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1부.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건축 (1~15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기원후 79년 8월 24일.
하늘은 평소와 다름없이 맑았고, 따사로운 햇살이 캄파니아 평원을 비추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부유한 도시 폼페이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거리마다 시장이 열리고, 연인들이 산책을 나섰으며, 귀족들은 대리석 궁전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도시에 곧 ‘지옥’이 도래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오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지구의 심장부가 깨어났다.
베수비오 화산. 오래전부터 침묵을 지켜오던 그 거대한 존재가, 천둥과도 같은 굉음을 내며 폼페이를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은 지진이 몇 차례 있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먼지처럼 보이던 것들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곧이어 거대한 검은 구름이 형성되었고, 그 구름은 마치 신의 손처럼 폼페이를 향해 뻗어왔다. 하늘은 한순간에 밤처럼 어두워졌고, 태양조차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첫 번째 파편이 떨어졌다.
작은 화산석과 뜨거운 재가 빗방울처럼 도시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의 분노가 아닐까 두려워했지만, 곧 그것이 죽음을 예고하는 신호임을 깨달았다.
로마 귀족들은 황급히 마차를 타고 도망치려 했고, 상인들은 가게를 버려두고 가족들을 찾으러 달려갔다. 그러나 몇몇은 여전히 태연했다.
“신이 정말 화가 났다면, 신전이 무너지겠지.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러나 곧, 신전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산이 내뿜은 열기와 독가스는 점점 폼페이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기침과 가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화산쇄설류(pyroclastic flow)**였다.
오후 3시경, 갑자기 산이 다시 폭발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불덩이가 폼페이를 향해 질주했다.
초속 100m, 온도 500도.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폐가 타버린다.
피부는 한순간에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모든 것은 단 몇 초 만에 끝난다.
그 화염의 파도는 광장과 목욕탕, 원형극장을 휩쓸었고, 사람들이 도망치던 거리마저 집어삼켰다. 누군가는 가족을 안고 웅크린 채 마지막 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출구를 향해 절박하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폼페이는 거대한 화산재 속에서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폼페이를 '쾌락의 도시'라고 불렀다. 이곳은 상류층 귀족들이 방탕한 연회를 즐기고, 향락을 탐닉하는 장소였다. 거리마다 화려한 빌라가 들어서 있었고, 곳곳에 욕망을 자극하는 벽화와 조각들이 가득했다.
어쩌면 폼페이의 최후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신이 내린 심판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화산재 속에서 발굴된 벽화들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나체로 유흥을 즐기는 귀족들의 모습
거리마다 자리한 ‘환락가’의 흔적들
신전의 일부에서도 발견된 비도덕적 상징들
이런 이유로, 중세 시대 사람들은 폼페이의 멸망을 ‘신이 내린 형벌’로 여겼다. 방탕한 도시가 결국 신의 분노로 인해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신의 심판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자연의 섭리였을까?
폼페이는 무려 1,7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1748년, 한 농부가 우연히 땅을 파다가 이상한 구조물을 발견하면서 폼페이는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도망치는 자세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그날 그대로였다.
심지어 빵이 구워지던 오븐까지 남아 있었다.
폼페이의 거리는 고요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도망치던 아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연인,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개 한 마리.
이들은 모두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대로 보존된 것이었다.
오늘날 폼페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 중 하나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며, 마지막 순간의 흔적들을 직접 목격한다.
그러나 폼페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든 우리를 삼킬 수 있다.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사라질 것을 예상했을까?
우리는 지금, 폼페이와 다를 바 없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어쩌면, 그 대답은 아직도 화산재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