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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Dec 27. 2021

일본음악 좋아하세요?

* 본 글은 인천대학교 일문학과에서 운영하는 웹진 코이(KOI)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J-POP을 즐겨온 지도 어언 20년이 되어가지만, 요즘처럼 “일본음악 왜 듣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날카롭게 꽂힌 적도 없는 것 같다. 예전의 질문들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여 졌다면, 요즘은 ‘굳이 왜?’라는 속마음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 때문일 거다. 일본음악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을 겪어 온 내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전과는 다른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순한 착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일본음악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다. 안되는 시간 쪼개가며 신보 소개라던가 여러가지 동향들을 전하려 애쓰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씩은, 아니 자주 허무해진다. 더불어 2019년 부터 급격히 악화된 한일관계와 코로나로 인해 불가능해진 내한공연 등 주변 상황마저 열심히 좀 해보겠다는 의욕을 꺾었다. 결정적으로, K-POP의 전세계적 히트가 일본음악의 이미지 악화로 연결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한국의 아이돌 신이 받은 관심에 비례해 J-POP이 평가절하 되어왔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피해의식이려나.


일본도 예외는 아닌 K-POP 열풍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여러 K-POP 그룹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중이다. 일본 역시 다르지 않다. 스트리밍 차트 상위에 K-POP 아티스트가 랭크되어 있는 것은 이제 흔한 일. 누군가 보아와 동방신기, 소녀시대나 카라 등과 같은 소싯적 ‘한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완전히 번지 수를 잘못 짚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금 일본에서의 한국 아이돌은 외국의 여느 팝스타처럼 특별하다거나,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인상을 주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 자체가 일상이고 모두가 즐기는 보편적인 문화다. 특히 10대 중심으로 가속화 된 SNS의 활용은 그야말로 기폭제였다. 유행에 있어 국경이 사라졌고, 글로벌 트렌드의 키워드가 된 K-POP은 양국 청소년들의 일상 속 즐길거리가 되었다. 최근 일본 아티스트들의 신보를 듣다 보면 한국 뮤지션과의 협업 뿐만 아니라, 아예 한국어 가사를 삽입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한국 것들에 대한 낯섦이 상당부분 사라졌다는 증거다.

시럽과 수민의 콜라보 곡. 한국어 가창이 이질감 없이 삽입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 나 역시 K-POP 열풍의 원인은 우선은 고퀄리티의 콘텐츠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1세대 아이돌이 등장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대중들의 심판을 받아왔다. 이와 함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정착하며 그 피드백은 즉각적이고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 엄격한 잣대에 부응하기 위해 종사자들은 부단히 노력해 왔고, 시스템과 체계화와 맞물려 K-POP 신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무리 일본에서 K-POP을 벤치마킹 해 콘텐츠를 내놓는다고 해도,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해 온 한국 엔터테이너 산업의 노하우를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요 몇년간 니쥬(NiziU)와 같이 한국의 기획사와 협업해 그룹을 런칭하고, < 프로듀스 101 > 처럼 프로그램 포맷을 활용하는 등 한국 아이돌 시스템의 일부가 바다를 건너갔다. 이는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이러한 콜라보레이션 전략이 그 격차를 단번에 메울 수 없는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을테니 말이다.

일본에서 이미 니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중. 개인적으로 올해의 싱글.

한국의 10~20대 사이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일본음악


그런 K-POP에 비해 일본음악의 변화는 비교적 미미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감지된 변화는 분명 있었다. 우선 느즈막히 시작된 스트리밍 시장의 부상이다. 일본 역시 현재는 음악 청취방식이 완전히 스트리밍으로 정착된 상황이다. 일본 레코드 협회(RIJA)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피지컬 레코드의 수입이 약 1,777억엔에서 약 1,298억엔으로, 다운로드가 약 274억엔에서 약 179억엔으로 감소한 반면 스트리밍은 약 200억엔에서 약 589억엔으로 두배가 훌쩍 넘는 신장세를 보였다. 히트곡은 이제 오리콘으로 대표되는 시디 세일즈를 볼 것이 아니라 라인 뮤직이나 애플 뮤직과 같은 스트리밍 차트를 봐야 하는 시대다. 틱톡을 통한 바이럴 히트가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CD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팬덤을 위한 굿즈 상품에 가까워졌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블랙뮤직이 완연히 메인스트림으로 부상, 다수의 래퍼와 더불어 알앤비/힙합/디스코 등을 기반으로 한 밴드들이 대거 등장해 자신들의 영역을 굳힌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라이브 시장이 주춤한 틈을 이용, 넷 상에서 엄청난 지지층을 보유 중인 보컬로이드 프로듀서와 우타이테, 나아가 버츄얼 유튜버의 데뷔가 요네즈 켄시의 대히트를 계기로 더욱 활발해지고 있기도 하다. 강한 정체성의 다채로운 뮤지션들이 일본 음악신이라는 캔버스에 각자의 색을 덧칠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풍경에서 보자면 꽤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일본에서 힙합은 엄연한 메인스트림 장르다.

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이러한 양국 대중음악 신의 변화 속에서, J-POP은 무시 받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20여년 간 꾸준히 일본의 대중음악을 접해 온 내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눈에 띌 만한 큰 발전이 없었던 것은 맞다. 전세계적 트렌드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가 스스로를 내수 시장에 가둬버린 것도 사실이다. 다만, 수많은 장르와 뮤지션들이 공존하는 다양성, 어떤 목소리를 내든 크게 제재가 없는 창작에서의 자유로움. 일본음악의 매력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안에 퇴색 없이 존재하고 있다.


다만,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 주 소비층에게 일본음악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K-POP을 듣고 자란 젊은 세대들이 가진 ‘좋은 음악’의 기준은 이전과 너무 많이 달라졌고, 일본의 콘텐츠로는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졌다고 할까. 더불어 ‘지금의 일본음악’을 제대로 전해줄 채널 없이 부분만을 조명하거나 잘못된 사실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 또한 한국에서 J-POP의 존재감이 사라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일본음악이 쇠퇴했다 느끼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본음악이 쇠퇴했다고 느끼는 것일까. 아무래도 양국 아이돌 간의 비교가 K-POP vs J-POP이라는 구도의 주요 소재로 쓰이는 탓이 크다. 이는 국가 감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한국의 아이돌이 큰 성과를 거두자, 화제성을 노리는 매체나 단기간에 조회수를 올리려는 크리에이터 들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크다고 느껴진다. 흔히 볼 수 있는 비교영상은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배제한 채, 누가 봐도 “일본음악은 수준이 낮다”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구도로 제작되어 있다. 그야말로 부분만을 확대한 왜곡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매체들이 K-POP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들어지는 콘텐츠 역시 상당한 왜곡과 거짓, 감정적인 비아냥이 주가 된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사기꾼에는 사기로 대응한다, 식의 논리는 단순한 소모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뭐 콘텐츠를 제작하는 본인은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실 위의 관점에서 펼쳐내는 K-POP vs J-POP의 구도는 오류투성이 일수 밖에 없다. 일단 단어가 가리키는 범위가 다르다. K-POP은 팬덤 중심의 아이돌 팝을 일컫는 데 주로 사용되나, J-POP은 기본적으로는 일본 대중음악 전반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더불어 한국 시장에서 아이돌 팝이 점유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아이돌끼리의 비교로 대중음악 시장의 수준을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여기에 양국의 아이돌이 가지는 의미나 포지셔닝이 굉장히 상이하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소녀시대 vs AKB라던가, 블랙핑크 vs 노기자카와 같은 비교는 그 자체가 성립 불가능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이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기와 실력의 상관관계다. ’인기’가 그 콘텐츠의 수준을 말해주는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으며, 반대로 높은 수준의 테크닉이 반드시 그 아티스트의 매력이나 인기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티스트의 존재가치를 단순히 실력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은, 아이돌 그룹에 한정하자면 한국의 팀들이 일본의 팀들보다 훨씬 인기가 높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직결된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형성되었음을 전제에 두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섣불리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조금만 둘러봐도 반도의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룹이 일본의 다소 실력이 떨어져 보이는 팀보다 인기가 없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객관적인 실력과 인기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거늘.

어떤 아티스트를 지지하게 되기까지에 있어, 분명 실력 외의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나 역시 한국 아이돌의 퍼포먼스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박수를 치는 한편, 일본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곤 한다. 분명 각자의 매력 포인트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단순히 수준 차를 보여준다며 비아냥 댄 그 아티스트가 누구에게는, 삶의 이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K-POP 신드롬이, 과연 타 팬덤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일본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취향의 문제


다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일본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악화된 양국간 감정에 있어 놀림거리로 삼기에 너무나도 좋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음악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과연 이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꽤나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목소리를 높여 대응해야 할까. 아니면 좋게 좋게 설득해야 할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선, 결국 그런 사람들에게 힘 들이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힘을 어쨌거나 저쨌거나 남아있는 일본음악 마니아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데 써야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더 크다.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건 어떤 국가관/정치관의 개입이 없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다. 다만, 우리나라는 보편적 흐름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모습을 보이면 괜한 거부감을 사는 경향이 큰 사회다. 일본음악은 정말 소수 마니아 중심의 취미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 이것이 드러내 놓고 제이팝을 즐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내한공연 취재 차 콘서트 장을 찾으면,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끼리 그간 억눌려 있던 자아를 분출시키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땐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짠해진다. 8년 전 홀로 일본의 록 페스티벌을 처음으로 보러 갔던 때. 5만명의 관객과 함께 범프 오브 치킨의 ‘supernova’를 합창하며 눈가를 소매로 훔쳤던 그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시대는 변했고, K-POP은 의심의 여지 없는 글로벌 콘텐츠가 되었다. J-POP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음악 마니아들이 너무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악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 중 일본음악을 근거 없이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다. 무작정 비난하는 이들은 그 본질에 대해선 정작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느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하고, 이를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알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취향을 유지하고 드러내는 것,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


일본음악은 비록 트렌디하진 않지만, 그것이 내가 일본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교적 강한 기준을 들이대는 우리나와 달리 “무엇을 해도 일단은 들어줄게”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분위기가 나는 참 맘에 든다. 그 표현의 자유로움 안에서, 내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실마리들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좋은 것만 보기에도 모자른 시간이다. 음악간의 비교라는 무의미한 행위는 그만두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K-POP과 J-POP을 찾아 취한다면 삶은 훨씬 더 풍족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음악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위 시선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결국 각자가 자신의 취향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하위 문화의 토대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기에. 그 기반이 쌓여 성공의 가짓수가 늘어난다면, 적어도 몇가지 직업에만 성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세태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여러 성공사례에서 비롯된 다양한 분야의 롤모델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트랙에서의 경쟁이 아닌 ‘가지 않은 길’을 각자 찾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당신이 사회를 바꿀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주위 사람에게 “일본음악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마치 산왕과의 시합 중 채소연을 향해 진심어린 말을 건네던 < 슬램덩크 >에서의 강백호처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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