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LGBTQ+영화, <코발트블루>를 보고
네이버플러스 회원도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자마자 곧바로 가입해서 여러 콘텐츠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스씨와 나에게는 첫 넷플릭스다. 해당 OTT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숱한 유혹에도 꿋꿋하게 견뎌왔지만(넷플릭스 시작하면 일도 안 하고 하루종일 TV만 보고 살 거라는 공포가 있었음), 사실상 공짜(원래부터 네이버플러스 회원)라는 유혹은 정말 강력하더라. 가입하자마자 <삼체 시즌1>을 보았다. 가입하길 정말 잘했어!
공포 영화 마니아인 오스씨가 홀로 공포물을 즐기는 사이, 내가 선택한 두 번째 콘텐츠는 LGBTQ+영화 코너에서 찾은 인도영화 <코발트블루>다. 예고화면에 나오는, 아마도 주연배우의 이름일 듯한 '프라티크 바바르'의 웃는 모습에 홀려서 플레이를 눌렀다.
영화는 지금보단 동성애에 대한 억압과 정보부족이 훨씬 심각하던 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인도에서 동성애는 처벌이 가능한 범죄로 여겨졌던 듯하다. 영화는 주인공이 하숙생으로 들어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줄거리나 감상보다 극 중에 나오는 대사 두 개에 대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1. 극 중에는 세 명의 게이가 나오는데, 대학에서 시를 공부하는 주인공 따나이, 따나이가 사랑하는 남자, 따나이를 가르치는 문학부 교수다. 따나이가 교수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여자와 함께 자신을 떠났다고 말하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니가 사랑한 모든 남자를 빼앗아 가.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지. 마음 단단히 먹어."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딘가 "이상한", "비정상", "모자란", 등 사회적 실패자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90년대 인도만이겠는가. 그 시절 한국도 똑같았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결혼적령기가 되면,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또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 위해", 이성애자 여성(남성)과 결혼했다. 그들은 직전까지 사랑을 속삭이던 동성 파트너를 버리고(또는 애절하게 이별하고) 결혼식장으로, 이성애자가 만든 결혼제도 속으로 달려(끌려) 갔다.
그래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게이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두려워하고(남성 그룹 내에서 여자 같다는 놀림은 공포 그 자체), 조금 친절하게 대해줬더니 사랑한다고 고백해 오는 여자를 귀찮아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뺏어가는 여자를 미워했다.
가까이하기 싫고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자를 이용하고, 여자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원받았다.
게이에게 여자는 모순 그 자체, 애증의 대상이었다.
동성애 억압을 기반으로 한 이성애 중심 가족/결혼제도는 슬픈 이야기를 끝없이 제조해 왔다.
다행히,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했고, 요즘은 나이 든 미혼남이 흔해졌다. 90년대 게이가 결혼제도라는 숲에 숨어들었다면, 요즘 게이는 비혼/저출산의 파도에 올라타 서핑을 즐긴다. 언론에선 가족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한탄하지만,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도 되는 사회가, 더 이상 남자 혼자 있어도 흘겨보지 않는 사회가 게이에겐 행복할 뿐이다. 결혼 압박이 없으니 더 이상 여자에게 사랑을 빼앗겨 눈물을 흘릴 일은 없다. 게이는 여자를 속이지 않아도 되고,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 멸망의 경고 속에서, 이제야 게이는 여자를 '경쟁자'가 아니라 '친구'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2. 교수는 따나이에게 게이로 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본인이 얼마나 우정과 동료애에 굶주려 있는지, 마치 감옥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며 흐느낀다. 이후에 따나이는 이런 말로 교수를 위로한다.
'언젠가 분명히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컴퓨터 같은 걸 만드는 사람들이 서로를 찾아낼 무언가를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잃어버린 영혼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따나이의 예언은 극 중 배경으로부터 이십여 년이 흘러 게이 데이팅 어플이란 이름으로 결국 현실화되었다. 인터넷과 어플을 통해 연결된 거대한 게이네트워크는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혼자일 거야'라는 생각을 없애주었다. 하루하루가 외롭다고 울부짖던 영화 속 그 교수는 어플에 뜨는 수 백명의 남자들 중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매일 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 데이팅 어플을 사용하고서부터 외롭지 않아,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서 하루하루가 따뜻해,라는 애는 하나도 못 봤다. 오히려 몰상식한 인간을 만날 확률도 덩달아 높아지고,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짙어지고, 자존감이 바닥 치고, "멋진 몸을 만들어야 해! 근육질 몸이 전부야!"라는 강박은 갈수록 심해졌다고 한다.
이성애자 속에 홀로 있는 듯한 소외감에 허덕이다가 이제 좀 우정과 동료애 충만한 세상에서 살아가나 싶었는데, 잘난(척하는) 게이들에 치이며 자존감 긁히는 순간만 늘어난다. 뇌를 비우고 어플 속을 가볍게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무게 없이 떠다니는 사람만이 데이팅 어플 세상의 진정한 승자다. 조금이라도 진지한 생각을 하면 다리가 무거워지며 여지없이 꼬로록 가라앉는다. 따나이가 꿈꾸는 세계는 전자 공학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시적 허용의 세계일 뿐이었다. 늙어버린 교수는 오늘도 몸매의 허접함을 지적하며 퇴짜 놓는 상대의 차가운 반응에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
사족 1. 영화 내내 따나이의 남자가 거북살스러웠다. 인도 영화 속 남자 특유의 그 느끼 느끼. 교수가 훨씬 내 취향이었다. 남자가 떠나고 따나이가 교수와 함께 있을 때, 속으로 계속 외쳤다.
"교수를 잡아, 이 멍청한 것아!"
사족 2. 영화 말미에 따나이의 수염 기른 모습이 나온다. 충격! 동일인이라고? 수염 잘 안나는 한국남자 만만세!!!