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에서 의미 있게 살펴보아야 하는 행동들이 있다. 이러한 행동이 사회성 발달과 어떤 연관이 있고 어떤 면이 지연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면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지고, 치료적으로 어떤 개입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들은 대부분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존재 유무를 개의치 않고 행동하고, 외부 정보 보다는 내부의 감각 자극에 몰두해 독특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사회성 발달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영아기 아이들이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과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아기 아이들은 스스로 신체를 조절하는 것이 미숙한 상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학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거칠고 일방적인 형태의 행동을 자주 보인다.
엄마가 안아줄 때 손바닥으로 세게 엄마의 얼굴을 내리치기도 하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그대로 소변을 보기도 한다. 호기심이 있는 대상 옆에 아빠가 누워있으면 아빠의 배를 찍어 누르면서 기어가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공공장소에서도 기분에 따라 소리를 지르며 웃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또, 누운 상태에서 천정의 형광등을 긴 시간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바닥에 있는 놀잇감을 반복적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잡히는 대로 만져보며 탐색하고 입에 넣는 구강추구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정상 발달의 영아기 아이들은 그와 동시에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반응성도 풍부하다. 사물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의 표정 변화를 살피면서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
엄마가 안아주면 포옥 안기기도 하고 까꿍 놀이를 할 때는 까르르 웃다가 다시 해주길 기대하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기다릴 수 있다. 보호자와 떨어져야 할 때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울음을 터트리고,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한참을 관찰하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울러 상동적이고 감각추구적인 놀이 외에도 여러 가지 놀잇감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탐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인 행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보호자는 하루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 중 일부는 영아기에 정상 발달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이 좋은 반응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영아기 부터 사회적인 자극에 관심을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는 아기가 매우 순하고 손이 가지 않아 키우기 수월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응성이 좋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른 변화가 잘 관찰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편이다. 또 상동적이고 감각추구적인 행동이 다른 아이들보다 과도하여 몰두하고 집착하는 수준으로 나타난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화가 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되새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는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다. 그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감각과 지식이 없거나 빈약할 뿐이다.
우선, 아이의 입장에서 언어는 그리 흥미 있는 도구가 아니다. 애초에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하고 싶은 욕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언어라는 도구를 익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언어적인 자극에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고 따라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 습득이 느릴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직접 가져오거나 떼쓰고 소리를 지르면 얻을 수 있다. (언어 치료를 받으면서 떼쓰는 행동이 줄어드는 이유는 언어의 사용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힘들게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언어는 아이들에게 흥미 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고, 언어가 가지고 있는 요소 자체가 재미있을 것이다.
아이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 혹은 매체나 책에서 들은 문장을 그대로 외워 낭송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을 때는 여러 번 반복해 말하고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사용해 말해주기를 기대한다. 좋아하는 말소리를 차단하거나 상대가 해주지 않을 때는 짜증이 날 것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점차 알아차린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처럼 언어의 사회적 요소를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인물이 간식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다 떨어졌잖아!"하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을 본 아이는, 슬프고 눈물이 나오는 상황마다 맥락과 관련 없이 "다 떨어졌잖아!"하면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게 될 수 있다.
문법을 익히는 것도 유난히 어렵기 때문에 언어를 익힌 뒤에도 "가다", "오다"를 혼동해서 말하거나 "내가", "너가"를 거꾸로 쓰기도 할 것이다.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을 마주치거나 여러 가지 표정을 동원하는 것, 그 사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손짓을 사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것을 일부러 익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열심히 노력해 그것을 배우려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호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보호자는 매일 같이 아이에게 말한다. "눈을 보고 말해야지") 우리가 자동적으로 익혀온 비언어적인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 즉,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인 욕구가 전혀 없는 아이들은 보호자가 여러 차례 불러도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가 들리지 않고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기 위주로 행동한다.
증상이 조금 가벼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보호자가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해도 지금 자기가 몰두하고 있는 것의 즐거움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쉽다.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갈등에 휘말리기 쉽다. 아이에게 언어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도구로 자주 활용된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있는지, 지루해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불쾌해 하지 않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재미있는 것에 치우쳐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앞에 있는 친구를 밀쳐내고 가져올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부족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된다는 생각도 잘 못한다. 우정, 사랑, 존경, 양심 등 사회적인 개념은 아이들에게 생소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것들이다.
아이의 뇌는 사회적인 자극(예: 나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비사회적인 자극(예: 반짝거리는 물건)에 더 민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느끼는 것에 몰두하다 보면 사회적인 요소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자꾸만 잊어버린다.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아이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은 '원래 그런 것'이고, 우리 입장에서 아이는 연령에 기대되는 것보다 더욱 '미숙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