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생존 기술
2장: 야생을 정복하라 (11~30일차)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불은 생존의 중심이다.
불은 나에게 따뜻함을 주고, 물을 끓이고, 음식을 익히고, 야생동물을 쫓아낸다.
불이 있다는 건, 곧 인간답게 산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는 그 중심을 잃었다.
불씨가 꺼진 것이 아니라, 불씨를 보관하던 자작나무 껍질이 전부 젖어버렸다.
밤새 이슬이 너무 많이 내렸고, 바람의 방향도 평소와 달랐다.
나는 멍하니, 불을 피우기 위해 돌을 마주하고 앉았다.
손에는 마찰용 활과 마른 풀뭉치.
하지만 땀이 식기 전에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불이 안 붙는다.”
심장이 조급해졌다.
식량은 조개와 생선 몇 마리, 그리고 익히지 않은 고기였다.
차가운 물도 끓이지 못했고, 오늘 하루는 바닷물을 멀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내일도, 모레도 이어진다면?
나는 즉시 대체 생존 모드로 전환했다.
“불 없이 사는 법을 찾아야 해.”
나는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불 없이도 섭취 가능한 식물, 그리고 ‘비가열’ 상태로도 안전하게 섭취 가능한 생선을 떠올렸다.
기억을 되짚었다.
코코넛 과육과 물: 살균된 내부. 고열 없이도 안전.
조개류 중 일부: ‘해감’을 충분히 했다면 소량 섭취 가능.
야생 열매: 독이 없는 것을 구별하여 사용.
특히 전날 찾았던 **‘노란 껍질의 바위딸기’**는 씻지 않아도 입안을 정화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나나잎에 그것들을 깔고, 하나하나 씹었다.
뜨겁지도, 향긋하지도 않았지만 입안에 퍼지는 “살아 있다”는 감각은 분명 존재했다.
고기.
가장 위험하고, 가장 중요한 단백질원이다.
나는 전날 잡은 작은 새 한 마리를 해체해놓고 있었다.
불이 없으니 원시인처럼 생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다른 방식이 떠올랐다.
“염지(鹽漬).”
해안 근처에 모아둔 소금 결정들.
나는 새의 살점을 잘게 찢고, 그 위에 소금을 듬뿍 덮었다.
자연의 ‘소금 절임’ 방식.
바람이 닿는 그늘에 놓으면 1~2일 안에 자연 건조가 될 것이다.
“이걸 ‘생선회’처럼 먹을 수 있진 않겠지만… 최소한 썩진 않겠지.”
“깨끗한 물 없이는 못 살아.”
불로 물을 끓이지 못한다면?
나는 태양을 이용한 증류 방식을 떠올렸다.
바나나잎을 넓게 펼치고, 그 위에 바닷물과 담수의 경계를 적절히 섞은 물을 담았다.
그리고 투명한 조각 플라스틱—조류와 함께 떠내려온 병 조각을 깨뜨려 얻은 재료—으로 덮었다.
시간이 지나면 태양열로 인해 수분은 증발하고, 덮은 면에 맺힌 이슬이 떨어져 순수한 물로 모인다.
‘태양 정수기.’
나는 그것을 설치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해가 기울 무렵, 나는 섬의 북서쪽, 그동안 가지 않았던 바위 지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언제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오늘처럼 시간이 많을 때가 아니면 탐색하기 어렵다.
바위 틈 사이로 얇은 연못 하나가 보였다.
그 표면엔 무수히 많은 작은 생물들이 부유하고 있었고,
가장자리에 이상한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부식된 깡통, 그리고 철사.
나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살폈다.
그리고 금속 표면에 새겨진 이름을 봤다.
“상륙지원 제2사단 — 제103식량 패키지”
그것은 이 섬이 과거 누군가의 주둔지였음을 암시하는 물증이었다.
군용 보급품.
이 섬은 단순한 무인도가 아니다.
나는 두려움과 함께, 묘한 희망을 품었다.
불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도구가 없을 때, 인간은 도구가 된다.
생각이 도구가 되고, 두려움이 연료가 된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불이 없다면, 자연을 뜯어내 불처럼 써야 한다.
바람을 이용하고, 태양을 가두고, 시간마저 재료로 삼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비록 식사는 차갑고, 물은 한 모금뿐이지만
나는 이 상황을 실험처럼 즐기고 있다.
불 없이 맞는 밤은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고, 너무 어두웠다.
불빛 하나 없이 검은 하늘 아래서, 나는 들리지 않는 기척들을 느꼈다.
풀잎 사이, 아주 멀지 않은 곳.
무언가가 움직였다.
“……누구지?”
나는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섬 어딘가에, 나 외에도 누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