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세상 속, 무용한 반짝임

by 퇴근후작가

전시 마지막 날이다.


정말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다 상상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내 그림 앞에 머무는 사람들,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건네는 사람들,

웃으며 공감해주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들.

그 많은 순간들이 쌓였다.


혼자 전시장에 들어오는 관람객들도 있다.

그들은 작품을 휙 훑고 지나가지 않는다.

그림을 차분히 바라보다가,

어떤 작품 앞에서는 한참 동안 머문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넨다.

어떤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 작품 앞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는지

가볍게 묻는다.


그러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그림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스마일미러볼을 왜 그리게 되었는지,

각 그림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그 장면 안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어 있는지

조금씩 펼쳐놓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듣는다.


작가에게 직접 그림 이야기를 듣는 것이 처음이라며

무척 신기해 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어쩌지 못할 만큼 좋았던 순간은

그들이 어느 그림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는지를

천천히, 편하게 꺼내놓기 시작할 때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금세 충만해진다.

아, 그래. 이런 것 때문에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거지.


내가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좋았던 감정들이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닿고,

내가 오래 바라보며 완성해놓은 마음을

누군가 함께 공감해줄 때, 그제야 나는 다시 알게 된다.


아, 그래서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거구나.


전시의 의미는 단순히 그림을 판매하는 데만 있지 않다.


물론 나는 그림을 팔기 위해 작업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을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전시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 생각과 작가관을 가지고 있는지

세상 앞에 조용히 꺼내 보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공감을 얻고, 때로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내게 아주 소중하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확인하게 된다.

내 인생이 제법 괜찮다는 것,

내가 품어온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물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본래 아주 사적인 시간이고,

그 안에는 내가 나를 표현하고,

견디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먼저 있다.


하지만 내가 표현한 것을 누군가가 함께 바라봐주고,

공감과 응원의 말을 듣는 순간은

늘 마음 속에 불안함을 가지고 사는 나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힘이 된다.


그건 가벼운 칭찬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감정을

관람객도 함께 공감해주는 순간,

내 안의 어떤 외롭고 막연했던 마음이

비로소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인생은 잠시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림이라는 세계가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참 멋진 일이다.


내가 오래 품고 있었던 생각을

누군가가 알아봐주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은 내게 굉장한 에너지가 된다.


도파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 감정은 훨씬 더 깊고 특별하다.


내가 세상과 조금은 닿아 있다는 안도감,

내가 나로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작은 확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려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에 더 가깝다.


이 시간을 몇 년 후의 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때의 나는 또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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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참 재미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시간들은 헛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애써 만든 시간들이 바로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쏟아부은 마음이 당장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꼭 유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빈틈없는 세상 속 무용한 반짝임처럼

조금은 쓸모없어 보이고,

당장 답이 되지 않는 것들조차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애써도 선명한 결과를 바로 증명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반짝이고 있는 사람들.


그런 우리 모두를 위해

나는 이 전시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이렇게 나의 첫 초대전은 마무리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을 지나며

또 한 번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나다운 방향으로 성장해간다.


훗날 돌아보면

나는 이 전시를 단지 그림을 보여준 시간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나의 세계를 조금 더 믿게 된 시간,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스마일미러볼 윤지선 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thing_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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