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OP ALBUM of The Year [2018년]

결산글 그 두번째

by 황선업


2018년은 개인 브런치로 매주 제이팝 신보를 소개해 온 덕에 앨범 수나 장르 측면에서 가장 충실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더불어, 이런 음악이 전혀 소개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우리나라에 일본음악에 대한 최신 경향이나 트렌드를 제대로 알려주는 채널이 정말 없구나라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되었는데요. 아무쪼록 이 리스트가 조금 더 ‘요즘 일본음악’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4위 더 페기즈(The Peggies) < superboy! supergirl!! >(ep)


올 초 메이저 데뷔 후 내놓은 작품들의 완성도가 하나같이 높았던 더 페기즈. 2018년을 끝으로 ‘완결’한 챠토몬치를 이을 걸밴드 후보군이라 하면 바로 험프 백과 더 페기즈인데, 전자가 패기와 센스로 승부한다면 이쪽은 탄탄한 기본기가 강점입니다. 요즘은 아무래도 전자에 속하는 아티스트들이 득세하는 시대이다 보니, 반대급부인 이들에게 좀 더 마음이 끌리는 게 사실이네요.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절묘한 수미상관 구성이 놀라운 ‘Glory’를 필두로, 여섯 트랙의 길지 않는 시간 동안 일체의 요령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세 멤버의 모습이 목격되는데요. 다변하는 리프가 활기를 불어넣는 ‘ネバーランド(Neverland)’, 어그레시브한 서정성 너머 송라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살짝 포개놓은 ‘遠距離恋愛(원거리연애)’ 등 장차 대성할 조짐이 산재해 있습니다. 각 요소들이 꽉 맞물려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재능을 받쳐주는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이겠죠. 이처럼 기초 공사가 잘 되어 있어 보다 롱런할 것 같은 그들,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13위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 Sleepless in Brooklyn >


자신감이 가득하네요. 불규칙한 리듬과 노이즈틱한 디스토션, 중저음으로 일관한 ‘KABUTO’를 싱글로 발매한 것을 보면 말이죠. 1절까지 기타 리프로만 일관하는 ‘Mosquito Bite’는 또 어떻고요. 전자음과 록이 맞부딪혀 불꽃이 이는 ‘I don’t believe in you’까지 언급하자면 입이 아픕니다.

이전까지 구축한 자신들의 스타일을 공고히 하는 듯, 이를 해체시켜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밴드의 모습을 보자면 역량과 센스가 모두 최고조에 올라온 듯 보입니다. 7번째 앨범이니 폼이 떨어질 만도 한데, 다채로움과 스케일 측면을 보면 역대 최고네요. 일정한 형식에 머물지 않은 구성, 써보지 않은 소리를 지속적으로 탐하는 음악적 욕심, 강력한 대중성의 멜로디 등 모두가 쉬어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치고 나가는 그 추진력이 놀랍습니다.


런 디엠씨(RUN DMC)가 머릿 속을 스치는 록-랩 트랙 ‘MILK’, 인더스트리얼의 황폐함을 담아낸 ‘spit!’ 등 하드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대목이 눈에 띄며, 그 와중에 프로모션 트랙으로는 가장 자신들스러운 시원스런 가창의 ‘アルペジオ(아르페지오)’를 간택하며 밸런스 조절에도 신경 쓴 모습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트랙은 역시 ‘SNOW SOUND’였는데요. 1980년대 뉴웨이브의 흔적을 가득 담아낸 신스록과 정확히 부합하는 대중적인 선율. 팀이 좀처럼 활용하지 않는 ‘제이팝’스러운 코드진행이라서 그런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친숙함과 낯섦을 교차시키고, 쌓음과 무너뜨리기를 반복함으로서 성취해낸 규격화의 거부!


12위 오랄 시가렛(THE ORAL CIGARETTES) < Kisses and Kills >


사실 여름에 라이브를 보지 않았다면 꼽지 않았을 앨범이기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이 작품의 진가를 알지 못했거든요. 신시사이저스러운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容姿端麗な嘘(용자단려한 거짓말)’와 올해 탄생한 최고의 앤썸 ‘Black Memory’. 이 두 곡은 계속 유망주라 불려왔던 이들에게 ‘록스타’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결정적 트랙으로 자리합니다. 이 외에도 인트로의 16비트 피킹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もういいかい(이제 됐니)?’와 여성 코러스의 활용과 그루비한 리프 운영이 킬링 포인트인 ‘What you want’ 등의 수록곡들은 그들이 과연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맘껏 상상하게끔 합니다.


일부 라이브 비중이 큰 팀들의 경우 스튜디오 앨범으로는 그 매력을 담아내지 못하곤 하는데, 이들의 경우는 확실히 달라요. 스피디한 흐름 속에서 확실히 주도권을 잡고 곡을 이끌어 나가는 야마나카 타쿠야의 존재감은 시각의 부재에도 장대한 힘을 보여줍니다. 가창의 선명함을 중심으로 구성과 소스에 조금씩 변용을 줌으로서 부여되는 몰입감은 발군. 2010년대 초반 절정에 달했던 록킹온계의 기세가 조금은 주춤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좋은 팀들이 발굴되고 있음을 이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2018년이라는 해를 설명하기 위한 말들이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분명 “오랄 시가렛이 완연히 헤드라이너급 밴드로 성장한 해”일 겁니다.


11위 키린지(Kirinji) < 愛をするだけ、すべて(사랑을 하는 한, 전부) >


키린지도 벌써 메이저 데뷔 20주년이네요. 키보드 코토링고의 탈퇴 후 5인조 체제로 첫선을 보이는 13번째 작품입니다. 최근 급속히 늘어난 국내 시티팝 마니아들에게 어필할 만한 수록곡들로 빼곡한데요. 한참 후배인 신예래퍼 카리스마닷컴(Charisma.com)와 함께 빚어낸 몽환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스코 ‘AIの避難行(AI의 피난행)’, 여러 악기들의 매력을 어느 하나 깎아내지 않는 숙련된 편곡과 애수 어린 백킹 보컬로 어른의 희망을 노래하는 ‘明日こそ(내일이야말로)/It’s not over yet’와 같은 노래들은 예전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도, 최근 시티팝 리바이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에게도 호응을 받기에 충분한 곡입니다. 인트로의 신스루프가 귀를 간질인다 싶을때 치고 들어오는 풍성한 보컬 트랙이 팀의 저력을 상기시키는 ‘時間がない(시간이 없어)’, 예전의 정서와 가장 맞닿아있는 스무드한 느낌의 ‘After the party’ 역시 주목할 만한 노래들이죠. 완성도 높은 어덜트 컨템포러리임과 동시에 힙스터들의 구미 역시 동시에 자극하리가 확신합니다. 역시 구관이 명관!


10위 모노 노 아와레(MONO NO AWARE) < AHA >


키린지가 시티팝의 어덜트 컨템포러리화 였다면, 이쪽은 서프 뮤직과 시티팝의 결합에 가깝습니다. 옛 유산의 탐구가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일테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현 시대의 자화상을 셔플 리듬에 실어낸 ‘東京(도쿄)’는 밴드의 정수라 할만한데요. 클린톤의 기타를 리듬 악기들이 탄탄히 받쳐주는 것이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를 연상케 합니다.


동양적인 선율의 전자음을 깔고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そういう日もある(그런 날도 있어)’와 같은 업템포가 있는가 하면, 공간계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별 후 부유하는 청춘을 그려낸 슬로우 템포의 ‘Doughnuts’의 절규도 이채롭습니다. ‘勇敢なあの子(용감한 저 아이)’는 이런 카테고리의 꼭대기에 있는 레전드 핫피엔도(はっぴえんど)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죠. 젊은 세대의 공허함을 과거의 유산에 실어냄으로서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려하지만 그래봐야 메워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의 연주와 노래. 남는 것은 탄탄한 음악뿐이네요.


9위 후지와라 사쿠라(藤原 さくら) < Red >(ep)


열도의 음색깡패이자 아뮤즈의 공주님. 후지와라 사쿠라의 2018년은 ‘일본의 노라존스’라는 홍보문구로 인해 원치 않게 갇혀버렸던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한껏 넓힌 해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프로듀서 마바누아(Mabanua)의 조력으로 마감질한 여섯개의 트랙은, 기타를 든 재즈보컬의 아티스트를 파퓰러한 감성을 지닌 친숙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찰랑대는 키보드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유려한 보컬로 “어제가 마지막 기회였던 것처럼, 날 데려가”라고 노래하는 유혹의 노래 ‘Lonely night’, 느긋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また明日(내일 봐)’처럼 전반적으로 가을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곡들이 이어지죠. 동요같은 팝을 의식해 만들었다는 ‘New day’는 세대를 가리지 않을 곡으로, 록적인 어프로치가 가미된 ‘Dear my friend’는 아티스트의 장르 소화력을 증명하는 곡으로 각각 자리합니다. 앞서 발매된 < green >도 좋은 작품이었지만, 새로움과 동시에 자신의 장점이 보다 잘 드러나 있는 이 쪽에 더 손이 가네요. 들으면 들을수록, 7월에 있었던 내한공연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 커져갑니다.


8위 요시자와 카요코(吉澤 嘉代子) < 女優姉妹(여배우자매) >


“싸우고 있는 당신은 아름다워”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ミューズ(Muse)’는 자신이 위대함을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눈부심은 상처의 수만큼이라는 말과 함께요. 언어의 위대함을 아는 싱어송라이터의 네번째 정규작은, 이처럼 삶의 여러 이야기들을 판타지화 시킨 이색적인 세계관을 펼쳐놓습니다. 이로 인해 들리는 소리들을 상상해 이미지로 치환시키는 재미있는 경험이 가능한 작품이죠.


매일 피가 흐르지 않는 싸움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우주전사로 분하는 이야기를 담아낸 ‘月曜日戦争(월요일전쟁)’, YMO의 대표적인 서포트 뮤지션이기도 했던 곤도 토모히코가 참여해 보다 이국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怪盗メタモルフォーゼ(괴도메타모르포제)’, ‘月曜日戦争’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타나카 미사키와 함께 좋아하는 사람을 노래하는 듀엣곡 ‘洋梨(서양배 : 用なし(요오나시, 볼일없음)와 같은 발음임을 이용한 말장난)’ 등 편곡의 다채로움과 함께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아티스트의 스펙트럼을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합니다.

그 와중에 사사로운 것들은 빼고 ‘아직 너의 흔적이 남아있는 어제를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残ってる(남아있어)’는, 반드시 정형화된 보컬만이 답이 아님을 증명하는 키 트랙. ‘いかないで(가지마)’를 반복해 외치며 아쉬움의 격정을 더해가는 구절엔 소름이 살짝 돋네요. 이렇듯 각 트랙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알게 됩니다. 인간은 이렇게나 단순하고도 복잡한 존재라는 걸요.


7위 레이(Rei) < REI >


선굵은 리프로 좌중을 압도하는 로큰롤 ‘Lazy loser’과 블루스감이 만재한 ‘My name is Rei’만 들어도 알 수 있듯, 작품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1960~70년대가 낳은 유산들입니다. 조니 윈터, 아서 블라인드 블레이크, 제임스 코튼과 같은 블루스 거장들의 음악을 곁에 두고 성장해 온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의 첫 정규작은, 그 고전의 위대함을 자신의 방식대로 전파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전 사운드의 도입에 있어 그 깊이가 절대 얕지 않으며, 오리지널리티와 대중성 또한 겸비해서 그런지 수작이라 칭하기에 충분한 완성도죠.


서프 뮤직과 시티팝이 서로의 자리를 넘보는 사인 청량한 톤의 솔로잉이 난입하는 ‘Follow the big wave’, 테일러 스위프트의 초창기를 연상케 하는 컨트리 송 ‘Silver shoes’, 후반부의 합주가 보여주는 폭발력이 듣는 이를 압도하는 ‘Planets’와 같은 곡들은 장르의 재해석을 떠나 또 하나의 재능있는 뮤지션이 출연했음을 알리는 선언문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기타실력 또한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The refelction’과 ‘Before sunrise’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라는 컨텐츠를 이 이상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 싶습니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봤던지 드래곤 애쉬, 게스노키와미오토메, 플라워 플라워, 자이니치 펑크, 소일앤핌프세션, 챠이 등 선후배 뮤지션들의 지원 또한 이어졌죠. 뮤지션으로서의 꿈이 멋지게 현실화 된, 놓치면 아쉬운 한 장입니다.


6위 와니마(WANIMA) < Everybody!! >


한마디로 ‘멜로디불감증을 치료해 줄 단 하나의 앨범!’ 스카펑크에 적을 둔 탄탄한 연주는 차치하더라도, 러닝타임 전체가 후크라 느껴질 만큼 탁월한 송라이팅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이어지는 켄타의 하이톤 보컬과 캐치한 선율이 조합이 대중성을 완비하고 있으며, 이를 적절히 받쳐주는 코러스의 활용은 큰 스케일감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이죠.


‘JUICE UP!のテーマ’로 시작해 ‘OLE!!’, ‘シグナル(Signal)’의 초반부가 가공할만한 중독성을 선사하며, 디지털 싱글로 선보인 바 있는 ‘ヒューマン(Human)’과 ‘CHARM’, ‘ともに(함께)’를 비롯해 느린 곡으로도 승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슬로우 템포 'SNOW' 등 듣는 이의 혼을 쏙 빼놓을 공격 일변도의 곡들이 즐비합니다. 앨범에 실려 있는 쉽고 보편적인 노래들을 듣다 보면 조금이라도 꼬아 놓은 곡들을 점차 멀리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그 점은 사전에 고려하시기를.


5위 오레사마(ORESAMA) < HI-FI POPS >


최근 시티팝을 위시해 불어닥친 레트로 붐과, 원체 활발했던 서브컬쳐 신의 멋진 만남. 디스코와 제이팝을 교배시킨 밀도있는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비주얼의 결합을 통해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완벽히 탄생시킨 듀오의 두번째 정규작입니다. 첫 곡 ‘HI-FI TRAIN’의 인트로에서 울려퍼지는 둔탁한 베이스의 슬랩과 찬란한 빛깔의 신시사이저는 일찌감치 자신들의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있죠. 이와 동시에 듣는 이를 단숨에 휘감는 것은 소리에 머물지 않는 비주얼적 매력입니다.


이처럼 음악은 과거의 테이스트를 품고 있으나, 일러스트의 적극적인 활용 및 색감있는 뮤직비디오, 보컬 퐁의 깜찍한 비주얼과 쉬운 안무가 소리에서 결여된 동시대성을 넘치도록 메우고 있습니다. 유행을 겹쳐내 최상의 시너지를 창출한 이들이기에 올해의 앨범 중 한자리를 수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젊은 세대들의 디지털 디깅에서 비롯된 시간여행은 이렇게 엄청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네요. 음악의 수평전개가 만들어 낸 가장 이상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야심작입니다.


4위 세로(cero) < Poly Life Multi Soul >


뛰어난 음악적 역량으로 이미 인디 신에서는 입소문이 날대로 난 3인조 밴드의 네번째 정규작입니다. 블랙뮤직과 시티팝, 인디록의 결합을 통해 지적이면서도 몽환적이며, 도회적임과 동시에 복고적인 일면을 보여주며 다채로운 매력을 소환해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수록곡 ‘魚の骨 鳥の羽根(물고기의 뼈 새의 깃털)’ 초반부의 젬베와 코러스는 이국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보다 리듬 중심의 결과물을 만들고자 한 의도가 살짝 엿보이는데요. 이러한 기조는 앨범 전반에 걸쳐 있으며, 불규칙하게 반동하는 비트운용을 통해 예측불가한 여러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그려냅니다.


신시사이저와 와우페달, 혼 세션을 중심으로 풀어낸 새로운 알앤비 공식 ‘Double Exposure’, 아프리칸 뮤직을 모티브로 주술이나 의식을 연상케 하는 역동적인 트랙 ‘レテの子(레테의 아이)’, 펑크(Funk)와 재즈를 빌어와 앨범의 주제의식을 스케일 있게 풀어내는 8분여의 대곡 ‘Poly life multi soul’ 등 창의적인 소리의 향연이 1시간여를 채워냅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보다는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한다는 느낌에 더 가까운, 인간 내면에 잠자고 있는 소리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을 일깨운다고 할까요. 오리콘 차트 데일리 1위, 위클리 4위라는 성적이 보여주듯, 상업적으로도 두각을 드러낸 밴드의 최고작입니다. 듣고 난 후 느껴지는 여운은 그야말로 타 작품과 비교불가입니다.


3위 사나바건.(Sanabagun.) < Octave >


대기를 덥히는 퍼커션과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혼 섹션, 아날로그틱한 키보드와 기타. 그리고 이에 더해지는 스캣과 랩. “Thank you!”라는 한마디로 4분간의 여정을 닫는 수록곡 ‘L.G.M’은 올해 일본 블랙뮤직이 배출한 최대 성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요 몇년간 흑인음악의 상승세와 함께 여러 리얼세션 기반의 힙합그룹이 부상했는데, 올해는 이 작품이 그 신을 평정하는 모양새입니다.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 관악기의 대규모 밴드가 빚어내는 풍성함은 재즈에 기반한 즉흥성과 맞물려 일부 공식화된 결과물에 일침을 가하는 유희를 펼쳐내는데요. 수준 높은 합주에 여러 감정을 덧대 역동성을 배가시킨 보컬 타카이와 료와 MC 이와키 토시키의 지배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펑키한 기타와 청명한 플룻, 토크박스를 활용한 보컬의 삼박자가 이들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8 mans’, 옅게 깔리는 신시사이저와 선명한 브라스의 대비가 재미있는 ‘雨香(우향)’, 노이즈 낀 피아노가 쓸쓸한 터치를 그려내는 ‘As time goes by’ 등 일정한 톤에 갇히지 않는 다양한 스타일이 귀를 즐겁게 합니다. 누군가가 올해 일본음악 신이 작년에 비해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 이 앨범을 들려주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싶네요.


2위 테토(teto) < 手(손) >


헤비 로테이션 오브 더 이어.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 말고도 < dystopia >(2017)에 실려 있는 ‘暖かい都会から(따뜻한 도시에서)’ 부터 시작해, 올해 테토는 저의 영웅이자 이상향이었죠. 시스템과 부자유로 점철된 케이팝 신과 명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이 격정의 아마추어리즘이 속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었달까요. 정신없는 삶 속에서 어느덧 자신을 잃어버린 이의 절규 ‘拝啓(삼가아룀)’, 획일화 된 의무교육에 대한 분노와 격정을 담아낸 ‘洗脳教育(세뇌교육)’, 안정을 추구하지만 결코 안정될 수 없는 일상에서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송가 ‘手(손)’까지.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은 굳이 잘 부르려고 하지 않는 노래와 굳이 정돈하려 들지 않은 연주이기에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입니다.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모난 곳을 둥글게 깎아 나가는 이들에게 “그 모난 곳이야말로 진짜 너야”라며 쓰러질 듯이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방랑자의 단말마. 로우파이의 디스토션을 그라운드에 기저에 깐 50여분간의 폭주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는 시대에서 지금만을 부르짖습니다. 프론트맨인 코이케 사다토시의 폭격과 같은 보컬은 무의미함으로 뭉쳐진 송곳으로 분해 우리가 채 말하지 못했던 정곡을 수시로 찌르며, 이를 받쳐주는 선이 굵은 선율과 연주는 의외일 정도로 대중적인 연출을 가미합니다.

지금 시대이기에, 지금의 그들이기에 발할 수 있는 비범함으로 꽉 차 있는 이 한 장.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한때 모두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만의 비범함을 다시금 꺼내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잘 다듬어지고 훈련된 이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거칠고 울퉁불퉁하기에 부딪히는 단면적이 많은 날것의 매력. 이로 점철된 그야말로 날것의 마스터피스!


1위 오리사카 유우타(折坂 悠太) < 平成(헤이세이) >


단연 올해의 발견. 사실 올해 7월에 후지와라 사쿠라와 함께 내한하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결국 휴가가 겹쳐 공연도 보지 못했죠. 그러고 두 달여가 흐른 뒤 접하게 된 이 작품은 저에게 큰 충격과 후회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첫 곡 ‘坂道(언덕길)’ 부터가 그렇습니다. 창법은 뭔가 과거로 가 있고, 반주를 자세히 들으면 재즈와 펑크, 보사노바가 뒤섞여 있고 악기들 또한 현대와 민속 악기들이 뒤섞여 굉장히 이국적인 인상을 자아냅니다. 이어 스윙 리듬과 피아노, 비브라폰의 조화가 요들송과 민요를 오가는 가창과 맞물려 굉장한 흡입력을 자랑하는 ‘逢引(밀회)’도 반전의 연속. 이처럼 크로스오버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실험작임과 동시에 대중성 또한 놓치지 않은 그야말로 ‘대단한’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恋(사랑)’로 대표되는 호시노 겐의 블랙뮤직 작풍과 토쿠마루 슈고의 편곡, 더 붐(The Boom)의 ‘島唄(섬노래)’에 담겨 있는 토속성이 한데 버무려져 있다고 할까요. 리스크가 클법도한 시도가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데에는, 아티스트 본인이 보여주는 독특한 감성도 한 몫합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만나 살기로 한 이 마을에 불어주게’라고 노래하는, 관조적이면서도 절실하고 애달프면서도 힘찬 ‘さびしさ(쓸쓸함)’에서의 그 목소리. 얽매임 없는 바람과 같은 자유에 책임을 다한다면, 그 바람이 마침내는 단단한 돌에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네요. 올해 모든 앨범 중 딱 한 장을 꼽자면, 저는 이 작품을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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