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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May 03. 2022

일본, 멀고도 가까운 그 곳에서의 KPOP

롤링스톤코리아 연재, 그 두번째 글입니다.

* 본 글은 하기 링크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rollingstone.co.kr/modules/catalogue/cg_view.html?cc=101013&p=1&no=1616


요즘 보아는 간만의 바다건너 활동으로 눈코 뜰새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로 그는 일본 데뷔 2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 3월부터 매주  곡씩 10 동안 ‘셀프 커버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는 중이며, 5 말에는 기념 앨범 [The Greatest ] 발매함과 동시에 17년만의 아레나 공연인 < BoA 20th Anniversary Special Live -The Greatest- > 역시 개최를 앞두고 있다. 일본 매체의 관심도 뜨겁다. 엔터테인먼트 웹진 나탈리(Natalie)에서는 3부작 특집 기사로 그의 커리어와 영향력을 재조명하는가 하면, 패션잡지 슈푸르(SPUR)에서는 7년만에 그를 표지모델로 발탁했다. 정말 ‘아시아의 로서 일본을 호령했던 보아의 존재감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은 워낙 열도 내 KPOP 열풍이 거세기에 지금의 10대들은 보아의 성취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잠시 언급하자면, 2002년 싱글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위클리 차트 5위에 올랐던 당시,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뒤질세라 서둘러 이를 대서특필했다. 지금이야 일본의 음악 차트에서 K-pop은 그야말로 단골손님이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은 장벽이 높은 난공불락의 시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날아든 한국 가수의 낭보는 최근 BTS가 빌보드를 정복한 것에 비견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 돌아보면 ‘KPOP 글로벌화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사건이지 않았나 싶다.



S.E.S.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보아의 성공에 있어 언급해야 하는 그룹이 있다. 바로 S.E.S.다. 영어와 일본어가 능통한 멤버, 팝을 듣는 듯한 세련된 음악. SM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비롯한 해외시장을 노려왔으며, 그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국내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야심차게 열도로 넘어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데뷔싱글이었던 [메구리아우세카이(めぐりあう世界)]가 오리콘 싱글차트 37위에 올랐던 것이 최고기록이었으며, 이후의 싱글들은 50위권 바깥에 머무르거나 차트 진입에 실패하는 등 부진을 겪었다. 약 2년 반에 걸쳐 일본 활동을 이어갔지만, 반전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베스트 앨범인 [HERE & THERE - S.E.S Single Collection]로 그들의 진출기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SM은 실패요인으로 이들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매니지먼트사와 레코드사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당시 계약 관계였던 스카이플래닝은 모델과 연기자 위주의 기획사로 가수 매니지먼트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고, 레이블이었던 VAP 역시 전폭적인 프로모션을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았던 회사였던 탓에 효과적인 지원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일본 대중의 니즈와도 엇갈렸다. 당시 스피드나 맥스와 같은 걸그룹 형태에 많은 이들이 익숙해져 있었고, 비트 중심의 알앤비 사운드는 이미 미시아가 한발 앞서 영토를 점령한 상태였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성공은 훗날의 일로 연기되고 말았다.



보아, J-pop으로서의 K-pop


S.E.S.의 사례를 철저히 복기하며 세워진 것이 바로 보아의 일본진출 플랜이다.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은 바로 굴지의 연예기획사인 에이벡스와의 협업이다. 덕분에 과감한 투자를 통한 프로모션, 현지 히트 메이커들의 프로듀싱 등 이전에 없던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했다. 더불어 불모지에 가까웠던 퍼포먼스 중심의 솔로 여성 아티스트 신을 파고 들었다는 점도 유효했다. 진출 초반에는 다소 고전했던 것도 사실이나, 지금은 <LISTEN TO MY HEART>에 이어 <Valenti>와 <메리크리(メリクリ)> 등 일본인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대형 히트곡을 여럿 보유한 레전드 가수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보아의 경우 ‘한국 가수의 일본 진출’보다는 ‘일본 신인가수 데뷔’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는 점이다. 하드웨어는 한국의 것이었지만, 그 외의 모든 콘셉트나 스타일링, 노래 등은 현지 스탭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철저한 로컬라이징을 통해 ‘국적’보다는 ‘콘텐츠’ 자체에 집중하도록 한 전략이 제대로 통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이후 진출한 동방신기의 사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들에게 첫 오리콘 차트 1위의 영광을 가져다 준 <Purple line>은 유영진이 주도한 결과물이었지만, 이전까지 선보인 노래의 거의 대부분은 현지 작곡가들에 의한 것들이었다. 이처럼 당시의 진출은 지금의 경향과는 확연히 다른, ‘J-pop으로서의 K-pop’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시대와 카라, 트와이스까지. 동경의 대상에서 일상적 콘텐츠로.


한류가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시기는 아무래도 소녀시대와 카라가 큰 인기를 끌었던 2010년대 초일 것이다. 현지 매니지먼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은 동일했으나, 한국에서 활동했던 노래나 퍼포먼스의 활용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그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카라의 <미스터>나 소녀시대의 <Gee>, <소원을 말해봐> 등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가사에서도 포인트가 되는 한국어를 그대로 남겨놓으며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더불어 일본의 10대들 사이에서 자국의 아이돌과는 다른, ‘세련되고 멋있는’ 하이틴 스타를 향한 동경의 정서가 뿌리 내린 것도 이 시기였다.


이 과정을 거쳐 나름 규모있는 서브컬쳐로 자리 잡은지 몇년 후, 한 그룹에 의해 K-pop 은 모두가 즐기는 보편적인 콘텐츠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그들이 바로 트와이스다. 이들의 인기는 일부가 아닌 청소년 전체를 강타하며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수준 높은 퍼포먼스와 노래로 하여금 ‘K-pop에 대한 동경’이 되살아나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친숙하고 건강한 이미지, 일본인 멤버의 존재가 더해지며 마음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응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나도 K-pop 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이다.


트와이스의 인기에서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할 점은 바로 SNS의 역할이다. 그룹의 시그니처 안무였던 ‘TT 댄스’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었으며, 10대들은 이를 국적에 상관없는 ‘즐길거리’로서의  K-pop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갔다. 이는 SNS를 통해 양국의 청소년들이 같은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말해줌과 동시에, K-pop은 특별한 외국의 문화가 아닌 취향이 같은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일상적 콘텐츠로 거듭났음을 알려주는 현상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기성세대와 다른 자신들만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카운터 컬쳐’로 분석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 거대한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렇듯 근 10년이라는 시간동안, K-pop은 보편적 문화 콘텐츠로 일본인들의 일상에 완전히 정착했다.


K-pop, 아직 일본 시장에서 할 것이 많다.


지금의 K-pop은 더 이상 로컬라이징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진출 전략에 따라 일본어나 영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제 선택사항일 뿐이다. 일본의 스트리밍 차트 상위권에 그날 발매된 K-pop 그룹의 한국어 신보가 랭크되어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어찌 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K-pop은 끝없는 질적 성장을 지속해왔으며, 시대가 원하는 그림을 한 발 앞서 준비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단지 우연이 아닌,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 온 역사가 있었기에, 그리고 이를 위해 땀흘려 온 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멜론 차트보다 빌보드 차트 공략이 수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영미권 진출이 가시화 된 현시점에서 일본 시장에 대한 중요도나 관심은 조금 덜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 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세계 진출의 첫 교두보로 삼는 곳은 일본이다. 얼마전 BTS의 국가별 유튜브 조회수 1위를 기록한 곳도 바로 일본이었을 정도로, 시장이 가진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기획사들의 이익추구 측면에 있어서도, KPOP의 지속적인 성장 측면에 있어서도,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일본 시장 내에서 K-pop의 파이를 키워나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코로나가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가는 현 시점에서, 앞으로 더욱 활발한 협업과 교류가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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