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Ado)가 가진 음악적/사회적 의의란?
말하고 싶은 것도 말할 수 없는 세상
옛날엔 존재했었다는 거 같아
부러워(아무 것도 말할 수 없어)
귀찮은 일에 전력을 다해 도망쳐 왔으니까
모르겠어
모두 자업자득이잖아
말하고 싶은 것이 없어 말하고 싶은 것이 없어… - 빗슈(BiSH) ‘I have no idea.’ 중
작년 한 해 나만의 헤비 로테이션을 꼽아보면, 그 중 한 자리는 이 노래의 차지일 것이다. 그룹 특유의 강렬한 록 사운드와 캐치한 선율, 후크를 통해 자아내는 중독성 등. 앨범 < GOiNG TO DESTRUCTiON >도 자주 듣곤 했지만, 이 트랙만 편애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번을 들었을 노래이지만, 문제는 가사였다.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졌음에도, 해석 후가 더 어렵게 다가오는 노랫말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왜 말하고 싶은 게 없는지, 말하고 싶은 것도 말할 수 없는 세상이 왜 부러웠는지, 자업자득은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인지… 그렇게 의문을 안은채 시간은 연말로 부리나케 달아나고 있었다.
그 의문이 풀린 것은, 우연찮게 아도(Ado)의 ‘うっせぇわ’ 관련 인터뷰를 찾아보면서였다. 2020년 말 갑작스레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 아티스트의 그 노래 말이다. 이 ‘서브컬쳐’의 정서를 조금도 순화하지 않은 노래가 왜 이렇게까지 인기인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그 돌풍은 음악 신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져갔다. 여기엔 본인의 이야기라며 깊은 공감을 드러내는 10~20대와, 자녀들이 ‘시끄러 시끄러’를 반복하는 것을 바라보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40대 이상의 대립이 그 축을 이루고 있다. ‘うっせぇわ’가 공개된 지 어느덧 1년 3개월, 최근 발매된 정규 1집 < 狂言 >의 발매에 맞춰 아도란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일으킨 음악적/사회적 의의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도를 언급할 때 종종 보이는 표현이 ‘보카로네이티브 세대’이다. 그는 대중가요와의 큰 접촉 없이, 온전히 넷 상에서 보컬로이드/우타이테 음악을 듣고 성장한 케이스다. 하츠네 미쿠로 촉발된 서브컬쳐 신의 역사가 길어지고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듣고 즐기는 음악’의 진입루트를 해당 콘텐츠의 기지와도 같은 웹사이트인 ‘니코니코동화’로 삼는 90년대 후반 ~ 00년대 출생의 일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
그 기저에는 무한경쟁 속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생겨나는 자기혐오와, 이로 인해 발현된 익명성 선호가 똬리를 틀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MZ세대 관련 저서 중 하나인 < K를 생각하다 >의 저자 임명묵은 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경쟁을 더욱 절감하는 이유에 대해서, ‘겉으로는 잘 실감할 수 없던 기성세대의 그것과 달리, 지금의 세대는 SNS를 통해 24시간 타인과의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회적 배경이 10대들의 보카로 문화 유입을 재촉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익명성이 높은 우타이테라는 스타일을 선택한 것도, 본인에게 친숙했기 때문인가요?
Ado : 원래 저는 공부도 운동도 서툴고, 내 자신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곤 해서. 무엇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고, 반에서 특별히 인기가 있다거나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쌓여 꽤 큰 콤플렉스가 되어 있었습니다.정말 그늘지고 그늘지고 그늘진 사람이랄까(웃음). 그래서 얼굴을 보여주고 활동하는 건 무리라고 처음부터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우타이테들은 얼굴도 본명도 밝히지 않고,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확실히 활동이 가능하고 많은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죠. 그 자체가 저에게는 반짝반짝 빛나 보였고, 동시에 여기라면 스스로도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 21.10.19, Realsound 인터뷰 중
이처럼 ‘남 앞에 서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이 곳이라면 가능하다’라는 생각으로 2017년 우타이테로서 첫 작품을 투고. 2019년부터 유명 보카로P인 쿠지라와 jon-YAKITORY, 슈도의 작품에 보컬리스트로 참여하며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올린 후, 2020년 10월 슈도 작사/작곡의 ‘うっせぇわ’로 메이저 데뷔를 완수했다. 흥미로운 점은, 유니버설 같은 대형 레이블에서 데뷔곡으로 이토록 강한 어프로치의 노래를 선정했다는 사실. 아티스트 본인 조차 이런 제목과 가사로 데뷔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언급했을 정도로, 결과적으로 보면 그 문화를 있는 그대로 끌어오고자 했던 레이블의 선구안이 적중한 셈이다.
처음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발매 직후엔 다소 미미했으나, 2021년에 들어섬과 동시에 틱톡을 중심으로 활발히 퍼져가던 2차 콘텐츠에 힙입어 대중들의 이목을 모았고, 그 기세를 타 3월에 빌보드 재팬 Hot 100 1위, 스트리밍 재생 수와 유튜브 조회 수가 각각 1억을 돌파하며 음악 신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아로새겼다. 동시에 제목인 ‘うっせぇわ’는 일종의 사회적 키워드로 자리 잡았고, 매년 발표하는 유행어 대상 TOP 10에도 오르며 그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초반엔 ‘중2병’이라며 비호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상당수 있었으나,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좀처럼 음악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에 일종의 ‘유행가’로 퍼져나갔다는 점에서 이 곡의 파급력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Ado씨의 「歌ってみた」 의 투고 중에는 ‘うっせぇわ’를 만든 syudou씨의 ‘邪魔’도 있었는데 syudou씨 곡의 어떤 점이 좋은가요?
Ado : 이것은 아까 말씀하신 와다 다케아키 씨와 비슷한 부분인데요. 악의를 악의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입니다.'邪魔'라니 제목부터 대단하고, 가사에서도 '내가 선(善)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지만, 네가 선이라니 구역질이 나’라든가. 숨기지 않는 그대로의 인간을 표현하는 가사가 좋아요. 굉장히 끌리죠.
‘うっせぇわ’라는 곡을 받은 첫인상은 어땠나요?
Ado : syudou씨가 써 주셨다고 하는 기쁨과, 이런 말투는 그렇지만, “메이저 데뷔곡을 써 주세요"라고 하는 부탁을 했는데, 그렇게 ‘うっせぇわ’라고 하는 타이틀이 나온게 대단해서(웃음). 정말로 숨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이 좋아서. 제 안에서 느껴왔던 syudou 씨를 그대로 가져와 주셔서 기뻤어요.
- 21.5.12, 분슌 온라인 인터뷰 중
더욱이 이 히트가 이례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보카로P/우타이테’라는 서브컬쳐를 조금의 가공이나 훼손 없이 그대로 끌어와 이끌어 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うっせぇわ’라는 노래엔 해당 문화를 접해보지 않았던 이들에겐 굉장히 낯선, 기존 대중음악과는 굉장히 다른 문법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요네즈 켄시 이후로 수많은 보카로P/우타이테 출신들이 메이저 시장으로 건너왔지만, 어느 정도 대중과의 타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명의를 바꾸거나, 밴드의 멤버로 데뷔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음악 스타일이나 가사를 살짝 ‘일반 대중음악의 문법’에 맞춰 순화한다거나.
하지만 ‘うっせぇわ’엔 이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지향한 셈. 여기엔 대중음악 신이 팬덤 중심의 문화로 변모해 가는 경향과, 이 신의 팬덤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레이블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노래가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이 노래가 왜 히트했는지?” 궁금해하던 이들도, 지금은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며 보카로P/우타이테 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점, 나아가 해당 신의 본질과 이해를 범대중적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이 이 노래, 그리고 이 아티스트가 가지는 음악적 의의가 아닐까 싶다. 이처럼 기획 단계의 과감한 한 수는 그의 히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적인 내용일 뿐, ‘왜 히트했는가?’에 대한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랫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성세대와의 단절’이다. 기성세대가 야기한 무한경쟁 속에서, 더 이상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이 노래 안에는 전세계의 Z세대, 즉 10대가 가진 공통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셈이다. 경제침체와 SNS를 통한 타인과의 비교, 코로나로 인한 자유박탈과 점점 심해지는 각종 혐오 등. 이 속에서 생겨난 패배의식과 무력감이 ‘일본만의 방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얻었던 것이 아닐까. 즉 서구권에서 빌리 아일리시가 자기혐오에 기반한 메시지로 위로와 공감을 주었던 것과 맥락적으로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력매체인 겐다이비즈니스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로 ‘うっせぇわ’의 히트를 분석한 바 있다.
이 곡은 「어른에 대한 항의」를 노래하지 않는다. 항의는 의사소통이다. 젊은이가 훔친 오토바이로 달리기 시작하거나 교사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다니지 않게 된 지도 벌써 꽤 되었다. 젊은이가 어른 세대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는 형태로 표현될 것이라 생각하는 어른세대는 낙관적이다. 젊은이는 당신 앞에서는 마지막의 직전까지 모범생이고 모범인간일 것이다.
‘うっせぇわ’가 그리고 있는 것은 어른에 대한 단념이며, 실제로 말할 일 없는 본심이다. 즉, 술자리에서 연장자와 담소를 나눈 다음 날 사표를 내는 젊은이의 내면이다. 일이 터졌을 때는 그것은 끝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하지 않다.
얼마 전 오자키 유타카의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과 오자키의 사이가 좋았던 것이 그려져 있고, 매우 납득하고 말았다. 항의라는 것은 ‘진의가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과 표리일체다. ‘うっせぇわ’의 단념과 거절은 이렇듯 더 지적이고 차갑다.
(중략)
그것은, 현대의 일본 사회에 있어서, 젊은이는 마이너리티라고 하는 것이다.
필자가 5년 전부터 도쿄대에서 개강하고 있는 < 보컬로이드 음악론 > 강의 중, 반드시 섹슈얼 마이너리티에 대해 언급한다. 국내외에 다양한 조사가 있지만, 인구의 8~10%가 LGBTQ 등의 성 소수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관련해 현재 일본의 10대(1019세) 인구는 약 1100만명. 일본 총인구(약 1억3000만 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 수준인 셈이다. 섹슈얼 마이너리티의 비율과 같다.
(중략)
물론 비율에 관계없이 모든 소수자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 사실에 학생은 리얼리티를 느끼게 된다. 강의에서 이렇게 말하면 듣는 자세가 갑자기 진지해진다.
혹은 필자가 말하기 전부터, 젊은 세대는 자신들 또한 마이너리티임을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syudou를 거느린 현재의 보카로 신(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음악씬)에 있어, 스리의 ‘テレキャスタービーボーイ’(2019)나 테니오하의 ‘ヴィラン’(2020) 등, LGBTQ의 감성에 기댄 측면을 가진 보카로 곡이 톱급 히트송이 되어 있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 現代ビジネス, 21.3.5
필자 : 鮎川ぱて @しゅわしゅわP
(보카로P/도쿄대학교양학부비상근강사)
이미 소수가 되어버린 10대들은 다수, 즉 기성세대에 밀려 자신의 발언이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어른에 대한 단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예시로 드는 것이 바로 오자키 유타카의 ‘15の夜’다. 이 곡의 가사 속 인물은 ‘훔친 오토바이로 달리기 시작’하거나 ‘갓 배운 담배를 피우며’ 반항한다. 기성세대에겐 10대의 ‘불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반항은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희망조차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10대는 입을 열지 않는다라는 흐름.
이 기사를 보고 글 초반에 언급했던 빗슈의 ‘I have no idea’가 떠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순식간에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하고 싶던 것이 있던 예전과 달리 ‘더 이상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어른에 대한 단념의 정서. 그것은 모두 우리들의 입을 틀어 막았던 기성세대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외침.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마이너리티이기에 가지는 체념’이다. 다만 빗슈의 경우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팀이 불렀다는 점에서 가창자와 메시지의 싱크로율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었을 터.
그렇기에 ‘아도’라는 존재가 의미를 갖는다. 작사는 20대인 슈도가 도맡은 만큼, 그의 목소리로 불려졌다면 다소 설교와 같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것. 그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로부터 벗어나 온라인으로 피신한, 자신과 같은 세대가 ‘패배감 그대로의 정서로’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 마이너리티가 가지는 체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신뢰에서 비롯된 감정이입이야말로, ‘우타이테’로서 활동해 온 그가 발휘할 수 있었던 설득력의 근원인 셈이다.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을 알려준 또 하나의 희망적인 예시로 자리잡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うっせぇわ’는 10대의 외침을 사회적 의미로 환원하는 확성기의 역할을 성실히 완수했다.
국내에도 우타이테 신은 존재한다. 여러 우타이테들이 SNS나 유튜브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다즈비와 라온과 같은 아티스트들은 유니버설 뮤직 재팬과 계약해 정식 일본데뷔를 기다리는 중이다. 문화에 대한 인지도나 영향력은 일본에 비하면 미미하나,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해서 자기표현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생길 상처가 두려운 것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춘 ‘소심한 관종’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이들에게 자신의 그 역량을 본인이 확인하고 인정받을 루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이런 상황에서 이러한 익명성 기반의 우타이테 활동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통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K-POP과는 실질적으로 반대급부인 셈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양국의 10대들이 처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내에서도 이 서브컬쳐 신은 그 규모가 더욱 커져 가리라는 것이다. 아도의 등장과 ‘うっせぇわ’의 히트는 이러한 명제를 더욱 가속화할 매개체로 분한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 최근 선보인 1집 < 狂言 >은 신을 이끌어 온 대표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만들어 낸, 그야말로 메인스트림의 영토 내 보카로P/우타이테 신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현실화 된 보카로네이티브 세대의 충격적이고도 성공적인 침공, 그 나비효과는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