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by 글섬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긋난 채 지나칠까 생각하면 아득하다. 가장 큰 울림을 넘어 일종의 지표가 되어준다고 믿었던 독서마저 그러했음을 깨달을 때 한껏 더 겸손해진다. 나 자신의 여유와 너비만큼만, 딱 그만큼만 읽을 수 있다. 그게 예술이라는 촉매 본연의 한계이다. 하긴 뭐, 그건 사회생활이나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겠다.


때가 되면 지난 시절에 큰 울림을 주었던 책들을 반복해 읽으며 늙어가리라 고대해 왔다. N차 시도를 희구하게 만드는 책들이야말로 귀중품 목록 제1열이었다. 그런데 그 목록 선정에 온전히 나만 관여했다는 점은 간과했다. 한없이 무지하고 좁고 얕은 나인데.


벌써 10년 전에 읽고는 애장 목록에서 제외해버린 도서가 최근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다. 나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을 도서인데(평소엔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뒤에 소장 가치가 있는 책만 구매하는 편이다) 내가 아니기에 구매된 도서, 희랍어 시간이다. 10년 전의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다지 한강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온갖 문학상 수상집과 전집 들을 털어 읽던 시절이라 웬만한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은 섭렵했고, 그 중 원탑으로 꼽은 한강 작가였기에 출간되는 작품마다 그의 글에 새로 열광하던 때였지만, 특유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소슬하고 아픈 문맥의 흐름이 희랍어 시간에서만큼은 다소 약하다고 (감히) 판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N차 도서 목록에서는 제외됐다.


그렇지만 10년. 우연히 다시 만나 뜻하지 않게 나의 책장에 꽂힌 희랍어 시간은 지난 10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를 다행스럽게 돌아보게 한다. 10년 전 나는 희랍어 시간이 한강답지 않게 남녀 간의 사랑 얘기로 좁혀져 있다고 생각했다. 좁혀진 건 글이 아니라 나였다. 당시의 나는 사랑밖에 읽을 수 없었거나 사랑에 대해 편협했던가 보다. 다시 만난 희랍어 시간은 눈물이었다.


희랍어는 오늘날 희귀 언어이다. 희랍어 학원이 있다는 것조차 신기할 만큼. 희랍어로 적힌 문장들은 언어라기보다는 문양일 뿐이다. 배우지 않으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언어. 그런데 그게 희랍어뿐일까. 보고도 보이지 않고 듣고도 들리지 않고 말을 해도 말이 되지 못하는 우리의 수많은 언어들. 소통 불가능한 그 모든 세계를 희랍어가 대변한다. 요컨대 그들은 희랍어 시간 속에 있다.





하지만 '정말 영민했다'는 어머니의 기억과는 달리,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녀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아이였다. 어떤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고, 성적 역시 특출하지 않았다. 친구가 몇 있긴 했지만 방과후까지 어울려 노는 일은 없었다. 세수할 때 말고는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 무덤덤한 여학생이었으며, 연애에 대한 막연한 동경조차 거의 느끼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근처의 구립도서관에서 참고서 대신 책을 읽었고, 집으로 대출해간 책들을 이불 속에서 엎드려 읽다 잠들었다. 그녀의 삶이 격렬하게 양분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녀 자신뿐이었다. 일기장 뒤에 적어가던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꼬챙이 같은 언어들이 시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는 한밤에도 몇 번씩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 (P.14~15)


의사와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단체생활의 자극은 그녀의 침묵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 밝고 진해진 정적이 어둑한 항아리 같은 몸을 채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붐비는 거리에서, 그녀는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 속에서 움직이듯 무게 없이 걸었다. 물 밑에서 수면 밖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어른어른한 고요 속에, 차들은 굉음을 내며 달렸고 행인들의 팔꿈치는 그녀의 어깨와 팔을 날카롭게 찌르고는 사라졌다. (P.16~17)




여자는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출판사와 시집 출간 경력이 있으며 서평지에 글을 쓴다. 말하자면 언어가 여자의 세상이고 삶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언어가 여자를 떠난다. 언어를 돌이키기 위해 여자는 희랍어 강의를 듣는다. 낯선 언어의 자극을 통해 언어를 되찾으려는 절박한 노력이다.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사실 강연 내용을 암기해 강의한다. 본인이 써내려가는 흑판 글씨도 차츰 더 보이지 않을 만큼 실명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점자를 배우고 안내견을 알아보는 대신 하루하루 더 멀어져가는 세상을 최대한 눈으로 느끼며 오늘을 산다. 남자는 열다섯 살에 한국을 떠나 희랍 철학 학위를 따고 서른 한 살에 귀국할 때까지 십칠 년 동안 독일에서 살았다. 열일곱 살의 남자에게 마흔이 되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고 선고했던 안과 의사의 딸을 사랑했다. 어릴 적 앓았던 열병의 여파로 청력을 잃은 그녀와는 필담으로 소통했다. 그들에게 소통은 언어가 아니었고, 세상은 언어 자체였다.




기억만으로 선득한 그 감각을 잇사이로 누르며 그녀는 쓴다.

얼음 기둥처럼 차갑고 단단한 언어.

다른 어떤 단어와도 결합되어 구사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극도로 자족적인 언어.

돌이킬 수 없이 인과와 태도를 결정한 뒤에야 마침내 입술을 뗄 수 있는 언어. (P. 20~21)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P.21)


처음 작정했던 시간의 세 배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아직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습니다. 못 견디게 그리웠던, 산사태처럼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모국어에 감격하며 한 계절을 보낸 뒤 겨울이 오자, 독일의 도시들이 그랬던 것과 꼭 같이 서울이 낯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채색 모직코트와 점퍼 들 속에서 어깨를 웅크린 사람들은 오래 견딘 얼굴, 더 오래 언제까지든 견뎌나갈 얼굴로 내 몸을 스치며 얼어붙은 거리를 종종걸음쳐 갔습니다. 독일에서 그랬던 것과 꼭 같이,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P.40~41)


당신과 나란히 그곳을 걸어나오던 오래전의 늦여름 저녁, 당신은 수첩을 꺼내 나에게 써 보였지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앙심을 가져왔지만, 아무리 애써도 천국과 지옥 같은 극단적인 장소들이 존재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대신 새벽까지 어두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혼령들은 어쩐지 존재할 것 같다고. 그런 혼령들이 있다면, 신도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논리적이지 않을뿐더러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신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당신이 재미있어서, 나는 소리내어 웃으며 당신의 수첩을 건네 받았지요. 그 무렵 어디에선가 읽은, 신의 부재에 대한 논증을 적어 당신에게 내밀었지요.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중략)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 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 (P.42~43)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P.44~45)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를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P.48)


그 시절 내가 꿈꿨던 상(象)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

(중략)

모든 존재의 뒤편에 물 위의 환한 그림자처럼 떠올라 있는,

모든 존재가 수천의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 세계를 싸안고 있는,

열여섯 살의 내가 온 힘으로 붙들었던 화엄(華嚴). (P.121)




여자와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배를 가르고 누운 세상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소리도 형체도 없이. 세상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그들을 포괄하지만 포괄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들과 세상 사이에는 '칼''가로놓여' 있다.




두 사람이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업이 시작된 뒤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사무실 앞에서. 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체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P.92)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방금 내가 쓴 글씨지만, 십 센티미터 이상 눈에서 멀어지면 보이지 않아요.

암기한 대로 소리내어 읽을 때 공포를 느껴요.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든 음운들이 공포를 느껴요.

내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의 침묵에 공포를 느껴요.

한번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P.167)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검은 빗방울에 싸인 모국어 문자들.

둥글거나 반듯한 획들, 짧게 머무른 점들.

몸을 구부린 쉽표와 물음표. (P.174~175)




아...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이라니... 아무데나 끝없이 떨어져 튀어오르는 언어라니... 우리의 말은 우리의 언어일까. 우리의 시선은 우리의 언어일까. 언제부턴가 언어는 우리를 배반한다. 우리는 언어의 뒤에 있거나 심지어 만나지 못한다. 세상과의 사이에 '칼'이 가로놓인 남자와 여자보다 쉽게 세상과 화해하는 우리가 더 이상하다.


남자와 여자는 언어의 가학성을 안다. 말하자면 세상의 가학. 그로 인해 멈춰선 그들은 그렇기에 세상으로 건너가기 전, 그 '칼' 앞에 선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으로 건너가는 대신 서로에게 세상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되찾은 세상은 언어는 아니었을 것 같다. 부디 그들이 정적으로 쌓아올려진 세상에서 언어의 어긋남 없이 서로에게 가득 차올랐기를.




왼손을 그녀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빼내며 그는 몸을 일으킨다. 책상으로 다가가려는 것이었는데, 문득, 그럴 수밖에 없는 듯, 어둑한 공기 속에 떠오른 그녀의 희끗한 얼굴을 향해 다가선다. 견딜 수 없이 떨리는 왼팔을 들어, 처음으로 그녀의 어깨를 안는다. (P.181)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부드러운 곳을 찾기 위해 그는 눈을 감고 뺨으로 더듬는다. 선득한 입술에 그의 뺨이 닿는다. 오래전 요아힘의 방에서 보았던 태양의 사진이 그의 감은 눈꺼풀 속으로 타오른다.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의 표면에서 흑점들이 움직인다. 폭발하며 이동하는 섭씨 수천 도의 검은 점들. 그것들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아무리 두꺼운 필름조각으로 가린다 해도 홍채가 타버릴 것이다. (P.183)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는 입맞춘다. 축축한 귀밑머리에, 눈썹에. 먼 곳에서 들리는 희미한 대답처럼,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그의 눈썹을 스쳤다 사라진다. 그의 차디찬 귓바퀴에, 눈가에서 입가로 이어지는 흉터에 닿았다 사라진다. 소리없이, 먼 곳에서 흑점들이 폭발한다.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난다.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