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코리아매거진 vol.7에 기고한 글입니다.
* 본 글은 빌보드코리아매거진 vol.7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보통 ‘마의 7년’이라고들 한다. 공정위가 마련한 표준계약서 상 연예인과 기획사간의 계약 기간은 최대 7년. 많은 아이돌 그룹이 계약시점이 만료되는 시점에 멤버 탈퇴나 해체를 겪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트렌드가 유입되는 KPOP이기에 아티스트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현 시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팀들도 2~3년 후에는 그 입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현실. 그렇기에 이들의 존재는 큰 상징성을 가진다. “혜성처럼 전진하는 우리는 신화입니다!”라는 데뷔 초의 인사가 이제는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촌스럽기는 커녕 위대하기까지 하다. 데뷔 후 20년이 넘도록 한번의 멤버 변동이나 해체 없이 활약해 온 국내 최장수 아이돌 그룹.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들의 서사는, KPOP 연대기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시기상으로 보면, 1998년 데뷔한 신화는 지오디 등과 같은 1세대 후반으로 분류된다. 당시는 SM엔터테인먼트와 DSP 간의 라이벌 구도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10대들이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완전히 부상한 시점이었기에, H.O.T.를 기획한 소속사가 새로운 그룹을 런칭한다는 소식에 큰 관심이 쏠렸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던 일.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법 체계화 된 시스템은 그 기대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한 화제성을 등에 업고 뉴잭스윙 스타일의 타이틀곡 ‘해결사’(1998)로 야심차게 등장했으나, 그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미미했다. 가볍게 다가가기에는 다소 무거웠던 곡의 무드, 그리고 너무나도 높았던 기대치가 함께 작용한 탓이었다. 당시 음악방송 10위 권 안에 드는 호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했던 선배 그룹들의 성과에 가려 평가절하 되었던 탓도 컸다.
그래도 밝은 콘셉트로 분위기 전환을 꾀한 ‘으쌰으쌰’(1998), 블랙뮤직 기반의 세련된 사운드가 인상적인 ‘천일유혼’(1998)까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며 팬덤확보에 성공.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은 2집 ’T.O.P.’(1999) 부터였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곡조, 칼같은 군무가 기반이 된 인상적인 퍼포먼스까지. 유니크한 감성으로 재해석한 세기말의 감성은 신화에게 첫 1위를 선사해주었다. 여기에 SM 특유의 사회저항적 가사를 담아낸 후속곡 ‘YO!(악동보고서)’(1999)까지 히트.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또 하나의 정상급 틴스타가 탄생했음을 만방에 알린 시점이었다.
사실 이 때까지의 활동은 다른 아이돌 그룹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철저히 10대를 타깃으로 한, 화려함과 신비스러움을 강조한 노선. 이들 역시 이에 충실하며 정석적인 길을 걸어왔던 셈이다. 이 상황에서 의욕적으로 내민 3집 앨범은 팀의 정체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제시하는 분기점으로 자리한다. 강한 신스 음과 잘개 쪼갠 비트가 중심이 되는 ‘Only One’(2000)에서의 실루엣은, ‘소년’이 아닌 ‘남자’를 지향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짐승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 상의를 탈의한 채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는 이제까지 없던 아이돌 상을 전면에 부각시킨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Only One’이 상승곡선을 그림과 동시에 ‘남성성’은 신화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로 정착했다.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틴에이저 콘텐츠가 20대를 침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런 남성적인 매력의 견인차가 되었던 것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퍼포먼스였다. 더불어 4집부터 6집까지의 활동은 무대에서의 매력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날카롭게 연마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의자를 활용한 안무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Wild eyes’(2001), 스탠딩 마이크를 활용한 넓은 동선의 안무로 그룹이 가진 매력을 극한까지 끌어낸 ‘Perfect Man’(2002), 고난이도에서 비롯한 다이나믹함이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너의 결혼식’(2002)까지. 음악과 비주얼의 치밀한 맞물림이야말로 타팀과의 차별점을 완성하는 결정타였다. 이처럼 햇수로 5년에 걸쳐 겨우내 완벽함에 이른 그룹은, SM과 결별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 때까지의 활동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바로 신화-유영진의 콤비네이션이다. 당시 유영진이 집중했던 것은 뉴잭스윙과 힙합, 알앤비 등의 트렌디한 블랙뮤직을 댄스음악에 녹여 넣는 작업이었는데, 이것이 남성미를 강조한 신화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며 막강한 시너지를 발생시켰다. 활동곡을 배제하더라도 3집의 ‘JAM #1’(2000)과 ‘I Wanna be’(2000), 6집의 ‘Hiway(Ride With Me)’(2002)와 같은 트랙들은 지금 들어도 세련미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 노래들. 요즘과 같은 송캠프 기반의 다인 제작 체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돌-작곡가 콤비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신화의 발전 자체가 유영진이 기반을 닦은 SMP의 진화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관계였던 셈이다.
대부분의 그룹은 원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되면 빠르게 그 힘을 잃는 탓에 언급할 이야기가 급속히 줄어들곤 하지만, 이들만큼은 예외다. 독립 후 절치부심해 선보인 7집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는 덕분. 당시 미다스의 손으로 군림했던 프로듀서 박근태와 조영수의 지휘 아래,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웅장한 현악 세션을 전면에 내세운 고급스러운 팝 트랙 ‘Brand New’(2004)는 그야말로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음을 알리며 두 개의 대상을 그룹에게 안겼다. 이와 함께 예능과 연기 등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온, 그야말로 반전과 같은 전성기였다.
하지만 명에는 암이 따르는 법.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2005년 SM 엔터테인먼트가 ‘신화’라는 이름을 특허청에 등록한 후 해당 상표권을 오픈월드 엔터테인먼트에 대여함으로써, 다시금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 이후 8집과 9집 활동은 오픈월드와 상표권 협약 체결을 맺은 굿엔터테인먼트에게 휘둘려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군복무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4년 후 10집 < The Return >(2012)으로 해체우려를 불식시키며 화려하게 컴백하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온전히 자신들의 이름을 되찾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2015년의 일. 긴 법정싸움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며 아이돌 계약에 있어 선례를 남겼다. 앞서 그룹의 의의를 ‘오랜 활동기간’에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활동을 이어 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계약상의 이슈를 해결해 팀명에 대한 상표권을 탈환하며 ‘아이돌도 멤버 자신이 그룹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기에 그 시간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와해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팀을 지키고자 했던 멤버들의 의지와 더불어, 막중한 사명감으로 관련 법까지 공부해가며 대응한 에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최근 간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여준 H.O.T.가 자신들의 이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등 여러 계약상의 이슈가 빈번한 아이돌 신이기에, ‘신화’라는 이름을 찾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주는 시사성은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십분 반영한 ‘Venus’(2013)와 ‘표적’(2015) 등 여전한 기세로 2010년대를 보낸 후 20주년 스페셜 앨범인 < SHINHWA TWENTY SPECIAL ALBUM >(2018)를 끝으로 잠시 단체활동을 쉬고 있는 그들. 하지만 멤버들의 활약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수, 연기, 뮤지컬, 예능 등 모든 영역에서 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으니. 결국 20년이 넘는 활동이 가능했던 그 단초에는 개개인의 특출난 역량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노래와 춤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작사/작곡과 프로듀싱에 이르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통제 영역을 확장해 가며 온전히 자신들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왔다. 그것이 현재진행형 레전드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우리는 주위에서 다양한 세대의 ‘신화창조’를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맞게, 신규 지지자들 또한 계속해서 생겨났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형도가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환호를 보내주는 이들에게, 그룹은 ‘특출난 우정’으로 이를 보답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멤버간의 불화설이 해결되는 과정은 단적인 예시일 것이다. 잠시 문제가 있더라도 결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몸 깊숙이 장착되어 있는 이들이다. 판타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개인의 이익 대신 멤버간의 의리와 팬들에 대한 배려를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원 팀’.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 온 그들에게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아마 팀으로서 영원할 것이라는, ‘이들이기에 믿어봄직한 현실’을 구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신화’라는 그룹은 어떤 팀보다 그 이상향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