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사생활정경 제27권
〈또 하나의 여자 연구(Autre étude de femme)〉는 하나의 소설 속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로,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으로 분류된다.
연대 없이 에피소드에 가까운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작품에 포함된 이야기들 중에는 1831년에 집필된 이야기들이 포함되는데, 〈그랑드 브르테슈(La Grande Bretèche)〉와 〈메시지(Le Message)〉 같은 경우엔 1832년에 〈콩트 브렁(Contes bruns)〉에 실려 출판되었다. 이외 다른 이야기들은 1838년과 1842년 사이에 추가되어 「사생활 정경」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드 마르세(De Marsay)〉는 1841년에 〈규방 정경(Une scène de boudoir)〉이라는 제목으로 《아티스트(L'Artiste)》 지에서 발표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는 파리(Paris) 혁명 전후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풍자적인 탐구이다. 발자크는 사람들이 속내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개인적인 파티를 배경으로 일반적인 사회의 지루함과 특히 여인들의 시시함을 풍자한다. 이야기는 4인 4색의 이야기로 나뉘어 구성되는데, 서로 다른 이 이야기들은 도덕적 공정함과, 도덕적 공정함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된 경우에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과잉 상태, 즉 정당성이나 규정으로 은폐된 잔혹함, 혹은 오만함이나 무정함 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서문
서문에서는 상류사회의 관습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펠리시테 데 투슈(Félicité des Touches)가 여느 때처럼 사교 모임을 준비하고, 그 모임에 사교계 인사들이 참석해 의례적인 한담을 나눈다. 그런 다음, 11시경이 되면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그들끼리 따로 어울려 밤참을 먹으며 스스럼없이 대화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말하자면, 파티가 1차, 2차로 나눠지는 셈이다. 2차로 이어진 파티에서 두 파리지엔 여인이 파리를 파티와 미식의 이상적인 도시라고 주장하자 다른 손님들이 차례로 각자의 관점을 들려준다.
제1화
정치가 앙리 드 마르세(Henri de Marsay)는 어떤 이유로 그가 냉정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젊은 시절에 그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는데, 첫사랑 그녀는 부끄러운 척하며 그를 속여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녔다. 첫사랑에 환멸을 느낀 그는 너무나 멍청한 짓을 저지르게 만드는 경솔한 행동들을 억제하고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이 느낀 환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 이야기를 걱정스레 듣고 있던 델핀 드 뉘싱겐(Delphine de Nucingen)은 “내가 두 번째라서 얼마나 한탄스러운지!”라고 외친다. 그녀는 마르세 백작의 두 번째 여자로, 첫 번째 희생자인 셈이다.
제2화
저널리스트 에밀 블롱데(Émile Blondet)는 혁명 이후 귀족 부인의 쇠퇴에 대해 풍자적인 찬사를 보낸다. 그는 귀족 부인들에 대해서는 그녀들의 우스꽝스러운 드레스와 권력 남용을 조롱하고, “현대” 여성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위나 혈통도 없는, 그저 허세뿐인 “미지”의 존재라고 조소한다. 그리고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품위 있는 여성”과 “품위 없는 여성”에 대해 차례차례 철저히 분석한다. 펠리시테 데 투슈가 그렇다면 여류작가는 어떤 범주에 들어가느냐고 묻자 블롱데는 손님들 중에 카미유 모팽(Camille Maupin)이라는 가명으로 작가로 활동하는 여류작가를 의식해 농담처럼 이렇게 답한다. “천재성이 없는 여류작가라면 품위 없는 여성에 속하죠.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나폴레옹(Napoléon) 의견이랍니다.” 그러자 시인 멜키오르 드 카날리(Melchior de Canalis)는 나폴레옹의 정신세계를 묘사한다.
제3화
몽트리보(Montriveau) 장군의 끔찍한 이야기는 1812년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Russie)에서 퇴각할 당시 베레지나(Bérézina)를 통과해 후퇴하는 병사들의 고통과 잔혹한 상황을 묘사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발자크의 또 다른 소설 〈아듀(Adieu)〉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나폴레옹 근위병들의 잔인함과 한 여자가 겪게 되는 끔찍한 고통을 몸서리쳐질 만큼 처참하게 그리고 있다.
몽트리보 장군은 러시아 원정에 참전했던 한 이탈리아 장교의 명예에 대해 자신이 목격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탈리아 장교는 그의 상관인 대령과 그의 아내 로지나(Rosina)가 3년 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사실을 짐짓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전투 중에 대령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대령은 전시 상황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대위의 막사를 찾아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당당하게 로지나와 잠자리를 요구한다. 치욕스럽게도 대위는 모든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령과 로지나를 단둘이 남겨두고 막사를 나온다. 치욕을 당한 대위는 밤새도록 막사 주변에 바리케이트를 치고는, 다음 날 이른 아침, 로지나와 대령이 함께 있는 막사에 불을 질러버린다.
제4화
이 이야기는 오라스 비앙숑(Horace Bianchon)의 이야기이다. 〈그랑드 브르테슈〉라는 별도의 제목이 붙여진 이 이야기는 단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꼽힌다. 〈그랑드 브르테슈〉는 1831년에 또 다른 소설인 〈메시지〉와 함께 〈콩트 브렁〉에 실려 출판되었다. 이후 1842년에 따로 분리되어, 여러 소설과 이야기를 한데 엮은 〈또 다른 여자 연구〉에 포함된다. 애초엔 〈메시지〉와 함께 「풍속 연구(Études de mœurs)」로 분류되었는데, 이후 「파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었고, 1845년 《퓌른》 판에 이르러 『인간희극』의 「사생활 정경」 제4권으로 분류되었다.
발자크가 자주 화자 역할을 부여하는 의사인 오라스 비앙숑에 관한 이 이야기는 미묘한 인물들과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이 위대한 작품은 서정적인 묘사로 인해 환상적이고 경이로우면서도 공포로 가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래된 유적에 관심이 많은 의사 비앙숑은 어느 날 저녁, 루아르(Loir) 강 유역의 방돔(Vendôme)이라는 마을에 버려진 채 남아있는 브르테슈 저택을 발견한다. 저택을 다 가리다시피 잡풀이 무성하고 덤불이 마구잡이로 엉켜 있는 폐허와 같은 모습에 비앙숑은 그 어떤 매혹을 느끼며 이 저택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어느 날 저녁 비앙숑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는 황폐한 저택 안에서 고요한 수도원에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몽환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몇 차례 브르테슈 저택을 들락거리던 어느 날 저녁에 비앙숑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그 저택의 주인 메레 백작 부인(Comtesse de Merret)의 유언 집행인인 레뇰(Regnault)이라는 공증인이었다. 그는 비앙숑에게 그 저택은 사유지이므로 저택 안으로 들어가시는 건 불법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그러면서, 작고한 메레 백작 부인의 유언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메레 부인은 자신이 죽은 날로부터 “향후 50년간 브르테슈 저택을 돌 하나 만지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유언장에 명시했다. 레뇰이 이 유언을 제대로 지켜 50년의 기간을 채우고 나면 그 저택은 레뇰의 후손의 소유가 된다는 조건이었다. 비앙숑이 백작부인이 그런 유별난 유언장을 작성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묻지만 신중한 공증인은 답을 하지 않고 다시금 주의만 주고는 물러난다.
그러자 그 저택에 얽힌 사연이 더욱 궁금해진 비앙숑은 여관 여주인을 불러 캐물어보지만, 여주인 역시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언젠가 황제가 방돔에 전쟁 포로들을 보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가석방되어 방돔으로 보내진 젊은 스페인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꺼낸다. 그는 스페인의 대귀족으로, 탄복할 정도로 잘생기고 정중한 젊은이였다. 그가 자주 산책을 다니던 곳이 메레 백작부인의 저택 근처였는데,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관 여주인은 그가 메레 백작부인과 뭔가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확실한 내막은 백작부인의 충직한 하녀였던 로잘리(Rosalie)만 알고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비앙숑은 당장 로잘리를 불러들인다. 비앙숑이 메레 백작부인에 대해 묻자 처음에는 공포에 질려 극구 거부하던 로잘리는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엔 비앙숑에게 털어놓는다.
그랑드 브르테슈에서 메레 백작부인이 머무는 방은 1층에 있었고, 벽에는 옷을 거는 120센티미터 정도 깊이의 작은 벽장이 있었다. 메레 백작부인이 심하게 앓아누웠던 때를 계기로 백작은 2층에 따로 침실을 마련하게 되었다. 백작은 보통 클럽에서 토론이나 당구를 즐기다 한밤에야 돌아왔기에 대개 백작부인의 방을 거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돌아온 백작이 갑자기 로잘리도 부르지 않고 혼자서 백작부인의 방을 향했다. 외출 전에 함께 했던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날따라 아내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고, 클럽에서 당구 시합으로 큰돈을 잃었던 터라 아내에게서 위안을 찾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작이 아내의 방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백작은 벽장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여니 방안에는 백작부인이 혼자 있었기에 그는 로잘리가 벽장 안에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로잘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백작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백작부인은 로잘리를 내보냈고, 불안한 로잘리는 복도에 서서 방안의 동태를 살폈다. 백작은 벽장에 누군가 있나 보다고 물었고, 백작부인은 아니라며 태연했다. 백작이 벽장문을 열려고 하자, 백작부인은 그 문을 열면 백작과 끝장이라고 위엄 있게 맞섰다. 백작은 그렇다면 열지 않겠다고 물러난 뒤, 부인의 방에 있던 수난상을 들고 아내에게 주님 앞에서 저 벽장 안에 아무도 없다고 맹세하라고 요구한다. 백작부인은 맹세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백작은 문득 상아와 은으로 대단히 예술적으로 세공된 수난상을 유심히 살펴본다. 예전에는 집안에 없던 물건이다. 백작이 어디서 난 물건이냐고 차갑게 묻자 백작부인은 단골 보석상에게서 샀다며, 스페인 포로들에게서 구했다고 들었다고 답한다. 백작은 수난상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다 종을 울려 로잘리를 불러들인다. 그는 로잘리에게 아무도 모르게 석공장인 고렝플로(Gorenflot)를 불러오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복도로 나와 다른 하인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라고 명한다.
잠시 후 로잘리가 고렝플로를 데리고 돌아온다. 백작은 그에게 벽장문 주변에 벽을 쌓고 석고를 바르라고 명한다. 그런 다음, 로잘리와 고렝플로에게 오늘밤 일에 대해 함구하는 조건으로 만 프랑을 약속한다. 고렝플로가 벽장문에 벽을 쌓는 동안 백작도 백작부인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미리 로잘리의 부탁을 받았던 석공은 백작이 등을 돌린 틈을 타 곡괭이로 벽장문을 부숴 뜨려 틈새를 낸다. 백작부인과 로잘리와 고렝플로는 그 틈새로 검은 머리에 이글거리는 눈을 한, 거무스름하고 우울한 얼굴의 사내를 본다. 백작부인은 남편이 돌아서기 전에 재빨리 그를 향해 걱정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새벽 4시, 동틀 녘이 다 되었을 무렵에야 작업이 끝났고, 백작은 그제야 부인의 방에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아침에 백작은 무심한 척 외출했고, 백작부인은 로잘리를 불러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곡괭이로 틈을 냈다가 다시 메워 놓자며 서두른다. 백작부인이 벽돌을 몇 개 들어내려 몸을 돌리는 순간, 바로 뒤에 서 있는 메레 백작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버린다. 백작은 기절한 아내를 침대에 눕힌 뒤 보석상을 불러 수난상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보석상은 수난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백작은 이후 20일 동안 아내의 방에 머물렀다. 벽장 안에서 굶어 죽어가는 스페인 남자의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견디지 못해 부인이 탄원이라도 할라 치면 백작은 “당신은 십자가에 대고 저기엔 아무도 없다고 맹세했소.”라고 주지시키며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했다.
비앙숑의 이야기가 끝나자 여인들은 일제히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그들 중에는 비앙숑의 마지막 말에 부르르 떠는 여인들도 있었다.”
이 작품에서 발자크는 뉘싱겐(Nucingen) 남작, 으젠 드 라스티냑(Eugène de Rastignac), 조셉 브리도(Joseph Bridau), 에밀 블롱데(Émile Blondet), 다니엘 다르테즈(Daniel d'Arthez), 영국 귀족인 더들리(Dudley) 경 부부와 그들의 딸 바리모르(Barimore) 부인, 파티에 참석한 모든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펠리시테 데 투슈(Félicité des Touches(조르주 상드(George Sand)), 델핀 드 뉘싱겐(Delphine de Nucingen), 데스파르(d'Espard) 후작 부인, 일명 디안 드 모프리뇌즈(Diane de Maufrigneuse)로 불리는 카디냥(Cadignan) 공주, 몽트리보 장군, 세리지(Sérisy) 백작부인 등 그가 자주 재등장시키는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킨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데카메론(Décaméron)이나 엡타메롱의 이야기처럼 각자 한 가지씩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소설은 각기 다른 네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발자크가 “회상 기법”을 이용해 『인간희극』의 인물들의 성격을 규정하고 구성하는 기술이 여실히 드러난다.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은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를 제가 번역한 내용입니다. (제4화 제외)
▶ 제4화의 줄거리는 제가 번역한 내용이 아니라, 〈세계공포문학걸작선〉(모파상 외, 이수현 옮김, 황금가지)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원작 그대로의 표현을 제가 번역해 인용한 내용이지만,
제4화의 경우엔 〈세계공포문학걸작선〉의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