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1부.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건축 (1~15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기원전 330년, 밤하늘을 가득 메운 불길이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를 집어삼켰다. 타오르는 불꽃은 거대한 기둥과 신전의 벽을 붉게 물들이고, 왕궁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제국의 영광은 한순간에 재가 되었다. 그 불길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철저히 계획된 복수였을까?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그것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다리우스 1세(Darius I)에 의해 건설된 이곳은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궁전도시였다. 그러나 이 찬란한 제국의 수도는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다. 전쟁이 끝난 후, 이곳은 영원히 황폐한 폐허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페르세폴리스의 소멸에는 단순한 전쟁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 알렉산더는 왜 이 위대한 도시를 불태웠을까? 단순한 군사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에 걸친 원한의 결과였을까?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경,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며, 그 위엄을 상징하는 수도가 필요했다.
이 도시는 단순한 행정 도시가 아니라 왕실의 상징이자 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아파다나 궁전(Apadana Palace): 거대한 기둥과 화려한 부조(浮彫)가 장식된 페르세폴리스의 대표 건축물.
백주대회(百柱大會) 궁전(Hundred Columns Palace): 왕이 신하들을 맞이하던 거대한 회의 장소.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 왕의 무덤: 절벽을 깎아 만든 거대한 왕들의 묘.
페르세폴리스의 거대한 계단: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설계된 웅장한 입구.
이곳은 단순한 왕궁이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부와 문화적 번영을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웅장한 도시가 불타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원전 334년, 젊은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오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정을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군대는 강력했지만, 페르시아 제국 역시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Battle of Issus)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를 격파.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Battle of Gaugamela)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을 점령.
기원전 330년: 마침내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 페르세폴리스에 도착.
페르세폴리스가 함락되었을 때, 알렉산더는 이 도시를 파괴할지, 보존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기로 결정했다.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알렉산더의 페르세폴리스 파괴는 단순한 점령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의 복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50년 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를 불태웠다.
그리스인들에게 페르시아는 ‘서방 문명을 위협한 최대의 적’이었다.
알렉산더는 아테네의 파괴에 대한 응징으로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것일지도 모른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더와 그의 병사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페르세폴리스 궁전에 불을 질렀다고 전해진다.
마케도니아 군대는 승리를 자축하며 연회를 열었고, 술이 과해진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것이 알렉산더의 전략적인 결정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병사들의 난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했지만, 제국을 완전히 없애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의 정신적 중심이었던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움으로써 자신이 이제 페르시아를 지배하는 자임을 선포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였기에, 그곳을 불태움으로써 제국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했다.
알렉산더가 떠난 후, 페르세폴리스는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 한때 번영했던 궁전은 불타버린 잔해로 남았고, 제국의 중심지는 바빌론으로 이동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페르세폴리스는 점점 황폐해졌고, 오랜 세월 동안 모래와 먼지 속에 묻혀 버렸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고고학자들이 페르세폴리스를 발굴하면서, 이 도시는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화려한 벽화와 부조들이 남아 있어 페르시아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궁전 터에서 불타버린 나무 기둥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불에 그을린 유적이 알렉산더의 파괴를 증명한다.
페르세폴리스는 이제 잃어버린 제국의 상징이자, 인간의 영광과 몰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유적이 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알렉산더는 정말 복수를 위해 이 도시를 불태웠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정당한 응징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야망의 발현이었을까?
페르시아 제국이 계속 존재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폐허가 된 돌기둥과 바람에 씻긴 조각들은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