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전원생활정경 제1권
〈농민들(Les Paysans)〉은 발자크의 미완성 소설 중 하나로, 1844년에 《라 프레스(La Press)》 지에 현재의 1부에 해당하는 부분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라 프레스》 지와의 불화로 인해 2부는 간행하지 못했다. 이후, 발자크 사후인 1855년에, 그의 아내 한스카 부인의 지시로 라부(Rabou)가 발자크가 생전에 집필해두었던 부분에 결말을 덧붙여 2부를 완성시켜 《포테르(Potter)》 판으로 출판하였다.
한스카 부인의 권유로 발자크가 처음 이 작품을 시도했던 1834년에는 〈대지주(Le Grand propriétaire)〉라는 제목으로, 왕정복고 시대의 대토지 소유자와 농민의 문제를 다루며 전통적인 토지귀족과 산업 부르주아지와의 갈등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838년의 초고에서는 애초의 대지주가 망명귀족이 아니라 제정시대 서민 출신의 장군으로 대치된다. 이에 따라, 탐욕스러운 부르주아들뿐만 아니라, 토지의 분할을 바라는 농민들도 그에게 대항한다. 즉, 전통적인 귀족계급은 사라지고 농민들이 무대에 등장하며, 부르주아들은 귀족계급뿐만 아니라 농민들과도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요컨대 〈농민들〉에서 농민들은 봉건적 체계 속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변화는 1848년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점점 세력을 확대해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반영이다.
〈농민들〉의 서문을 대신하는 헌사에서 발자크는 루소(Rousseau)를 본받아 자신도 시대의 흐름을 연구한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많은 문인들이 망각한 민중의 중심인물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연구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발자크는 “프티 부르주아 계급의 향연에 초대되어 그들 계급의 보조자 역할과 동시에 희생자 노릇을 하는” 농민들에 대해,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계급을 삼켰듯이, 대혁명에 의해 산출된 이 비사회적인 분자(농민들)가 언젠가는 부르주아 계급을 삼키고야 말 거”라고 예단한다.
이 작품은 비록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제 1부는 ‘빈자들의 음모’를 보여주는, 시골의 투쟁이 선언되는 영지의 경계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도시로 관심이 옮겨진 제 2부에서는 그곳의 복잡한 권력의 그물망이 그려진다. 이때 새로운 사회적 동인인 ‘중간계급(médiocratie)’, 즉 새로운 지방 부르주아지가 나타나는데, 발자크는 이들을 파리의 부르주아지(은행가와 기업가)와 국가 관료(지방 행정)와 연결하는 관련성을 재구성한다. 바로 이 중간계급이 농민들을 착취하고, 타락시킨다.
발자크의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농민들〉에는 중심이 되는 인물이 없이 이야기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 분산되어 진행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 개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명백히 서로 다른 집단으로 나뉜다. 한편에는 레제그(les Aigues)의 소유자인 몽코르네(Montcornet) 백작과 그의 친구들이 있고, 또 한편에는 레제그의 숲과 목장과 들의 이삭을 줍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농민들, 술집 주인 통사르(Tonsard)와 그 술집에 드나드는 인물들이 있으며,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인근 마을과 소도시의 실력자들이자 레제그를 흡수하려는 부르주아 음모가들이 있다. 직접적인 충돌은 농민들과 레제그 사이에서 벌어진다. 소설 속의 문제는 개인의 움직임과 변화가 아니라 레제그라는 대토지의 운명, 소유의 투쟁 그 자체이다. 소설의 많은 부분은 이러한 충돌을 예비하는 상황과 인물들의 내력을 알려주는 데 할애되어 있다.
나폴레옹이 이룩한 대제국이 붕괴되고 전통적 사회의 옹호자인 구유럽 군주들이 혁명적 프랑스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반동적 모습의 복고왕정이 갑작스레 시작됐다. 대혁명의 패배자들에게는 1815년이 복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그러나 외교적, 군사적, 정치적 조건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상황과 여론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 자유주의의 발전과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18세기의 번영에 의해 오래 전부터 이미 혜택을 받고 있던 부르주아 계층에게 새로운 기회가 제공됐다. 왕정복고기는 국유 재산의 매각에 따라 개혁이 진행되었고, 소수의 부르주아와 농민들만이 득을 본 변혁의 시대였다.
레제그의 이전 지주였던 라게르 양은 혁명의 공포를 피하여 레제그에 은거하여 사는 오페라 가수였다. 정부였던 부레(Bouret)로부터 선사받은 레제그의 이름을 따서 레제그 부인(Madame des Aigues)이라고 불리게 되는 그녀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혈통 귀족이 아니다. 그러나 오페라 가수로서 거의 귀족과 다를 바 없는 생활 습관이나 태도를 지니고 있는 그녀에게서 구체제 하에서의 구귀족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무대에서의 여신이며 도시에서의 여신이었던” 그녀는 “농촌의 구석에서까지 여신의 존재로 남아”, 영지 관리에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는 관리인 고베르탱(Gaubertin)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지는 점점 황폐해지고 농민들의 과도한 이삭줍기로 인한 피해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과도한 이삭줍기와 방목의 근원적인 원인은 농민들의 가난이며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발자크의 농민들에 대한 묘사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농민들이 집터를 잡고, 집의 방향과 높이를 정하는 것, 출입문과 창문을 내는 것 등 모든 것이 동물적인 교묘함을 연상시킨다. 농부들의 물질적인 조건에서 그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알아보기란 둥지를 보고 새의 생태를 알아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농민은 자기 주거지에 대해 동물이 자기 둥지나 굴에 대해 갖고 있는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본능이 이 초가집의 모든 설계에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파리의 부르주아 에밀 블롱데(Emile Blondet)가 레제그에 손님으로 초대되어 왔을 때, 농가 앞에서 한 늙은 농민과 맞부딪친 블롱데는 “저게 나의 동류 인간이란 말인가?”라고 의구심을 느낀다. 블롱데의 눈에 비친 남루한 푸르숑(Fourchon) 영감의 모습은 어떤 문화적인 것도 스며들지 못한 야만인 바로 그대로이다.
농가 인근에는 저속한 외관의 선술집 그랑 이베르(Grand-I-Vert)가 있었다. 이 술집의 주인 통사르(Tonsard)는 “게으름을 유익하게 만들고 활동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레제그의 이전 지주였던 라게르 양의 관대함 덕분에 적은 땅을 갖게 되었다. 선량한 라게르(Laguerre) 양은 그에게 100일간의 노동의 대가로 1아르팡의 포도밭을 주었다. 통사르는 이 100일 동안에 약 30일을 일했다. 나머지 날들에는 여자들과 웃고 떠들며 부질없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 통사르가 자기 손으로 직접 지은 선술집 그랑 이베르의 주된 손님들은 레제그의 사람들과 감시인들과 사냥꾼들이었다. “꽃들과 시골의 공기에도 불구하고, 파리 외곽의 싸구려 식당 앞을 지나갈 적에 느껴지는 술과 음식물의 강하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 오두막에서는 “영주와 부자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의 증오”가 꿈틀대고 있다.
농민들은 농업 이외에도 대개 방목이나 이삭줍기, 밀렵을 하면서 생활한다. 농민들에게는 “행위가 합법적이냐 아니면 비도덕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유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성실하고 도덕적인 사람은 농민 계급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예외인 것이다.” 그들 농민들은 소박함이나 순수함과는 애초에 거리가 먼, 음흉하고 공격적이며 철저하게 비도덕적 사람들이다.
이러한 비도덕적 농민들의 또 다른 예로써, 푸르숑 영감의 경우 항상 아본느 강가에서 외부로부터 온 부르주아를 끌어들여 용돈 벌이를 한다. 자신을 밧줄 장사로 소개하기도 하는 그는 밧줄을 꼬면서 주위의 동태를 살피고 외부인이 오면 호기심을 자극해 수달 값을 받아낸다. 레제그를 현실의 공간이 아닌 이상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던 블롱데는 보기 좋게 푸르숑 영감에게 당하고 마는데 수달을 손에 넣지도 못하고 10프랑을 주게 된다. 푸르숑의 사생아 손자인 무쉬(Mouche)에 따르면 그는 “교활한 사람들의 왕”이다.
농민들의 비도덕함의 다른 예는 통사르의 딸인 마리(Marie)와 그녀가 사랑하는 본네보(Bonnébault)의 경우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들은 수배 사례금을 받을 요량으로 제비뽑기를 통해 통사르의 노모를 범인으로 신고한다. 이러한 비도덕성을 발자크는 풍자적으로 “시골의 미덕”이라고 일컫는다.
농민들의 타락상은 그랑 이베르에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의 내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술집과 당구장을 어슬렁거리면서 처녀들의 총애를 받는 본네보 역시 “통사르나 푸르숑과 마찬가지로, 잘 살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원한다. 또한 “황금이 없는 구두쇠로서 모든 구두쇠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구두쇠인” 고댕(Godain)은 제법 많은 돈을 모은 상태이지만, 감쪽같이 극빈자의 행세를 하고 있다. 그는 통사르의 재산을 상속받고자 통사르의 딸 카트린느(Catherine)를 쫓아다니면서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방종을 허락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한편, 왕년에 레제그의 산림지기였던 쿠르트퀴스(Courtecuisse)는 술집에 자주 드나들지는 않지만 레제그의 영주에 대해 뿌리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어 “누가 그 파리놈들 중의 하나를 총으로 쏴 버리도록 내게 돈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농민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한 데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가난이 큰 몫을 한다. 농민들은 부유한 토지 소유 농민이 아니라 빈농이거나 토지가 거의 없는 농촌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귀족의 대토지가 분할되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립할 만큼 충분한 토지를 구입할 수 없으며, 그들의 작은 토지는 빚으로 바뀌어 고리대금업자에게 넘어간다. 예를 들어 쿠르트퀴스의 경우, 그는 고리대금업자 리구(Rigou) 영감에게서 2천 프랑짜리 땅을 가격의 절반을 지불하고 사들였다. 그는 누더기를 입고 눈만 뜨면 그 토지에 나가 살았고, 그의 부인은 열심히 거름을 주우러 다녔다. 그러나 그 토지의 소출은 그가 아무리 거름을 넣고 땅을 가꾸어도 그에게 이자와 나머지 빚을 갚고 토지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다. 기한이 되어 리구 영감의 수중에 다시 들어간 이 땅은 4천 프랑으로 평가되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토지를 소유하려는 농민의 결말이다.
귀족과 그의 대토지는 붕괴되지만, 그 결과로 혜택을 보는 것은 농민이 아니다. 농민의 일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부유해지지만, 다수의 빈농은 귀족의 토지를 부르주아에게서 비싼 값으로 되사야 하며, 결국 가진 것을 흡수당하여 농업노동자나 도시노동자, 일용노동자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농민들의 부르주아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부르주아를 귀족에 대한 싸움에서 동지이자 후원자로 생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착취하는 적으로 생각한다.
부르주아의 지배가 1830년 7월 혁명의 부르주아 왕정을 향하여 완성되어 가던 시기에 농민들의 투쟁은 전통적인 봉건귀족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토지이익을 확보하려는 새로운 대토지 소유자를 상대하고 있다. 레제그의 소유자 몽코르네 백작은 나폴레옹 밑에서 군대를 이끈 장군이었으며, 포메라니 전투 이후 부자가 되어 세습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토지를 방만하게 관리한 귀족의 전통적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관리하려 한다. 그는 좋은 지주가 되려고 마음먹고 아내와 함께 농민들의 생활을 도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오랜 영주의식에 사로잡혀서 농촌 전체의 개선은 생각하지 못한다. 그가 농민들과 부딪치는 것은 이러한 그의 부르주아적인 생각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몽코르네에 대항해 토지 분할을 계획하는 시기심 많은 지방의 부르주아지와 시골의 모든 농민, 그리고 노동자들은 동맹을 맺는다. 레제그의 관리인이자 농민들을 조종하는 부르주아들의 우두머리격인 고베르탱은 그의 문어발 같은 인맥 속에 그 지방의 사법, 행정, 종교, 모든 중요한 영역에 튼튼한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몽코르네 장군이 가지고 있는 보다 높은 연줄, 그의 지지자들의 위치나 귀족적인 성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근접한 이해로 결속되어 있어서 훨씬 완강하며 실제적인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레제그를 둘러싼 싸움은 이해관계가 다른 부르주아지들 사이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블롱데보다 농민들을 잘 알고 있는 젊은 사제 브로세트(Brossette)는 농민들에게서 그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원리가 물질적인 이해이며, 그들이 스스로의 비참에서 벗어나려는 어떤 의지도 보여주지 않음을 비난한다. 그들의 게으름, 교활함, 도덕의 결여, 이해타산에 대한 사제의 비난은 농민의 물질적인 사고, 원친과 도덕의 결여, 맹목적인 이익의 추구를 비난하는 것이며, 그것은 말하자면 농민을 타락시키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의 타락에 대한 사제의 비난은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는 현실적인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토지에 대한 농민의 집착은 그들의 핏속에 녹아 있는 어떤 본능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다. 교회와 귀족의 역할을 적극적인 것으로 믿고, 거기에서 어떤 사명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 브로세트는 그가 농민들을 통찰한 것과 같은 현실적인 눈으로 귀족계급을 보았을 때 귀족계급의 몰락과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로세트와 블롱데와 같이, 작가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푸르숑 영감이다. 푸르숑 영감은 사제나 블롱데와 더불어 당시 농촌의 모습과 실제를 관찰하고 음미하여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부르주아들은 불가에 앉아 훔치는데, 그게 숲 귀퉁이에 굴러다니는 것을 주워 모으는 것보다 더 이득이 되지요. 도둑질이 우릴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네하고, 당신네 부르주아하고, 누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만한 것을 가졌는지 보시겠소?”라는 식의 장광설로 농민의 입장을 피력한다. 이런 그의 주장에 브로세트 신부가 교활하지 않고 정직한 생활을 했더라면 신의 축복을 받고 부자가 됐을 거라고 말하자 영감은 정직하고 성실한 니즈롱(Niseron) 영감의 예를 들어 반박한다. 공화주의자 니즈롱은 자신보다 더 가난하니 결국 꾸준히 일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생아 무쉬에게 도적질하는 것은 바보이고 부자가 물건을 주게끔 행동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어떠냐고 충고하지만 영감은 “이 마을을 떠나려면 여행 허가증을 얻기 위해 40수(sou)나 내야만 하는데. 나는 40년 이래 단 한 번도 그 돈을 내 손에 쥐어본 적이 없으니까” 불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이는 농민들이 가난한 현실을 개척하는 일이 몹시 힘든 것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필연적으로 지주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레제그를 둘러싼 긴장 속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귀족들과 대항할 수 없었다. 지주 귀족과 농민들 틈에 바로 부르주아가 자리한다. 그리하여, 영지를 지키려는 귀족과 토지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을 품고 있는 농민들과의 본격적인 대치가 부르주아인 고베르탱에 의해 촉발된다.
레제그의 관리인 고베르탱은 전 대법관의 아들로, 도검사가 된 전 대법관은 라게르 양의 후원자였다. 자기 아버지의 비호 하에 고베르탱은 술랑주(Soulanges)의 읍장으로 임명되어 소작인들로 하여금 현금으로 소작료를 내게끔 해 라게르 양에게 막대한 현금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이 과정에서 목재 상인들과 소작인들의 뇌물을 받아 그 역시 35만 프랑의 현금을 소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코베르탱은 지주인 라게르 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코베르탱은, 라게르 양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해주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녀인 코셰(Cochet)의 법률적 약점을 미끼로 코셰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라게르 양에게 고베르탱은 코셰를, 코셰는 고베르탱을 칭찬하며 서로의 안위를 돌봐주었고, 이 덕분에 두 사람은 막대한 연 수입과 연금을 챙겼다.
라게르 양이 죽은 뒤, 코셰는 술랑주의 헌병 반장인 수드리(Soudry)와 결혼했고, 고베르탱 가족과 수드리 가족은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20년간 확고한 우의를 다졌다. 레제그를 25년간 관리한 끝에 고베르탱은 60만 프랑의 현금을 거머쥐었고, 코셰는 약 25만 프랑을 소유했다. 고베르탱과 코셰는 공증인과 공모해 레제그의 토지 분할을 시도했다. 그러나 배후의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실현하지 못했다.
몽코르네 장군이 레제그를 소유했을 때, 고베르탱은 딸들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느라 재산이 축나는 바람에 자기 일자리를 그만둘 정도로 부유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실패한 토지 분할을 실현시킬 작정으로 몽코르네 백작에게 레제그가 진저리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몽코르네 장군은 고베르탱이 시골 행정에 통찰력 있는 경험을 가진 것을 간파하고, 농사에 행해지는 경범죄의 내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장군은 짐짓 태평스러운 태도로 고베르탱을 속였고, 이에 방만하게 처신하던 고베르탱은 어느 날 현장에서 장군에게 그의 부정이 발각되었다. 그때, 몽코르네는 악당 같은 관리인을 내쫓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지 못하고 고베르탱에게 가혹한 모욕을 가하는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
술랑주의 재판장은 고베르탱의 장인인 술랑주 백작의 후원으로 임명된 사람이었고, 당시 소도시에서는 재판장에게 비길 만한 세력이라고는 없었다. 검사와 군수도 면직되거나 파면될 수 있었다. 이런 친척 관계로 고베르탱은 마을에서 상당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고베르탱 아들의 친구인 청년 수드리가 도 검사 대리로 임명되었기에 결국 이 불성실한 관리인은 어느 휴직한 법관보다 마을에서 더 세력이 강했다.
결국 수치스럽게 쫓겨난 고베르탱은 몽코르네에 대해 원한을 품게 되었고, 토지를 둘러싼 농민과 귀족의 갈등을 간파한 이 부르주아는 농민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다. 고베르탱은 몽코르네가 결국 레제그를 다시 팔지 않을 수 없는 아주 난처한 처지에 놓이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한편, 몽코르네는 고베르탱의 후임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레제그만큼 광대한 토지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방대한 지식과 활동이 동시에 요구되었던 것이다. 파리 출신의 몽코르네는 이 시골 마을에서는 관리인이라는 중개인이 얼마나 절실한 존재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장군과 신랄한 언쟁을 마치고 쫓겨난 고베르탱은 곧장 수드리 가족을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다. 수드리는 고베르탱의 친척이자 재판소 서기의 장남인 아돌프 시빌레(Adolphe Sibilet)를 고베르탱의 후임자로 추천하자고 제안했다. 수드리 가족은 시빌레의 장인에게 몽코르네 장군을 찾아가 자신의 사위인 시빌레를 관리인으로 추천하라고 조언했다. 고베르탱은 레제그에 세 명 이상의 감시인을 두었는데, 레제그를 떠나는 날 아침에 그들 중 한 사람인 쿠르트퀴스를 만나 태만하게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배후를 알지 못한 몽코르네는 시빌레를 관리인으로 임명했다. 부르주아들의 음모는 이렇듯 은밀하게 진행되었고 백작 역시 결혼 문제 때문에 2년간 영지를 비우면서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었다. 백작은 1818년과 1819년 2년 동안 시빌레에게 레제그를 맡겨두고 트르와빌르(Troisvilles) 양과의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파리에 체류했다.
파리 변두리의 가구 제조업자의 집안에서 성장해 귀족 칭호까지 얻게 된 장군은 “귀족이라는 악마에 물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귀족들의 사교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는 “르와얄 다리의 흙탕물이라도 핥아 먹었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부인에게 상속한다는 약속 하에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으로 기쁜 나머지 그는 시빌레도 고베르탱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1820년 5월부터 6개월간 레제그를 방문한 트르와빌르 양은 “이 화려한 체류지”에 감탄하고, 1년에 6개월씩 체류할 것을 약속했다. 기쁨 속에 빠져 백작은 부인의 구미에 맞춰 값비싼 가구들을 사들이느라 모든 저축을 탕진했다. 그러면서 영지의 모든 경영을 관리인 시빌레에게 맡겼다.
그러나 1821년 5월이 채 되기도 전에 파리에 있던 장군은 시빌레로부터 급한 편지를 받았다. 1812년 라게르 양이 주인이던 시절, 목재업자와 10년 기한으로 맺은 숲의 임대 계약이 그 해 겨울로 끝나는데, 상인은 농민들에 의해 숲이 너무 황폐화됐으므로 숲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고 손해 보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시빌레는 “자신의 청렴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임대 계약의 갱신 등 여하의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레제그로 돌아온 백작은 시빌레에게 가능한 조처가 무엇인지를 문의하며 상인과 소송을 벌이려 하지만 시빌레는 그것이 결국 백작에게 손해될 뿐임을 증명했다.
백작은 또 다른 상인에게 임대를 넘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빌레는 고베르탱이 목재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그에게 대항했다가 파산한 마리오트(Mariotte)의 예를 들면서 경매에 참가하는 상인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빌레는 레제그를 팔 것을 권유했다. 이제 막 백작 부인이 레제그에 정을 붙인 이 판국에, 원래도 잘 물러서지 않았던 자신이 고베르탱 같은 사기꾼 앞에서 후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장군은 숲을 감시하기로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는 게으른 산림지기 쿠르트퀴스를 쫓아내고 예전 그의 부하였던 군인 네 명을 고용해 숲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역시 장교 출신이었던 미쇼(Michaud)를 산림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조처를 유효하게 만들 수 있도록 중앙 권력과의 연계를 이용해 전원 감시인 보드와이예(Vaudoyer)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자기 편 사람을 앉혔다. 또한 자신이 리구 대신에 블랑지의 시장직을 맡고, 술랑주의 헌병 대장 수드리를 교체했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을 통해 장군은 스스로 강해진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그는 적대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었다. 직위를 잃은 부르주아들과 자신들의 ‘권리’를 잃었다고 여기는 농민들,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 서무를 맡고 있는 프티 부르주아들까지 모두 장군을 적대하면서 똘똘 뭉치게 되었다. 이미 재판소 정리인 브뤼네(Brunet)는 농민들에게 백작의 계획을 일러 준 바 있다.
국가 평의회에 참석한 산림관 미쇼는 숲의 피해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과 생나무를 꺾는 통사르 노모를 체포하려던 산림지기 바텔의 눈에 통사르 부인이 재를 뿌렸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밀 수확이 시작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격분한 장군은 헌병대를 동원해 범법자들을 체포하기를 요청했다. 이에 농민들과, 레제그의 관리인이면서 이중 첩자인 시빌레는 리구를 찾아갔고, 리구는 다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술랑주에 찾아가면서 본격적인 대결이 예고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농민들의 공간으로부터 술랑주와 빌로페이(Ville-aux-Fayes)의 부르주아들이 사는 높은 영역으로 고양될 것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인물들의 출현은 우리의 주제의 전개를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마치 눈사태 속에 휩쓸린 마을들이 눈사태를 가속화시키듯이 말이다.”
2부로 넘어가면서 수드리 부부, 술랑주 저택의 대리공사인 공증인 뤼펭(Lupin)과 그의 부인, 의사 구르동(Gourdon) 등, 다양한 부르주아들이 작품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전에 부르주아지가 작품 속에 등장할 때는 구체적인 인물들의 외관이나 그들의 주거지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부르주아들은 그 생생한 성격과 특징들을 수반한 채 사건에 개입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돈과 관련하여 밀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농민들은 부르주아에 대해서 대립하면서도 동맹 관계를 갖는데, 당시 재산의 대표적인 형태인 토지를 둘러싸고 푸르숑과 사위 통사르의 이견을 통해 부르주아에 대한 농민들의 견해가 잘 드러난다. 푸르숑 영감은 돈을 갖고 농민들을 착취하고 있는 고리대금업자 리구, 목재 상인 고베르탱 등의 속성을 간파한다. “부르주아들과 정부는 매한가지”라는 푸르숑 영감의 예리한 지적에 사위 통사르는 대토지 분배를 원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기에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쿠르트퀴스는 리구에게 빚을 내어 얻은 토지에서 뼈 빠지게 일하며 빚에 허덕이면서도 부르주아에게보다는 자신을 쫓아낸 몽코르네를 욕하며 귀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는 농민의 토지에 대한 강한 집착에서 연유한다. 이와 같이 고베르탱과 리구 등은 그 물적 기반, 말하자면 저당권, 시장 독점, 작은 고리채, 행정 업무를 통한 작은 혜택(군복무의 면제) 등등을 이용하여 농민을 착취하고 있다.
몽코르네의 강경한 토지 관리 방식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반감은 더해가며 토지 침탈은 계속된다. “레제그에 대한 농민들의 증오심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위법 행위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위법 행위란 나무의 남획과 과도한 밀렵, 방목, 이삭줍기로, 몽코르네 백작은 이러한 위법 행위를 막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부르고뉴 같은 지방의 농민들에게는 불을 지르는 것이 나무를 주워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대지주에 대항하여 불만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방화 사건은 나타나지 않고 두 번의 위협적인 암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빨래를 하고 있는 두 늙은 여자의 대화를 엿듣게 된 미쇼 부인이 백작 부인에게 전하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몽코르네가 니콜라(Nicola)를 군대에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는 미쇼의 말을 마리와 본네보를 통해 들은 니콜라가 내뱉는 말로서,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한 것 같지만 미쇼의 암살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지에 대한 상습적인 약탈과 방화의 위협에서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농민들의 증오심의 표현은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레제그 성의 관리인 시빌레는 장군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고베르탱과 협력하며 토지 분할을 계획하는 이들과 장군이 타협하기를 원한다. 그는 레제그를 둘러싼 대치 상황의 본질이 바로 이해관계에 의한 돈싸움이라고 지적한다.
반면에 레제그 성의 감시 대장 미쇼는 장군의 입장에서 농민들을 나무란다. 그는 농민과 귀족이 대치한 현실에 어리둥절해하는 백작 부인에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농민은 병사의 성실성을 지니고, 기득권을 존중하며, 도둑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에 의해서 정정당당하게 장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보습의 날과 굽은 단검은 두 쌍둥이입니다. 병사는 농민보다 늘 생명이 위태로운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족에 대한 불신과 토지 소유에 대한 본능적 열망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농민들의 위법 행위에 대한 방지 수단으로서의 성격에서 감시인이라는 직책이 ‘소송을 좋아하는’ 몽코르네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의 증오심의 표적이 된다. 발자크는 몽코르네 밑에서 그의 재정과 방위를 담당하는 두 사람을 제시하여 영주에게 충성하는 자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몰락하는 귀족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권위가 지켜져야 함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이런 작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농민들에 의해 미쇼가 살해된다. 미쇼는 한밤중에 레제그의 정원 끝, 작은 숲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몽코르네의 복사물이라 할 수 있는 미쇼의 죽음은 백작의 재산, 연고,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가 농민들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서술해 주고 있다.
미쇼가 살해당하자, 백작 부인을 비롯해 군수와 블롱데와 신부까지 모두가 몽코르네에게 레제그 매각을 강력히 권유한다. 결국 군과 도 전체와 파리 도처에 레제그를 배당하여 매각한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사방에서 온 낙찰인들의 경쟁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을 파견한 장군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모든 배당은 리구에게 낙찰되었는데, 총액이 230만 프랑에 달했다. 그 다음 날 리구는 명의를 변경시켰고, 고베르탱은 공동의 숲과 포도밭을 가졌다. 성과 정원은 고베르탱이 자신을 위해 확보해둔 별장과 그 부속건물을 제외하고는 폭력단에게 다시 팔렸다.
1837년 겨울, 몽코르네 백작은 숨을 거두었고, 그의 상속인인 백작 부인은 도지사로 임명된 블롱데와 결혼했다. 결혼식을 마친 뒤 어느 날 블롱데와 백작 부인은 옛날 레제그가 있던 길을 우연히 지나치다 문득 추억에 젖어 말을 멈춘다. 마을의 숲과 가로수길은 이제 모두 개간되었다. 토지는 천 개 이상으로 분할되었고, 주민도 3배로 늘어났으며, 별장은 철거되었다. 블롱데는 마을의 변화를 실감하며 “그게 진보라는 거야! 장 자크의 〈사회계약론〉의 한 페이지지!”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50년 후엔 국가들 그 자체는 어떻게 될까?”라고 개탄한 뒤 다시 출발한다.
〈농민들〉은 대혁명 이후 농촌의 토지 소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그려내며 첨예한 계급 대립을 다루고 있다. 작품에서 토지 레제그는 결국 분할되고 몽코르네는 패배하여 파리로 돌아가게 된다. 이 점에서 확실히 〈농민들〉은 농민들의 승리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발자크는 농민들을 부추기며 귀족의 몰락을 이끄는 부르주아를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소설이 사회 현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시대를 읽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농민들〉을 통해 작가가 대혁명 이후 지배 세력화된 부르주아의 타락을 비판함을 알 수 있다. 발자크는 경제적 힘을 가진 부르주아에게 물신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농민들에게는 도덕적인 타락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발자크가 작품들 속에서 다룬 시골생활들 중에서 〈농민들〉만큼 토지에 대해 현실성을 부여한 소설은 없다. 다른 작품들에서는 시골생활이 흔히 ‘시정 넘치는 행위’처럼 보이는 반면, 〈농민들〉에서 토지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며, 강한 힘과 문제를 야기한다. 〈농민들〉에서 도시인은 농민들에게서 빼앗은 토지에 자기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이다. ‘잊혀진’ 민중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이 작품은 기존 목가 문학에서 그려지는 평화롭고 순박한 시골의 농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가난 속에서 타락해가고, “부르주아가 귀족을 삼키듯이” 부르주아지에게 대항할 것으로 예견된다. 발자크가 그리는 농민들은 일하지 않으며 도덕관념이 없는 교활한 자들이며 어떤 이념이나 의식도 없이 이해관계만으로 연대하고 대립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몰락하는 귀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미래의 인간상으로서 귀족이 아닌 계급에 주목한 발자크에게 내려진 ‘리얼리즘의 승리’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농민들〉이 다른 「전원생활 정경」의 소설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자신의 ‘의무’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자기 ‘권리’만을 옹호하기를 바라는 부재지주(不在地主)가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래서 토지를 소유하거나 개간하는 지주는 자신의 능력이나 개혁적 의도에 의해 전혀 정당화되지 않는다. 몽코르네는 보다 잘 설계된 미래의 불확실한 형태를 구현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상의 소유지’를 구현한다. 〈농민들〉에서는 자연의 변형과 부의 새로운 근원의 창조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레제그의 토지는 “오래 존속되기만을 바라는” 토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욕구불만을 낳는 소유지, 오로지 직접적인 충분한 수익성에만 관심을 갖는 소유지이다.
〈농민들〉에는 아름다운 영혼들이 없다. 사태의 악화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변화처럼 강력하고 극복할 수 없는 활동 중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신’과 ‘문화’와 도덕적 전통은 단지 부차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것은 드러난 이해관계의 악화이다. 〈농민들〉이 만약 비평적인 책이라면, 그것은 대지주들을 ‘옹호하는’ 비평적인 책이라기보다 부르주아 계급을 ‘공격하는’ 비평적인 책일 것이다.
발자크의 위대함은 대혁명 이후 새 시대의 주도 세력으로 부르주아, 농민을 꼽고 그들을 세밀한 관찰로 역동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다. 또한 그는 애호하는 계급인 귀족의 몰락하는 운명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리얼리즘의 대가는 ‘잊혀진’ 민중을 부각시키는 데 있어서 ‘부자에 대한 농민의 끊임없는 음모’를 연구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완성된 〈농민들〉은 프랑스 대혁명 후의 사회의 움직임의 성격을 이해시켜준다. 물론 발자크는 ‘노동자’와 ‘도시인’의 위협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데도, 위협이 ‘토지’라고 믿는 과오를 범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 초기의 대공황이라는 표현으로 추론하는 데 길들여진 프랑스인의 낡은 반사작용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발자크가 19세기 프랑스 사회처럼 매우 분화된 사회에서 계급투쟁의 메카니즘이 무엇인지를 보고,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 참고 논문 :
1. 〈발자크의 『농민들』 연구 - 마슈레의 『농민들』 해석을 중심으로〉, 조영철(원광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 〈발자크의 담론 전략 - 전원 시리즈를 중심으로〉, 이철(전남대), 전남대 인문학연구소
3. 〈『농민들Les Paysans』에 나타난 발자크의 농민관〉, 오영주(중앙대 대학원), 석사 논문
▶ 참고 문헌 : 〈농민들〉, 발자크 저, 배영달 역, 이론과 실천
▶ 참고 사이트 : [네이버 지식백과] 농민 [Les Paysans, 農民] (두산백과)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이나 문헌,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나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