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장애도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속한다. 과거에는 아스퍼거 장애와 자폐 장애를 구분하여 진단했었지만, 여러차례 연구가 진행되면서 아스퍼거 장애가 가벼운 수준의 자폐스펙트럼장애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되면서 더 이상 다른 장애로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편의상 자폐스펙트럼장애 대신 아스퍼거 장애로 진단하는 전문가가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이 보호자에게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수 있다.
전문가가 아스퍼거 장애로 진단을 내리는 이유는 증상이 가벼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 예후도 좋은 편이고 치료적인 개입도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에 전문가들 간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 아스퍼거 장애로 진단하기도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지능
지능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많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지능이 아주 좋은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닌지, 아니면 반대로 지능이 아주 낮은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닌지 묻곤 한다. 하지만 지능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증상이 아니다. 지능은 그저 각각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자원일 뿐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에는 지능이 아주 좋은 아이들도 있고, 또 보통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지능을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기능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전반적인 인지적인 기능이 좋지 않은데 특수한 영역에서만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어쨌든 그만큼 다양하다. 지능이 높고 낮음에 따라 자폐스펙트럼장애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렵고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에게 지능은 자원이다. 지적 수준에 따라 앞으로의 예후를 추정해볼 수 있다. 당연히 지능이 좋은 아이들은 예후가 더 좋다. 치료적, 교육적인 개입이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기술을 가르쳐도 지능이 좋은 아이들은 더 잘 배우고 더 잘 활용한다. 지능이 좋으니 학습이 잘 이루어지고 학습된 것을 더 잘 쓰는 것이다.
이에 지능 수준에 따라 치료적, 교육적 개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적 수준이 좋은 아이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기술들을 가르쳐 적응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가 흥미 있는 영역을 잘 찾아내어 그 영역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경제 활동을 훌륭하게 하기도 한다.
한편 지적 수준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그 아이의 수준에 맞게 사회적인 능력도 가르치지만) '교육' 보다는 '훈련'을 목표로 하게 된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부적응적인 행동을 줄이고 최소한의 기술을 배워 단순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보통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행동 문제도 심각한 편이다. 상동행동이나 공격성, 자해 등등의 문제들이 극심해 행동 치료가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지적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구분을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장애의 증상이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주요 증상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 능력의 손상이다.
지적 장애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호자에게 애착행동을 보이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다양하게 보이는 편이다. 유아기, 학령기에 접어든 후에도 연령에 안 맞게 순박한 면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접근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풍부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감정들을 주고받는 등 친근한 행동을 잘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적인 접근을 거의 하지 않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큰 차이를 보인다.
반응성 애착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
"제가 아이를 낳고 힘든 일이 많아서요. 잘 안아주지도 못하고 예뻐해 주지도 못했어요.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있으면 자폐처럼 ...그럴 수 있다던데..."
반응성 애착 장애 Reactive Attachment Disorder 는 실제로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아마도 얼핏 보면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보일 것이다. 보호자를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 않고 상호작용도 제한적이다. 정서적 교류도 부족하고 또래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 혹은 반대로 지나치게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다가가고 과도하게 친근하거나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방향이든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의 미숙함을 보인다.
반응성 애착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반응성 애착 장애는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유전적 요인을 타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극심한 사회성 발달 지연을 보이는 것인데, 표면적으로 보이는 양상은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유사하다.
하지만 '잘 안아주지도 못하고 예뻐해 주지도 못했다' 정도의 양육 환경만으로 반응성 애착 장애로 발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보통 반응성 애착 장애는 매우 극단적인 양육환경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우 극단적인 양육환경이란, 영아기 때부터 보육시설에 입소되어 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거나, 보호자가 계속해서 바뀌어서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거나, 학대 수준의 방임과 같이 아이에게 완전히 양육을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폐스펙트럼장애는『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5 판(이하 DSM-5)』에서도 유전적인 요소를 타고나는 장애들이 묶여 있는 신경발달장애 챕터에 속하지만 반응성 애착 장애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부적응을 보이는 장애들이 묶여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챕터에 속해있다.
이를 고려해보면, 요즘에는 반응성 애착 장애 아동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다. 반응성 애착 장애는 과거에 많은 수의 아이들이 보육 시설에 맡겨지면서, 소수의 보육자가 동시에 여러 아이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그저 눕혀놓은 상태로 우유만 주는 정도의 양육밖에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시설에서도 아이 인원 당 필요한 보육자의 인원도 정해져 있고, 그렇게 부적절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맡고 있는 시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국민들의 경제적인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극심한 수준의 방임도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냉정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아마도 보호자들이 우리 아이가 반응성 애착 장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타고나는 장애이기 때문에 증상 개선의 폭이 좁지만, 반응성 애착 장애는 유전적인 요인에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꾸준한 개입이 있을 경우 증상 개선의 폭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떠안으면서까지 반응성 애착 장애이기를 바라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반응성 애착 장애도 아주 극심한 장애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만큼이나 증상 개선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극심한 심리적 외상을 겪은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자의 양육이 박탈되어 사회성 발달이 자폐스펙트럼장애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의 외상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진단은 진단명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단은 전문가들끼리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고, 또 환자에게 어떤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진단명 보다는 아이가 보이는 증상을 바탕으로 어떤 치료를 받는 것이 효과적일지 고심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 충동적인 아이들도 있다. 때문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를 의심해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 능력의 손상 유무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충동적이고 부주의한 경향으로 인해 다른 아이를 배려하지 않고 거칠게 행동하게 될 수는 있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의 손상은 없다.
즉, 산만하고 부주의한 행동, 그리고 감정적으로 충동적인 경향이 또래 아이들을 불편하게 해서 갈등이 빈번할 수는 있어도, 애초에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처럼 또래에 무관심하거나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등의 사회적 능력의 손상은 관찰되지 않는다. 아울러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보이는 특유의 반복적이고 상동적인 행동 문제도 관찰되지 않는다.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일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일지 과도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 두 장애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폐스펙트럼장애라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가 아니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라면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그 증상으로 인한 영향을 넘어선 수준으로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두드러진다면 부차적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적 개입을 받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진단명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 아이가 사회성 발달 지연이 있고,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 문제가 있다면 각각에 대해서 적절한 치료적 개입을 계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분노 조절 장애와 자폐스펙트럼장애
사실 분노 조절 장애라는 진단명은 없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을 일컫기 위해 어느 순간 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되어 온 명칭인 것 같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감정 조절에 서툰 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또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미숙하다.
때문에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해 가야 하는데, 아직 이러한 훈련을 잘 받지 못하거나 훈련을 받아도 차도가 없는 경우에는 계속해서 충동적으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감정조절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흔한 증상 중 하나이므로 굳이 다른 장애의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