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에서 살기를 결정하고 내가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은 키갈리 중심부의 남동쪽에 위치한 카가라마(Kagarama) 구역이었다. 중심지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르완다에서 15년 가까이 계시는 한인분의 집 근처이기도 했고, 지대가 높아 매일 아름다운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두어 달 정도 카가라마의 렌트하우스에서 거주하다 보니 공간도 익숙해지고, 집 근처 좋아하는 카페도 생겨서 때로는 집을 새로 구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집이 아닌 곳에서 불편하게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디에서 사는 누구에게든 어려운 일이지만, 선진국이 아닌 국가에서 살기 시작한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르완다에는 부동산 중개 서비스도, 가구 배달서비스도 없다.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플랫폼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고 가구를 구매하는 모든 과정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었다. 그렇다고 예산이 엄청 넉넉하거나 회사의 지원을 많이 받고 오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고민할 거리가 더욱 많았다.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는 일이다.
주거공간을 고를 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있다. 누군가는 집 크기나 가격이 중요하고, 또 누군가는 안전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어느 정도 정해진 예산 범위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지만, 아파트보다는 주택의 형태를 선호했고, 외국인이다 보니 치안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지역에서 사는 것이 중요했다. 집이 커서 나쁠 것은 없지만, 둘이 사는 것이었기에 집 크기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키갈리 내에서 상대적으로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냐루타라마(Nyarutarama), 가치루(Kacyiru), 레메라(Remera) 인근에서 주로 집을 알아보았다.
르완다 정부의 지침상 앞으로는 아파트 형태의 작은 집을 많이 건축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부엌과 거실, 약간의 마당이 딸린, 방 2-3개짜리의 집이 일반적이다. 서울의 일반적인 집형태를 생각하면 꽤 큰 평수이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은 많이들 르완다의 집값을 궁금해했다. (외국인들이 살만한 집을 기준으로) 르완다의 집값은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하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가격이 점차 올라가곤 한다.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도 꽤 많고, 직접 집을 방문해서 보다 보면 디테일한 마감이 부족하거나 전기, 물 문제가 잦은 곳도 있어서 꼼꼼하게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를 '안전, 크기, 청결'이라고 했을 때,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집은 월 1000달러 이상, 두 가지만 충족하면 6-700달러 이상, 한 가지만 충족하는 집이라면 3-400달러 선이었다. 집마다 가구가 전부 갖추어져 있는 곳도 있고(furnitured) 아닌 곳도 있는데(unfurnitured), 이는 선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나는 가구가 없는 집을 알아보았는데, 가구가 전부 갖춰져 있는 집은 보통 월 100-200달러 정도 더 비싸기도 하고, 르완다에서 오래 거주할 생각이라 원하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가구를 하나씩 구매하는 일이 매우 힘들어서, 가구가 갖춰진 집으로 들어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긴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얻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살고 싶은 지역과 집의 조건을 결정한 후에는 정보를 많이 얻는 것이 중요하다. 르완다에서 집을 구할 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페이스북 그룹이 거의 유일하다. 국외 거주자(expatriate)를 위한 소셜 그룹부터, 물건 판매를 위한 그룹까지 다양하다.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판매자와 직접 연락하여 구매하는 것이다. 르완다에 거주하는 한인분들을 통해 집을 몇 군데 추천받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결국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올라오는 사진을 보고 괜찮아 보이는 곳을 몇 군데 결정한 후,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한 번에 마음이 통하는 부동산 중개인(agent)을 만나 원하는 집을 찾을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게 쉽게 집을 구하지는 못했다.
몇 군데 집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략적으로 집마다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집은 매우 크고 깨끗하지만 집 앞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이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집은 디테일한 부분이 부족하고 냄새가 나거나 벌레가 많다. 현재 이사한 집을 선택하기까지, 200군데 이상의 사진을 보고 50군데 이상의 집은 직접 방문하여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결정하면 집주인을 만나 협상을 해야 한다. 아파트나 컴파운드(compound) 하우스의 경우 보통 계약조건이 고정되어 있어 협상이 어렵지만, 개인과 거래할 때에는 약간의 협상이 가능하다. 집 계약 조건은 집주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보증금 월세 한 달 치, 3개월에서 6개월치 월세를 선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또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고 사람을 직접 만나 진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부동산 중개인이 껴있는 경우, 관행상 전체 계약금액의 10% 정도 커미션(commission)을 지급한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계약했지만, 빈 집에 가구를 채워 넣어야 하는 큰일이 남아있었다. 르완다는 내륙국 가라 수입품의 가격이 대체로 매우 비싸기 때문에, 질 높은 가구를 모두 새 제품으로 구입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중고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르완다에는 국제기구나 외국계 회사가 많이 들어와 있는 편이라, 몇 년간 르완다에서 살다가 떠나는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별도 플랫폼은 없기 때문에 이 경우에 마찬가지로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오는 글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면, 판매자와 연락하고, 해당 물건을 옮겨줄 수 있는 트럭 운전사와 소통하여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운송 비용은 거리나 무게에 따라서 10,000-25,000 RWF 사이이다). 판매자와 연락이 되지 않거나, 막상 가보니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나는 꽤 마음에 드는 제품들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중고물품으로 필요한 가구를 모두 구입하기는 어려웠다. 이사를 준비하던 당시 빠르게 필요했지만 중고로 구하지 못한 것은 냉장고, 소파 방석, 침대, 오피스 책상과 의자였다. 현지에 있는 웬만한 가구 판매점도 모두 가보았지만, 마음에 들고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현지인 친구를 통해,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구입하는데 가장 좋은 곳은 가친지로(Gakinjiro)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입품이 비싸고 인건비가 싼 국가이다 보니,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목수를 고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하고 저렴했다. 가친지로는 수많은 목재들이 쌓여있고, 목수들이 가구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지역이다. 먼지가 자욱하고 사람이 많아 직접 사진을 찍지는 못해, 아래에 인터넷 기사의 사진을 대신 첨부하였다. 화재가 나는 모습이긴 하나, 아래 우측 사진과 같이 현재에도 여전히 각각의 가게가 나무로 2~3층 짜리 공간을 만들어 물건을 판매하고 근처에서 수많은 목수들이 목공 작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의 방문이 드물뿐더러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현지인 친구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협상을 잘할 수 있다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또 원한다면 직접 주문제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곳에서 나는 오피스 책상을 7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나머지 냉장고나 소파 방석, 그리고 집을 꾸밀 수 있는 장식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타운(town)의 가게들을 방문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선풍기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한 곳에 모여있어,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을 비교하고 협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간판조차 없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많지만,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식품을 발견하거나 원하는 천을 골라 베개 커버나 방석 같은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장소이다.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2000 Supermarket에서는 쓰레기통이나 접시, 유리잔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그렇게 비로써, 나는 화장실 발매트를 구입했다.
화장실 발매트라니. 르완다에서 몇 주간 열심히 이사 준비를 한 소감으로 적절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폭신한 화장실 발매트를 구입하여 바닥에 깔면서, 나의 르완다 생활이 비로써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카가라마의 렌트하우스에 거주할 때는 화장실 발매트를 구입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져서, 커다란 수건으로 이를 대체해서 쓰곤 했다.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드디어 살 곳을 구하고, 침대, 책상, 세탁기, 냉장고, 그리고 부엌에 필요한 용품들을 모두 구입한 후에야, 화장실 발매트까지 생각이 다다르게 되었다.
내가 르완다에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반이 훌쩍 넘었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를 걱정하여 종종 연락을 주곤 한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럭저럭,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비로써 화장실 발매트를 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