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음악 신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서치모스를 필두로 한 ‘시티팝 리바이벌’ 붐과 겨우내 세계의 흐름과 발맞추기 시작한 스트리밍 대중화는 많은 리스너들에게 한계 없는 선택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블랙뮤직과 영미권 음악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일본 특유의 정서가 중심이었던 메인스트림의 분위기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숏 폼 중심의 바이럴 히트 확산과 코로나로 인한 야외 활동 제한은 ‘음악을 하는 행위’에 대한 인식 또한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자유를 뺏긴 후 놀거리라곤 SNS뿐이었던 Z세대들은, 악기를 친구 삼아 채널을 개설해 자신만의 비밀기지 제작에 전념했다.
그 결과, 이전에 없던 일본음악의 ‘지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Night Dancer’로 아시아권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마세, ‘overdose’를 시작으로 자신만의 영토를 획득한 나토리 등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알앤비, 힙합, 펑크 등을 기반으로 트렌디한 테이스트를 구축함과 동시에, 틱톡으로 자신을 알렸다는 공통점을 가진 뮤지션들이다. 짧은 길이만으로도 승부할 수 있는 숏 폼의 캐주얼함은, 그렇게 자신의 결과물을 어려움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계기로 분했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렌(れん)은 앞서 언급한 두 뮤지션의 바통을 이어받아 신경향을 리드하고 있는 아티스트라 할 만하다. 2019년 5월 틱톡 업로드를 개시, 초반에는 노래방이나 결혼식 축가 등 개인적인 영상이 중심이었지만, 이후 기타 연주와 함께 커버 곡을 상신하며 팔로워가 급상승. 특히 에이토(瑛人)의 ‘香水’, 모사오。(もさを)。’의 ‘ぎゅっと。’, 타니 유키의 ‘myra’ 커버 영상은 도합 천만 조회수를 돌파하며 초반의 상승세를 견인한 화제작 트리오라 할 만하다. 호불호 없을 청명하고도 호소력 가득한 음색, 공감대 어린 보편적인 감수성을 토대로 SNS 총 팔로워 수 150만 명, 동영상 총 시청 횟수 1억 회를 돌파하기에 이른다. 다양한 언어의 응원 댓글을 보면,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그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빠른 성장에 관계자들 모두 이 원석을 먼저 채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을 터. 소속사에 권유로 그는 어렵게만 생각했던 창작에 도전하게 되고, 2021년 9월에는 직접 작사작곡한 ‘嫌いになれない’로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기본적인 문법에 충실한 이별 송이지만, 듣는 이에게 단숨에 스며드는 듯한 뛰어난 표현력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한 결과물이었다. 이 시기쯤 『유이카』(『ユイカ』)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好きだから。’가 큰 주목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전파해 나갔다. 작년에는 ‘最低’와 ‘空っぽ’ 등이 바이럴 히트함과 동시에 스포티파이가 기대주를 선정해 추천하는 < RADAR: Early Noise 2023 >에도 이름을 올렸고, 올해 역시 꾸준한 릴리즈와 라이브 활동으로 음악 신의 새로운 방향성을 개척하는 중이다.
그의 커리어를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시작, J 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의 유소년 팀 소속으로 국제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으며, 틱톡을 시작했을 시점에도 소속 고등학교를 전국대회로 이끎과 동시에 여러 대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그전까지 그에게 음악이라고 하면 늘 주위에 있던 것, 그럼에도 그저 즐겨 부르고 듣는 취미였을 뿐. 어떻게 보면 코로나로 인한 속박이 역으로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자의식을 깨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원 오크 록의 타카를 선망해 왔던 그는, 팀의 히트곡과 이들이 커버해 온 서양음악에 의지해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형성해 왔다. 트레이닝으로 단련해 온 축구와는 달리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또 하나의 잠재력을 개방하게 된 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건대 홀로 즐거운 것을 맘껏 발현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은, 팀으로서의 성취가 목적인 축구와는 또 다른 희열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트리밍으로 인해 한층 낮아진 서양음악에 대한 문턱, 쉽고 편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는 SNS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렌이라는 아티스트는 누가 뭐래도 일본음악의 ‘지금’을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인상적인 점은,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능숙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이러한 곡조에는 자신의 성대나 호흡을 어떻게 써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마치 타고난 운동신경이라고 해도 좋을 천부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다. 최근 선보인 신곡 ‘一切合切’에서는 시티팝이나 디스코 기반의 사운드가 빚어내는 리듬 위를 강약조절을 통해 완벽히 서핑하는가 하면, 어두운 무드를 중심으로 미디엄과 업템포의 요소가 양립하는 ‘最低’에서는 급격한 전개에 휩쓸려감 없이 가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애절함을 심지 굳게 읊어나간다.
애니메이션 < 진격의 거인 > 속 처절한 현실에 몸부림치는 미카사 병장을 모티브로, 현시점에서 가장 바쁜 프로듀서라 해도 과언은 아닌 야플(Yaffle)과 호흡을 맞춘 ‘FLASH BACK’은 어떤가. 아레나 록을 연상시키는 스케일 큰 리얼 세션을 등에 업고, 마치 운동선수 시절의 근성과 끈기를 함축한 독기 있는 음색을 선보인다. 반면, 일본의 팝 록 사운드에 집중하고자 한 ‘氷解’은 해당 장르에서 기대하는 벅찬 감성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다. 이는 세카이 노 오와리나 게스노키와미오토메와 같은 제이팝 특유의 감성이 어린 팀들과, 아델이나 에드 시런 등 서양의 팝에 함께 영향을 받았기에 가능한 표현력이다. 한발 나아가 생각해 보면, 블랙뮤직에 뿌리가 닿아 있는 유우리나 나토리, 이마세, 타니 유키 등의 보컬이 대세를 점령한 지금의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 또한 SNS 세대이기에 해당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 제작에도 능숙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메시지는 사랑이나 응원, 시대 비판 등 갈래는 다양하지만, 누구라도 쉽게 알아듣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직선적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지금의 10~20대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또한 일반적인 팝의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짧은 구절만으로도 주목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지만, 그 안에서 훅이라던가, 제목, 재킷 등에서 그 노출도를 올릴 수 있는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그의 노래 중 ‘フシアワセ’를 예시로 들만한데,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로 이 곡의 원래 제목은 ‘おかえり’ 였다고 한다. 다만 ‘おかえり’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기에, 보다 검색에 있어 차별화를 주기 위해 가타카나 5글자를 콘셉트로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더불어 스무 곡에 가까운 싱글을 발표한 지금 시점에서도 아직은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낼 생각이 크게 없다는 그의 인터뷰에서, 곡 단위의 이미지가 보다 속도감 있게 소비되어 가는 현 시장 상황을 의식하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전략적인 측면이 자신이 가진 장점을 부각하는 원동력임은 확실하다.
그는 추구하고자 하는 테마를 ‘누군가에게 살짝 기대자(誰かにそっと寄りそう)'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생활의 일부이기에, 대중들 역시 각자의 삶에 있어 여러 감정을 지지해 주는 존재로서 자신이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그럼에도 막상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 기댐의 정도가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숨겨둔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공감대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모습이, 미처 내뱉지 못했던 응어리를 본인 대신 세상에 던져 넣는 행위로 비추어지며 정서적 일체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이 그가 가진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급변하는 시대에서도 무작정 새로운 것을 쫓기보다는, 음악이 가진 본질과 소중함을 유지하며 지금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맺어 나가려는 그의 행보. 11월부터 시작될 그의 첫 전국투어는, 과감하게 변경한 삶의 진로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그런 무대가 될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 보고 싶다. 어느샌가 아마추어에서 졸업, 불특정 다수에게 발현될 메시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그의 모습에서, 미지의 영역과도 같은 일본음악의 지금이 더욱더 견고하게 그 모습을 갖추어가는 듯 싶다. 이젠 공이 아닌 목소리와 연주를 통해 이어나갈 그만의 드리블과 슈팅. 위기를 기회로 환원해 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섬세하고도 과감한 플레이가 ‘지금’이라는 좌절에 부딪힌 이들에게 많은 힘이 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앞으로 힘차게 달려나갈 일만 남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