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키(4s4ki), 새로운 개념의 아티스트가 발하는 충격파
어렸을 적 즐겨봤던 만화 중에 < 초시공전사 넥스트 >라는 작품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무사인 주인공이 미래로 공간이동을 당한 후 펼쳐지는 설정의 SF 만화였는데,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대사가 하나 있다. 바로 “질서 속에 혼돈이 있고, 혼돈 속에 질서가 있다.”라는 말. 나뭇잎이 떨어지는 궤도에는 아무 규칙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역시 일정한 질서에 의해 반복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주인공의 한 마디였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본인의 음악을 ‘카오스’라고 일컫는 이 아티스트를 접하고 퍼뜩 저 대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격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 그 의미를 채우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자아. 언뜻 들으면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듭 들여다볼수록 구체화되는 정서와 표현법. 유일무이할 것 같지만 결국 그것이 현 세대의 보편적인 ‘좌절’과 ‘허무’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순히 이것이 ‘혼돈’이라 단정짓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음을, 새삼스레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자신 이외의 사람이 검색되는 것이 싫어 지금의 독특한 표현법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신예 아티스트 아사키(4s4ki). 데뷔 5년만에 그는 현 일본음악신에서 상징적인 존재감을 내뿜기에 이르렀다. 메이저 데뷔작 < Castle in Madness >(2021)를 통해 세계 유수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며 자신의 활동영역을 일본 밖으로 확장했고, 이 기세를 타 <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와 < 후지 록 페스티벌 > 출연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급격한 전개와 과도한 이펙트, 자극적인 소리들을 주축으로 하는 그만의 ‘하이퍼팝’에 스포티파이도 반응. 공식 플레이리스트에 ‘Sugar Junky’가 리스트업되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 역시 최근 일본의 여느 싱어송라이터처럼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게 된 케이스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접하게 된 넷 랩신에 빠져, 샤카보즈(釈迦坊主)와 덴파쇼죠(電波少女), 진멘우사기(Jinmenusagi) 등의 팬을 자처하다 데스크톱 뮤직(DTM)을 독학하기 시작. 여러 기획사에 데모를 보낸 것을 계기로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 음악을 제작하는 등 프로의 길로 진입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노상 라이브 영상이 SNS에서 화제를 모았고, 이를 눈여겨 본 레이블 < 스베노아나(術ノ穴) >가 그의 보금자리를 자처하기에 이른다. 당시 발표한 싱글 ‘Gender’(2018)와 EP < ぼくはバカだよ。>(2018)는 지금의 아사키를 아는 이들에게는 조금 어색할 수 있는 멜로우하면서도 팝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이른바 그의 ‘프로토타입’을 즐기기에 충분한 작품.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활동 초기에는 최대한 협업을 자제하는 여느 아티스트와 달리 그는 주변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자신의 색을 구체화한 케이스이다. 같은 소속사의 애니멀 핵(ANIMAL HACK)이 프로듀싱을 도맡은 < NEMNEM >(2019)과 모든 트랙에 피쳐링을 초빙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 おまえのドリームランド>(2020), 마사요시 이이모리(MASAYOSHI IIMORI)와의 협업을 통해 지금과 같은 하이퍼 팝의 도안을 마련한 < 遺影にイェーイ >(2020)까지. 인디즈에서의 활동은 그야말로 동료들의 노하우를 닥치는 대로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끊임없이 만든다’라는 기조라도 있었던 것처럼, 3년간 쌓아올린 적지 않은 디스코그라피는 메인스트림에서 만개한 그에게 넉넉한 자양분이 되었을 터.
그가 가진 음악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파격’에 있다. 마치 힙합과 록, EDM, 게임 음악이 한데 뒤섞여 만들어 내는 흡입력 강한 블랙홀이랄까. 그렇다고 그 혼란이 마구잡이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일본음악의 유산인 선 굵은 멜로디가 어느 곡에서나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 단단히 자리한 보컬과 선율은 강렬함 속 섬세함을 부각시키는 도구로서 작용한다. 여기에 따라붙는 화려한 라이브 연출은 자극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그의 음악을 이미지화 하는데 적극 협력하는 중.
여기에 현대인들을 잠식해가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 무력감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가 주목받는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이는 그의 디스코그라피 전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에고임과 동시에,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아도(Ado)의 ‘うっせぇわ’가 그려내는 패배의식과 연결되는 지점에 있다. 하나 다른 점은, 아도의 경우 Z세대에 국한에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아사키는 이러한 정서가 일부 세대의 것만이 아닌 나의 것이자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으면 좋을까
(僕らは果たして何を信じれば良いんだろう)”.
- ‘おまえのドリームランド’ 중
“사람이 무서워 진짜 무서워
(人が怖いまじて怖い)”
- ‘I LOVE ME’ 중
“목이 쉴 정도로 외쳐도 이루어지지 않아
(枯れるほど叫んでも叶わない)”
- ’欠けるもの’ 중
“의미는 없어 살아 있을 뿐이야
(意味はないの 生きてるだけ)”
- ‘escape from’ 중
그렇기에 그는 가상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이야말로 현실에 지치고 실망한 자신이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현실보다도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규정하고 또 긍정한다. SNS의 허구와 과시를 경계하라는 기성세대와 정혹히 반대의 위치에서, 더이상 리얼과 버추얼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를 정면으로 내민다는 것이다. 마치 ‘그곳에서의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다. 현실에서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주어지지 않기에’라고 외치는 것처럼. 점점 파이가 커져가는 버추얼 유튜버의 경우, 그 익명성이 오히려 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는 지금의 주객전도 현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꿰뚫어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불어 듣는 이는 감지할 수 있지만, 그에게 있어 별다른 음악적 레퍼런스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그저 관심 있는 넷 랩신에 영향을 받고, 독학을 거쳐 수많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한 ‘실전’만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일궈온 형태에 가깝다. 더불어 그의 음악에 있어 ‘게임’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대목으로 하여금. 현재의 뮤지션들이‘음악’을 반드시 레퍼런스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무의식 중에 과거의 유산에서 어떠한 요소를 가져왔을 수도 있고, 청자가 그것을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문제인 것.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특정 세대만을 향해 있지 않는다. 타깃이 명확한 시대에 오히려 광범위한 타겟팅으로 다수의 음악 애호가들을 노리고 있다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보카로P/우타이테 세대에게도, 얼터너티브 록 마니아에게도, EDM 애호가들에게도, 힙합 추종자에게도, 아사키의 음악은 매력적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혼돈 속의 질서’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사키는 여러모로 지금 시대를 대변한다. 음악적으로도, 메시지적으로도. 만약 몇년 전에 그를 접했다면 굉장히 좁은 리스너층에게 어필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소수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허무와 패배의식은 가상현실을 타고 증폭되어 세계를 잠식해가고 있음을. 그리고 아사키의 음악은 이를 선언하는 일종의 성명문임을. 이렇게 우리는 한 아티스트가 몰고 온 생각지도 못한 충격파를 몸속 깊숙이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 아사키의 새앨범 < Killer in Neverland > 발매를 기념해,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가 내일인 8/24(수) 저녁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