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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Nov 17. 2019

세계속에 파고든 KPOP, 그 성과의 이유

KPOP, 정말 세계적인 트렌드인가요?

* 본 글은 빌보드코리아매거진 창간호에 게재된 글을 옮겨온 내용입니다.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미국도 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원더걸스가 조나스 브라더스(Jonas Brothers) 투어의 오프닝 무대에 섰을 때도, 외국인들이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다함께 말춤을 췄을 때도, 투애니원과 엑소가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케이팝 스타들의 소식들이 각국의 매체를 수놓고, 세계 유수의 공연장 및 페스티벌을 장식하는 등 케이팝의 위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서브컬처에 가까웠던 지난날의 인상과는 달리, 확실한 주류문화이자 어디서든 존재감을 어필하는 컨텐츠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현 열풍의 모태가 되는 한류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에이치오티(H.O.T)와 엔알지(NRG)가 보여준 중화권에서의 돌풍과 보아를 이어 일본을 접수한 카라와 동방신기 등 2000년대 초부터 해외에서의 낭보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 흐름은 아시아에 머물지 않고 여러 대륙으로 뻗어 갔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 차 머물렀던 10년 전 칠레에서도 소녀시대의 ‘Gee’ 무대를 커버하던 10대 청소년들은 존재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니아 문화 간판을 떼고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해 버린 셈이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걸까.

JYP의 야망에 희생당한 원더걸스... ㅠㅠ

이 현상엔 워낙 많은 것들이 얽혀 있어 그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의 ‘케이팝’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 대한 언급이 선행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춤과 노래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10대 기반의 컨텐츠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의 구축이다. 사실 에이치오티(H.O.T)와 같은 1세대 시절에는 별다른 오디션 없이 알음알음 인재를 찾아 결성되는 대로 단기간의 연습을 거쳐 데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 JTBC 예능 < 캠핑클럽 >에서도 언급된, 길거리 캐스팅 후 별도의 연습기간 없이 바로 데뷔한 이효리의 일화는 대표적인 사례.


이후 아이돌 산업은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몸집을 불려갔다. 수요가 몰리니 자연스레 온 매체와 자본이 주목하는 레드오션으로 변모한 것이다. 스타가 되길 원하는 지망생들은 나날이 늘어갔고, 대중은 비슷비슷한 그룹들에 피로감을 느끼며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요구했다. 그렇게 아이돌은 고도의 테크니션으로 자연스레 향해갔고, 기획사는 보컬부터 댄스, 연기나 작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로 분해 본격 인재양성에 돌입했다. 자체평가를 진행해 수많은 연습생 중 옥석을 가려내고, 그렇게 탄생한 그룹은 케이팝의 특징 중 하나인 화려한 퍼포먼스 역량을 완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트레이닝 시스템은 이젠 아이돌을 키우는 회사에게 있어 필수조건으로 정착한지 오래. 그렇게 제작된 그룹들은 아시아를 넘어, 원 디렉션(One Direction) 이후 10대들의 우상이 부재한 팝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드레이크(Drake)나 미고스(Migos), 포스트 말론(Post Malone), 쥬스 월드(Juice WRLD) 등 뚜렷한 기승전결 없는 스트리밍용 음악이 정착한 최근의 미국이다. 열정적인 군무와 뛰어난 가창력, 포인트가 확실한 총천연색 음악이 틈새 시장으로 파고들며 일련의 팬덤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음악적 측면은 또 어떤가. 사실 ‘케이팝’이라는 간판을 단 노래들로부터 한국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은 한국어가 유일하다. 영미의 트렌드를 기반으로 하되 결과적으로는 어떤 나라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은 무국적성이야말로 카테고리가 가진 특징이자 매력일 터. 이것이 본격화된 시점은 바로 SM이 ‘송라이팅 캠프’, 통칭 ‘송캠프’라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다.  


송캠프의 보편화 결과 모든 아이돌 노래들이 비슷비슷해졌다;;


기존에도 공동작곡 등의 협업은 있었다. 하지만 ‘송캠프’는 이러한 틀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작업방식이었다. 서로 안면이 없는 여러 국적의 작곡가들이 한 스튜디오에 모여 비트와 멜로디를 주고받아 곡을 완성해 나간다는 개념. 이를 통해 SM은 현지 트렌드를 보다 빠르게 흡수했으며, 뮤지션간 시너지 창출을 통해 소속 아티스트에게 부합하는 스타일을 구축해 갔다. 국가간 차이에서 비롯되는 정서의 상이함이나 어색함은 이때 완전히 무너졌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현재 케이팝 결과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크레디트는 이미 외국 작곡진들로 채워진 지 오래.


더불어 ‘한국음악’의 존재감을 일깨움과 동시에 모든 기획자들에게 SNS의 파급력을 각인시킨 싸이의 활약이 있다. 그의 히트는 사실 지금 말하는 케이팝과는 다른 노선이다. 다만 한국 가수도 충분히 빌보드에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고, 그 매개체가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임을 보여주며 케이팝이 갖추어야 할 전략의 모체를 구체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첫번째 프로모션 창구이자 성과지표는 유튜브에 업로드한 컨텐츠의 조회수이며, 19주 연속 빌보드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Old town road’가 틱톡(Tiktok)으로 대표되는 밈(Meem)을 통해 인기를 구가하는 등 차트에 있어 SNS의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노래가 먼저 유명해지는게 아니라 이런 놀이가 유행하고 그에 부수적으로 노래도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

이렇게 콘텐츠와 홍보창구가 정착된 2010년 이후 SM과 YG, JYP를 필두로 케이팝의 기세는 어느 정도 정점을 이루었다. 빅뱅은 몇차례 월드투어를 개최했고 엑소 역시 1억뷰가 넘는 영상을 10개 이상 보유, 트와이스 역시 걸그룹 명가의 자존심을 이으며 아시아권에서 승승장구를 이어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 언어, 문화적 한계로 인해 케이팝은 일정 울타리 안에 있었다. 파이를 키우지 못한 채 이미 개척된 시장을 놓고 땅따먹기를 하던 중, 아예 그 한계선을 새롭게 정의한 영웅이 탄생하니, 그것이 바로 BTS다.


그들도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힙합 이미지를 위시한 < No More Dream >(2013)을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흔한 그룹 중 하나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지지부진한 성적이 몇 년이나 이어졌을 정도. 그렇게 데뷔 6년이 지난 지금의 업적은 가히 눈부시다. 한 해에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두번이나 차지한 최초의 한국 아티스트이자 최초의 외국어 앨범, 꿈의 무대와도 같은 그래미 어워드의 시상자 참석,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의 컴백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토크쇼 출연, 여기에 빌보드 뮤직 어워드 Top Social Artist를 넘어 본상인 Top Duo/Group 수상까지. 이 ‘21세기의 비틀즈’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중이다.


이때만해도 퍼포먼스는 좋으나 좀 촌스럽다 싶었는데...

솔직히 필자는 BTS가 실력적인 측면에서 다른 보이그룹에 비해 유별나게 특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견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보이그룹/걸그룹 신은 상향 평준화 정착되어 단순히 실력만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 시장이지 않나 싶다. 대신 차별점을 언급할 수는 있다.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SNS 활동이다.


이들은 팬카페와 트위터, 블로그, 공식 유튜브 채널과 브이 라이브(V live)등을 통해 데뷔때부터 꾸준히 콘텐츠를 쌓아왔다. 준비 과정부터 활동모습, 자체 예능에 이르기까지. 그러던 중 SNS의 파급력이 궤도에 오르며 전세계와 연결되었고, 격렬한 퍼포먼스로 관심을 가지게 된 해외 팬들에게 있어 그 볼거리들이 입덕의 입구로 작용했다. 여기에 앨범과 뮤직비디오간 연계되는 스토리텔링은 덤. ‘덕질할 수 있는 요소’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룹의 서사와 멤버들간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항상 즐길거리를 원하는 팬들에게 있어 그들의 SNS 활동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팬덤인 ‘아미(Army)’의 존재감이다. 어느 가수를 봐도, 팬클럽이 이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속에서 BTS는 항상 아미를 이야기하고, 아미와 소통하고 교감하려 한다. 그렇게 팬덤과 가수는 서로가 무한한 신뢰의 존재로 분한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직접 써 내려가는 가사다. 청춘의 불안감이나 아픔을 우울감이나 냉소가 아닌, 긍정적으로 해소시켜 주는 언어들. 흔히 케이팝 가수들에게 따라붙는 ‘제작된 공산품’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도 그들은 비교적 자유롭다. 진짜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세대 감성의 진정성을 발하고 있는 덕분이다.


10대들은 어디를 가나 10대들이다. 자신의 날개를 펴지 못해 아등바등한다. 기성세대의 속박 아래 있고, 자유를 갈구하지만 그 울타리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좌절하고 상처받는 질풍노도의 시기.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노랫말에 눈물 흘리고 감동을 받고,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케이팝의 가사는 의미보다 발음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의미전달이 불가능하기에 반복어구나 독특한 어감으로 중독성을 담보하는 것이 보다 경쟁력 있기 때문.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나 샤이니의 ‘ring ding dong’ 등은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로 오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음악이 오히려 영미권에 더 큰 파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그래서 많은 바를 시시한다. 케이팝에서 하나 남은 ‘케이’를 지우기는커녕 확장시켜 완성한 자신들의 정체성. 시장진출을 위한 전략보다 전하고 싶은 진심을 담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 타국의 언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명제였던 셈이다.


그렇게 결집된 미국의 아미들은 본격적으로 한국 팬덤의 행동양식을 이식받기 시작했다. 음반이 몇백만장씩 팔리던 예전에는 녹록치 않았겠지만, 지금처럼 피지컬 시장이 축소된 음반시장에서 팬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빌보드 또한 예외가 없다는 것을 BTS의 팬들은 증명했다. 빌보드 200 차트 1위라는 대업이 그 전리품이다. 이처럼 아티스트를 위한 스트리밍과 앨범구매의 집단행동은 해외의 케이팝 팬덤에서 볼 수 없던 행동이었다. 아니, 사실 있다고 하더라도 영향을 줄 정도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렇게, BTS는 케이팝이 미국 사회 내 하나의 트렌드로 인정받고 정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 케이팝의 위상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레드 벨벳, 몬스타 엑스 등이 뒤를 이어 서구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블랙 핑크는 코첼라에서 환상적인 무대로 수많은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는 케이팝 부문을 별도 시상하며 그 영향력을 인정했으며, 수많은 매체와 해외 스타들은 한국의 음악을 전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한국 아이돌 스타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대단하고 멋지며 존경할 만한 결과물인 것이다.  


거대해진 시장에서의 과열경쟁은 질적 성장을 불러왔고, 피나는 노력과 절제의 시간들은 SNS로 인해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렸던 미국의 팝시장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안에는 아티스트의 차별화를 위한 기획자들의 수많은 고민과 종합적인 제작 시스템, 보다 좋은 음악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 등 관계자들의 ‘피 땀 눈물’이 선명하게 어려 있다. 그 안에서 한국적인 요소로 진정성을 담아내려 한 어느 한 그룹의 독보적인 행보는, 시대의 바람이 요구하는 것이 분명 존재함을 증명하며 세계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강하게 빛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BTS와 케이팝 자체의 성과를 따로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서구권 깊숙이 주류로서 파고 든 그룹은 이들이 유일하다. 더불어 케이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대형 기획사들의 비리와 범죄 연루 사실은 오랜 시간 쌓아온 탑이 모래성은 아닐지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새는 날아 올랐어도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아직 기성세대의 10대 착취산업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케이팝 그룹들이 탄생하기를 바란다. 프로덕션에 매몰되는 순간 행동반경은 좁아지고 한계는 찾아온다. BTS가 이와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언어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 생각을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한 덕분이었다. 이미 국경이나 언어는 무너진 지 오래다. 더 이상 얄팍한 전략으로는 세계인의 가슴을 뒤흔들 수 없다. 자신들의 언어를 주체성 있게 퍼뜨리고 이에 책임질 수 있는, 위대한 인플루언서로서의 스타들이 케이팝의 주류가 될 때, 그때야말로 세계속에 케이팝이 정착했음을 자랑스럽게 천명할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그 순간이, 그렇게 멀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2019년 8월, 대중음악 필자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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