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뜻한 Jun 14. 2020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부대끼는 인간관계의 소화제는 무엇일까?

1. #뷔페

 어렸을 때는 뷔페가 좋았다. 피자 한 입, 샐러드 한 입, 초밥 한 입, 과일 한 입. 평소에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한 번에 다 먹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턴에 이걸 먹었으니, 다음 턴엔 이걸 먹어볼까? 먹고 나면 다음 끼니를 거를 정도로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은 뷔페가 그렇게 좋지 않다. 예전보다 소화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일까. 몇 입 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찬다. 다음 턴에 뭘 먹을지 고민할 것도 없이 숟가락을 놓게 된다. 무엇보다 먹고 났을 때 이제는 행복한 포만감이 드는 게 아니라, '부대낀다'는 그 느낌이 불쾌하기만 하다.

 

2. #관계

 어렸을 때는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았다. 나는 몇 명이나 친구가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몇 백 명이 넘어가는 핸드폰 연락처가 흐뭇했다. 모든 건 내 성격이 좋아서, 나라는 사람이 좋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더 오랫동안 연락하고 싶었다. 사람들 때문에 울고 웃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결국 지나치게 많은 인간관계는 나를 부대끼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핸드폰도 몇 번 잃어버리면서 수백명의 연락처는 정말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로만 줄어들었다. 사실, 세어보니 정작 나랑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았다. 나는 왜 결국 연락하지도 않을 관계에 그토록 울고 웃었을까?


3. #깊이 

 물론 인간관계에도 '깊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깊이와 밀도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얕게 오래, 어떤 사람들은 깊고 짧게, 또 어떤 사람들은 얕고 짧게 만난다. 그렇다고 얕고 짧게 만나는 관계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든지 반면교사든지 교사든지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된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모든 관계를 '깊고 길게' 만나려고 집착했던 나 자신이다. 모든 관계가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 마음으로 이해했더라면, 상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을 텐데. 관계에 어리숙했던 나는 어떻게든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관계를 붙들고 매달렸다. 


4. #소화제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나를 부대끼게 하는 인간관계에도 청소가 필요하다. 수 백 명이 되는 인간관계를 보며 흐뭇할 필요는 없다. 결국 나와 깊게 연락하는 사람은 몇 명 뿐이다. 

 그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가? 나의 성장과 미래를 응원해 주는 사이인가? 내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는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내가 불편해하지 않는가? 그 사람과의 관계로 나도 상대도 성장한다고 느끼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가다 보면, 내가 누구를 더 신경써야 하는지가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결국에는 언젠가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것에 더 신경쓰는 것. 그것이 부대끼는 우리 인간관계의 '소화제'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