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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병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 속에서 치료하는 법

by 이동혁 건축가

무인도 100일: 첫날부터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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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야생을 정복하라 (11~30일차)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22화. 병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 속에서 치료하는 법

아침부터 몸이 이상했다.
목 뒤가 묘하게 뻣뻣했고, 가슴은 답답했다. 열이 났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 깊은 곳까지 뭔가 찐득한 기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감기인가…?”

나는 속삭이듯 중얼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 아니다.
이곳에는 약도, 진단도, 아무도 없다.
‘내가 내 의사고, 내가 내 간호사다.’

나는 기침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무겁고 관절이 욱신거렸다. 며칠 전 비를 잔뜩 맞은 게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그날 밤 젖은 옷 그대로 돌 틈에 웅크리고 잠든 탓일까.

“이래선 안 돼.”

나는 생존의 방식을 바꿔야 했다. 병이 난다는 건 단순한 불편이 아닌, 죽음의 시작이었다. 이 섬에서, 한 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자연이라는 병원을 이용하는 법.


1. 열을 내리기 위한 행동


몸의 열이 올라가고 있다는 건 면역 체계가 싸우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면 오히려 내 몸이 나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나는 먼저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를 찾았다.
바위 그늘 아래, 해가 들지 않는 계곡 쪽.
낮은 수풀 사이에 잠시 몸을 눕혔다.

그리고 대나무 속물을 꺼내 어제 모아두었던 깨끗한 빗물을 마셨다.
물을 조금씩, 그러나 자주 마셨다.

“수분이, 곧 생명이다…”


2. 해열제 없는 해열법


나는 전에, 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버드나무 껍질을 우려 먹었다.
그 안에는 **살리신(salicin)**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아스피린과 유사한 해열 효과를 낸다고 했다.

섬 어귀의 얇고 하얀 껍질이 벗겨지는 나무.
나는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고, 얇게 말린 뒤 작은 대나무 컵에 빗물을 붓고 그 안에 넣었다.

진득하고 쌉쌀한 향.
나는 그 즙을 삼키며 되뇌었다.

“이건 약이다. 쓴 건, 약이다.”

비록 맛은 악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은 조금 가라앉았다.
머리가 맑아졌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3. 감염 방지와 상처 치료


나는 손목 안쪽에 생긴 작은 상처를 봤다.
며칠 전 부러진 대나무 조각에 긁힌 자국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붉게 부어오른 그 부위에서 고름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방치하면 위험해.”

나는 섬의 서쪽 계곡 근처에서 본 식물을 떠올렸다.
둥글고 넓은 잎, 부드러운 촉감, 줄기를 꺾으면 끈적한 젤 같은 액이 흐르던 그 식물.

알로에다.

나는 그 잎을 잘라 상처 부위에 붙였다.
끈적한 젤이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시원함이 퍼졌다.
그 위에는 깨끗한 옷 조각을 잘라 감싸 고정했다.

그리고, 나는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


4. 면역력을 지키는 식단


감기, 상처, 그리고 의심할 수 없는 무력감.
나는 더 이상 아무거나 주워 먹을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적극적으로 비타민 C가 풍부한 열매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산허리에서 작고 붉은, 신맛이 강한 열매를 발견했다.

처음엔 의심했지만, 하루 전 날 야생 원숭이 무리가 먹고 있는 걸 본 열매였다.
나는 그것을 모아, 일주일치 비상 식량으로 보관했다.

또한 단백질 보충을 위해 해안가에서 작은 조개와 따개비들을 따고, 불을 피워 익혔다.
불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조심하는 생존자’**여야 했다.


고통 속의 깨달음


그날 밤, 나는 바위벽에 기대어 앉았다.
열은 내렸고, 상처는 더 이상 붓지 않았다.
조용한 바람이 불었다.
이따금 풀숲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
그 모든 게 내게 속삭였다.

“넌 살아있어. 그리고 스스로 지켜냈어.”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섬은 내 적이 아니야… 선생님이야.”


그리고, 꿈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끝없이 펼쳐진 숲 한가운데, 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불 주위에는 낡은 옷을 입은 사람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전 고립된 자들의 형체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한 명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이 섬에서… 병을 앓았다. 하지만 자연이, 우리를 가르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깨어났다.
그러나 이상했다.
이 꿈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 섬이… 과거 누군가의 흔적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에필로그: 병을 앓고 난 뒤


병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병을 앓고 난 뒤 나는 더 단단해졌다.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짜 의사는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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