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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핍의 임상심리사 Sep 28. 2023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오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일부 잘 알려져 있는 특징적인 증상들이 있지만, 모호하고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증상들도 많다. 때문에 전문가들도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는데 신중을 기하며,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경우, 종종 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단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 장에서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앞서,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오해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눈 맞춤을 잘 하는 아이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눈 맞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보는데 서툰 편이다. 눈 맞춤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눈을 마주칠 수 있지만 길게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보호자는 아이가 청각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오해하기도 한다. 이름을 여러 번 불러도 눈을 잘 마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잘 쳐다본다. 특히 보호자에 한해서 눈을 잘 마주치는 경우는 흔해서 아이가 눈 맞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상대의 눈을 긴 시간 동안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다. 이 경우 눈 맞춤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특징적인데, 지나치게 빤히 바라보는 경향으로 인해 부적절한 인상을 주기 쉽다. 그 외에도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은 눈 맞춤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말을 잘 하는 아이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에도 말을 잘 하는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보통의 또래 아이들보다도 말을 잘해서 어릴 때부터 보호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이 아이들은 어른들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학술어나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를 여러 개 익히기도 해서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어휘나 문장 구성 능력 외에도 발음, 억양, 말의 속도 등에서 부적절한 면들이 자주 발견된다. 발음이 뭉개져서 알아듣기 어렵거나, 억양이 거의 없어 기계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말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거나 빠른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이들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언어를 전혀 학습하지 못하는 아이들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들까지, 언어 능력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보인다. 



상동 행동이 없는 아이

 

상동 행동이 모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에게서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상동 행동이 유난히 독특하고 눈에 띄기 때문에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징적인 증상으로 여겨질만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상동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혹은 어렸을 때는 상동행동에 몰두 했지만 유아기를 거쳐 학령기가 되면서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상동 행동을 보이더라도 하나의 증상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상동 행동의 유무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애착 행동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도 보호자와 애착을 형성한다. 증상이 극심하여 보호자조차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들도 보호자에게 의지하고 위안을 받으려는 시도를 꾸준히 보인다. 다만 그 방식이 독특해서 보호자 외에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이다. 


검사 장면에서도 아이가 보호자로부터 위안을 받으려고 하는 행동들이 자주 관찰되는데, 검사 장면은 아이들에게 아주 낯설고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처음 보는 사람이 무언가를 계속 해보라고 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역시 아이가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보호자에게 "아이가 주로 어떨 때 이런 행동을 하나요?"하고 물어 확인해야 할 때가 많다. 


한편,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은 보통의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한 애착 행동을 보이는 편이다. 보호자에게 안기거나 보호자를 만지면서 정서적 위안을 얻고 심리적으로 의지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별한 능력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 일부는 특정 영역에서 매우 뛰어난 기술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서번트 기술 savant skill 이라고 하는데, 지적 능력이나 적응 수준 대비 유난히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특별한 기능이기도 하고,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고려했을 때도 믿기 어려운 수준의 기능이다. 


대표적인 예로, 기억력, 암산 능력과 같은 인지 영역에서의 기술이 있고, 절대 음감이나 작곡 능력, 창의적이고 감각 있는 미술 실력과 같은 예술 영역에서의 기술 등이 있다. 


하지만 서번트 기술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병원에서도 서번트 기술이 있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지능의 문제가 동반되어 일상생활에서 원만하게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대인 관계 욕구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대인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가장 큰 오해이다. 물론, 많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혼자 놀이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 상당수가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한다. 친구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서툴고,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기대처럼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거나 어그러질 뿐이지 대인 관계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청소년기가 되면 이성 친구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연애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대인 관계의 욕구는 증상이 가벼운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에게서 자주 관찰된다. 


증상이 가벼운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는 성인기에 어느 정도 가까운 대인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이성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하기도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개선될 수 없을까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낫는 병'은 아니다. 환자가 지속적으로 안고 가는 '장애'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때문에 다른 정신과적 병리처럼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통해 완전히 회복되길 기대하기에는 제한점이 있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꾸준한 치료적 개입이 있을 경우 이전 보다 원만한 적응을 보이기도 하고 문제 행동들도 감소시키거나 소거가 가능하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사회기술 훈련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원만히 어울리는 방법을 익혀서 주변 사람들 시선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증상이 가볍고 지적인 능력이 좋아서 증상을 보완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직업을 갖기도 한다. 이 같은 개선의 여지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진단하는 핵심적인 증상은 눈맞춤이나 상동행동, 언어발달 수준과 같이 단편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적 의사소통이나 상호작용 능력의 손상이 더 핵심적인 증상이다. 


특징적인 증상이 부재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면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장애는 쉽게 발견되기도 하고, 긴 시간 동안 발견되지 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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