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말로 너의 위로가 되어야 할까
우리 가족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화목할까, 화목하지 않을까.
성실하신 아버지와 다정하신 어머니 아래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형제간에 우애 좋게 지냈다라는 문구가 자기소개서의 기본값이었고 그리하여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나는 매사 긍정적이며 원활한 대인관계를 형성했다로 끝맺음되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 돌아본 자기소개서는 진실일까. 아니면 포장일까. 나와는 사뭇 다른 과거를 이야기하는 남동생의 말을 듣다 보면 헷갈리는 지점과 만난다. 여기서부터 일까. 너의 우울은.
대단히 성공한 삶은 아니었으나 시기에 맞게 취업했고 결혼을 했다. 사이좋은 부부, 귀여운 고양이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은 평온했다.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기 바쁜 삶이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는 잊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그래서 우리 가족도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언제부턴가 엄마, 아빠와의 통화에서 남동생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몇 번은 알겠다고 했지만 반복되니 짜증이 났다. 지긋지긋한 장녀의 굴레가 계속되는 거 같아서. 다 큰 애를 언제까지 걱정할 거냐면서 엄마아빠는 당신들의 삶을 살라고, 동생은 동생이 알아서 이겨내겠지라며 짜증스럽게 통화를 마쳤다. 알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할 수 없다. 더욱이 나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더욱 그러하겠지.
부모님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동생과의 통화로 근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동생에게 너무 힘들어 말라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로 위로를 건넸다. 더불어 힘든 감정이 계속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 보는 게 어떨까라는 권유도 함께. 새로운 활동을 하는 동생을 보며 다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터지기 일보 직전의 둑이었고 바늘구멍 하나만 생겨도 무너질 상태였다. 연락이 되지 않는 동생이 걱정돼 전화를 걸었다. 그간 통화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긴 침묵 끝에 물에 잠긴 목소리로 '누나, 사실은 나 많이 힘들어. 병원에 갔는데 우울증이 심각한 수준이래. 잠도 잘 못 자고 온몸이 아파. 밥을 먹을 수도 없어.'라고 말했다. 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잠드는 게 무섭다는 동생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줄 뿐. '부모님을 보면 괜히 화가 나, 그리고 대화를 이어갈 수 없어. 너무 죄송한데 그래도 화를 멈출 수는 없어. 누나가 대신 내 상태에 대해 말해줘. 미안해' 오열을 하면서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미리 알아보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고 토닥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동생이 우울증이라니. 매체를 통해서만 경험했던 어려움을 내 가족이 겪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최근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라는 드라마를 보고 난 뒤라 우울이라는 어려움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몸에난 상처보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욱 오래가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답지 않은 위로나 힘내라는 말은 되려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부모님께 알리자.
주말, 모녀데이트.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네 컷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 동생과 통화한 후에는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엄마와 식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얘가 많이 아프데, 병원도 다니고 있고 약도 먹는데 여전히 힘들데. 잠자는 게 무서울 정도로 수면 중 찾아오는 발작이 고통스럽다고. 엄마아빠와 대화하는 게 힘들다고 하니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장애를 가진 둘째 여동생을 평생 돌보고 있는 엄마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왜 마음에 병이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겠지 라면서. 그런 엄마의 모습이 강해 보이면서 한편으로 한없이 작아 보였다. 동생의 이야기를 알리고 엄마와의 데이트를 이어갔다. 우리가 가라앉아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동생의 우울증을 알게 된 후, 전화가 걸려오면 그저 들어줬다. 이해가 가는 것도 가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힘든 사람은 본인일 테니까. 무조건적인 편이 되는 게, 말을 들어주는 게 같이 살지 않아서 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함께 매일 같이 얼굴을 부딪치고 살아야 하는 부모님과 동생의 관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각자의 방식대로 배려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각자의 방식일 뿐 상대의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우울의 그림자에 우리 집이 잠식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어떤 모습의 위로가 되어야 할까. 안온한 삶에 바람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