로 떠난다. 그리고 8개월 후, 즈네스타는 다른 곳에 주둔하는 연대의 중령으로 진급해 그르노블을 떠나야 할 입장인데, 때마침 브나시에게서 아드리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즈네스타는 다음 날 브나시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즈네스타는 아드리엥이 보낸 편지를 받는다. 3일 전에 브나시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어느 여인이 파리에서 보낸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던 브나시가 아드리엥에게 편지를 태워버리라고 지시하더니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통풍 발작에 뇌출혈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아연실색해 달려와 브나시의 집은 눈물과 슬픔의 바다로 변했다. 마을 주민들은 브나시의 무덤에 흙으로 된 피라미드를 세웠다. 브나시는 유서에다 자신의 재산을 온 마을 주민들에게 배분했다.


즈네스타는 부랴부랴 브나시의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만나는 주민들마다 브나시가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셨지만 정작 그들은 더 큰 재산을 잃었다고 슬퍼한다. 즈네스타는 마을 입구에서 공드랭과 고글라와 마주친다. 그들은 브나시의 무덤에 입히기 위해 잔디를 뜨고 오는 길이다. 즈네스타가 그들에게 “그 분의 삶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훌륭한 삶이 아니었습니까?”라고 말하자, “물론이지요. 그 분은 전투만 안 했다 뿐이지 우리 계곡의 나폴레옹입니다.”라고 고글라가 답한다.


즈네스타는 신부의 안내로 브나시의 묘지를 찾는다. 6m 높이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브나시의 묘지에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브나시 씨”라는 묘비명이 적혀 있다. 주민들 모두가 다 함께 세운 묘비였다. 즈네스타는 브나시의 묘비를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퇴직 후 이곳으로 와 주민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겠다고 신부에게 다짐한다.




분석


이 소설은 브나시와 즈네스타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브나시 의사의 사회 및 정치에 대한 견해, 그리고 나폴레옹에 관한 이야기의 삽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폴레옹을 따라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이집트, 모스크바까지 진군했던 고글라라는 인물을 통해 매우 열정적으로 피력되는 나폴레옹 황제에 관한 에피소드는 황제에 대한 발자크 자신의 열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발자크는 무엇보다 황제의 절대 권력에 대해 찬미한다. 그 권력이야말로 프랑스 사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발자크가 살았던 당시의 상황은 계속되는 혁명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럴수록 발자크는 강력한 권력이 출현하여 사회를 안정시켜주기를 바랐는데, 그렇기에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는 더 커갈 수밖에 없었다.


〈시골의사〉에서 빈번히 출현하는 나폴레옹의 이미지는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브나시와 동일시됨으로써 작품의 의미 형성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나폴레옹과 브나시가 동일시되는 이유는 모두 탁월한 성공을 거둔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그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였듯이 브나시는 마을의 가난과 무기력을 치유하는 데 승리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골의사〉는 가난한 오지 마을을 일깨워서 거대한 번영을 이끌어낸 한 지도자의 성공담으로 읽힌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병사들로부터 받는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은 단지 그가 거둔 승리들 덕분만이 아니다. 그에 대해 병사들이 애착을 보이는 것은 그가 위대한 정복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상한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즈네스타는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자신에게 소속 연대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이 일화에서 드러나듯이 나폴레옹은 하급 장교인 즈네스타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병사들의 절대적인 신임과 호의를 얻었던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왕년의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아버지’라는 비유를 통해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브나시 역시 마을 주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마을에 정착했을 당시에는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이제 마을에서 그의 통치를 위협할 만한 것은 없다. 즈네스타와 함께 마을을 순회하는 장면에서 브나시의 위상은 ‘부드럽지만 진정한 왕정’을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브나시는 고을 도처에서 복종과 우의만을 만날 뿐이었다.” 브나시가 주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다면, 이는 단지 그가 마을에서 거둔 경제적인 성공 덕분만이 아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약값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를 무료로 나눠주는 등,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자 ‘아버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폴레옹과 브나시가 비교되는 또 다른 근거는 그들과 주민들의 정서적인 유대 덕분이다. 나폴레옹과 브나시는 권위와 자애를 통해서 병사들이나 주민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신임과 존경을 얻음으로써 확고한 통일성을 지닌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품의 이데올로기적인 골조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폴레옹과 브나시라는 인물을 통해 가상적으로 실현되는 이 공동체는 가부장적인 사회질서이다. 실제로 브나시는 “인간 사회의 토대는 항상 가족입니다.”라는 이론적인 담론을 통해서도 ‘가부장’의 권위를 역설한다. 그를 통해 현대 사회의 질병인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골의사>는 주민들의 아버지로서 브나시가 이룩한 공동체를 통해 발자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질서를 예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나폴레옹과 브나시의 이러한 동일시는 기본적으로 병사들이나 주민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병사들과 주민들의 시선에서 볼 때 그들의 지도자는 신화적일 정도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정서적으로 결속되어 있다. 그리고 고글라는 나폴레옹의 군인이자 브나시의 주민으로서 양자를 비교할 수 있는 탁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 자체는 이러한 시각으로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신의 도움’이라는 고글라의 신화적인 설명에 대비하여 작품은 극도의 현실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으며, 브나시의 정치적인 견해는 주민들의 예상과는 전혀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시골의사〉는 브나시가 이룩한 기적과도 같은 성과들을 담고 있지만, 단순히 신화적인 영웅담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이러한 성과들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브나시의 담론들은 이러한 성공이 가능하게 된 사회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조건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브나시는 스스로 자신을 나폴레옹과 자주 견주곤 한다. 나폴레옹과 브나시는 모두 위대한 과업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시골의사〉는 시민적 미덕의 극한을 실천함으로써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채로 농촌사회를 크게 변모시킨 ‘건설하는 인간’의 노력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즈네스타, 마을 사제, 예심 판사, 그리고 공증인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밝히는 브나시의 정치관은 발자크 자신의 정치관이다. 시골 의사는 보통선거를 거부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맹신에서 적절한 판단능력이 부족한데도 모든 구성원에게 투표권을 주는 일은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하여 그는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하는 정치형태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 권력은 당연히 민중과 국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즈네스타 소령의 항의조의 말대로 그런 사고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그동안의 그의 행동은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다. 게다가 그가 제시하는 참된 정치가상은 매우 민중적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나시는 “언제나 시대 저편을 바라보며 운명을 앞서가는 것, 권력은 자신을 초월하여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잘 다스리며 끊임없이 예측하고 원하고 행동하기 위해 자신의 사랑과 모든 세속적인 야망까지 버리는 것, 자신을 정의롭고 완전하게 만들며 큰 질서를 유지하는 것, 민중의 감정으로 살면서 정신을 확장하고 성량을 키우며 지엽적이 아닌 전체적인 결과들을 예상함으로써 통찰력을 길러 민중을 다르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가의 덕목이라고 역설한다.


브나시에 의해 보여지는 한 농촌 마을의 개발 모델 역시 발자크 자신의 경제발전 모델이다. 비교우위를 앞세운 자유 무역주의자인 브나시는 빼어난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브나시에 의하면, 종교 또한 사회와 사회 발전에 필요불가결한 제도이다. 종교심은 이기주의적인 감정을 억누르면서 사회적인 교류의 냉혹성을 누그러뜨려 주기 때문이다. 그처럼 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법으로 그 분의 세상 메커니즘 속에서 발생하는 마찰들을 조정했던 것처럼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종교심을 통해 인간 사이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야기하는 고통을 완화시켜준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자에게 반감을 갖지 말 것을, 또 부자에게는 가난한 사람의 곤궁을 덜어줄 것을 권고하는데 그에게는 이 몇 마디가 하느님과 인간의 모든 법칙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권력이 그런 것처럼 종교 역시 강력한 종교가 필요하다.


또한 브나시는 지도자들(종교지도자들도 포함)에게는 역량과 도덕성, 그리고 고결한 덕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곧 약자를 위하는 마음, 이를 테면 정의에 목말라하는 마음의 절대적인 소유를 의미한다. 아마도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결국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한 모범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 세계는 당연히 여러 제도들, 이를테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의 제도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기에 그 제도들의 양태는 물론 발자크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분히 발자크의 정치, 사회적 사상들의 전파 의도가 농후한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 발췌 논문 : 〈발자크의 『시골의사』에 나타난 나폴레옹의 이미지〉, 김동수(서울대)

▶ 참고 문헌 : 〈시골 의사〉, 발자크 저, 최병곤ᐧ김중현 역, 새미

▶ 참고 사이트 : ABC 맛보기 사전, 창해편집부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이나 문헌,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나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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