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2부. 신전과 궁전, 권력과 음모의 공간 (16~3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저게… 정말 베르사유 궁전인가요?"
2023년, 프랑스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 은 여전히 웅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빛 장식과 대리석 기둥들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궁전의 화려함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학자 에밀 리샤르(Emile Richard) 는 그들처럼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어둠이 보였다.
"여기가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이 시작된 곳이지."
그의 말에, 젊은 연구원 소피(Sophie) 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비극이요? 그저 처형당한 이야기뿐 아닌가요?"
에밀은 쓴웃음을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베르사유는 그녀의 죽음 이후로도 끊임없이 그녀의 흔적을 남기고 있어."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4세(태양왕, Louis XIV) 에 의해 지어졌다.
프랑스의 절대 왕권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수천 명의 귀족과 신하들이 함께 생활했다.
끝없는 연회와 무도회, 화려한 의상과 음악. 모든 것이 과시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는 루이 16세의 아내로, 어린 나이에 베르사유 궁전으로 왔다.
그녀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지만, 동시에 대중의 미움을 받았다.
특히,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잘못된 소문이 그녀를 향한 분노를 더욱 키웠다.
"그녀는 그저 어린 소녀였을 뿐이야. 권력과 음모의 중심에서 방황했던 존재였지." 에밀은 조용히 말했다.
소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유령 이야기도 그녀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에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지금도 그녀의 영혼이 이 궁전을 떠돌고 있다고 믿지. 특히, 그녀가 자주 머물렀던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에서 말이야."
소피와 에밀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걸어 '쁘띠 트리아농'으로 향했다.
그곳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군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901년, 두 명의 영국 여성 학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봤나?" 에밀이 물었다.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날 두 여성 학자는 길을 잃고 쁘띠 트리아농 주변을 헤매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어. 과거의 복장을 한 사람들, 즉 18세기의 모습 그대로의 사람들을 말이지."
소피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고전적인 유령 이야기네요."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본 풍경과 사람들의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었다는 거야. 심지어 그들이 본 여성은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이었다고 주장했지."
소피는 그제야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요?"
"물론 공식적으로는 환각이나 심리적 현상으로 치부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도 비슷한 목격담이 계속되었어."
소피와 에밀은 쁘띠 트리아농의 내부로 들어섰다.
"이곳은 분명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야. 그러나 동시에 슬픔이 깃들어 있지." 에밀은 벽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문득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고 말하지."
소피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게 정말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혼 때문이라는 건가요?"
"어쩌면 그녀는 여전히 이곳에서 자유를 찾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반복하고 있는 걸지도."
에밀은 창문 밖으로 탁 트인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역사가 그대로 담긴 거대한 거울과도 같아. 그곳에 비치는 것은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도 함께이지."
소피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전히 이곳에 갇혀 있다는 건가요?"
"아마도.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이 그녀의 기억을 이곳에 남겨두고 있는 걸 수도 있지."
"그럼 우리가 들은 이야기는 진짜일까요?"
에밀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실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이곳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지. 이곳은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야."
그날 밤, 소피는 에밀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와 쁘띠 트리아농의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