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OP ALBUM of The Year [2019년]

총 14장을 꼽아봤습니다.(배치는 ABC 순)

by 황선업


요즘 좋은 앨범은 차트만으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디깅, 디깅, 디깅만이 살길이죠. 들을 음악이 없을수록 더더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되는 겁니다. 올해로 9번째 일본음악 결산. 아쉽게 금년부터는 대중음악웹진 IZM에 게재되기 어렵게 됐지만, 그래도 이 의미있는 작업은 지속해야겠죠.


요즘 일본음악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제이팝 팬들은 일본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어 일부 크게 히트한 아티스트들을 빼고는 전혀 트렌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하루이틀일은 아닙니다만 국내에서 주로 언급되는 아티스트들의 평균 활동기간을 산정해보면 20년은 훌쩍 넘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한창 일본음악 붐이 일었던 시기의 음악과 지금의 음악은 분명 그 궤가 다르다 보니 기존의 일본음악 팬들은 요즘 음악을 듣지 않고, 제대로 폭넓게 전해주는 매체가 없다보니 아이돌이나 일부 단면만 보고 전체 일본음악이 후려쳐지는 안타까운 장면을 자주 목격하고 있습니다. 참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바로잡고 좋은 일본음악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나날히 깊어집니다만, 가용시간과 체력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네요.


올해는 총 14장을 뽑아봤습니다. 장르적으로도, 신구의 조화를 봤을때도 꽤나 재미있었던 올 한해 음악신이었습니다. 확실히 록킹온 계열 밴드들은 2010년대 초중반만큼의 기세를 내지 못함은 확실해졌으며, 블랙뮤직의 침투가 보다 날카롭고 선명하게 이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스트리밍은 올해로 완전히 정착했으며,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와 버추얼 유튜버들의 습격은 그 기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죠.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인 일본의 음악신, 제가 뽑은 2019년의 앨범은 어떤 것들일지 한번 확인해 보시죠.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

< aurora arc >



이들의 오랜 팬이었다면 최근 몇 년의 행보가 굉장히 당황스럽고 이색적이었을 겁니다. 존재의 신비함을 한 축으로 활동해왔던 그들이 점점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 과정. < RAY >(2014)와 < Butterflies >(2016)를 통해 전자음악과의 결합을 감행해온 그들은, 스트리밍을 개시하고 디지털 싱글을 연달아 선보이는 등 활동형태마저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뭐 이건 버전 2.0 정도가 아니라, 밴드 명 앞에 신(新)을 붙여도 할말없을 정도의 변화. 그리고 근 5~6년간 서서히 전진해왔던 그들이 완벽하게 진화했음을 천명하는 앨범이 바로 이 9번째 정규작입니다.


무엇보다 노래들의 날카로움이 돌아왔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던 아레나 록 지향의 ‘Aurora’나, ‘Karma’가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아이리시의 이국적인 사운드를 도입한 ‘月虹(달무지개)’, 특유의 감수성이 듬뿍 묻어나는 ‘ジャングルジム(정글짐) 모두 나아가는 방향은 다르나 그 모양과 빛이 어느 때보다 명징합니다. 무엇보다 3곡의 신곡을 빼고는 모두가 프로모션 용으로 선보인 바 있기에 그 밀도 또한 어느때보다도 높게 느껴지죠. 신구의 장점을 이렇게나 올바른 방향으로 조합해 냈다는 점, 긴 러닝타임에도 어느 하나 흘려버릴 곳이 없다는 점, 정말로 칭찬할 곳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파이브 뉴 올드(FIVE NEW OLD) < Emulsification >


전작 < Too Much Is Never Enough >(2018)을 좋게 들었기에 기대했는데 역시나. 제가 접한 작품 중 블랙뮤직과 록의 결합을 가장 대중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과연 앨범 제목대로 두 종류의 장르를 하나로 잘 녹여냈다고 할까요. 마칭밴드 스타일의 드러밍과 혼 세션을 중심으로 리드미컬하게 풀어낸 ‘Keep On Marching’, 전반엔 현악 중심의 구성으로 힘을 뺀 후 혼과 코러스로 구성을 확장시켜 나가는 멜로우한 느낌의 ‘Magic’, 고즈넉한 여느 바에서 들으면 위스키 열잔은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가스펠 기조의 ‘In/Out’ 같은 곡들엔 여러 흑인음악의 뉘앙스가 가득합니다. 어느 하나 애매한 선율이 없다는 점은 음악적인 욕심을 내면서도 대중성 또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요.


신시사이저 중심의 사운드로 뉴웨이브의 감성을 담아낸 ‘Last Goodbye’와 ‘Please Please Please’, 1990년대 R&B 느낌의 ‘Always On My Mind’는 레트로를 팀의 스타일로 멋지게 해석해낸 결과물입니다. 2010년 결성 당시에는 펑크밴드로 활동했다는 그들. 이처럼 뛰어난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쉽지 않았던 인디즈 시절 덕분이 아닌가 싶은데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대중과의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 이들. 본격적으로 거물이 되어가는 발판이 되어 줄 앨범, 바로 그것이 < Emulsification > 입니다.




험프 백(Hump Back) < 人間なのさ(인간인거야) >


“내일이 무서워 질 정도로 / 네가 네가 아름다웠어 /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고 / 너와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아” - ‘LILIY’ 중


“꿈은 이제 꾸지 않는 거야? / 내일이 무서운거야? / 포기하는 거야? / 바보같이 하늘이 예뻐/

더 이상 울지 말아줘 / 네가 생각하는 정도로 약하지 않아” - '拝見、少年よ' 중


보시다시피 이들은 무서울 정도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청춘의 한 가운데의 열정을 어느 누구보다도 뜨겁게 펼쳐내고 있습니다. 이미 인디 신의 절대 강자로 메이저 데뷔는 시간 문제였던 3인조 밴드의 첫 작품은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함과 동시에 보다 탄탄한 완성도로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리더 하야시 모모코의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2009년부터 밴드와 솔로를 병행하며 관철해왔던 의지가 지금의 멤버들을 만나 이윽고 만개, 록스타라는 그 큰 꿈의 반석을 2019년에야 드디어 마련해 낸 셈입니다.


직접 라이브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어찌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들의 의지와 메시지를 강한 어프로치로 전달하는 그들입니다. 앨범 역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스트레이트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에두름 없이 몰아치는 구성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기교 없는 쓰리피스 사운드 위로 흐르는 명확한 가사와 캐치한 멜로디는 나에게 있어 청춘이란 무엇이었나, 꿈이란 건 무엇이었나 같은 것들을 다시금 되묻게 만듭니다.


1분 30여초 동안 슬픔과 눈물은 삶의 자양분임을 외치는 ‘オレンジ(오렌지)’,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은 결국 아름다움으로 전복될 수 있다는 노랫말의 ‘生きて行く(살아가)’ 등 불안과 혼란의 시대에 무식할 정도의 긍정적인 목소리를 상상 이상의 열량을 담아 전파하는 이들. 시대가 변해 냉소적인 소리들이 가득한 지금, 그래도 이들이 있기에 저 같은 기성세대도 무모함 혹은 패기라는 이름의 옛 꿈과 청춘들을 조금이나마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음악이란 것은 단순한 연주력이나 노래실력이 아닌, 결국 그 안에 담긴 아티스트 각자의 신념과 정신이 완성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이들. 이렇게 자유롭게 음악을 하면서 성공까지 쟁취할 수 있는 일본의 음악신이 새삼 부러워집니다.


킹 누(King Gnu) < Sympa >


사실 이들이 올해 주목받은 것은 싱글 ‘白日(백일)’ 덕분이었습니다만, 이 노래를 통해 팀을 알게 된 사람들을 고스란히 팬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분명 이 앨범 덕분입니다. ‘도쿄 뉴 믹스쳐’를 표방, 밴드 편성을 기반으로 하되 힙합, 재즈, 펑크(Funk), 전자음악 등 자신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제한 없이 가져와 ‘최신의 팝’을 수려하게 완성해냈습니다. 투 보컬 체제라는 흔치않은 구성과 클래식과 블랙뮤직, 제이팝 등 멤버 각자가 뚜렷한 기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유니크함을 불어넣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현악과 로큰롤, 힙합의 강한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Slumberland’에서의 웅장함은 실로 놀랍죠. 단순히 섞는 데에서 나아가 이것을 어떻게 ‘팝’으로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습니다. 신스팝 트랙인 ‘Flash!!!’의 속도감에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 보컬파트에 힘을 준 ‘Sorrows’의 특출난 대중성은 가히 압권이며, 실내악을 연상시키는 ‘Don’t stop the Clocks’는 이들이 품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짐작케 합니다. 호소력 있는 R&B ‘The hole’까지 듣다보면, 이 많은 레퍼런스들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다는 점에 아연실색하게 되는데요. 크로스오버에 있어 발군의 역량을 보임과 동시에 이것을 제이팝으로 치환시키는 필터링 시스템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 이 것이 이 작품을 올해의 앨범으로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오자와 켄지(小沢 健二) < So kakkoii 宇宙(우주) >


13년만의 신보를 통해 플리퍼즈 기타는 알아도 오자와 켄지는 모른다. 혹은 오야마다 케이고(=코넬리우스)는 알아도 오자와 켄지는 모른다는 이들에게 보란듯 아직도 현역임을 증명합니다.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로 가득한 6번째 정규작. 간만의 풀렝스 작업인데도 자신만의 이지 리스닝 팝을 주조하는 그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리얼세션을 기반으로 빚어내는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은 전혀 예전을 그리워할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듯, ‘ラブリー(Lovely) (1994)’로 대표되는 예전의 그 ‘오자와 월드’를 그대로 구현해냅니다.


앨범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彗星(혜성)’의 환상적인 무드의 연주, 빈티지한 기타 소리와 현악의 하모니를 동반한 ‘流動体について(유동체에 대하여)’의 품격, 곡 제목처럼 어쿠스틱 아르페지오와 오르간, 베이스 기반으로 빚어내는 ‘アルペジオ(아르페지오)’의 뭉클함. 정말 예전엔 오야마다 케이고와 어떻게 음악했나 싶을 정도로, 그만의 풀 오케스트레이션을 장착한 고급스러운 팝은 지금 세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모습입니다. 변치 않는 모습으로 이렇게 벅차고 감동스러운 음악을 들려주는 그를, 정말 일본 대중음악신의 마법사라고 칭하고 싶을 정도네요.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 < Treveler >


일본도 피해갈 수 없는 스트리밍 시대. 작년엔 아이묭이 가장 큰 수혜자였다면, 올해는 단연 이 4인조 밴드를 꼽을 만 합니다. 지금 시점에도 애플뮤직 10위안에 5곡을 안착시키고 있는 이들은 2019년 한 해 동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인기로 일본 대중음악계를 호령했습니다. 이들 역시 기반은 록과 블랙뮤직의 결합이나, 키보드/혼세션 중심의 구성을 통해 팝 쪽으로 더욱 조타수를 돌리고 있는 음악을 들려 줍니다. 2019년 최대 히트곡이라 할 만한 ‘Pretender’는 전주만으로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대중성의 마법을 발휘하고 있으며, 후렴에 가서는 약간의 공간감과 함께 무언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선사하는 선율을 들려줍니다. 여기에서 다른 팀들에 비해 더욱 부각되는 지점이 있는데요. 바로 보컬입니다.


후지하라 사토시의 가창력은 그룹이 펼치는 세계의 중심 오브제라 할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템포가 빠르던 느리던, 리듬 중심이던 아니던 그의 보컬 운영은 발라드 기조의 발성 및 표현력의 최대치를 보여줍니다. 명 프로듀서 코바야시 타케시와의 태그를 통한 또 하나의 대표곡 ‘宿命(숙명)’, 디스토션의 강한 어프로치를 동반한 디스코 넘버 ‘Amazing’, 펑크(Funk)의 그루브를 적절히 이식한 ‘最後の恋煩い(최후의 상사병)’, 여느 강성의 록밴드에 견줘도 힘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것 같은 하드록 지향 ‘FIRE GROUND’ 등 언제 어느 곡을 플레이해도 허튼 시간이 없을 정도의 탄탄함을 자랑합니다. 성실히 음악을 접하고 탐구해 여행해왔던 지난 나날들, 그들이 걸어온 길이 옳았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여정의 동기까지 마련하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입니다.

더 페기스(the peggies) < Hell like Heaven >


저의 2019년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수작입니다. 메이저 데뷔작이기도 한 이 앨범은 짧지 않은 인디즈 생활을 거치며 집약된 경험과 역량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덕분에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신선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주와 송메이킹이라는 기본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탄탄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이것이 순간의 감각으로 승부하는 최근의 신예들과는 다른 점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한순간 타오르고 사라지는 단말마의 불꽃은 아니겠구나 라는 확신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3인 구성임에도 전혀 비지 않는, 야구로 따지면 몸 쪽 꽉 찬 스트라이크를 구사하는 팀이라고 할까요. 강한 디스토션과 스피디한 구성, 후렴에서의 변칙적인 드러밍 등 강성의 사운드와 흐름의 묘미를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는 ‘する(들려)’, 절정으로 도달하기까지의 적절한 긴장감 부여가 통렬한 앤섬을 탄생시키는 ‘マイクロフォン(Microphone)’ 등 초반만으로도 이들의 호흡과 재능은 반짝반짝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6/8박자의 슬로우 템포에서 펼쳐지는 감미로운 러브송 ‘はちみつ(벌꿀)’, 계절감을 적절히 살린 전략이 돋보이는 디스코 리듬의 ‘サマラブ超特急(Summer Love 초특급)’, 대미의 여운까지 놓치지 않는 ‘明日(내일)’까지. 자신들만의 단단한 음악철학을 받쳐주는 탄탄한 기본기가 돋보이는, 올해를 정리할 때 단연 돋보이는 2019년의 팝록입니다.

필로소피노댄스(フィロソフィーのダンス) < エクセルシオール(Excelsior) >


여러 뮤지션과의 작업으로 이미 잔뼈가 굵은 명 프로듀서 카모 케이타로가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컨템포러리 펑크와 알앤비를 아이돌에게 부르게 하겠다!”라는 콘셉트하에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룹의 세번째 정규작입니다. 필리소울을 활용한 첫곡 ‘It’s my turn’만 들어도 이건 모타운을 위시한 60~70년대의 블랙뮤직에 그 핵이 닿아있구나라는 느낌이 딱 드실텐데요. ‘Love Variation’은 딱 들어도 슈프림스의 오마쥬. 그렇다고 아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닙니다. 뉴잭스윙을 통해 사랑이 생겨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Supervenience’, 시티팝과 90’s 제이팝을 절묘하게 섞은 ‘Logic jump’ 등 낯익으면서도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재미가 쏠쏠히 느껴지는 작품이죠.


비쥬얼과 함께 보다 극단적인 기획을 선보이거나 록 페스티벌 수요를 감안해 밴드와의 퍼포먼스가 가능한 아이돌이 늘어나는 시점에, 이를 과감히 틀어 보다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빼놓을 곡 없이 모든 노래가 준수하며, 멤버들의 가창 또한 곡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 있다는 감상평을 남길 수 있을 만큼 제 몫을 해주고 있습니다. 시각적인 접근 없이 청각만으로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돌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자격이 차고 넘치는 레트로 앨범입니다.

리그렛걸(reGretGirl) < soon >


팀 이름만 봐도 대충 어떤 정서를 가진 팀일지 짐작이 되지 않으시나요. 여자친구에게 차인 프론트맨이 언젠가 유명해져서 나랑 헤어진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듯의 리그렛걸. 백 넘버(Back Number)가 극한의 찌질한 남성상을 통해 역으로 여성팬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면, 이들은 누구나 겪을 법한 이별과 짝사랑의 순간순간을 공감대 있게 그려내며 사랑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번째 EP가 되는 이번 작품은 어느때보다도 가사나 선율에 있어 그 밀도가 높은데요. 생일날 이별통보를 받은 남자의 마음을 그려낸 ‘12月29日’,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줄만 알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ブロッサム(Blossom)’, 아직 완전히 잊지못한 예전의 연인을 동창회에서 만나 너무 멀리 와버린 두 사람을 실감하는 ‘おわりではじまり’까지. 경쾌함과 애절함을 넘나드는 곡 소화력, 단번에 꽂히는 훅을 만들어 내는 대중적 감각 등 탄탄한 기본기 아래 자신들의 지향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연애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머릿속에 한장면을 영화처럼 떠올려보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사카낙션(サカナクション) < 834.194 >


5년전 싱글로 선보였던 ‘さよならはエモーション(작별인사는 Emotion)'(2014)을 기억합니다. 잘게 쪼갠 전자음을 시작으로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며 마지막엔 거대한 코러스로 듣는 이를 덮치던 그 록 오페라를. 당시만 해도 이 곡이 실린 앨범이 2019년에 나오리란 것은 꿈에도 몰랐죠. 장장 6년만의 신보는 본인들의 원점을 돌아봄과 동시에 현재를 적절히 녹여내고자 한 작품입니다. 타이틀인 < 893.194 >는 삿포로 시절 활동거점으로 삼았던 스튜디오와 지금 레코딩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도쿄의 스튜디오간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죠. 그래서 그런지 전작 < sakanaction >에 비해 록 사운드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최근의 방향성이 반영되어 듣다 보면 리얼세션 기반의 일렉트로니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록과 전자음악 사이에서 자신들의 잠재력을 밸런스 있게 발현해 냈다고 할까요.


두장의 시디에 음악이 나눠 담겨 있지만, 장르적으로 구분했다기 보다는 업템포와 슬로우템포를 적절히 섞어 균형을 맞추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불어 이 신보에도 레트로의 잔향이 서려있는데요. 시티팝에 영향을 받은 조금은 능청스럽기까지한 ‘忘れられない(잊을수 없어)’와 신시사이저 리프와 기타의 태핑이 복고적인 맛을 자아내는 ‘陽炎(아지랑이)’ 등이 대표적인 트랙이죠. 여기에 ‘新宝島(신보물섬)’나 ‘蓮の花(연꽃)'의 배경 선율에서 보여지듯 동양적인 뉘앙스도 살짝 가미되어 있습니다. 전자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을 보여주는 ‘ユリイカ(Eureka)’와 ‘834.194’,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セプテンバー(Semtepber)’의 각기 다른 버전까지. 자신들의 모든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사카낙션 음악의 총 집합체를 담고 있습니다.

시럽(Sirup) < FEEL GOOD >


이번엔 일본 어반 R&B 신으로 시선을 돌려보죠. 작년 선보였던 ‘Do well’이 히트하며 인지도를 한껏 올린 싱어송라이터의 첫 정규작은 일본이 늘 고민해왔던 블랙뮤직의 정답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현지 알앤비 그 자체를 들고왔던 우타다 히카루 이후로 오랜 시간 오히려 블랙뮤직의 로컬라이징에 골몰한 탓에 정작 해당 카테고리의 마니아들에게 외면받았다는 느낌도 적지 않은데요. 본인 역시 “클럽에서 오히려 일본의 음악을 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점차 흑인음악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음악의 한 종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시기에 그 흐름이 쌓여 탄생한 시대의 대표작 같은 느낌입니다.


노래와 랩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그렇다고 최근 유행하는 싱잉-랩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가창,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하면서도 단순한 레퍼런스 차용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마감질하는 프로듀싱 역량 등. 창법만 가져온 발라드에서 벗어나 진정한 현지화를 이뤄냈다는 것이 이 앨범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레트로함을 덧댄 리듬, 랩과 노래를 넘나들며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Pool’, 키보드 플레이와 가스펠 스타일의 코러스를 적극 활용해 시럽 식 펑크(Funk) 트랙을 구현한 ‘Do well’, 보다 온기있는 비트에 래퍼 BIM의 조력을 더한 ‘Slow dance’에 스스로 역작이라 칭하는 텐더(Tendre)와의 합작 ‘PLAY’까지. 멜로우한 감성을 기저에 둔 장르의 내추럴한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일본 블랙뮤직 신의 진화, 그 증거작입니다.


서치모스(Suchmos) < THE ANYMAL >


이들을 더 이상 시티팝 리바이벌 밴드라고 칭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세번째 정규작은 기존의 이미지를 모조리 전복하고 프로그레시브/아트록 밴드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Stay tue’에서 ‘Volt-age’로 넘어가는 순간도 경이로웠지만,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거대한 8분짜리 서사 ‘In the zoo’를 듣는 순간 이들의 잠재력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묻게 됩니다. 12곡에 무려 1시간 12분. 외부로부터 규정지어진 모든 것을 리셋한 채 나아가는 그 결과물들은 여러 음악사조가 뒤섞여 만들어 내는 스케일 큰 ‘뉴 서치모스’의 지향점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 The Kids >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거의 99% 이 앨범을 듣고 예전같지 않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더욱 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초역작으로 비춰집니다. 록과 알앤비를 넘나듦과 동시에 천천히 힘을 붙여나가는 ‘Water’, 블루스의 풍미를 함껏 머금음과 동시에 이국적인 멋까지 품어낸 ‘You Blue I’ 등 긴 러닝타임을 지루함 없이 끌고 나가는 구성의 묘미야말로 가장 박수쳐주고 싶은 부분인데요. 12분에 육박하는 ‘Indigo blues’를 들어보시면 그 변신이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초반 3분간을 무드 조성에만 할애한 뒤, 조금씩 보컬과 악기로 그 형상을 거대화해가는 모습에서 젊은 음악 장인들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점차 거대한 음악집단으로 변모해가는 이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수작의 배경에는 모든 패러다임과 클리셰를 거부하는 그들의 진보적인 태도가 숨어있습니다.


템팔레이(Tempalay) < 21世紀より愛をこめて(21세기로부터 사랑을 담아) >


이 작품을 보면 현재 일본 음악신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20대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무엇인지, 더불어 한국 인디신과의 접점이 어떻게 형성되어가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기타 록에서 벗어나 사이키델릭과 시티팝, 토속성이 강한 아프리칸 리듬 등을 한데 섞어 창출해내는 무국적 음악. 낙관적일 수 없는 가운데 그래도 살아가기에 발견되는 자그마한 행복에 탐닉하는 세대적 경향. 아도이나 혁오 등과도 연관지을 수 있는 힙스터 지향의 스타일리시함까지. 과거의 제이팝 팬과 현재의 제이팝 팬이 분리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현재의 일본음악이 이처럼 과거의 일본음악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야말로 여러 다채로운 신경향을 수준급으로 구현해내고 있어, 일본음악의 변화상에 있어 앞으로 굉장히 많이 거론될 만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나른한 기타 사운드와 곡의 구심점을 만드는 신시사이저, 반주를 황망하게 떠도는 보컬이 자신들의 에고를 대변하는 ‘どうしよう(어떡하지)’는 BTS의 RM이 SNS에 업로드하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차례 유명세를 탄 바가 있는데요. 정신없는 일상에서 비롯되는 허무함과 황망함은 이 곡에서도 중심 정서로 자리합니다. 새로 가입한 에이미(AAAMYYY)와의 듀엣이 묘한 분위기를 머금고 대기 중을 떠도는 ‘脫衣麻雀(탈의마작)’, 블루지한 연주를 통해 본적 없는 꿈을 쫓는 기약없음을 노래한 ‘美しい(아름다워)’ 등 앨범 전체적으로 일정한 테마를 공유하며 단단한 유기성을 보여줍니다. 헤이세이와의 작별 후 새로이 시작된 레이와 시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2010년대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 만한 대표적인 ‘뉴웨이브’ 작품입니다.


요루시카(ヨルシカ) < だから僕は音楽を辞めた(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두었다) >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의 메이저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듀오의 존재는 꽤 큰 의미를 지닙니다. 요네즈 켄시가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출신으로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넓은 층의 대중들의 공감대를 얻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필두로 여러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출신 가수들이 메인스트림에 그 존재감을 속속 드러내고 있지만, 무대가 확장된 후에도 여전히 타깃은 활동거점이었던 < 니코니코동화 >의 네티즌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와중에 이들은 앨범의 완성도와 보컬이 가진 호소력으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서서히 침투하고 있는 상황인거죠. 그리고 이 작품은 한 음악을 그만 둔 한 청년이 ‘엘마’라는 인물을 향해 쓴 곡들의 모음집이라는 컨셉트 앨범으로, 스토리텔링을 강조함으로서 현 기세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한 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특성 상 다소 중2병스러운 가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표현들이 오히려 인물에 몰입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스피디하고 정교한 록 사운드 위로 스이(suis)가 가진 발군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八月, 某, 月明かり(8월, 누군가, 달빛)은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인데요. 나부나의 프로듀싱도 프로듀싱이지만,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해 때론 실망하고 때론 무력하며 때론 분노에 찬 주인공을 호소력있게 표현하는 스이의 퍼포먼스가 러닝타임 전반에 인상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록곡들의 톤이 다소 비슷해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지루해질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이야기를 따라가며 들으신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일본 음악신의 변화에 있어 중요한 체크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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